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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8편

‘눈치도 없는 어른 vs 눈치만 있는 어른’



“이 사람과는 정말 대화를 못 하겠어요.” 부부 상담을 온 부인이 먼저 불만을 터뜨렸다. 남편도 덩달아 “아이고! 누가 할 소리를...”라며 맞불을 놓는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 눈치가 없다는 게 불만이고, 남편은 아내가 늘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하루는 남편의 술 모임이 늦어져서 남편은 아내에게 먼저 자라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그날 아침에 두통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도 않고 자기 늦겠다는 이야기만 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들은 남편은 바로 전화를 끊고 술을 마시다가 밤늦게 들어갔다. 


아내는 그날부터 말문을 닫았다. 남편은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아니, 불만이 있으면 무엇이 불만이라고 이야기를 해! 괜히 눈치 보게 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어디를 가나 꼭 눈치 없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회사 경영이 어려운데 비싼 곳에서 회식을 하자는 직원도 있고, 배우자 가족들 앞에서 배우자의 흠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죠. 누군가는 ‘남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눈치 없는 사람들 주위에는 그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혼란스러워집니다. 눈치는 좋은 것인가? 그래서, 눈치를 봐야 하는 건가?


눈치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상황에 미루어 알아내는 것’ 분위기 파악, 즉, ‘낌새’와 같은 의미로 대화가 아니라 상대의 표정이나 억양 등을 보고 직관적으로 심리를 파악하는 것을 뜻합니다. 빠르지만 정확도가 떨어지죠. 


특히 주관적인 심리상태에 따라 왜곡되기 쉽고, 표정 읽기와 관련된 뇌의 능력에 따라 편차가 크답니다. 단번에 상대의 심리를 눈치채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참 눈치를 보는데도 엉뚱하게 잘못 파악하는 이들도 있죠. 예를 들어, 자존감이 낮은 이들의 경우 상대는 잠을 못 자 피곤할 뿐인데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 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 눈치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서열을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흔하게 관찰됩니다. 일반적으로 집단에서 힘이 약한 개체는 힘이 강한 개체의 눈치를 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말이죠. 이는 눈치가 자기보호와 사회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능력임을 의미합니다. 힘없는 개체가 눈치까지 없다면 그 집단에서 살아가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모방과 눈치에서 공감과 배려로 

 


동물의 사회성과 달리, 인간의 사회성은 2단계의 발달을 거칩니다. 1단계는 동물적 사회성으로 이는 본능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모방과 눈치입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42분에서 72시간 사이에 다른 사람의 표정을 정확하게 모방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과 행위를 애쓰지 않아도 모방하게 되죠. 자라면서 어른의 눈빛이나 표정을 보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해서 그에 맞게 행동하는 눈치가 발달합니다. 이러한 발달은 언어와 이성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자기보호와 사회성을 위한 중요한 기능이 됩니다. 


인간의 사회성은 성인이 되면서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합니다. 모방과 눈치는 줄어들고 공감과 배려가 발달합니다. 이는 ‘의식과 자율성의 발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요. 모방이 상대의 감정에 전염되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눈치가 상대의 기분에 자신을 맞추려는 수동적인 태도라면, 배려는 상대를 존중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모방과 눈치가 자동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라면, 공감과 배려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방과 눈치가 열등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며,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인 것이죠. 건강한 어른은 모방과 눈치라는 직관적 사회성과 함께 공감과 배려라는 이성적 사회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조절하여 살아갑니다. 즉, 사회성이 뛰어난 이들은 남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말하지 않아도 잘 파악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압니다. 



눈치도 없는 어른 그리고 눈치만 있는 어른 


눈치는 중요한 사회적 지능의 한 부분으로 대인관계에 있어 기본적인 센스랍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닌 이상 인간관계를 눈치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른의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하고 언어와 이성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실제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하고, 이를 통해 눈치의 오류를 수정할 줄 알아야 하며, 상대의 눈치만 살필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할 줄도 알아야죠. 

