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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기 기자의 자동차 칼럼

<스마트폰으로 자동차 구매하기>



얼마 전, 오랫동안 위시 리스트에 담아 두었던 운동화 하나를 인터넷을 통해 주문했다. 장기간 정가를 유지하며 높은 콧대를 꺾을 줄 모르더니, 대대적인 연말 세일 앞에서는 고고한 기개도 별수 없었나 보다. 연말 특별 쿠폰 할인에 5개월 무이자 할부가 더해지니, 주머니 사정에 걸맞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변모한 운동화를 지나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했다. 


게다가 신데렐라의 구두처럼 내게 꼭 맞는 신발 사이즈, 단 하나만 남아 있었으니 두 말 할 필요 없이 이건 날 위한 ‘합리적 구매’라 자처하고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스마트폰 하단에 위치한 ‘주문하기’ 버튼으로 가져갔다. 결제 후 운동화가 무사히 집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이틀 남짓, 세상 참 편해졌다.


그 날 오후, 평소에 ‘드림카’를 위해 부단히 알뜰살뜰 저축하던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성이면 감청이라고 했던가. 꿈에 그리던 중형 세단을 위한 자금이 드디어 마련됐는지, 지금 자동차 전시장으로 향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마 연말연시 이벤트 프로모션을 더하면 꽤 괜찮은 가격으로 새 차를 주문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는 말을 끝으로 친구와 통화를 마무리했다. 


몇 시간 후, 친구로부터 볼멘 메시지가 날아 들어왔다. 내용인즉슨 원하는 모델은 지금 주문해도 3개월이나 대기해야 하는 데다, 다음 달 부모님과 가족 여행을 앞두고 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브랜드 전시장을 둘러보다 결정하지 못하고 집을 향해 쓸쓸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것.


위로의 몇 마디 답장을 보내고 문득, ‘자동차도 온라인으로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직 중이라면 귀하디귀한 월차를 내고 이곳저곳 발품 팔며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영업사원의 친절한 안내에 꼭 사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의 갈등이 들지 않아도 될 텐데. 시간이 비는 김에 자료를 좀 찾아보니 이미 해외에선 온라인 자동차 판매가 보편적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도 무려 BMW, 폭스바겐(Volkswagen), 볼보(Volvo), 재규어(Jaguar) 등 굵직한 제조사들이 간편한 스마트폰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중이었다.




다소 의구심이 드는 것이 치킨이나 운동화도 아닌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선뜻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수요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내수 판매만으로도 웬만한 국가보다 많을 중국의 경우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라 불리는 광군제(光棍節)에만 무려 10만 대의 자동차가 온라인에서 팔렸다고 한다.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포드(Ford)에서는 중국의 알리바바(Alibaba)와 손을 잡고 ‘자동차 자판기’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자동차 미니어처를 뽑은 후 실제 모델과 교환하는 방식을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주차장을 여러 층 쌓은 빌딩에서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자동차를 고른 뒤 구매하는 형태다. 선택을 하고 나면 마치 자판기에서 음료수 캔 꺼내듯 내 차가 1층으로 내려온다. 그저 상상 속의 일로 웃어넘길 정도는 아닌 것이 우리는 지금 티셔츠도 자판기로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


글로벌 컨설팅 기관인 ‘프로스트 앤드 설리번(Frost&Sullivan)’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 내 온라인을 통한 자동차 판매량은 온라인 판매 서비스 초기보다 무려 65.5%나 늘었다고 한다. 작년에만 무려 총 100만 대의 자동차가 온라인으로 팔려 나갔는데 총 판매 금액은 1,007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6조5,000억 원에 달한다. 참으로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놀랍게도,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으로 자동차 판매가 이루어졌다. 각종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이른바 ‘테슬라 열풍’을 빚었던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Tesla)는 자사의 보급형 모델인 ‘모델 3(Model 3)’의 예약을 모두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받았었다. 고객이 견적을 내고 금액을 지급하면 모든 절차가 끝나는 간편한 시스템을 통해 딜러 영업망을 거치지 않고 예약은 물론 출고까지 진행된다.


