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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들의 통장을 살찌우는 다양한 실전 재테크 방법들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똑똑한 연말정산을 준비할 수 있는 절세 혜택의 국가대표 상품인 IRP와 연금저축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삼성화재와 함께 13월의 월급, 연말정산의 마스터로 등극해볼까요?



▶IRP : 연간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 받을 수 있어요!



IRP(개인형 퇴직연금)와 연금저축은 절세 금융상품의 대표주자로, 연말정산의 필수 금융상품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IRP는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퇴직금과 별도로 근로자 개인이 퇴직금 계좌를 만들어 불입하는 금융상품인데요, 근로자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도 가입이 가능합니다.


55세 이후에는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찾아 쓸 수 있고요, 연간 납입액 중 연금저축과 합쳐서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 연간 총 급여 금액에 따라 세액공제율이 두 가지로 나뉘어 적용되는데요. 총 급여가 5500만 원 이하일 경우 16.5%의를 적용해 최대 115만5000원을, 5500만 원을 넘는 경우는 13.2%의 세액공제율을 기준으로 최대 92만4000원까지 세금을 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연금저축 : 노후 대비뿐 아니라 세액공제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요!



또 하나의 절세 혜택 상품, 연금저축도 잊지 않으셨죠? 연금저축은 개인의 노후생활 보장 및 장래의 생활안정을 목적으로 5년 이상의 기간 동안 개인이 납입한 금액을 적립해 만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는 장기 저축 상품입니다.


특히, 나이와 소득여부 등에 대한 제한이 없어 가입 문턱이 낮은 상품으로도 유명한데요. 매년 납입금액에 대해 연간 최대 4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근로소득과 종합소득금액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연말정산 시에 최대 66만 원까지 환급 받을 수 있어 IRP와 더불어 연말정산에서 꼭 챙겨야 할 금융 상품으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연금저축 상품의 경우 상품수수료 외에 별도의 추가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고 퇴직금 부분인출이 가능하다는 점 등 다양한 이점이 많아 최근 인기를 더하고 있는 상품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연말정산의 꽃, 절세 혜택의 최강자 연금저축과 IRP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올해는 삼성화재가 전해드리는 꿀팁으로 더 두둑한 13월 월급통장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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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기 기자의 자동차 칼럼

<우리가 잘 몰랐던, 자동차 헤드램프 이야기>



흔히 자동차 헤드램프를 ‘사람의 눈’에 비유한다. 우리가 밤에 운전할 수 있는 이유도 헤드램프 덕분이다. 또한, 엔진이나 서스펜션과 달리 자동차의 비주얼을 결정짓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동차의 헤드램프는 기능뿐 아니라 모양도 예뻐야 한다. 앞으로 헤드램프는 단순히 어두운 밤에 길을 밝히는 기능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기능을 품고 진화할 전망이다.



▶더 안전하게, 더 효율적으로…헤드램프의 시작

 

 


최초의 자동차 헤드램프는 아세틸렌(Acetylene) 또는 기름에 불을 붙여 빛을 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어린 시절 쓰던 ‘호롱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전기로 빛을 내기 시작한 건 1889년 미국의 전기차 회사인 ‘콜롬비아 일렉트릭 카(Columbia Electric Car)’부터다. 전구 뒤쪽에 반사경을 붙여 사방으로 빛을 뿌렸다.




1960년대 들어 할로겐(Halogen)램프를 적용한 자동차가 등장했다. 부피는 작지만 기존보다 훨씬 높은 발광 효율을 뽐냈다. 지금까지도 소형차 대부분이 할로겐램프를 쓴다. 전구를 둘러싼 안쪽 면 또는 램프 커버에 다양한 면을 심어서 뿌리는 빛의 각도를 넓혔다. 따뜻한 색감의 색온도 덕분에 빗길이나 안개 자욱한 길에서 성능이 뛰어나다. 그래서 요즘 LED 램프를 쓰는 차에 상향등이나 안개등에는 여전히 할로겐램프를 얹는다.




