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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3편

‘그건 사랑이 아니야


 

K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책상 위에 휴지가 한 움큼 쌓여갔다. 6개월 전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부터라고 했다. 


2년을 조금 넘게 사귄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좋다고 쫓아다녀서 시작했던 연애였기에 그의 이별통보는 더욱 충격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지칠 만큼 지쳤기에 먼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많았었다. 


시간이 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다른 여자를 새롭게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마음이 쑥대밭이 되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잘 해보자며 사정을 해보기도 했지만 전 남자친구는 냉정했다. 그녀는 매일 전 남자친구의 SNS에 들어가 그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밤 마다 울다 지쳐 쓰러지고 눈을 뜨면 증오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그 사람도 고통스럽겠지요?” 



파멸로 치닫는 비극적 사랑


▲ 벨기에 화가 Joseph Stallaert의 <The Death of Dido (1872)>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라는 책에서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가 멸망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트로이의 장수입니다. 그는 유민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 모험 길에서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들렀다가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유민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다짐을 잊어버리고 디도와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신들은 인간의 행복을 질투합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어 그가 잊고 있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부하들을 불러 은밀히 출항준비를 시킨 뒤 디도에게 알리지도 않고 훌쩍 떠나 버립니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겠지요. 


홀로 남겨진 디도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며칠 동안 괴로워하던 그녀는 궁정마당에 장작을 쌓고 아이네이아스가 남겨둔 무기와 옷 그리고 함께 쓰던 침대를 태웁니다. 추억의 물건과 함께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장작이 활활 타오르자 디도는 갑작스럽게 화염에 싸인 침대위로 몸을 던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연인과의 이별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며, 자기의 붕괴입니다. 그렇기에 디도의 죽음은 자살이면서 동시에 타살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아이네이아스를 남김없이 파괴시켜버리고 자신을 배신한 아이네이아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싶은 복수의 마음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중 아만테스(amantes)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글자 하나 차이인 아멘테스(amentes)는 ‘정신 나간 사람’을 뜻하지요. 예부터 사람들은 사랑을 일종의 광기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비극적 사랑이 탄생하는 과정 



왜 어떤 사랑은 이렇게 치명적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애정)과 애착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의 비극적인 사랑은 애정이 아니라 애착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격렬합니다. 우리는 흔히 애착을 사랑이라는 말과 혼동합니다. 그리고 유아기 애착의 중요성으로 인해 애착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착은 사랑과 다르며, 성인의 애착은 관계를 파멸로 몰아가기 쉽습니다. 


잠시 애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까요? 애착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동물의 애착행동에 착안하여 애착 이론을 발달시켰습니다. 포유류의 새끼들은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맺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새끼들은 필사적으로 어미에게 매달리게 되어있고, 어미는 새끼들로부터 잠시라도 한 눈을 팔지 않도록 설정되어있는 본능적 프로그램이 바로 애착입니다. 이는 새끼가 어미에게 매달리는 일방적인 의존 상태입니다. 


인간의 애착은 더 강합니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크게 우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양육자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분리불안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양육자가 보이지 않으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도 공포를 느끼고 비명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강한 항의행동(protest behavior, 애착 대상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한 과도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아이에게 양육자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양육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즉각적 욕구만족’을 원하고 늘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에 비해 성인의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본능과 감정 외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친밀함을 쌓아나갈 수 있는 이성과 의지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네가 필요해’ vs ‘너를 사랑해’



애착은 일방적이지만 사랑은 상호적입니다. 애착은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공생관계이지만 사랑은 나와 너의 개별성의 토대 위에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유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마음은 ‘난 네가 행복하기를 원해!’이지만 애착은 ‘난 네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해’입니다. 즉, 사랑은 ‘나는 너를 사랑해’이지만 애착은 ‘나는 네가 필요해’입니다. 애착은 이기적입니다. 애착은 타인의 존재에 일방적으로 의지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생존본능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애착욕구가 너무나 크고 오랜 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이를 양육자들이 충족시켜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민한 아이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아이들은 크고 작은 애착손상을 가진 채 어른이 됩니다. 그 손상이 클수록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호적인 애정관계보다는 일방적인 애착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조차 충족해주지 못했던 애착욕구를 어떻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맛보았던 일체감이 사그라지면 결국 애착욕구의 좌절이 찾아옵니다. 


