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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동차 기자인 내게 서킷은 그저 ‘일하러’ 가는 곳이었다. 선수들이 차체가 낮은 경주용 차를 타고 아찔하게 달리는 장면은 내게 위험하고 자극적인 가상 세계일 뿐이었다. 아마 ‘서킷’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 이도 있을 것이다. 서킷이란, 쉽게 말해 자동차 경주용 도로로, 우리나라에는 흔히 아는 강원도의 ‘인제스피디움’과 ‘태백레이싱파크’, 전라도의 ‘영암국제자동차경주장’, 경기도 ‘포천레이스웨이’ 그리고 ‘AMG 스피드웨이’까지 총 5개의 서킷이 있다. 서킷은 출발점과 종료점이 같은 순환회로 형태의 폐쇄구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속도제한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서킷에서 서스펜션, 스티어링, 브레이크, 타이어 등 자동차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시험하거나 신차의 내구성을 측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용하면서도 위험한 도로를 과연 일반인이 즐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쯤 서킷에 ‘놀러’가는 사람들을 알게 됐다. 그들이 순수하다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철부지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킷에 한 번 다녀오려면 하루를 종일 비워야 한다. 스포츠 주행 비용도 만만치 않고, 사고 부담도 크다. 하지만 싱그러웠던 작년 6월, 인제스피디움 라이선스를 따면서 내 생각은 확 바뀌었다. 



서킷 라이선스 발급받다! 



라이선스 발급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제스피디움 홈페이지에서 라이선스 발급 가능 날짜를 확인하고 그 날짜에 가서 이론교육, 주행 실기교육을 이수하면 끝. 소정의 취득비, 헬멧과 레이싱용 장갑만 챙겨 가면 된다. 멀리 강원도 인제까지 가서 한 번에 그리고 단번에 라이선스를 손에 쥐어 잠시나마 우쭐했다. 하지만 앞으로 ‘알아서 잘’ 즐겨야 한다는 강사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일단 한 번 달려보기로 했다. 라이선스를 어색하게 받아 쥐고 냉큼 스포츠주행 티켓을 끊었다. 티켓 한 장으로 20분 동안 자유롭게 서킷을 달릴 수 있다. 헬멧을 쓰고, 장갑을 끼고 르노의 소형 해치백 모델 ‘클리오’에 올라탔다. 최고출력이 90마력에 불과하지만 바닥에 딱 붙어 코너를 돌아나가는 실력이 제법인 친구다. 질주 본능을 마음껏 뽐내며 기본기를 익히기엔 제격이다. 헬멧의 턱끈을 다시 한 번 단단히 조이고 대기선에 서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무시무시한 차들이도열해 있다. ‘으르렁’대는 소리가 나는 영국제 스포츠카 맥라렌, BMW의 고성능 모델 M3였다. 



출발하자마자 ‘형님’들이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며 달려 나간다. 괜히 내 존재가 민폐가 된 느낌. 속으로 애써 당당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알록달록한 차들은 저 멀리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혼자 낑낑대며 코너를 빠져나가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들이 다가온다. 으악, 그들이 온다! 이론 교육 시간에 배운 게 떠올랐다. 뒤에서 무섭게 달려오는 차들에게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 줬다. ‘나는 오른쪽으로 계속 갈 테니, 너는 내 왼편으로 추월해 가줘.’ 느린 차가 빠른 차를 방해하지 않고, 빠른 차는 느린 차를 위협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약속이다. 덕분에 나는 내 호흡으로 서킷을 즐길 수 있었다. 어쭙잖게 다른 차를 쫓아 가다가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꼴 난다. 물론 서킷에선 내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용기도 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못지않게 내 실력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겸손한 마음도 필요하다. 이 모순을 끊임없이 껴안아야 하는 곳이다.


빠른 형님들을 다 보내고 한창을 달려가는데, 멀리 파란색 맥라렌이 뺑글뺑글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돌고 있었다.  ‘으악 어떡해!!!!’ 맥라렌을 바짝 따라가던 다른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잠시 후, 맥라렌은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자세를 다시 잡고 달려 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비껴 간 아찔한 순간이었다. 서킷 사고가 유독 부담스러운 이유는, 일반 도로가 아닌 서킷에서는 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면 각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래서 ‘알아서 잘’ 즐기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다.



어느덧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체커기가 보인다. 혼돈의 첫 스포츠 주행이 끝났다. 출발 전 자신만만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긴장이 풀리면서 손이 파르르 떨렸다. 자유롭게 질주하면서 느낀 희열과 위험한 공포의 순간,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겸손 등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서킷을 제대로 달리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 선수에게 특급 비법 전수받다! 



운 좋게도 기자 생활을 하며 전문 레이스 선수들에게 기본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제일제당 레이싱팀 김동은 선수, 엑스타 레이싱팀 정의철 선수 등 현역 프로 선수들에게 일대일 코치를 받으며 서킷을 달렸다. 워낙 초보인지라 기본적인 내용을 배우기 바빴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좋은 선생님들에게 배운,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서킷을 돌 수 있는 비법(?)을 공개한다.


1) 슬로우 인-패스트 아웃(Slow in-fast out)


먼저 코너로 들어가기 전, 속도 줄이기를 마쳐야 한다. 코너에 들어가며 속도를 줄이면 이미 늦는다. 조향하기 전에 속도를 충분히 줄이고 조향하며 코너를 돌아나갈 땐 브레이크에서도 가속페달에서도 발을 다 뗀 상태여야 한다. 코너에서 거의 다 빠져나왔을 때 속도를 다시 내면 된다. 이게 ‘슬로우 인-패스트 아웃(slow in-fast out)’ 기법이다. 


2) 아웃-인-아웃(Out-in-out)


또 하나, 조향을 최소한으로 한다. 코스가 ‘C’자 형태라면, 어떻게 이 길을 ‘I’자 처럼 지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아웃-인-아웃(out-in-out)’ 기법. 코너에 진입할 땐 코너의 바깥쪽(out)을 따라가고, 그 다음엔 코너의 안쪽(in)으로 가까이 붙은 다음, 코너 중심을 지나면서 다시 바깥쪽(out)으로 벗어난다. 가장 빠르게 코너를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만 열심히 몸에 익혀 놓으면 내일은 레이싱 퀸이다. 



이후에도 여러 번 서킷을 다녀왔다. 시승회에 참석해 줄지어 달리도 하고, 때로는 나 혼자 스포츠 주행을 하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세이프티 카를 졸졸 따라 달리는 시승회 주행도 마냥 재미있었겠지만, 이제는 한 줄로 안전하게 가는 길보다 무서워도 나만의 길을 가는 게 더 즐겁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무서운 차들 사이에서 마음을 다잡던 순간들, 자신감과 두려움 사이에서 내 숨을 쉬며 내 보폭으로 자유로이 달리던 순간들. 완벽하지 않은 내 속도를 사랑하는 길, 과연 서킷은 철부지의 세계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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