1990년대부터 자동차 헤드램프는 HID(High-Intensity Discharge, 고압방전등)로 한층 진화했다. 색 온도가 백색에 가깝고 빛이 도달하는 범위가 길어, 한때 상위 트림에만 옵션으로 적용하는 형태로 등장했다. ‘예쁜’ 색감 덕분에 HID 램프로 불법 개조하는 소비자도 더러 있었다. HID 램프는 프로젝션 램프로도 부르는데, 현재 승용차 대부분이 이 방식을 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 눈매는 ‘반짝이’ LED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2004년 등장한 아우디 6세대 A6가 대표적이다. 헤드램프 아래쪽에 LED를 6개 심은 주간주행등을 선보였다. 주간에도 자동차의 안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고, 하나의 디자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HID 램프를 LED로 바꿔 전력효율은 높이되 가시성은 더욱 향상됐다.




아우디의 매트릭스 LED를 예로 들면, 헤드램프 한쪽당 25개의 LED를 빼곡히 채웠다. 1개의 반사판에 5개씩 세트로 엮은 게 특징이다. 앞 유리창에 자리한 카메라 센서와 함께 빛을 다루는데, 가령 앞서 달리는 차 또는 마주 오는 차를 감지하면, 해당 부위를 비추는 조명을 끄거나 최대 64단계로 밝기를 조절한다. 상대방의 눈부심을 줄이기 위해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멀티빔 LED 헤드램프도 ‘똑똑이’ 램프 중 하나. 코미디언 이경규 씨처럼 눈동자를 자유자재로 굴린다. 가령, 굽잇길에서 스티어링 휠(운전대)의 조타 각도에 맞춰 빛의 조사 방향이 이동한다. 게다가 내비게이션에서 제공하는 예측 경로 데이터를 밑바탕 삼아 운전대를 꺾기도 전에 미리 빛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가로등 없는 어두운 밤길에서 특히 유용하다.



이젠 헤드램프로 의사소통하는 시대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헤드램프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크기는 점점 줄이되, 더 멀리 비추고 수명도 오래 간다. 2016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디지털 라이트(Digital Light)’가 시발점이다. 어두운 밤, 아무 표시 없는 도로에 빛으로 가상의 횡단보도를 그리거나, 표지판 또는 신호까지 그릴 수 있다.


 


최근 폭스바겐이 선보인 ‘인터랙티브(Interactive) 램프’는 한술 더 뜬다. 도로 위에 차선을 그리고, 램프에 다양한 정보도 표시한다. 비상점멸등 혹은 경적보다 더 구체적으로 운전자 의사를 표현하기 좋다.


인터랙티브 램프는 폭스바겐이 새로 개발한 HD-LCD 라이트를 쓴다. 고해상도 LCD로, 헤드램프당 최대 3만 픽셀의 해상도를 구현한다. LCD 광원을 3만 개 심었다는 뜻이다. 대부분 하이엔드 헤드램프는 80픽셀이다.


특히 인터랙티브 램프는 유리창에 정보 띄우는 헤드 업 디스플레이의 기능도 구현한다. 가령, 운전자 시선이 머무는 노면에 도로 신호나 경고 표시판을 그린다. 전 세계 최초로 ‘옵티컬 레인 어시스트(Optical Lane Assist)’를 넣기도 했다. 헤드램프가 비추는 도로 위에 가상의 차선을 그리는 기술이다. 차 너비를 가늠하기 좋을뿐더러, 내가 모는 차와 옆 차선에서 추월을 시도하는 차 모두의 안전에 도움을 준다.


 


테일램프(후미등) 그래픽을 이용해 뒤따라오는 차에게 경고도 한다. 이를테면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 리가 정체 구간을 만나면, 테일램프 속 광원을 조합해 느낌표를 그려 위험을 알린다. 마이크로 렌즈를 이용한 ‘옵티컬 파크 어시스트(Optical Park Assist)’ 기능도 주목할 만하다. 주차할 때 차의 예상 경로를 비춰 주변 보행자와 사고를 예방한다. 최근 제네시스가 선보인 G90에도 해당 기능이 들어갔다.


