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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7편

‘인맥관리에서 공유관계로’



인맥 관리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허무함으로…


“정작 제가 힘들어지니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없네요.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관리해오느라 애썼던 것이 너무 허무합니다.” 직장인 K의 첫마디이다. 그는 인맥을 잘 관리하는 것이 사회적 성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왔다. 


그런데 최근 회사에서 실수에 비해 과도한 징계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을 당한 것도 억울했지만 K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말로만 ‘힘내!’라고 한마디씩 건넬 뿐, 각자의 일에만 열중했고 오히려 K를 피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직장동료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조차 이미 지난 일이니 잊어버리라며 술을 권할 뿐, K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동안 인간관계를 위해 애써왔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었다는 느낌에 걷잡을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나도 혹시 ‘인간관계 번아웃 증후군’?



K에게 그동안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기준은 ‘숫자’였습니다. 그는 주소록에 등록된 인원, 페이스북 친구들의 숫자, 하루에 받는 카톡과 문자의 개수, SNS에 올린 글에 대한 ‘좋아요’나 댓글의 개수, 주고받은 명함의 숫자 등을 늘 헤아렸습니다. 그 숫자가 많을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적을수록 우울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이 숫자를 유지하고 늘릴 수 있을지 항상 고심합니다. 명절마다 지인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고 친구들의 애경사나 동창 모임 등을 앞장서서 챙깁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위해 교회와 독서 동호회도 나가고 있습니다. 다들 꺼리는 모임의 총무나 간사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종종 과장된 글을 올리고 무심코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에게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마치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많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그런 자신의 성격이 너무 싫어졌고, 친구가 많은 아이들을 보며 늘 열등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고 앞에 나서며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불편할 때가 많았지만,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K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힘이 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좋은 모습만을 보이려고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이번 힘든 일을 겪고 난 뒤에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한 달 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입니다. 


이는 과연 K만의 문제일까요?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두잇서베이가 지난 2017년 4월 공동 기획한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인 남녀 2526명 가운데 85%는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껴본 적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상당 수가 업무 때문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에 허무감과 무기력감을 겪는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습니다. 왜 인간관계는 우리를 소진시키는 것일까요? 


 

시대가 강요하는 외향성 선호문화와 리더형 인간



바람직한 인간상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이상적인 인간유형은 다릅니다. 


하버드 대학교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남서부에 사는 나바호 인디언의 중심 가치는 ‘조화’입니다. 이들은 우주와의 조화로운 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그렇기에 이 집단 안에서는 온화하고 원만한 성격의 사람들이 바람직한 인간형이 됩니다. 반대로 성급함, 경쟁심, 지나친 자기주장 등은 비난거리가 됩니다. 그에 비해 크와큐틀 인디언은 ‘능력’이 중심 가치입니다. 이들은 남보다 힘이 세거나 능력이 우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창피하게 여깁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개성’보다는 ‘조화’를 중시해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은 이를 잘 나타내어주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는 기존의 문화를 아주 빠르게 전복시켜 버렸습니다. 사회가 개인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기주장과 성공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리더형’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상이 되면서 인간관계 역시 어느덧 경쟁력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도 외모처럼 투자를 해야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성공을 위해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부모들부터 이를 부채질합니다. 어려서부터 능력 있는 친구들을 짝 지어주려고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조종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외향성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의 성향은 무시한 채 무리에서 리더가 되거나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문화에서 자라나는 우리들은 인간관계를 자연스럽게 맺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장하고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인간관계가 아니라 인맥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인맥관리 관계’의 끝은?