테슬라 외에도 단발성으로 온라인 판매를 시도한 업체가 몇몇 있다. ‘한국지엠’은 2017년 8월에 온라인오픈마켓 ‘옥션’과 함께 ‘더 뉴 아베오’ 10대를 판매했다. 준비된 10대가 동나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1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 500만 점 등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더욱 경쟁이 치열했다. 이처럼 열띤 반응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딜러의 판매권 논란으로 인해 단발성 행사로 마무리하게 됐다. 재규어 코리아 역시 온라인을 통해 자사 모델 ‘’XE’ 20대를 권장소비자가격보다 700만 원 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준비해 불과 3시간 만에 모두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 르노삼성은 타사의 성공, 실패 사례를 거울삼아 소셜커머스와 짝지은 플랫폼이 아닌 딜러영업망과 연계한 자체 온라인 플랫폼인 e-쇼룸을 야심 차게 선보였다. 스마트폰을 통해 르노삼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장난감처럼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홈페이지 상단에는 모델, 구매, 서비스 등 3가지 메뉴를 준비했다.


e-쇼룸의 작동방식은 아주 간단한데, 먼저 원하는 모델을 고르면 컬러 선택으로 넘어가고 내 차의 이미지를 360도 돌려가며 꼼꼼히 살필 수 있며 마지막 단계는 실내 옵션을 정할 수 있다. 선루프와 블랙박스 등 각종 액세서리를 더해 할부와 일시불 등 구매방법을 정해 최종 견적을 내면 모든 게 끝! 굳이 종이로 된 카탈로그를 뒤적일 필요 없이 앉아서 5분 만에 모든 걸 해치울 수 있다.. 


물론 온라인 구매가 가진 맹점도 있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상태라면 반드시 대면 상담이 필요한데, 앞서 얘기한 온라인 사례들은 이 부분에서 약점이 있었지만 르노삼성 경우 e-쇼룸 홈페이지 오른편에 노란색 버튼을 누르면 즉시 전문 상담 인력과 메신저를 통해 1:1 상담할 수 있다. 이달 신차구매 혜택이나 내 집과 가까운 전시장 위치 등, 각종 서비스를 간편하게 안내받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자동차 온라인 판매는 한시적 깜짝 이벤트가 아닌 점차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처음엔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스마트폰으로 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너무나도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수단 중 하나다. 올해 초 복귀하는 폭스바겐도 다음카카오와 함께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판매 과정을 단순화할 예정이라고 하니 과연 자동차 구매 형태는 어떤 식으로 진화해갈지, 또 기존의 영업 생태계는 어떤 전환점을 맞을지 궁금하다.




※ 본 콘텐츠는 집필가의 의견으로, 삼성화재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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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일 기자의 자동차 칼럼

<모터스포츠의 역사적 인물들과 사상 최악의 사고>



▶ 최초의 모터스포츠 우승자 프랑스 알베르트 백작


▲ 알버트 백작이 1894년 최초의 모터스포츠에 타고 출전해 1위를 차지한 차


1894년 7월 22일 프랑스 파리.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양산을 쓴 부인들과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거리로 나왔는데요, 다들 무엇인가 신기한 것을 구경하느라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세상에 말이 끌지도 않는데 굴러가는 마차가 있다니……." 사람들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그리고 심지어 말도 없이 혼자서 굴러가는 마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1894년 최초의 모터스포츠를 개최한 신문 ‘르 쁘띠뜨 저널’


프랑스 파리의 신문사 '르 쁘띠뜨 저널'이 주최한 행사에는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차, 심지어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까지 등장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모터스포츠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요란한 소리를 내고 수증기와 연기를 내뿜는 괴상한 물건을 보러 모인 사람들은 뛰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자동차 경주가 시작되는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파리에서 출발해 총 126km를 달렸습니다. 이 차들의 속도가 대략 10km/h 내외였으니 적어도 12시간은 달려야 하는 어마어마한 경주가 시작됩니다. 