앞으로 폭스바겐이 선보일 전기차 I.D. 시리즈의 헤드램프는 이보다 한발 앞선다. 가령, 눈매는 인간의 눈동자처럼 움직인다. 시동을 걸면 눈꺼풀을 뜨고, 주행이 끝나면 눈을 감는 시늉을 한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자연스레 눈동자를 굴리기도 한다. 단순한 퍼포먼스 용도보단, 이를 통해 차량 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처럼 자동차 헤드램프가 진화하는 이유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운전대와 각종 페달뿐 아니라 조명과 관련해서도 운전자가 직접 조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고 예방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 자동차 사고의 약 30%가 밤에 발생한다. 피해도 일반 교통사고의 2배를 넘는다. 과연, 헤드램프는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나갈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 본 콘텐츠는 집필가의 의견으로, 삼성화재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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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삼성화재의 새로운 관점, ‘門問, 물음을 여는 문’

고전음악가들의 인생 속 건강과 행복, 삶의 균형을 전문가의 눈으로 살피고

인문학적 관점을 더해 깊이 있는 질문과 의미 있는 성찰을 담고자 합니다. 

삼성화재와 함께 삶의 혜안을 찾고 인생의 봄날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18세기 들어 후원자인 귀족과 자유를 갈망하는 예술가 사이의 갈등이 빈번해졌습니다. 베토벤은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으로 삼아 당시로써는 보다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적 형식을 연구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음악적 자양분으로 삼은 베토벤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 대부분 음악가의 목표는 귀족이 운영하는 궁정악단에 취직하거나 재력 있는 귀족 후원자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르네상스 때부터 시작된 귀족이나 재력가들의 문예 후원, 즉 메세나1)에 의존해 음악시장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 같은 후원은 학문과 예술의 애호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미술에 있어서는 자기의 얼굴을 역사적 장면 가운데 넣는다거나, 심지어 하느님의 도상을 적용시켜 자신을 신격화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음악계에서도 음악가가 후원자에게 곡을 헌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작권을 후원자가 소유하거나, 음악가의 명성을 빌려 후원자의 사회적 평판, 인지도를 높이는 데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1) 메세나(Mécénat) : 귀족이나 재력가들의 문예 후원을 뜻하는 프랑스어. 고대 로마의 정치가, 외교관, 시인인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의 프랑스식 발음에서 비롯됐다. 가이우스 마에케나스는 당대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후원으로 그들의 예술적 재능이 후원자들의 권력 강화에 쓰이도록 한 인물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예술 후원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상관없이 주문이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간섭이 심해지면서 예술가의 자율성이 침해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모습은 베토벤에게서도 그대로 발견됩니다.


1802년 초, 베토벤의 악보를 출판하던 친구 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2)가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소나타를 작곡해 달라고 청탁하자 베토벤은 몹시 화를 내며 거절했습니다. 왕권을 타파할 것으로 기대했던 나폴레옹이 종신 통령의 자리에 오르면서 나폴레옹에게 걸었던 기대가 환멸로 뒤바뀌었기 때문인데요. 1806년 여름에도 베토벤은 자신의 후원자인 카를 폰 리히노프스키 공작이 프랑스 장교들을 위해 연주하라고 하자 이를 거절하고 빈으로 돌아가 리히노프스키의 흉상을 내동댕이쳤다고 합니다.


2) 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Franz Anton Hoffmeister): 세계적 음악 출판사인 '페터스(C. F. Peters)'사의 기틀을 마련한 독일의 작곡가이자 악보 출판업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작품을 출판했으며, 이들은 호프마이스터의 친구이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그에게 곡을 헌정했으며, 베토벤은 편지에서 그를 '가장 신뢰하는 친구'라고 표현했다. 




