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세기 초 호화 저택이 박물관이 된 까닭은? 






1. 피츠버그의 부호가 된 프릭, 뉴욕에서 카네기와 인연을 맺다 


프릭 컬렉션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박물관의 역사야말로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의 ‘도금 시대(Gilded Age)’를 완벽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 도금 시대란 19세기 말 미국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일컫는 말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당시 미국의 철강 산업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으며, 철도, 광산, 금융, 통신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한 부의 편중이 심화하면서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록펠러(Rockefeller)와 같은 거대 자본가들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프릭 컬렉션의 주인공 헨리 프릭(Henry Frick) 1849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매우 가난하고 병약했다. 심지어 그는 정규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지만, 21살에 나이에 코크(Coke; 음료수가 아니라 석탄 원료) 회사를 세우고 30세에 백만장자가 된다. 당시 그의 회사는 펜실베이니아의 석탄 출하량의 80%를 독점하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결혼 후 뉴욕으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철강 왕 앤드루 카네기이다. 그 만남을 인연으로 카네기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카네기 스틸사(Carnegie Steel Company)에 코크 원료를 공급하게 된 프릭은 1881, 불과 32살의 나이로 그 회사의 회장 자리까지 오른다.



만 모든 것을 신사답게 풀어가야 한다고 믿었던 카네기와는 달리 돈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저지르는 것을 마다치 않았던 프릭은 조금씩 부딪히기 시작했고, 결국 1892년 무려 10여 명이 사망한 ‘홈스테드 철강 파업 사건’을 이후로 둘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 버린다.



2. 카네기와 헤어진 프릭, 피츠버그를 떠나다 


파업 사건 이후 카네기는 그동안 쌓아왔던 계몽적 자본가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구겨지고, 악덕 자본가이자 노동 탄압가라는 악명까지 얻는다. 다행히도 훗날 카네기는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재산의 90%를 사회에 환원하며 그 명예를 회복한다.
이토록 본인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카네기와는 달리, 프릭은 애당초 잔혹하기로 소문이 났으며, 오늘날에도 ‘역사상 최악의 CEO’ 조사를 하면 상위권에 언급이 될 정도로 극악무도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특히 홈스테드 철강 파업 사건 이후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은 최악을 향해 치 닿는데, 급기야 그해 여름 프릭을 암살하기 위한 시도가 생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프릭은 목에 총을 2발이나 맞고 그 자리에서 흉기로 4번이나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만에 경영에 복귀,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해산시킨다.
이렇듯 프릭과 카네기는 둘 다 피츠버그에서 각각 부를 이루며 파트너십을 맺었던 관계였지만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틀어진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향후 프릭은 피츠버그를 떠나 뉴욕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것이 사업에만 몰두해 있던 그의 주 관심사가 예술 쪽으로 움직이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3. 프릭 컬렉션의 전신, 프릭 저택이 만들어지다


1905년 뉴욕으로 온 프릭과 그의 가족은 뉴욕의 부호인 밴더빌트 가문 소유의 집에 거하면서, 뉴욕에서의 저택을 지을 공간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그중 최종 낙찰된 공간이 바로 오늘날 프릭 컬렉션이 있는 5번 대로와 70, 71가 사이의 블록이다.
당시 이 블록에는 오래토록 적자에 허덕이는 레녹스 도서관이 있었다. 프릭은 뉴욕에 온 지 1년만인 1906년에 레녹스 도서관 용지를 매입하지만, 정작 공사는 6년 후인 1912년에 시작할 수 있었다. 레녹스 도서관이 철거된 이후 새롭게 지어질 저택은 당시 가장 아름다운 건축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뉴욕 공립 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의 건축가 헤이스팅스(Hastings)가 맡았다.
당시 프릭 저택을 설계하고 지었던 헤이스팅스는 이 집이 ‘거주 공간’으로만 사용될 것으로만 생각했고, 이 집이 불과 몇 년 후에 박물관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왜냐하면, 프릭이 그의 속마음을 헤이스팅스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릭은 철저히 ‘주거 공간’을 요구했고 헤이스팅스도 이에 화답하듯 보자르(Beaux-Arts) 스타일의 건축 양식으로 약 2년에 걸쳐 멋진 저택을 지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프릭이 만든 저택이 위치한 곳이 바로 70~71가 사이인데, 여기서 더욱 더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앤드루 카네기의 저택이 바로 90~91가 사이에 있다는 점이다. 결국, 피츠버그에서 헤어진 두 사람이 뉴욕의 같은 대로에(5번로) 불과 약 1마일의 차이로 저택을 지은 셈이다. 이 두 집은 훗날 뉴욕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한다.