인간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공유관계communial relationship'와 '교환관계exchange relationship'입니다. 공유관계는 서로의 친밀함과 관심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이에 비해 교환관계는 서로의 필요와 이익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즉, 공유관계는 기본적으로 동질감을, 교환관계는 기본적으로 손익에 관계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유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고 편해지지만, 교환관계는 계속 겉돌거나 진정성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서로의 필요와 이익이 맞지 않으면 쉽게 허물어지고 맙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유관계는 '휴식'에 가깝다면, 교환관계는 '일'에 가깝습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하고, 불편한 사람이라도 속 마음을 감추고 인간관계를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균형이 필요합니다. 실제 인간관계에서 소진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교환관계가 비대하고 공유관계는 미미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능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쟁 사회의 산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 연인, 친구, 사제 등의 관계조차도 교환관계처럼 교류하게 됩니다. 한번 연락오면 나도 한 번 연락하고,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만나고 별 이익이 없으면 피하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안 만나는 '거래'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가 변질되고 맙니다. 


그 교환관계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휴식 없는 노동이 결국 소진 증후군을 불러오는 것처럼, 교환관계에 매달리는 인간관계의 끝은 소진입니다. 특히, K씨처럼 어려운 일이 닥치면 좀 더 빨리 소진이 찾아옵니다. 그 수많은 인간관계의 피상성에 깊은 허무감과 외로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은퇴를 하고 난 뒤에 깨닫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해관계가 없어지자 아무런 연락도 없는 관계들을 보면서 정작 자신에게 누가 중요한 사람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외향적인 사람들은 비교적 덜 힘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향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사교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노동을 하며 인맥관리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억지 외향성’으로 자신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모임의 리더를 자처하거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이런 저런 대외 활동에 뛰어들었다가 어느 순간 탈진하듯 주저앉고 맙니다. 이들은 억지로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가 원하던 사교성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 자기초점, 신중함, 배려와 같은 내향적인 성격의 장점마저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위하여


우리는 공유관계와 교환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공유관계는 점점 중요해집니다. 인간은 언제나 관계의 연결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적 생명의 끈은 공유관계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함을 느끼고 어려울 때 찾아갈 수 있는 상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공유관계를 늘려갈 수 있을까요? 



첫째,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에너지는 한정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깊이를 더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나에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건강한 자아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자아의 기능 중의 하나는 자기의 관심사를 찾는 것입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찾으면 저절로 자기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어릴 때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저절로 친구가 만들어지지만 성인이 되면 친구는 손익기반의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관심기반의 친목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즉, 자신의 관심사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성인들의 공유관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심사의 핵심은 ‘오티움(Otium)’을 말합니다. 오티움이란 라틴어로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인 여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이 보상이나 결과를 떠나 그 자체로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오티움입니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등산, 뜨개질, 합창, 동식물 기르기, 시낭송, 댄스, 봉사활동, 명상이나 요가, 글쓰기, 요리, 공부 등 다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즉,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다보니 저절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유관계는 상대에게 지나치게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오티움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셋째, 갈등을 풀어보는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공유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밀해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 편안함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공유관계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오해와 마찰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공유관계란 교환관계와 달리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회복할 수 없는 단절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가까워지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갈등, 즉 불편함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더욱 더 친밀해지고 편안해집니다. 교환관계는 갈등이 생기면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공유관계는 그 갈등을 풀 수 있을 때까지 풀어봐야 합니다. 그냥 덮어두거나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때문에 기분이 상했고 불편함을 느꼈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약속을 여러 번 어겨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단, 화난 감정을 쏟아붓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왜 무시해!'가 아니라 '네가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에 말입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산을 넘지 못하고 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등을 대화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편안함은 점점 멀어지고 언젠가는 결국 더 큰 상처를 주고받으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깊은 공유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갈등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등을 회복하고 더 가까워지는 '갈등회복력'이 높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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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항상 보던 애인이나 배우자가 이유 없이 싫어졌던 감정, 저 오지라퍼만 느껴본 적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들려드릴 이야기는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비극으로 끝이 난 어떤 부부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했었어야 할까요?






 2009년 개봉작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뛰어난 연기 덕인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끊임없이 삶에 의문을 품으며 살던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차가운 현실로 다가옵니다. 인간의 어떤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우리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요?