물론 애정관계에서도 좌절이 있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시적인 균열을 다시 복구시킬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애착관계에서의 좌절은 과도한 반응을 유발합니다. 마치 양육자가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이 보이는 과도한 절망행동이나 항의행동과 유사합니다. 공포심을 느끼고 매달리거나, 증오를 퍼붓거나, 상대방을 조정해서 계속 자신의 요구대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사랑은 추격과 전투와 도망이 반복되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비극적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극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K의 고통은 남자친구가 떠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뿌리는 치유되지 못한 애착손상에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네가 태어날 때 너무 못 생겨서 버릴까 생각했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보잘것없는 나’라는 자기이미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활발했지만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깊은 수치심을 느껴왔습니다. 그러한 좌절감과 수치심은 마음의 응어리가 되었고 인간관계를 왜곡시켜왔습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그 감정적 응어리를 풀어내야만 과도한 애착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둘째는, 대상의 신중한 선택입니다. 이들은 과도한 애착욕구로 인해 비현실적인 구원의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애착손상을 가진 대상을 만납니다. 그러나 애착손상을 가진 이들끼리의 만남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신을 존중해주고 갈등을 풀어갈 줄 아는 안정적인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로는, 자기위로의 기능을 발달시켜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지해서 위안 받는 습관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을 벗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행복하게 해줄 책임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고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통해서 행위의 보상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지를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기쁨은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경계를 세우고,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또 다른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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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첫사랑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저 오지라퍼는 가끔 그때의 '흑역사'를 떠올리며 이불을 뻥뻥 차곤 하는데요^^; 그만큼 솔직하고 뜨겁게 사랑했던 흔적이구나~ 라는 생각에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20대 초반 여성 감독들이 이야기하는 첫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보시죠!






  며칠 전, 강릉 신영극장에서 열린 <애송이들의 브래지어>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20대 초반의 세 여자 감독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다큐 영화입니다. 사랑을 말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라 ‘애송이’란 제목을 붙였다고 하네요. ‘브래지어’는 여성에게 제약이자 특권이기도 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같은 여자로서, 20대의 질척한 연애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의 상처와 기쁨들을 빼거나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 용기에 감탄하게 되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각자의 20대를 떠올리는 분들의 소감이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지난 시절이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아리기도 하더군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서 이토록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영화란 매체의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다’며 헤어진 남자친구를 그리워하고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별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합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하죠. 관계의 단절이라는 게 매듭을 풀 듯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니, 걷잡을 수 없는 추측이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안 하려고 애쓸수록 생각은 더욱 커지죠. 영화 속에서도 기억을 기록하고 불태우는 의식을 치르고 여행을 떠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등.. 새로 거듭나려 애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가 다시 돌아오는 것만이 정답인 것 같았다’는 내레이션은 그저 슬픕니다. 상담에서도 수단에 집착하는 것을 지적하며 내 소중한 욕구를 위한 다른 대안들을 찾아보도록, 보다 넓은 시야로 주위를 살피도록 권유하기도 합니다. 결국 내가 사랑 받고 사랑했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지, 상대가 정답은 아니라는 걸 인식시키죠. 그러나 사랑만큼은 꼭 그와 함께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놓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행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전 남자친구에게 평온한 상태로 연락할 수 있게 됩니다. 지나온 사랑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기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 그녀는, 더 예뻐졌습니다.





  두 번째는 ‘남자 없이 살 수 있다’고 선언하는 감독의 연애이야기입니다. 오해와 실망으로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떨치기 어려웠던 그녀의 고백이 담담히 전해집니다. 상대의 반응이 무서워 확인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 그럼에도 조금씩 용기를 내보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죠. 어렵게 연애를 시작한 남자친구에게 습관처럼 ‘헤어지자’고 말하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제안을 수용하는 남자친구의 태도를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나의 두려움 때문에 상대의 마음은 무시했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고백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후회하는 대부분의 상황은 두려움이 삼켜버린 기회들입니다.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두려움 따위 맞서 싸울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요? 다행히 그 실체를 바로 알아차린다면, 또 다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에서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야기. 원치 않는 첫경험을 밝히기가 부끄러워 내가 원하는 것을 바꾸고 포장하며 무감각하게 관계를 맺는 과정들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속상하고 억울한 심정이 전해진 것이겠죠. 상담에서도 ‘원하는 것’을 묻고 그것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현실에서 늘 원하는 것을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또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는 어쩌면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우리는 때로 실수도 하고, 끌려 다니기도 하며, 의존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나를 아는 것입니다. 실수한 나를, 흔들린 나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는 나를 말입니다. 그 모습이 맘에 들지 않고 그로 인해 나의 다른 욕구들이 희생되고 있다면 새로운 선택을 해보면 됩니다. 지난 일은 그저 지난 일일 뿐입니다. 그녀의 결말은 아픔의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희망적입니다. 그림을 그리며 나를 알아가고, 나를 사랑하는 기회들을 만드는 모습이 보여 기뻤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다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짧은 자극으로 담아낼 수 없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레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헤어지며 내 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20대, 그 시절이 문득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싸움을 동료와 함께 나누며 작품으로 만들어낸 세 명의 감독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운 좋게 해결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삶의 일부가 됩니다. 이왕 내 삶으로 들어왔으니, 피하려 애쓰기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활용해보면 어떨까요? 사랑의 상처가 한 편의 영화가 되기도 하니까요.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23편.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다면






안녕하세요~?
삼성화재 블로그 화제만발 "사랑의 기술"의 외부필진 라라윈입니다. ^^


때 아닌 장마처럼 연일 비가 계속되고 있고, 주말까지도 비 소식이 있네요.. 이런 날이면 꿉꿉한 날씨를 날려버리고자 에어콘에 조금은 추워진 실내에서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면서, 창 밖에 떨어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이렇게 
무심코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으면, 가슴 아린 추억이 있거나 없거나 묘한 감상으로 끌고 들어가 버립니다