4. 프릭이 예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하다

 

저택이 다 지어지자 역사와 전통이 빈약했던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신흥 가문들이 그러했듯, 프릭은 자본을 통해서 문화를 누리려고 했으며 그의 이러한 바램은 당시의 두 가지 큰 역사적 흐름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1) 먼저, 프릭이 유럽의 거장들(Old Masters)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저택이 완공되던 1914년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유럽은 엄청난 양의 전쟁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자본이 급속도로 필요했다. 그래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유럽 부호 세력들의 요구와, 예술 작품들을 모으고자 하는 프릭의 바램은 서로 맞아 떨어졌고, 이 절묘한 타이밍으로 인해 프릭은 유럽에 엄청난 양의 자본을 투하하며, 프릭 컬렉션에 채워 넣을 유럽의 여러 예술 작품들을 대거 구매하게 된다.

 

2) 또한, 프릭이 여러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 바로 금융의 대부 J. P. 모건이 프릭 컬렉션이 완공되기 바로 1년 전인 1913년 사망하면서 많은 예술품들을 유산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금융으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J. P. 모건 1세는 죽으면서 당시 5천만불에 달하는 예술 작품을 유산으로 남겼다. 하지만 예술을 사랑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그의 아들 J. P. 모건 2세는 유산으로 남겨진 작품들을 처분하기 원했고, 머지않아 수 많은 작품들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전시된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건 박물관에 남게된다)

이 기회를 프릭이 놓칠 리가 없었고, 프릭은 마치 백화점에 가듯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가서 J. P. 모건 1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보러 다니며 예술 작품들을쇼핑했다.

 

 

5. 프릭의 저택, 집에서 박물관으로

 

저택 공사가 완공된 1914, 드디어 프릭은 가족과 함께 저택에 입성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프릭은 이사한 지 불과 5년 후인 1919년에 사망하고 만다.

그의 죽음 이후 유언이 공개되면서 저택은 박물관으로 사회에 환원된다. , 그 유언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프릭 저택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프릭의 아내가 죽은 후 4년 후인 1935년도에 이르러서야 프릭 컬렉션은 정식적으로 대중에게 개장한다.

개장 이후 프릭 컬렉션은 몇 차례 변화를 맞이하며, 현재 있는 작품 중 1/3이 프릭 부부의 사망 이후 새롭게 구매한 작품들이며, 심지어 박물관 자체도 3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기존의 자택보다 훨씬 더 커졌다. 특히, 프릭 컬렉션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중정도 원래 저택에는 없었다가 1977년대에 진행된 확장 공사에 의해서 추가된 공간이다.



이렇듯 도금 시대에 거대한 자본을 모은 대부호 프릭의 “인생 말기 사회 환원 프로젝트” 차원에서 시작된 프릭 컬렉션은 프릭이 전생에 쌓았던 악한 이미지와는 달리, 오늘날 수많은 뉴요커들과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는 기업가 프릭이 아닌 컬렉터 프릭의 집요한 취향이 컬렉션의 품격과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특히 프릭 컬렉션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18세기 전후의 유럽에서 활동했던 ‘옛 거장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는 렘브란트, 요하네스 베르미르(전 세계에 35점 밖에 없는 작품 중 3점이 여기에 있다), J.M.W. 터너, 엘 그레코 등의 작품들이 매우 인기가 높다. 그림들 외에도 프릭 컬렉션에서는 프레스코 벽, 16세기 프랑스 가구, 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6. 프릭이 특별한 이유

 

1년에 약 32만명이 방문하는 프릭 컬렉션은 다른 미술관과 비교 했을 때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지닌다.