 파티장에서 처음 만난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첫눈에 반합니다. 꿈에 대해 묻고 답하는 대화에서, 우리는 어설프게나마 여자의 환상과 남자의 허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부부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정착한 네 식구는 평온해 보입니다. 남자는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매일 아침 일찍 말끔히 차려 입고 기차를 타고, 연기를 공부하던 여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서 절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때로는 극단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하죠. 물론, 형편없는 연기였으나 그녀는, 부부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서 빛나던 그들은, 둘만 남겨졌을 땐 그저 평범한 부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간격만큼 그들은 공허합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C.G.Jung은 인격을 크게 두 가지, ‘페르조나’(외적 인격)와 ‘그림자’(내적 인격)로 구분합니다. 가면이란 뜻의 페르조나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체면’ 혹은 ‘역할’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일반적인 기대에 맞추는 태도로, 외부 세계에 적응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아가 페르조나와 동일시 되면, 즉 남들이 보는 모습에 집착하여 이면의 욕구를 무시한다면 공허해집니다.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 분)이 사람들을 벗어난 공간에서 과격하게 싸우는 것은 민낯의 서로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남편은 아내의 형편없는 연기가 내 탓은 아니라며 비참한 그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아내는 남자답지 못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며 자존심을 긁죠. 에이프릴은 교양 있고 아름다운 아내이기 이전에 나약한 한 인간입니다. 프랭크에게도 자상하고 든든한 가장은 하나의 역할일 뿐입니다. 역할은 흔들릴 수 있지만 내면의 자아는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화려한 모습 이면의 존재에 말을 걸었어야 합니다. 괜찮다고 보듬어주고 초라한 만큼 서로가 필요하다며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가족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용감한 커플이며, 나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릅니다. 남편은 어린 시절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꿈을 잃은 어른이 세상을 다 아는 양 거만하게 말하는 것이 싫었던 그 때처럼, 자신을 비난합니다. 아내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연기를 공부하던 그녀도,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남편도 분명 각자의 꿈을 갖고 있었으며, 어느 순간 선택을 미루고 상황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그들의 선택은 너무 성급하고 충동적입니다. 프랭크는 바닥에 떨어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순진한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에이프릴은 파리로 이민 갈 것을 추진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밀어붙였던 것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너무 싫어하거나 왜 그런지 모르게 너무 미운 사람이 생겼다면, 내 안의 ‘그림자’를 바라볼 기회입니다. 그림자란 나의 다른 면, 무의식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독립적인 여성이 실은 매우 의존적인 모습을 갖고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수용적인 남성이 집에선 괴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를 자각해야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두 부부가 왜 그토록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나고 싶은지 멈춰 바라보았어야 합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과거를 적극적으로 탐색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인지, 반대로 업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인지. 에이프릴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찬찬히 이야기해보았어야 합니다. 애초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지, 조금 더 자유롭고 싶은 것인지, 좋은 엄마의 역할이 버거웠던 것인지. 그녀가 원하는 삶을 남편과 분리해 생각했다면 현실을 회피하려는 간절함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비참한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페르조나)을 더욱더 키워 덮으려던 프랭크의 노력도, 꿈이라 믿는 허상에 목숨을 걸고 그림자를 벗어나려 했던 에이프릴도 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의 역할을 인정하는 가운데 내면의 욕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따뜻한 영화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내가 경험하는 현실을 털어놓아 보세요. 가면을 벗고 하나씩 천천히 말합니다. 이 때 두 가지를 기억하면 힘이 됩니다. 모든 인간의 욕구는 보편적이니 상대가 공감해줄 것을 믿는 것. 그리고 동시에 각자가 경험하는 현실은 다를 수 있으니, 이상해 보이는 나를 스스로 수용하면서 당당히 말해도 좋다는 것을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을 꼭 안아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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