비가 오면 유난히 추억에 잠기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회상 기억의 하나로 받아들인 정보를 자극과 반응의 관계로 기억에서 인출하는 것입니다

특히 비가 오니 옛 추억, 옛 사랑이 떠오르는 것은 일종의 단서 회상(cued recall)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비가 오면 옛 사랑을 떠올리는 것도 일종의 학습 효과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노래 Ref의 이별공식에 나오듯,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열대 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나.. 라며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슴 아픈 장면에서 주로 비가 오는 것을 꼬집었던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실생활은 화창한 날에 이별하는 경우도 참 많고, 비 오는 날 이별해 본 사람이 훨씬 적을 듯 한데도 시각화된 이별 - 옛사랑- 아련한 추억 - 비는 하나의 세트처럼 이미지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라는 단서를 토대로 학습된 대로 옛 사랑이 떠오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도피

만약 첫 사랑을 그 때, 붙잡았다면... 어땠을까.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때로 바보스러운 이 상상은 즐겁습니다.

회사의 한 언니는 일이 힘들 때면 스물 세 살 때 만났다는 (그때 8살 차이 났다는) 모 백화점 사장 아들을 떠올리며, 그 때 그 남자와 잘 되서 결혼을 했었으면 지금 얼마나 편히 살고 있었을까...
라는 현실도피용 상상으로 과거에 만났던 조건이 좋았던 그 남자를 떠 올리기도 하고,
좀 더 센티멘털한 상사는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집 앞에서 주룩주룩 떨어지는 비를 맞으면서 기다렸는데도 엇갈려서 결국은 군대를 갔고, 그 사이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한.. 엇갈렸던 첫 사랑을 추억하기도 합니다.

결론이 그 때 조건 좋았던 사람,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잡았었어야 한다는 후회로 끝나기도 하지만, 이런 회상은 스스로를 더 멋진 사람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과거에 그토록 조건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도 조건보다는 마음을 따랐던 순수한 사람으로...
사랑 앞에서 바보짓도 서슴치 않았던 열정적인 사람으로...
, 팍팍한 현실을 잠시 떠나게 해주는 엉뚱한 상상이자, ""를 높여주는 상상이기에 옛날의 연애담은 무용담의 하나로 기회만 있으면 추억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억의 미화 현상

정말로 그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그 때처럼 마음 고생을 다시 할래?
라고 물으면... 머뭇거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냉정하게 당시에 마음 고생했던 것을 떠올리면 편하기만 했던 때가 아니라는 것도 떠오릅니다.
대체 이성의 심리는 뭔지 모르겠고, 어느날인가 혹시 상대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 날은 세상이라도 가진듯 기분 좋았다가, 어느날인가 다른 이성이랑 더 좋아보이면 혼자 헛물 켰나 싶어서 방구석에라도 쳐박힐만큼 우울해집니다. 조울증 걸린 사람도 아닌데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혼자만 롤러코스터 감정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애태우다가 끝나버렸으면 혼자만 바보같았던 것 같아 조금은 속상하기도 합니다

사귀었다면 사귀고 보니 상대도 사람인지라 별 것도 아닌 일들에 투닥거리면서 다투고 힘들다가 헤어진 것이라... 그 때 힘들었던 것까지 떠올리면 그다지 돌아가고 싶지 않아집니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라고 할 때는 그 때의 돈 벌어야 되는 걱정도 없고, 안 꾸며도 예뻤던 것 같고, 가능성이 열려있었던 것 만 같은 느낌만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덕지덕지했던 여드름, 입시 스트레스로 살쪘던 것, 학교에서 야자 하느라 시달리고, 잠 못자고 시험공부하고, 달달이 시험보느라 스트레스 받아 죽을 것 같았던 것, 돈은 못 버는데 집안 사정 생각하면 빨리 성공해서 돈 벌고 싶어 스트레스 받던 것 등등을 떠올려 보면.. 그 때 그 시절보다 지금이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처럼, 사람의 기억은 힘들었던 것에 대해서는 서서히 망각하면서 좋았던 기억만 아름답게 남겨주는 미화 현상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비 오는 날 떠오르는 아름다웠던 것 같은 옛 사랑도... 세월과 기억의 작품일 뿐...


결론은 돌아갈 수도 없고, 정말로 돌아가서 그 때 그 시절에 몰라서 서툴러서 했던 실수들을 다시 할거냐고 물으면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비오는 날을 계기 삼아, 나에게도 한순간 유행가 가사 속에 나오는 주인공 같던 때가...
드라마나 영화가 부럽지 않게 내가 주인공이었던 로맨스 스토리를 만들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 슬며시 미소짓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떠올릴 추억이 없으면 어떤가요.. 덩달아 비오는 날의 낭만에 취해보는 것도 비오는 날만의 행복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