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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영화 <히말라야> 개봉을 앞두고 주인공 '엄홍길 대장'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오늘은 엄홍길 대장과의 인터뷰를 소개하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과연, 엄홍길 대장에게 '네팔'은 어떤 나라일까요? '네팔' 일이라면 팔을 걷어 붙이는 그를 만나봤습니다.



사진 제공 : 엄홍길 휴먼재단


대한민국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의 직업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산악인입니다.

아시아 최초로, 인류 역사상 8번째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에 완등했고 2007년 5월 31일 8,400미터의 로체샤르도 완등하면서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 동상으로 발가락도 잃고 동행한 동료와 셰르파(히말라야 산악 등반 안내인)를 잃는 아픔도 겪었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죠. 그리고 지금 역시 그의 도전은 진행 중입니다.

 



사진 제공 : 엄홍길 휴먼재단


2015년 4월 25일 '네팔'에서 전 세계가 경악하는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제일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인 이가 바로 '엄홍길 휴먼재단'의 '엄홍길 이사'였는데요. 과연, 그에게 '네팔'은 어떤 나라일까요?


대장님에게 네팔이란 어떤 나라인가요?


이게 참, '시쳇말' 같은데요. '네팔'은 정말 내게 고향과 같은 곳이에요. 1985년부터 히말라야를 올라갔어요. 22년 만에 꿈을 이뤘지만 제 젊음, 청춘, 시련 모든 열정을 거기에서 불태웠죠. 태어난 곳은 대한민국이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곳은 '네팔'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고향 같은 곳에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있겠어요?  



그럼, 현지인들 중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도 꽤 있겠어요?


당연하지요! 내가 알고 있는 세르파만 해도 꽤 되는걸요.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휴먼스쿨 사업을 하면서 현지 마을 분들과 만들어진 인연도 있고요. 국내에서 알고 있는 지인만큼 '네팔' 현지 지인들도 많아요.

이번에 지진이 나면서 그래도 내가 '네팔'에 보낸 선물이 헛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지진 때문에 문화재도 파괴도고 건물도 많이 무너졌거든요. 그런데, '휴먼스쿨'은 끄덕없었거든요. 되려 학교가 현지인들의 피난처가 됐죠. 그럴 때마다 '네팔에 학교 짓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홍길 휴먼재단'의 휴먼스쿨 사업이란?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16좌 성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네팔' 오지에 학교를 건설하고 있다. 목표는 16좌 성공의 의미를 담아 휴먼스쿨 16개로 정했으며 지난달(2015년 11월)에 10번째 학교가 개교했다.(9번째 학교는 공사 중)


사진 제공 : 엄홍길 휴먼재단


여진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도 '네팔'에 가신 걸로 알아요. 위험하지는 않았나요?


언제 무너질지 모를 건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당연히 위험하죠. 그런데 뭐 내가 한 일 중에 위험하지 않는 일이 있나요? (웃음) 한 번은 네팔의 한 산간마을에 방문했을 때인데요. 나는 지진에 둔감하니까 몰랐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막 뛰어 가길래 저도 얼떨결에 덩달아 같이 뛰어나갔죠.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3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던 산 한 면이 그냥 통째로 떨어졌어요. 보고 있는데 멍해지더라고요. 



위험이 있는 걸 알면서도 네팔을 다시 찾아간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 네팔을 찾은 건 광활한 '자연' 때문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사람' 때문이에요.

그 나라 사람들은 종교적인 영향이 크겠지만 욕심이 없어요. 현재에 만족하면서 살죠.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적어요. 국가가 대재난을 겪었는데 분열이나 원망 없이 모두들 덤덤히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지요. '누굴 탓하고 원망하겠느냐, 자연재해인데…' 오히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유난을 떠는 제가 부끄럽더라고요. 늘 그렇지만 갈 때마다 교훈을 하나씩 얻고 온다고 할까요?