 


문제는 ‘눈치도 없는 어른’과 ‘눈치만 있는 어른’입니다. 


우선, ‘눈치도 없는 어른’들을 볼까요. 눈치가 없는 이들은 당연히 공감과 배려도 잘 못합니다. 눈치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능력으로, 공감과 배려는 눈치에서 발달하기 때문이죠. 이는 선천적인 원인과 함께 자라는 과정에서 받는 영향도 큽니다. 아이들은 눈치를 통해 적절한 사회성을 발달시켜 나가는데, 훈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들은 필요한 눈치조차 보지 않고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최근 과도한 인지교육과 문자 위주의 디지털 대화는 표정, 억양 등을 읽어내는 능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결국 눈치가 없는 이들은 사회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더라도 불편을 끼치게 됩니다. 


반대로 ‘눈치만 있는 어른’들도 문제입니다. 눈치는 유아동기에 주요한 사회성 기능으로, 성인이 되면 공감과 배려가 주요 사회성 기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발달 과정의 문제로 낮은 자존감과 불안, 과도한 의존성을 가진 채 어른이 되면 여전히 눈치가 사회성의 주기능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쉽게 상대의 감정과 의도에 끌려다니거나, 과도한 친절과 배려로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거나 대화를 나누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둘은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결국 성인과 성인으로서의 상호적 관계를 하지 못하고 상대와의 관계에서 고자세를 취하거나 반대로 저자세를 취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센스 있는 인간관계를 위하여 


눈치를 보는 것은 단지 비겁하고 못나서가 아니랍니다. 눈치는 대인관계의 기본감각입니다. 다만, 눈치는 정확도가 떨어지기에 이성의 보완이 꼭 필요하죠. 다음은 센스 있는 인간관계를 위해 생각해볼 점들입니다. 

 


첫째, 눈치를 조절하라.


어른도 눈치가 필요합니다. 눈치를 너무 안 본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상대의 마음이 어떨지를 헤아려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반대로 늘 상대의 눈치만 보고 지레짐작한다면 대화를 통해 실제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눈치와 이성이 만나면 눈치는 센스가 됩니다. 이를 위해 평소처럼 ‘느끼는 대로’ 혹은 ‘습관처럼’ 행동하는 대신, 잠시 멈추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눈치를 조절한다는 것은 바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대화한 후 표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상호존중의 태도를 가져라.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안테나의 방향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두고 있는데, 그중 절반은 상대를 향해 돌려야 합니다. 반대로 눈치만 있는 사람들은 외부로만 향해 있는 안테나의 절반을 자신을 향해 돌려야 하죠. 상대의 의도와 감정을 존중하는 것처럼 자신의 의도와 감정 역시 존중해야 합니다. 이는 누가 틀리고 맞는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처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셋째, 지레짐작하지 말고 ‘질문’을 하라.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자신이 상대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상대를 잘 안다고 하는 순간부터 인간관계는 꼬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상대의 기분과 의도를 잘 헤아린다고 앞서 판단하지 말고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지난번에 카푸치노 마셨다고 “카푸치노 드실 거죠?”라고 성급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지난번에는 카푸치노 드셨는데 오늘은 뭐가 좋으세요?”라고 묻는 것이 더 센스 있는 태도랍니다. 



넷째,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라.