베토벤이 공작에게 보낸 이 편지를 끝으로 둘 사이의 오랜 후원 관계가 끝을 맺고, 그동안 공작이 지급했던 연금도 끊어졌습니다. 물론 베토벤도 귀족들의 후원을 받고 또 후원을 받기 위해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당시의 다른 어떤 음악가나 예술가보다도 독립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바흐나 하이든 같은 선배 작곡가들처럼 왕이나 귀족의 고용인으로 사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재능과 작품을 시장에 파는 독립적인 사업가로 살고자 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베토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18세기 후반 유럽과 북미를 휩쓸었던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음악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정신적 스승 계몽주의


베토벤은 1770년에 신성로마제국(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하는 300여 개의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쾰른 선제후국의 중심 도시인 본에서 태어나 1827년에 사망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후기 계몽주의, 1789년 프랑스 혁명, 1792년 혁명전쟁, 1804년 나폴레옹 제국 그리고 1815년 왕정 복고 등으로 이어진 격랑의 시기였습니다. 베토벤은 22세인 1792년에 빈으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 1805년 말에는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을 몸소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이전의 교향곡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불협화음과 새로운 음악적 지향은 베토벤이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고 이를 깊이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무엇보다 베토벤은 계몽주의3)를 접하면서 이것을 자신의 철학이자 시대정신으로 여겼습니다.


3) 계몽주의: 합리적 이성의 힘으로 현존 질서를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데 목적을 두었던 17, 18세기의 시대적 사조(思潮)를 지칭한다. 




베토벤에게는 전쟁의 격렬한 포성도 새로운 음악을 자극하는 소리였는지 모릅니다. 이전의 교향곡에서 볼 수 없었던 베토벤 특유의 불협화음에는 시대의 흐름을 고민하고 배움으로써, 이를 자신의 음악에 담아내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1784년에 황제 요제프 2세의 동생인 막시밀리안 프란츠가 쾰른 선제후국의 새로운 선제후로 부임한 후, 본은 계몽주의의 중심지로 발돋움했습니다. 1785년, 선제후는 본 아카데미를 대학으로 승격시켰고, 음악문학극장을 후원하면서 교육과 문화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덕분에 베토벤은 이 시기에 칸트와 같은 계몽사상가들의 저작을 구해 읽기도 하고 대학의 강연회에도 참석하면서 계몽주의를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베토벤의 스승인 크리스티안 네페4)는 프리메이슨5), 독서협회 등을 주도하면서 제자 베토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스승을 따라 베토벤 자신도 프리메이슨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크리스티안 네페(Christian Gottlob Neefe): 독일의 지휘자이자 작곡가. 라이프치히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뒤에 음악으로 전향했다. 1782년 본 궁정 오르간 연주자이자 극장 지휘자로 활약할 당시 베토벤을 가르쳤다.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네페는 음악 뿐 아니라 정서적, 철학적인 모든 면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이었다. 


5) 프리메이슨(Freemason): 계몽주의 사조에 호응하여 자유주의, 개인주의, 합리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기존의 가톨릭 교회와 가톨릭을 옹호하는 정부로부터 탄압받으며 비밀 결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당시 프리메이슨은 이신론(자연종교)을 믿는 비밀 결사였기에 교회와 정부의 탄압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성직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 결사에 가입했으며 프랑스 혁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더군다나 하이든과 모차르트도 프리메이슨 단원이었기 때문에 베토벤도 단원으로 가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베토벤이 계몽 군주인 요제프 2세의 죽음을 기리는 칸타타를 작곡한 것은 이와 같은 계몽주의에 대한 애정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본을 떠나기 직전 베토벤은 “가능한 모든 선행을 하고 무엇보다도 자유를 사랑하며, 왕 앞이라 해도 진실을 부정하지는 말 것”을 신조로 삼는다고 썼는데, 아마도 계몽주의의 여러 의미 가운데 이 정도가 베토벤이 받아들인 계몽주의일 것입니다. 제국에서는 계몽주의가 계몽 군주 주도로 ‘위로부터’ 실현되고 있었다면, 프랑스에서는 1789년에 혁명으로 폭발했습니다. 후일 베토벤은 자신이 10대 말에 혁명의 열기에 빠졌음을 고백한 적이 있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프랑스 혁명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베토벤이 열광한 것은 1789년의 프랑스 혁명.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해 전제 군주에 저항하고, 의회를 만들고, ‘인권선언’을 발표한 그 혁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곧바로 과격해져 무시무시한 공포 정치로 탈선했고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1815년의 왕정 복고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에 열광한 베토벤에게 이 같은 혁명의 변질은 더없는 환멸감을 가져다주지는 않았을까요.