결국 자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바로, '사람'이라는 거죠. 저희 재단 이름이 '휴먼재단'이 된 이유도 거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사진 제공: 엄홍길 휴먼재단 -칸첸중가 정상에서 


'사람'에 대한 그의 '사랑'은 '휴먼원정대'에서도 드러났다. 영화로 제작된 <히말라야>는 바로 '휴먼원정대'의 내용이다.


2004년 7월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동료 산악인 박무택 씨는 하산하던 중 설맹(눈이 쌓인 산에서 반사된 빛이 너무 강해 발생하게 되는 증상) 때문에 한발자국도 더 떼지 못하게 된다. 동료가 숨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기막힌 상황. 

생명을 위협하는 눈보라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동료를 남겨두고 뒤돌아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는 산사람의 심정을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엄홍길 대장'은 후에 그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듣는다.

결국 한국에 돌아온 그는 약 8개월에 걸쳐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특별훈련에 매진했다.

2005년 3월 '에베레스트 휴먼 원정대'가 다시 네팔을 향해 떠났고 두 달 후인 5월 시신을 찾는데 성공.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던 순간의 모습 그대로 얼음 조각이 된 동료의 시신을 발견하고 얼마나 울어야 했는지. 얼음을 다 깨어내고 시신을 수습하긴 했지만 결국 운구는 실패, 돌무덤을 쌓아 안치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늘 험한 길을 자청하는데… 가족들이 걱정하진 않나요?


큰 산을 올라갈 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위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고 이런 일은 없죠.

하지만 도전은 계속할 거예요. 도전을 멈추는 건 제 자신 스스로 용납이 안되는 것 같아요. 몸을 자꾸 움직여 기획하고 실행하고 옮기고 만들고 성취하고 다시 도전하고! 이제 가족들도 그런 것을 받아 들여요. 그러려니 하는 거겠지요? ^^*

그리고 전 오히려 도시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자연이 편안한 안식처이고 행복을 주는 장소여서 지금도 산을 타야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진답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곳이 눈에 보이는데 모른척하면 더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요.



늘, 청춘인 것 같아요. 2016년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엄홍길 휴먼재단'에선 청소년 교육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과 자연 속에서 산을 경험하며 기상과 정신력을 기르도록 돕는 일이지요. 매달 두 번째 토요일 청소년들과 자연을 찾습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선생님이나 부모님처럼 하지 않아요. 그렇게 여러 번 다니다 보면 아이들이 변하는 게 눈에 보여요. 그렇게 아이들과 1년 동안 산을 찾아요. 1년 이 지난 다음 보면 아이들은 부쩍 성장해있어요. 

그 1년 후에 모범적인 여학생 한 명, 남학생 한 명을 뽑아서 네팔에서 하는 '휴먼스쿨' 준공식에 데리고 갑니다. 2016년 목표는 바로 이거예요. 네팔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커야 나라가 크는 법이니까요.


인터뷰 전편 보러 가기

[휴먼스쿨 엄홍길 대장 인터뷰] 실화 영화 <히말라야> 휴먼스쿨, 휴먼원정대를 만나다-[이웃집 히어로] 3편 1부


오지라퍼는 엄홍길 대장을 만나서면 '큰 산'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정적이며 꿈을 좇는 그는 여전히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태극기를 흔든 그 '엄홍길 대장'이었습니다. 2016년에는 여기저기서 엄홍길 대장 같은 이웃집 히어로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2015년 연말 극장가의 핫이슈죠. 영화 <히말라야>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바로 영원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휴먼 원정대의 실화라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엄홍길 대장은 2008년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하고 네팔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교육 및 의료 지원 사업, 국내외 청소년 교육과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등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데요. 우리 주변의 숨어 있는 진짜 히어로를 만나는 [이웃집 히어로]! 세 번째로 만날 사람은 바로, 영화 <히말라야>의 실존 인물이자 엄홍길 휴먼재단을 꾸려가고 있는 엄홍길 대장입니다. 