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유연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상대 맥락의 수위에 맞춰 대화를 할 줄 알죠. 글에 행간이 있는 것처럼 대화에도 맥락이라는 게 있습니다. 맥락이 낮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과 그 말 속에 담긴 뜻이 거의 같습니다. 반면, 맥락이 높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 곳곳에 숨은 뜻이 많죠. 저맥락은 직선적인 대화를 뜻하고 고맥락은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괜찮습니다’라고 할 때, 상대가 저맥락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고맥락 대화를 하는 이라면 한 번 더 권하거나 정말 괜찮은 것인지 묻습니다. 글 도입부에 등장한 부부가 서로 대화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맥락의 수위가 너무 달랐고, 자기 방식대로만 대화를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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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혼자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때는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보다 유난히 외롭고 힘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같은 욕구를 공유하며 공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상담심리사로 일하는 것은 때론 참 고달픈 일입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한다는 것이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유능감을 느끼기도 쉽지 않고, 괜한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이라도 내담자의 변화를 목격한 상담자들은, 결코 이 직업을 내려놓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독일 통일 전, 동독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타인의 삶>은 적대적인 관계에서조차 아름답게 확인되는 연결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84년 당시, ‘국가안보국’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철저히 감시했던 비밀경찰의 존재는 상상 그 이상이었죠. 고문관 비즐러(울리히 뮤흐 분)는 강단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이용하는 잔인한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그런 그가 중요한 인물의 감시자 역할을 맡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시 대상인 극작가 드라이만과 아내이자 여배우인 크리스타의 삶을 엿보며 비즐러는 조금씩 변화하죠. 무표정한 얼굴에 표정이 생기고 당의 지시를 기계처럼 따르지 않습니다. 그는 타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감시의 실패로 그는 좌천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 앞에서도 비즐러의 가난한 삶은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변화는, 새로운 시도는 과연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일까요?


 


  상담실에서 호소하는 문제는 결국 ‘욕구의 좌절’에 관한 것입니다.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등의 이야기는 성취와 인정, 사랑이 좌절된 현재 상태를 대변합니다. 이때 좌절된 욕구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감정’을 살피죠. 우리가 같은 상황에서도 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그 순간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정은 건물의 화재경보기와 같아서 내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가 됩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잘 느끼는 것이 심리치료의 시작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자각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건강의 신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것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성격으로 굳어지죠. 영화 <타인의 삶>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했던 감시를, 개인이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심리상담은 이러한 통제와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 나 그 자체로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영화 속에서 타인의 삶을 듣고 보며 감정을 되찾게 된 비즐러는, 나아가 위기에 처한 크리스타의 치유자 역할도 하게 됩니다. 당 서기관의 강요로 남편을 속이고 자괴감에 빠진 크리스타 앞에 나타나 ‘무대에 선 당신이 진짜이기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비즐러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그로 인해 용기를 내는 크리스타를 지켜보며 비즐러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자유를 지켜냅니다. 그는 드디어 비즐러 자신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내 느낌을 자각하고 욕구를 찾았다고 해서 언제나 해결책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욕구의 좌절을 애도하지 못해 더 비참하게 느끼고 무기력해질 수 있죠. 이때 우리는 욕구의 보편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같은 욕구를 공유하는 우리는 서로를 공감할 수 있고 그 자체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타인의 삶>에서 통일 후, 드라이만은 우연히 비즐러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아내를 잃고 새 작품을 쓰지 못한 채 힘겨워 하던 그는, 자신의 감시자임에도 철저히 그를 보호해준 ‘HGW XX/7’를 위한 희곡을 펴냅니다. 제목은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 이전에 드라이만이 선배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연주했던 곡이자, 도청 중인 비즐러가 들으며 눈물을 흘렸던 곡이기도 합니다. 서점에서 드라이만의 희곡을 펼친 비즐러가 자신에게 헌정한다는 한 줄의 글을 마주하며 눈빛을 반짝입니다. 타인의 삶이 나의 삶으로 들어와 변화했던 시절, 그 안에서 상대의 변화를 꾀했던 순간, 그리고 서로가 연결성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의 감동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참 따뜻한 영화입니다.

 

상담을 통해 만나는 모든 마음들은, 판단을 내려놓고 나면 모두 선합니다. 그 마음을 간직하며 함께 욕구를 공유할 수 있다면, 통제와 감시에 비할 바 없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지극히 이상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상담 장면에서 그 가능성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자니,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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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26편. 안녕, 스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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