하이든에 반항한 베토벤, 시대의 고민을 담다

 


베토벤은 ‘악성(樂聖)’이기 전에 번민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완전무결하고 조화로운 음악보다 고민과 갈등을 담은 불협화음을, 궁정악장 하이든의 가르침보다 시대의 격렬한 변화를 좇았습니다.


혁명은 곧바로 과격해져 가톨릭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박해하며, 1792년 4월에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선전 포고하고, 1794년 7월까지는 극악한 공포 정치를 자행하다가 부르주아 혁명으로 복귀한 후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 황제 선포 등으로 이어집니다. 공포 정치와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변질된 프랑스 혁명은 베토벤에게 충격과 두려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특히 베토벤은 쾰른 선제후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었고, 빈에 와서는 리히노프스키 공작 같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으니, 반귀족적인 프랑스 혁명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베토벤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사생아라는 소문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판(van)6) 베토벤이 아니라 폰(von)7) 베토벤이라며 귀족인 양 사칭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 등 혁명과 귀족에 대한 동경을 모두 지녔던 것처럼 보입니다.


6, 7) 판(van), 폰(von): 'van'은 평민의 이름에 붙는 성(姓) 접두어였으며, 'von'은 귀족의 이름에 붙는 접두어였다.   


베토벤은 쾰른 선제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1792년 11월 제국의 수도인 빈으로 음악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베토벤이 본을 떠난 시기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포고한 때였습니다. 흥분한 파리 민중은 9월에 감옥을 공격하여 1,000명이 넘는 수인을 즉결 처형하는 광기와 함께 유럽의 주변국들을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베토벤의 조국인 쾰른 선제후국을 위협했을 뿐 아니라, 이 같은 프랑스의 침략 전쟁에 베토벤의 고향인 본도 프랑스에 합병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자신의 조국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베토벤은 조국을 떠나 빈에 음악 유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의 조국인 쾰른 선제후국은 2년 후에 프랑스의 침공을 받아 합병되었습니다.


 

빈에서 조국의 패망을 볼 때 베토벤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귀족에게 고용된 궁정악장 하이든과 불화8)했던 자유로운 음악가 베토벤이었지만,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을 무조건 찬양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불협화음으로 구성된 그의 교향곡 3번 <영웅>은 혁명에 대한 동경과 환멸, 귀족에 대한 선망과 반항심 사이에서 갈등했던 베토벤의 심경이 표출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의 스승 하이든이 <영웅> 리허설을 듣고 “오늘을 기해 모든 게 새로워졌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그 이전의 교향곡이 조화와 균형을 지고의 가치로 여겼다면, 베토벤의 음악은 괴로움ㆍ갈등ㆍ비탄과 같은 보다 새롭고 인간적인 고민과 감정을 구현했습니다. 사실 베토벤을 다루는 많은 클래식 음악 관련 책은 그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혹은 단선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베토벤이 프랑스를 혁명의 나라라고 환호했다거나, 나폴레옹을 찬양했다는 이야기는 역사학적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흔히 베토벤이 1803년 교향곡 <영웅>을 작곡하면서 나폴레옹9)에게 헌정할 생각이었다는 음악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당시 오스트리아 정부가 친프랑스적인 인사들을 탄압하고 있던 상황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해석입니다. 보다 엄밀한 역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찬양했다는 설명보다, 나폴레옹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의 환심을 사려고 곡을 헌정하려 했다는 설명이 합당합니다.


8) 하이든과 불화: 하이든의 제자였던 베토벤은 그와 불화를 거듭했지만, 하이든이 죽음을 앞둔 몇 해 동안 다시 화해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9)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éon Bonaparte): 1799년 쿠데타를 일으켜 총재 정부 체제를 붕괴시키고, 제1통령과 종신 통령 등으로 독재의 기반을 다진 다음, 1804년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러시아원정 실패로 엘바섬에, 워털루전투 패배로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었다.