▲ 라 마르퀴즈 (1884년)


이렇게 시작한 세계 최초의 모터스포츠에서 최초의 우승자는 알베르트 드 디옹 백작이 차지했습니다. 프랑스의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발명가인 백작은 자동차 회사를 만들어 증기차 '라 마르퀴즈'를 개발해 참여한 것인데 우리가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로 알고 있는 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나온 지 8년이나 지난 일입니다. 백작이 타고 우승했던 자동차 라 마르퀴즈는 2011년 미국의 한 경매에서 54억5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합니다.



▶ 예술에서 모터스포츠로, 에토레 부가티


프랑스에서 시작한 모터스포츠는 순식간에 유럽으로 퍼졌습니다. 멀리 미국에서도 자동차경주가 열리기 시작했고 도시 사이를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겨루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 에토레 부가티 (1932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엔진 자동차가 등장하기 5년 전인 1881년. 에토레 부가티는 이탈리아 밀란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인 지오바니 루이지 부가티는 건축가이자 조각가였고 아버지 카를 르 부가티도 건축, 조각은 물론 회화와 같은 예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프랑스로 이사 온 부가티 집안은 에토레 부가티에게 자동차라는 신문물을 만나게 했습니다. 스무 살이 된 부가티는 ‘디트리히’ 모델을 만들었고 1909년에는 자동차 회사인 ‘부가티’를 설립합니다. 그래서 1920~1930년대 전설적인 모터스포츠의 자동차 부가티가 탄생합니다. 이탈리아 사람이 프랑스에서 설립한 회사의 작품입니다.



▲ 부가티 타입 35C 그랑프리 레이서 (1926년)


에토레 부가티의 자동차 ‘타입 35’는 1924년부터 1931년까지 모터스포츠에서 무려 2000번의 승리를 기록합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수퍼차저를 사용한 2252cc 엔진을 사용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최초의 알루미늄 합금 휠을 사용하면서 불과 수십 년 만에 자동차는 마차의 모양에서 날렵한 스포츠카로 바뀌게 됩니다.


자동차를 마치 예술작품처럼 만들던 부가티는 차체 강성을 위해 아예 도어를 없애기도 했고 손으로 정교하게 깎아 모양을 낸 부품을 사용해 서로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엔진의 밀봉도 별다른 부가 작업 없이 이뤄졌습니다. 지금 봐도 아름다운 부가티의 자동차는 초기 모터스포츠에서 가장 빛나는 모델이었고 에토레 부가티는 모터스포츠에 전설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부가티의 안타까운 몰락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수제작으로 고급, 고성능 차를 만들던 부가티는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그리고 이어진 2차 세계대전까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아들인 장 부가티가 1939년 사고로 사망하면서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렇게 전설의 모터스포츠 머신 부가티는 사라져갔고 1947년 에토레 부가티의 사망 이후 1952년 파리 모터쇼를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옵니다. 지금의 부가티는 에토레 부가티의 사후에 브랜드를 살려보려는 노력이 이어진 결과이며 폭스바겐그룹에서 1998년 인수하며 수십억 원에 이르는 자동차를 만드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 모터스포츠 사상 최악의 사고, 피에르 르벡


1955년 프랑스 르망에서는 엄청난 사고가 일어납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스포츠로 일어난 사고 가운데 역사상 여섯 번째에 들어갈 정도의 참사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피에르 르벡


피에르 르벡은 르망24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24시간 동안 달리는 경주에서 르벡은 혼자서 23시간 정도까지 달리다가 기어변속 실수로 리타이어 합니다. 그때까지 1위를 지켰습니다. 지금은 안전을 위해 1명이 계속 타는 것은 금지됐습니다.