 

1) 작품이 랜덤하게 걸려있다.

2) 박물관의 구조가 아니라 저택의 구조를 지닌다.

3) 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를 보게 된다.

 

이 세 가지 특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1) 작품이 랜덤하게 걸려 있다.

 

프릭은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작품이 원래 걸려 있던 그대로 걸려 있기를 바랬다. 그 이유는 프릭 컬렉션에 있는 상당수 작품의 위치를 다른 전문가가 아닌, 프릭이 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릭 컬렉션에는 보통 갤러리에서 보이듯 시대별, 장르별로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닌, 프릭의 감성이 담긴 큐레이션을 경험할 수 있다.

 

2) 박물관의 구조가 아니라 저택의 구조를 지닌다.

 

특히, 실제 프릭 가문이 살았던 곳이기에 프릭 컬렉션은 다른 여타 박물관과는 달리이라는 느낌이 매우 강한데, 프릭 컬렉션에 들어서면 20세기 초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마치 (매우) 부유한 뉴욕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한 상상을 하면서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꽤 즐거운 경험이다.

 

3) 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를 보게 된다.

 

프릭 컬렉션이이기에 재밌는 점은 여러 회화 작품들뿐이 아니라 조명, 가구, 조각, 그리고 저택의 장식품도작품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림과 설명만 보면서 빨리 넘어가는 다른 갤러리와는 달리, 프릭에서는 벽에 새겨진 문양,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고 있는 의자, 테이블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음미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7. 프릭 컬렉션을 방문해 보자

 

이렇듯 프릭 컬렉션은 여타 갤러리와는 다른 특징들을 지니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의 연결고리는 바로 이 저택의 최종 큐레이터였던 프릭이다.

프릭은 이 공간을영원히 대중에게 열린 공간이 되기를 원했고, 그의 바람대로 프릭 컬렉션은 많은 뉴요커들에게보물과도 같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필자도 이 글을 쓰기 위해서 프릭 컬렉션에 방문한 것까지 포함하면, 4~5회에 걸쳐서 프릭 컬렉션을 마음껏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오픈 갤러리 행사였다.




프릭 컬렉션은 여름에 오픈 갤러리 행사를 여는데, 7, 8월 중 한 달에 한 번 저녁 6시부터 밤 9시까지여름밤(Summer Night)’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무료로 개방한다. 중정에는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들리고, 스케치를 할 수 있는 종이와 연필을 무료로 대여해줘서 누구나 그 시간만큼은 여유롭게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다. 탄산수와 주전부리를 먹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걸터앉아 프릭 컬렉션의 작품들을 스케치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들어 와 18세기 유럽 예술 작품들을 마음껏 누리면서, 예술에 소질이 있든 없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 아마도 생전에 프릭이 보고 싶었던 광경은 이런 광경이 아니었을까? 20세기 초 뉴욕에 이토록 아름다운 유산을 대중에게 남긴 프릭이 참 고마워지는 밤이다.



뉴욕의 뮤지엄 마일에 오게 된다면, 꼭 프릭 컬렉션을 방문해 보자.

규모와 양에 의해서 압도되는 다른 박물관들과는 달리, 편한 마음으로 천천히 집을 둘러보듯 돌아다닐 수 있다. 그 어떤 곳보다 여유롭게 그리고 16개의 갤러리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수십 년 전 이 집을 하나둘 꾸몄을 프릭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프릭 컬렉션만의 소소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추가 정보를 얻고 싶다면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프릭 컬렉션' 공식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작가 소개

<화이트북:유럽 건축을 만나다>의 저자 유성지 

 

대학생 시절 디자인 경영이라는 단어에 꽂혀 학교 선배와 함께 국내 최초의 디자인 경영 학회 Dema Studio를 만든 후 삶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해 지금까지 30여 개 국가를 여행했으며, 『화이트북: 유럽 건축을 만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건축과 디자인 그리고 아름다운 오브제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뉴욕에서 신혼 생활과 학업 그리고 일을 병행 중이다.

**저자 블로그 바로 가기: St.Jane

 

 

 


 



삼성화재 프로포즈
열심히 준비한 글, 어떠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