 

휴머니즘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엄홍길 휴먼재단 

 

 

 바야흐로 11월 중순, 오지라퍼는 '엄홍길 대장님'이 이끌고 있는 '엄홍길 휴먼재단'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뚜뚜뚜뚜~ 뚜뚜뚜뚜~"

"예, 엄홍길 휴먼재단입니다."

"아… 아… 안녕하세요 (두근두근) 삼성화재 오지라퍼입니다. 저… 어쩌고저쩌고~"

엄홍길 대장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싶은 생각에 오지라도 모르게 끝없이 이야기가 길어지는데요. 그리고 들은 짧은 답변.

 

"아, 그런데 지금 엄홍길 이사님이 네팔에 계세요."

"네팔이요?? 설마…."

"학교 준공식 때문에 가셨어요. 돌아오시면 전달해 드릴게요."


그렇게 인연의 끈이 뚝, 끊어질 줄 알았습니다. 누가 봐도 바쁘신 분… 만날 수 있을까?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 어느 날!

 

 

"안녕하세요, 엄홍길 휴먼재단입니다. 엄홍길 이사님이 이번 주 금요일 시간 괜찮으시다는데 오실 수 있으신가요?"

"예?! 어디시라고요?"

"아, 일전에 엄홍길 이사님 인터뷰 건으로 연락주셨죠?"

"암요, 가야죠. 무조건 가야죠. 그때 뵙겠습니다!"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대한민국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을 직접 만나다니요!

물어볼 말이 너무 많습니다. 왜 네팔에 갔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지금부터 산악인이 아닌 인간 엄홍길을 만나 보실까요?

 


 

 

사진 제공 : 엄홍길 휴먼재단


대한민국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의 직업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산악인입니다.

아시아 최초로, 인류 역사상 8번째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에 완등했고 2007년 5월 31일 8,400미터의 로체샤르도 완등하면서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 동상으로 발가락도 잃고 동행한 동료와 셰르파(히말라야 산악 등반 안내인)를 잃는 아픔도 겪었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죠. 그리고 지금 역시 그의 도전은 진행 중입니다.

 

산을 향한 엄홍길 대장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

사진 제공 : 엄홍길 휴먼재단

 

네팔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엄홍길 대장.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바로 '엄홍길 휴먼재단'의 밀린 업무와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었는데요. 영화 <히말라야> 상영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에 정신이 쏙~ 빠질 정도랍니다.

 

인터뷰 요청은 대부분 거절했다는데요. 삼성화재 인터뷰에는 응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여기선 휴먼스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모두 영화 때문에 '휴먼 원정대'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과거, '휴먼 원정대'가 아니라 지금 진행 중인 '휴먼스쿨'이니까!"

 

6년 전부터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또 다른 도전으로 매년 네팔을 찾고 있습니다.

네팔의 질긴 인연은 히말라야 16좌 완등 후에도 쭉, 이어져오고 있는데요. 그는 '네팔' 아이들을 위한 학교 건설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제 편안히 쉴 법도 한데, 그는 왜 사서 고생하는 걸까요?

 

엄홍길 대장은 'DNA가 다른 것 같습니다. 도전 DNA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고생 DNA라든지~하하하하~' 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요. 엄홍길 대장을 보고 있자니 진짜 그런 DNA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하고 또 휴먼스쿨을 지으시는 이유가 있나요?


1985년부터 히말라야에 도전했는데요. 16좌 성공하기까지 22년이 걸렸어요. 운이 따랐다고 생각해요. 히말라야는 정말, 신들의 영역이라고 하잖아요. 신의 보살핌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신의 보살핌을 받았다면 돌려줘야죠. 히말라야 산을 오르다 보면 그 높은 곳에서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풍경을 만날 수 있어요. 일반인이면 고산병이 걸릴 수 있는 높이에서 말이죠. 

광활한 자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얼굴은 참 해맑은데, 그런 아이들의 교육 환경과 마주하면 정말 말이 안 나와요. 폐가나 다름없는 허름한 천막 같은 데서 공부하고 있어요. 

