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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심리학

‘싸움 이후, 좋은 사이를 위한 화해의 기술’

 

 

“무엇이 힘들었는지 엄마에게 이야기해볼래요?”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고개를 든 고등학생 딸의 얼굴에 눈물이 흐릅니다. 눈물을 닦고 엄마를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난 엄마 딸 아니야? 왜 항상 나만 뭐라고 해. 왜 나만 참으라고 해?!”

 

엄마는 바로 대꾸합니다.

 

“왜 자꾸 그렇게 생각해? 너는 고등학생이잖아! 남동생은 아직 어리고.”

지겹게 들은 이야기였지만 딸은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입술을 오므리고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합니다. 

 

“엄마! 그냥 내 마음을 인정해주면 안 돼? ‘그게 속상했구나!’ 하고.

왜 매번 내 마음이 비뚤어졌다고 이야기 해?!”

 

엄마는 말문이 막힙니다. 

 

“엄마에게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라는 나의 말에 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난 엄마가 한 번만이라도 옳다 그르다 따지지 않고 그냥 내 마음을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받아주는 사람, 그게 엄마잖아.” 

 

딸은 잠시 나가 있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엄마는 억울합니다. 자신도 딸로써 차별 받았기 때문에 딸에게 더 관심을 주고 키웠다고 항변합니다.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는 어떤 분인지 물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도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그녀의 엄마도 그녀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었습니다. 

 

다시 엄마와 딸이 만났습니다.

엄마는 난생 처음으로 딸에게 마음을 담아 사과를 건넵니다.

 

“미안해. 엄마가 네 속상한 마음을 한 번도 받아주지 못했어. 그래서 미안해.”

 

엄마가 다시 울자 딸도 웁니다.

그 뒤로 모녀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투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해하는 것

 

 

엄마랑 한 달 동안 말을 하지 않게 된 딸과 엄마와의 가족상담 장면입니다. 이렇게 한 번으로 상담이 끝나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보통 갈등이 꼬일 대로 꼬인 다음에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파국 직전이라고 하더라도 안전한 환경에서 힘든 감정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화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뼛속 깊이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이’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부부나 가족 간에 잘 싸우는지 묻곤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싸우지 않는데요.” “우리 가족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러우신가요? 저는 이러한 대답을 들으면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인간관계는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만원버스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불편한 것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상대를 힘들게 하려는 아무런 의도가 없음에도 가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딪힘의 연속입니다.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다툼이 없다면 이것은 훌륭하기보다 그 관계가 사실 친밀하지 않거나 누군가 갈등을 회피하려고 일방적으로 애쓰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에서 갈등과 다툼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싸우지 않으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화해하는 능력입니다. 

 

 

가짜 화해 vs 진짜 화해

 

 

당신은 지금까지 다투고 난 뒤에 잘 화해해서 오히려 더 친해진 사람이 있나요? 만약 바로 그런 사람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화해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화해(和解)라는 말은 ‘갈등을 사이 좋게(和) 푸는(解)’ 것을 말합니다. 말이 쉽지 참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는 다투고 나면 냉전 상태에 있다가 누군가 먼저 나서서 ‘이제 화해하자!’라는 직간접적인 신호를 보냅니다. 대부분은 이를 계기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웃고 지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갈등을 푼 게 아니라 갈등을 덮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다시 같은 문제로 또 다투게 되고, 또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갈등을 덮는 반복이 거듭됩니다. 그 끝은 무엇일까요? 갈등과 묵은 감정은 곪을 대로 곪아 어느 순간 터져 나와 결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우리는 화해를 위해 작위적이지만 ‘가짜 화해’와 ‘진짜 화해’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짜 화해’란 관계의 불편함이 힘들어서 왜 싸우게 되었는지조차 살펴보지 않고 그냥 잘 지내기로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 비해 진짜 화해는 서로 왜 다투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이야기 나눔으로써 다툼의 원인을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지를 모색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화해에는 좌절된 욕구와 손상된 감정을 서로 이야기하는 ‘회복대화(repair talk)’가 꼭 들어있습니다.

 

 

화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이렇듯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는 갈등을 풀고 잘 화해하는 능력, 즉 갈등회복력이 무척 중요합니다. 이 갈등회복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꼬인 관계를 얼마나 풀어본 경험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갈등회복력이 낮은 사람들은 한 번도 제대로 갈등을 풀어본 적이 없습니다. 늘 갈등을 회피하거나 혹은 승패를 가르려 들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상처로 얼룩지고 맙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승패에 집착하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갈등을 힘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며 자라왔습니다. 그렇기에 갈등이 생기면 상대를 호흡을 맞춰갈 파트너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이들은 먼저 화해를 시도하는 것을 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이기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후벼 파고 폭력도 서슴지 않습니다. 

 

둘째,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서로의 차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상대가 바뀌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설득합니다.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 그것이야말로 화해의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셋째, 불편한 관계를 못 참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다투고 나면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고 힘들기 때문에 어떻게든 불편함을 빨리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갈등을 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상대에게 잘 해주거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미안해!’라는 말을 남발합니다. 이 유형은 겉으로 보면 먼저 화해를 시도하는 성숙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갈등을 피하기에 급급한 미숙한 유형입니다. 

 

넷째, 지나치게 이성적인 유형입니다. 이들은 화해를 위한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갈등을 늘 논리로 풀려고 합니다. 즉,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화해는 감정과 욕구가 다루어질 때만이 제대로 풀릴 수 있습니다.  

 

 

화해의 기술

 

 

물론 거리를 두면 갈등이나 상처받을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뼛속까지 사회적이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지만 우리는 갈등회복력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을 따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자원과 기술이 있기에 잘 화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연결의 가치(value)를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이들은 다투더라도 ‘승부’가 아니라 ‘연결’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사실관계를 따지거나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데 집중합니다. 

 

둘째, 다툼의 규칙(rule)이 있습니다. 이들은 싸울 때 하지 말아야 할 규칙과 싸운 뒤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라면, “지금 문제에 집중하기”, “감정조절이 안 될 때는 멈추기”, “인격적으로 비난하지 않기” 등 싸울 때에도 서로 지키기로 한 합의된 규칙이 있습니다. 싸우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각방 쓰지 않기”, “기본적인 안부 묻기” “각자 할 일을 하기” 등 그들 나름대로 최소한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한 규칙을 정해둡니다.

 

셋째, 화해의 신호(sign)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싸우고 나면 바로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잘 화해하는 커플은 서로만의 화해의 신호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라면, 남편은 평소 하지 않는 집안일을 하거나,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는 식으로 화해의 신호를 정해둔 게 있습니다. 

 

넷째, 회복의 대화(talk)가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화해의 신호는 회복의 대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복대화의 핵심은 ‘좌절된 욕구와 감정을 나누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무엇을 원했고, 그렇지 못해서 마음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하는 대화입니다. 단, 회복대화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흥분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의 신호가 오가고 힘든 감정이 가시고 난 뒤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이성과 감정이 연결되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만 효과가 있고, 이성과 감정이 단절된 상태에서는 오히려 해가 됩니다. 

 

다섯째, 구체적인 약속(promise)이 있습니다. 진짜 화해를 할 줄 아는 이들은 무턱대고 사과하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하게 대화한 뒤에 미안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과할 줄 알고,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것 역시 부탁할 줄 압니다.  

 

 

 

 

※ 작가의 한마디

그 동안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인간관계가 보다 건강해지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연재된 칼럼을 보완하여 최근 <관계를 읽는 시간(더퀘스트 출판)>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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