▲ 메르세데스-벤츠 300SLR이 경기 도중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다 (1955년)


그러던 1955년의 어느날. 프랑스 르망24 경기에 출전한 피에르 르벡. 그의 메르세데스 벤츠 300 SLR은 옆 차와 부딪친 뒤 날아올라 관중석으로 떨어집니다. 당시 속도는 240km/h 정도라고 알려졌습니다. 관중석 스탠드를 휩쓸고 간 차와 파편은 무려 80여 명의 사망자를 냈고 120명 이상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특히 마그네슘으로 만든 차체는 불이 붙어 몇 시간 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에르 르벡 역시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모터스포츠 사상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당시 전 세계에서는 모터스포츠가 중단됐고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후 약 30년 동안 모터스포츠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 르망 24 경기장에 표시한 추모 표지판


경찰의 수사결과 이 사건은 경기 중 일어난 사고라고 결론 내렸지만 사람들은 피에르 르벡에게 참사의 원인이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2010년 영국의 BBC는 <가장 치명적인 충돌>이라는 다큐를 통해 피에르 르벡의 잘못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불과 3초 밖에 되지 않는 영상을 복원했고 사고의 원인은 경기장 설계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 1932년 르망 24시 레이스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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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 칼럼니스트의 자동차 칼럼

<전기차, 사실은 리턴 매치>



예 맞습니다. 요즘 가까운 미래의 자동차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전기차. 우리가 이제 맞아들이려 하는 전기차가 사실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전기차가 내연기관자동차보다 역사가 더 오래 되었고 자동차의 주류였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오늘은 전기차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창립자 가운데 한명인 칼 벤츠(Karl Benz)가 1885년에 만든 ‘파텐트 모터바겐 (Patent-Motorwagen)’을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대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파텐트 모터바겐은 이름이 설명하듯이 동력 기관을 사용하여 달리도록 처음부터 고안되어 특허를 취득한 최초의 자동차를 뜻합니다. 보다 정확하게 이 모델의 중요성을 표현한다면 ‘세계 최초로 내연기관을 사용하여 작동한 오늘날의 자동차의 선조가 되는 자동차’가 되겠습니다. 


제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단순하게 표현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내연기관이 아닌 다른 동력 기관을 사용한 자동차들이 이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려 120년이나 앞선 1769년에 프랑스의 니콜라스 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가 프랑스군이 대포를 견인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증기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차, 즉 자동차의 시효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전기차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이 배터리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최초의 전기차를 만든 것이 1830년대니까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대략 5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단, 이 최초의 전기차는 한 번 방전되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배터리를 사용했다는 점이 한계였습니다. 