네팔은 가난한 나라지요. 가난한 나라가 일어서는 데 가장 필요한 건 교육이 아닐까요? 그래서 도시의 아이들이 아닌, 오지에서 교육의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지원하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제가 히말라야에서 받은 선물을 갚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목표는 16좌 성공의 의미를 담아 휴먼스쿨 16개로 정했습니다. 지난달(2015년 11월) 10번째 학교가 개교했으니(9번째 학교는 공사 중) 이제 고지가 얼마 안 남은 거죠.

 


도심에 학교 짓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거 뭐… 처음엔 나도 막막했지요. 4,060미터에 학교를 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4,060미터요! 차에 건축 자재를 싣고 올라갈 수 없으니 비행기로 짐을 나르는데요. 2,800미터 공항에 내려 야크로 건축 자재를 싣고, 사람들이 지고 공사 현장까지 가는 거죠. 

건축 자재를 한 번 운반하는 데 2박 3일이 걸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건축비보다 이동비, 물류비가 많이 들어요. 도심 인근에 짓는 것도 아니고 산꼭대기에서 공사하다 보니….

학교를 짓는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조차도 반신반의했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기… 엄홍길이 폼만 잡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1년 만에 학교를 완공하니까 마을 사람들도 놀라고 네팔 교육부에서도 놀라고… 점점 저희들을 믿더라고요. 그렇게 10번째 학교를 완공했습니다.

학교 짓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 DNA가 고생을 부르는데….

 

사진 제공 : 엄홍길 휴먼재단

 

'1호 휴먼스쿨'은 동료였던 셰르파의 고향, '팡보체'에 지었습니다. 첫 학교인 만큼 건설할 때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엄홍길 대장의 애정이 듬뿍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학생 수는 53명입니다. 그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지금도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학교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학교 지을 지역은 어떻게 선정하나요?


먼저 네팔 교육부를 통해 추천을 받고, 신청도 받습니다. 

그다음 '엄홍길 휴먼재단-네팔지부'에서 답사를 가서 주변 환경, 교육에 대한 열정, 부모들의 열의 등을 보고 선정하게 돠죠. 그런데 1호 학교는 좀 달랐어요. 

히말라야 16좌 등정하는 22년 동안 가장 힘든 게 뭔 줄 아세요? 

히말라야를 오고 가면서 발목이 돌아간 상태로 사흘 동안 기어서 내려온 적도 있고 동상으로 엄지발가락을 잘라낸 적도 있어요. 이런 일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왜냐면 지금 내가 살아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료를 잃은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더라고요. 

등정하면서 산악 후배뿐만이 아니라, 등정을 도와주는 현지인 4명의 셰르파를 잃었습니다. 학교를 짓는 건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휴먼스쿨' 1호는 안타깝게 산이 목숨을 거둬 간 셰르파의 고향에 지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져 이 세상을 떠난 그 친구의 시신을 거두지 못해 전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어요. 그걸 '휴먼스쿨'로 갚은 거죠. '휴먼스쿨' 1호가 지어진 곳이자 그 친구의 고향, 그곳이 바로 '팡보체'입니다.

 

동료들에 대한 그의 유별난 애정은 산악계에서도 유명합니다. '휴먼스쿨' 역시 그 연장선에서 시작된 사업이지요. 그리고 그 전에는 '휴먼원정대'가 있었습니다. 엄홍길 대장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요. 이 '휴먼원정대'의 실화가 영화 <히말라야>로 곧 상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엄홍길 휴먼원정대

 

 

학교를 지을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나요?


아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 첫 번째 목표는 그것입니다. 

네팔의 학교를 보면 창문에 창살이 빽빽하게 박혀 있어요. 혹시나 유리창 깨질까 싶어 그렇게 지은 것이죠. 유리창 값이 아까워서요. 하지만 학교는 아이들이 지내는 곳이잖아요. 게다가 얼마나 광활한 자연이 있는 곳입니까! 넓은 유리창을 통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창문을 크게 만들었어요.