베토벤의 음악이 번민하고 갈등하는, 인간의 운명을 표현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도 음악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를 조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출처: 삼성화재 VIP 매거진 문문


글쓴이: 김응종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프랑스 프랑쉬 콩테 대학교 박사.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인문대학장,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서양사학자로 <관용의 역사> 등 근대 유럽사를 다룬 책을 다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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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무수한 질병 가운데서 가장 치명적이고 무서운 병을 꼽으라면 어떤 병이 생각나시나요? 많은 분들께서 ‘암’을 떠올리셨을 텐데요.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 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사망통계원인’ 보고서에 따르면, 암이 전체 사망원인의 27.6%를 차지했고, 심장질환(10.8%)과 뇌혈관질환(8.0%)이 뒤를 이었습니다.


환경적 요인과 가족력, 유전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암은 우리의 삶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암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진 100세 시대! 지금부터 암의 고통으로부터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리 몸을 파괴하는 악성종양, 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를 세포(cell)라고 부릅니다. 정상적인 세포는 세포 내 조절기능에 의해 분열하고 성장하며 죽어 없어지는 등 세포 수의 균형을 유지하는데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우리 몸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자라난 덩어리를 ‘종양’이라 정의할 수 있어요.


종양은 크게 양성종양과 악성종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양성종양은 비교적 성장 속도가 느리고 전이되지 않는 것에 반해 악성종양은 주위 조직에 침윤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신체 각 부위에 확산되거나 전이되어 생명을 위협합니다. 



▶암의 발생원인은?


"저는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고, 술담배도 하지 않아요.

평소에 고기 탄 것도 안 먹고, 식구들도 다들 건강한데 왜 암에 걸린 건가요?"


이유를 모른 채 암으로 판정 받은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호소입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발암화학물질, 방사선 노출, 잘못된 생활습관 등 환경적 요인과 가족력, 유전력 등이 모두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해요. 암에 왜 걸리는지 이유를 떠나 평균수명이 늘어날 수록 암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이죠.


 


일반적으로 암은 인간의 신체 중 어느 부위에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중앙암등록본부에 의하면 2015년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발생한 암(2017년 발표)은 위암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음으로 대장암, 갑상선암, 폐암, 유방암, 간암, 전립선암, 췌장암 순이었습니다. 남성은 위암이, 여성은 갑상선암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고 해요.



▶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보통 암의 종류와 진행상태, 환자의 상태 등에 따라 치료법이 결정됩니다. 암은 다른 질환에 비해 치료방법이 다양하고 복잡해 치료법의 특징과 장단점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암의 치료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적극적 암 치료 : 수술치료와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등으로 암세포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치료법

- 완화 의료 : 통증치료, 피로치료, 재활치료, 호스피스 완화의료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치료법


먼저, ‘적극적 암 치료’는 수술치료와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등을 통해 암세포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치료방법입니다. 이와 다르게 말기암 단계에서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증상을 조절하는 데 초점을 맞춘 ‘완화 의료’도 있습니다. 통증치료, 피로치료, 재활치료, 호스피스 완화의료 등을 예로 들 수 있지요. 이처럼 치료 효과를 높이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증대하는 치료법들이 계속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높아지는 암 생존율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암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일 만큼 무서운 병이지만, 다양한 치료법을 통해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조기검진으로 인한 조기발견율의 증가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치료의 성공률이 좋아진 것이죠. 실제로 우리나라 암 5년 상대생존율*은 70.7%(중앙암등록본부, 주요 암 5년(2011-2015) 생존율, 2017)로, 비슷한 기간의 미국, 캐나다, 일본에 비해 더 높은 생존율을 보였습니다.