즉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갖고 노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고 아직은 본격적인 교통수단이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충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가 1859년에 발명되자 비로소 전기차가 쓸모 있는 교통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요즘의 순수 전기차와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의 충전식 전기차가 등장한 것은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2년 늦은 1887년 이었습니다. 미국인 화학자 윌리엄 모리슨(William Morrison)이 만든 이 충전식 전기차는 1888년 그가 살던 아이오와 주 데스 모이네스에서 열린 퍼레이드에서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였습니다. 1890년 그는 4마력 모터와 24 배터리 셀을 갖춘 신형 모델로 특허를 출원합니다. 이 모델은 최고 속도가 시속 약 20km, 1회 충전으로 무려 100마일, 즉 160km 이상도 달릴 수 있는 본격적인 모델이었고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 스터지스(Sturgis)와 손잡고 만든 새로운 모델을 전시하여 전기차와 배터리의 실용성을 홍보하였습니다. 모리슨의 전기차는 이후 전기차가 20세기 초의 대세가 되는 데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시속 100km의 벽을 처음으로 허문 자동차도 전기차였습니다. 초기의 자동차가 사람이 걷는 속도인 시속 4km, 칼 벤츠의 파텐트 모터바겐이 시속10km, 그리고 모리슨의 전기차도 사람이 빠르게 달리면 잡을 수 있는 시속 20km 정도였고 당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던 말도 평균 시속 50km, 최고 속도 80km/h 전후였습니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들의 극소수만이 유일하게 시속 100km의 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비포장 도로를 흙먼지 가득 일으키며 시속 100km로 달리는 자동차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시속 100km를 최초로 기록한 자동차는 프랑스의 ‘La Jamais Contente’입니다. 프랑스어라서 발음은 힘들지만 뜻은 아주 명쾌합니다. 그 뜻은 바로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Never satisfied)’. 두 개의 68마력짜리 모터로 바퀴를 직접 구동하는 어뢰를 닮은 유선형 차체가 인상적인 이 전기차는 20세기가 오기 직전인 1899년 4월 29일 파리 근교에서 사상 최초로 시속 100km의 벽을 뛰어넘었습니다. 이것은 한 달 전에 가솔린 엔진을 단 자동차가 세운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기차의 우세를 확고히 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초에도 전기차의 우세는 이어집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전기차의 단순한 구조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기차는 엔진처럼 ‘시동’이라는 개념이 없고 전기를 모터에 전달하면 바퀴가 굴러갑니다. 따라서 엔진은 시동되어 있지만 달리지 않을 때를 위하여 엔진과 바퀴의 연결을 끊어주는 클러치가 필요 없습니다. 또한 초창기의 엔진은 회전수에 따라 점화 시기를 운전자가 직접 조절해야 하는 등 조작하기가 매우 복잡합니다. 걸핏하면 망가지고 사람이 기름범벅이 되기 십상인 엔진의 신뢰성도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시동입니다. 당시의 엔진에는 지금과 같은 전기식 시동 모터가 없고 사람이 크랭크 축에 손잡이를 꽂아서 돌려서 시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지간한 남자에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엔진 자동차는 깔끔하고 조용한 전기차에 비하여 성가시고 불편한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당대의 발명왕이자 재산가였던 토머스 에디슨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전기차는 미래가 밝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기차가 1920년대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가격입니다. 지금의 전기차도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가격 경쟁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헨리 포드가 모델 T로 생산 라인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엔진 자동차는 품질은 향상되고 가격은 훨씬 저렴해졌습니다. 1912년 기준으로 전기차의 가격이 1750 달러였던 것에 비하여 포드 모델 T의 가격은 단 650 달러였습니다. 그리고 전기식 시동 모터가 발명되면서 엔진을 시동하는 것이 손쉬워졌습니다. 1회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짧고 충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기차의 한계가 더욱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휘발유도 구하기 쉬워졌습니다. 마침내 전기차는 실질적으로 퇴장합니다.


20세기의 시작을 희망차게 함께 했던 전기차가 20세기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다시 돌아왔었습니다. 1996년에 만들어진 제너럴 모터스의 EV1이라는 전기차입니다. EV1은 배출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차를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강제하는 캘리포니아 주의 환경보호법에 대비하면서, 동시에 전기차 판매의 사업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리스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던 시범 사업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고 전기차가 실용적일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되어가던 중, 1999년 제너럴 모터스는 EV1 전체를 수거하여 거의 대부분을 폐차함으로써 갑자기 종료되었습니다. 정유 업계의 로비설 등 수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인 ‘Who Killed the Electric Car?’가 제작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잊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기차가 다시 다가옵니다. 이번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듯합니다. 이전에는 신기한 장난감, 상대적으로 편리한 도구, 혹은 미래를 가늠하는 제한적 실험이었다면, 이번에 돌아온 전기차는 ‘달리는 스마트 폰’이라는 말이 설명하듯 IT와 자동차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종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일백년 만에 벌어지는 전기차의 리턴매치. 이번에는 결과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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