창이 크니까 채광이 좋고 당연히 학교 안이 환하지요. 또 이건 자랑이지만 네팔 학교에서 섀시 창은 '휴먼스쿨'이 처음이었답니다. 하하하!
학교를 지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고산 지역에 있는 학교들은 건물에 모두 단열재를 사용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하게 지었습니다. 네팔에 지진이 났을 때도 '휴먼스쿨'은 모두 안전해서 학교를 피난대피소로 사용했습니다.

또 화장실에 신경 썼는데요. 네팔 여자아이들은 고학년이 되면 학교에 가길 꺼려요.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을 남자아이와 같이 쓰는 데 있어요. 여자아이들이 부끄러워하다 보니 학교 가길 꺼리게 되는데요. 그 까닭에 '휴먼스쿨'은 화장실을 꼭 남녀 따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우리나라에선 별거 아닌데 네팔 학교에선 혁신이었다고 할까요?

 


 

 

 

엄홍길 대장의 사무실 벽면엔 '휴먼스쿨' 사진이 가득합니다. 넓은 운동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행복해보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겠어요.


아무렴 말이라고요. 오지 산골 아이들에게 2층, 3층짜리 학교가 생겼다고 생각해보세요. 

꿈인지 생시인지…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자기들만의 공간이잖아요. 또 그런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에 고생을 자처하는 거죠.

'휴먼스쿨'을 지을 때 건물만 세우는 게 아니에요. 학교 안에 들어가는 책상, 걸상, 책, 교복, 칠판…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지원하죠. 그래서 학교 건설 지역으로 뽑히면 아이들이고 부모님들이고 공사장만 바라보고 있어요. 또,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공사에 동참을 시킵니다. 청소라든지 교구 정리라든지 작은 것이라도 같이 해서 함께 학교를 만든다는 의미를 선물하고 싶거든요. 그래야 부모님들도 학교에 애착을 가질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은 건 당연한 거예요. 부모님들이 아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교 활동에 동참하길 권하고 있어요. 

 

 

'휴먼스쿨'을 짓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올해 네팔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죠. 그것 때문에 지금 사실 네팔은 엉망이에요. 도시에 재건 복구가 들어가야 하는데요. 건축 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인도에서 들어오는 수입 자재의 가격이 폭등하고 연료와 가스, 전기 등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휴먼스쿨'의 건설도 마냥 쉽지가 않아서 걱정입니다.   

 

 

 

네팔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봉사활동을 펼쳤던 엄홍길 대장.

머리엔 어느덧 서릿발이 그득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습니다. 


그의 말대로 엄홍길 대장은 DNA부터 남다른가 봅니다.

청춘을 바친 '네팔'을 여전히 찾는 엄홍길 대장, 그의 각별한 네팔 사랑은 인터뷰 2부에서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제가 오늘 멋진 책 하나를 소개할까해요~ 바로 포토에세이집 '아름다운 동행'인데요. 삼성화재 60주년 기념으로 발간된 이 책은요... 삼성화재 고객, 임직원, RC, 유명인 등 18명 저명인사들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화제만발한 포토에세이죠. 지금부터 자세히~ 들여다 볼까요?


 

# PART 1. 어려울 때 든든한 힘이 되는 '가족' 처럼

어려울 때 큰 울타리가 되어 주는 힘, 바로 가족이죠. 
삼성화재의 가장 큰 가족은 바로 고객분들인데요. 60년동안 한결같이 곁에 있어 준 삼성화재 가족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요. 그 중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인기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배우 '윤유선'의 이야기도 있는데요. 진지한 코믹 연기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녀! 



윤유선씨가 아역배우 출신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어요? 
1974년 6살에 데뷔해 올해로 데뷔 38년차 연기자 인데다가 이순재, 최불암, 김창숙 등 연로배우들이 그녀의 데뷔 동기라니 놀랍죠! ㅋㅋㅋ 과연 그녀가 이야기하는 여배우의 생활은 어떤걸까요? 그리고 배우로 롱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외, '동행'에 소개된 삼성화재 가족분들을 공개하자면요, 20년 세월을 삼성화재와 함께 한
박용창, 정경애 부부,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의 선장인 신치용 감독님. 그리고 27세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지만, 현재 삼성화재 RC로 꿈을 펼치고 있는 김영주RC를 만날 수 있답니다~
아! 특별한 분이 또 있습니다.