* 5년 상대생존율 : 해당 기간에 발생한 암 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을 추정한 것


달리 말하면, 평균수명이 늘어날수록 암에 걸릴 확률도 증가하고 있지만, 첨단의료기구와 신약 개발 등 최신 의료기술의 혜택으로 암 환자 3명 중 2명은 생존할 수 있는 희망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비용’이 문제입니다.



▶암, 신체적 고통 못지않은 경제적 부담


암 판정을 받은 환자와 가족들이 호소하는 고통을 들어보셨나요? 암으로 인한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치료비와 수술비 등을 포함한 경제적 비용이 환자와 가족을 짓누르게 됩니다. 치료할 수 있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아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죠.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주요 암 종류별 환자 1명당 비용 부담’(2009년 기준) 자료와 보험개발원의 ‘암 종류별 평균 진단보험금’을 보면, 암 보험금보다 실제 부담금이 훨씬 많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암 환자 발생 시 진료비, 입원비, 간병비 등의 의료비뿐만 아니라 교통비, 생활비 등의 생활유지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데요. 암 중에서 사망률이 높은 대부분의 암은 평균 진단보험금보다 실제로 지출되는 경제적 부담금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췌장암을 예시로 살펴보겠습니다. 췌장암은 진단 후 6개월 이내 사망한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의료기술의 발달로 2~3년을 더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췌장암의 1년 치료비용은 대략 6천만원, 그러나 평균 진단보험금은 2014만원에 불과합니다. 보험금으로 치료비를 모두 충당하기엔 부족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 보험금이라도 없었다면 얼마나 큰 비용의 부담을 가져야 했을까요?


국내 기준, 암 치료비로 소모된 비용은 2005년 2조 6,000억 원에서 2009년 6조 3,000억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생활비, 교통비, 간병비 등 직접비의료비 또한 2005년 1조 5,000억 원에서 2009년 3조 8,0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고 해요. (국립암센터, 2015 통계로 본 암 현황) 이렇게 암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17년째 ‘국가암검진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가입자 중 소득 상위 50%는 검진 비용의 10%만 내면 되고, 소득 하위 50%는 무료 검진이 가능하지만,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실제 검진을 받은 사람은 50.4%에 불과하다고 해요. 정부는 더 많은 국민이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 검진의 효율성과 신뢰도를 개선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잊지 말고 활용을 해보아야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암, 정부가 제공하는 검진은 물론,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보험을 통해 든든하게 대비해보세요 :)



참고: 중앙암등록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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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어떤 문화가 필요할까요?”

수의사 정언승 원장님 인터뷰 (下)



(반려동물 천만 시대, 보험과 정기적 건강검진은 필수!(클릭) 에서 이어집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바로 반려동물이 나이가 들어서, 혹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 때인 것 같습니다.


▷아끼던 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감은 이루 말로 못 하죠.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라고도 하는데요. 실제로 이 문제로 마음고생을 많이들 하시죠. 정신과 상담을 받는 분들도 많고요.


우리 사회는 슬픈 일은 되도록 감추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문화가 있는데요. 펫로스 증후군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바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우리 집 ‘아이’가 얼마나 귀엽고 예뻤는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이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슬픔을 드러내어 공유하고 위로받는 거죠. 슬픔을 떠나보내는 데에도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해요. 



▶(반려동물의 죽음을)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군요.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펫로스증후군이 이 정도까지 힘든 줄은 생각하지 못했네요.


동물병원이라고 하면 단순히 ‘아플 때 치료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하시는데, 동물이 태어날 때 혹은 동물을 입양할 때부터 동물이 죽고 나서 보호자의 펫로스 증후군까지 케어하고 상담해줄 수 있어야 해요.


여전히 많은 보호자들이 반려동물을 쉽게 들이는 경향이 있죠. 맞벌이 부부라 낮에는 집을 비우면서도 사람 손길이 필요한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혼자 있는 걸 즐기는 고양이를 키우는 게 더 적절하겠죠.