혹시.. 누군지 아세요?  생소한 얼굴이죠..
흐흐흐~ 연매출 50억원을 올리고 있는 주부님이십니다!
중소기업 대표냐고요??? 아니요!  바로 삼성화재 우미라RC인데요!
연매출 50억원! 전설의 그녀! '손보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죠. 7년째 판매왕은 물론 15년 연속 고객으로부터의 민원이 한 건도 없었다니.. 보험의 여왕이라 불릴만하죠! 과연 그녀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동행'에서 확인 해 보세요.


# PART 2. 소외된 이웃을 향한 따뜻한 '동행'으로
 

두번째는요, 삼성화재의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동행한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요.
그 첫번째 '나눔' 동행인은요, 반가운 얼굴, 배우 정선경씨 입니다.



그녀가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대사가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몇 번 하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하지만 1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삼성화재, 교육과학기술부 그리고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가 함께 제작하는 장애 이해 교육 드라마에 2009년부터 1년에 한 편식 지속적으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새침하고 도회적인 이미지와 달리 따뜻한 마음으로 재능기부에 동행하고 있는 정선경씨.
그동안 뜸했던 정선경씨의 소식까지 '아름다운 동행에서' 만날 수 있다니, 반가운 이야기죠?



그 외 시각장애인 영어선생님, 김경민씨와 안내견 미담이의 특별한 
인연,

발달장애를 가진 김하늘군이 클라리넷을 들고 무대에 선 사연,
어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박희재, 희수 자매의 감동스토리까지!
삼성화재의 사회공헌과 관련된 이들의 동행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음 따뜻해질 준비 되셨죠?

# PART 3.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마지막은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멘토들 이야깁니다.



아나운서라는 명함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손미나씨! 그녀가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바로 소설가라는 새로운 옷을 입은 건데요.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그리고 소설가로 꾸준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런가하면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과 도전과 모험의 아이콘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 여기에 쇼트트랙에서 스피드로 전향한 빙상영웅 이승훈까지! 이름만 들어도 '아!' 하는 많은 멘토들이 좌절의 순간에도 꿈을 잃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꿈을 향해 내딛는 '화제만발' 가족분들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연히!! 그녀도 있습니다~ 
 



사극에서 예능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팔색조 같은 배우, 송지효씨!
배우로써의 첫 시작, 그리고 찾아 온 슬럼프! 삼성화재와의 특별한 인연까지~
달달한 송지효씨의 이야기가 가득한데요.그 중 그녀가 꼭 하고 싶은 희망의 한마디가 있다죠~  
'아름다운 동행'에서 확인하세요. 흐흐흐

# 삼성화재 창립 60주년사 e-BOOK
 

삼성화재 창립기념으로 포토에세이 '아름다운 동행'뿐 아니라
삼성화재 창립 60주년사 e-BOOK 을 발간했답니다.

 



삼성화재 60년사 e-Book 2002년 발간된 <삼성화재 50년사(1952~2002)>에 최근 10년의 역사를 추가하여 <삼성화재 60년사(1952~2012)>로 구성한 후 e-Book으로 수록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e-Book 형태로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동행''삼성화재 60년사 e-BOOK' 은 '창립기념책은 딱딱하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늘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삼성화재답게 멋진 모습으로 탄생했답니다~^^

서울 수도권 대형 서점에서 구입 할 수 있고요. 가격은 1만 3000원! 판매수익금 전액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부된다고 하니 '아름다운 동행'을 구입하는 것은 곧 좋은 일에 동참한다는 의미도 되겠죠. ^^
그럼 삼성화재, 또 다른 모습
으로 서점에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