성향이나 생활 패턴에 따라, 가족 구성원에 따라 어떤 종류의 동물이 맞는지, 강아지라면 특히 어떤 견종이 맞는지 다 다르답니다. 다 같은 강아지라도 견종에 따라 성격이나 활동성 등이 모두 다르거든요. 여전히 물건 하나 고르듯이 동물을 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언승 원장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졸업 및 석사, 박사수료

일본수의사회초청 수의사연수 참가(일본 북해도)

재미 서울대 수의대동문 초청 미국동물병원 연수


전 한국동물병원협회(KAHA) 상무이사, 부회장

현 시유동물메디컬센터 원장

현 KBVP 대외위원장

한국 수의임상수의학회 이사


▶반려동물을 좋아하고,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반려동물로 인한 사건, 사고도 빈번해지는 것 같아요.


▷미국이나 일본 등 반려동물에 관해 우리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들과 비교를 한다면, 의료기술은 5년쯤 뒤떨어져 있다면,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고 느껴집니다.


지금도 고양이라고 하면 ‘요물’이라며 싫어하는 분들도 있죠. 길냥이(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들이 종종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요. 강아지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갖고 있는 분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정보도 많아지고 수의학적인 발전도 빨라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인식이나 관념은 잘 안 바뀌는 거죠. 



▶‘반려동물과 같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성화재가 1993년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는 걸 들었습니다. 삼성화재가 안내견 기증과 장애인, 안내견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제도도 보완되고 있지만, 여전히 안내견을 막는 식당이나 공공장소 등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한두 곳의 노력으로 이런 인식을 모두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진짜 ‘가족’으로, 동물들을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겠죠. 정부를 비롯해 관련 기관들도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교육을, 동물병원이나 관련 업계에서는 캠페인을, 정부는 동물보호법과 같은 다양한 제도 마련을 중요한 활동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동물을 매일 만나는 직업인 만큼, 수의사로서 역할도 클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수의사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수의사라고 하면, 단순히 동물을 치료하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하죠. 하지만 그 이상입니다.


치료에 갖은 정성을 기울였지만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더라도(무지개다리를 건너다: 반려동물이 죽음에 이른 것을 뜻하는 표현) 수의사가 어떤 태도로 상담을 하고 치료를 진행했느냐에 따라 치료에 최선을 다 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것이 수의사입니다. 이는 보호자를 위한 치유의 일종이기도 하죠.


이 외에도 식품의 위생검열, 공중위생, 약품 개발, 줄기세포나 유전연구에도 수의사가 필요합니다.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전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연구, 예방하는 데에도 의사와 수의사의 협업이 필요하죠.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교육을 하는 게 좋을까요.


동물을 키워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동물들은 말을 못 하다 보니 눈빛이나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이는 직접 동물을 길러보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죠. 동물과 같이 생활하고 돌보면서 동물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동물을 이해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이해력이 높아지게 되죠.


특히 남자아이들의 경우, 커갈수록 무언가를 돌보고 배려하는 부분이 부족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때 동물을 기르면 배려해야 하고, 챙겨야 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이 요구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임감, 배려심도 커지죠. 어릴 때부터 생명에 대한 존중도 기를 수 있고요. 



▶길에서 낯선 반려동물(강아지)을 만났을 때 행동요령, 페티켓(Pet+Etiquette)도 꼭 알아둬야겠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길 가다가 예쁜 강아지를 만나면 덥석 만지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강아지들도 위협을 느껴서 공격을 하게 되죠. 조심스레 만지는 방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 두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1단계, “강아지와 인사해도 될까요?” 꼭 보호자에게 먼저 물어봐야 해요. 괜찮다는 답을 받았다면, 2단계, 강아지가 놀라지 않게 천천히 주먹을 내밀어서 강아지에게 냄새 맡을 시간을 주세요.


강아지가 갑자기 공격할 때는 뒤돌아 도망가면 더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제자리에 나무처럼 가만히 서 있고, 공격을 받게 되면 목을 감싸고 그 자리에 엎드리라고 교육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숙하고 건강한 반려동물문화를 위해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동물도 귀한 생명이죠. 반려동물을 ‘돈을 주고 산다’가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개념으로 입양하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동물을 이해하면 사람의 마음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요. 사람과 동물이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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