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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1편

‘착한 게 아니라 약한 거야’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정훈 씨가 상담실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어 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아무 색깔 없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그는 어디서든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무언가를 토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고 다수의 의견을 따랐다. 경청이나 배려라기보다는 자기 생각이 뚜렷하지 않아서였다.


주변의 일방적인 부탁 역시 뿌리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맡고 싶어하지 않는 수업이나 불리한 시간표는 그의 몫이 되어갔다.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도 늘 끌려 다녔다. 마음속으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해지자고 늘 마음먹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네.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하며 물러서고 만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요새 사람 같지 않고 너무 점잖고 착한 분이다’는 칭찬을 한다.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어리숙하고 흐리멍덩한 사람이라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럴 바에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착하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미숙한 착함’과 ‘성숙한 착함’

 


여러분은 어른이 되어 착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나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아이들에게 착하다는 말은 칭찬일 수 있지만 어른들은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개성이 난무하고 자기 PR이 중요한 이 시대에 ‘착하다’는 말은 마치 어리숙하고 개성이나 매력이 없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처럼 되어버린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착하다는 말은 흔히 ‘남을 잘 돕는’,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등 긍정적 성격 특성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서 ‘자기주장을 못하는’, ‘자기 것을 못 챙기고 남 좋은 일만 하는’, ‘재미도 없고 자기 색깔도 없는’ 등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요. 


우리는 ‘미숙한 착함’과 ‘성숙한 착함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숙한 착함’이란 간단히 말해 ‘순응’입니다. 이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순순히 따르는 어린이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착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이 어질며 선하다.’는 의미입니다. 독립적인 자아를 갖추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공감할 줄 알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기준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행동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자아의 바운더리(boundary)’

 


성인이 되어서도 미숙한 착함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아의 미발달’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기호나 취향이 뚜렷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취향에 자신의 생각이 흡수되기 쉽습니다. 한 예로, 정훈 씨는 자신이 끌리는 노래가 있더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별로라고 하면 자신이 끌린 노래보다는 친구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더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맛있게 먹은 식당이라도 동료가 별로라고 하면 ‘그런가?’하고 먼저 자신의 기호를 의심할 것입니다. 이처럼 미숙한 착함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자아의 경계가 모호하고 지나치게 열려 있습니다.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자아의 경계를 심리학에서는 ‘바운더리(boundary)’라고 합니다. 바운더리는 몸으로 이야기하면 피부와 같은데요. 피부에는 약 5백만 개 이상의 감각신경이 있어 다양한 감촉을 느끼고, 수분과 전해질의 외부 유출을 방지하고, 땀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며, 외부 병원체로부터의 일차적인 면역기능을 담당합니다. 피부가 없거나 약하다고 상상해보세요! 피부가 있기에 우리는 몸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자아의 바운더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운더리가 약하면 자아는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고 위험해집니다. 우리는 바운더리가 있기에 타인과 구분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의 욕구, 사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건강한 바운더리가 있을 때, 끌려 다니거나 휩쓸리지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바람직한 자아형성을 도와

 


그렇다면 자아의 바운더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먼저 인간의 심리적 탄생 즉, 자아가 언제 만들어지는지를 봅시다. 영유아기는 애착대상과 공생상태이기에 자아가 모호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와 ‘너’를 구분하게 되고 원시적인 자아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심리적 공생관계에서 자아가 갖춰지는 것을 ‘자아분화(ego differentiation)’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애착대상과 심리적 연결을 유지하는 가운데 독립적 자아를 발달시키는 것입니다. 즉, 잘 분화된 자아는 ‘나(I-ness)’와 ‘우리(We-ness)’, 개별적 자아와 관계적 자아가 함께 있습니다. 통상 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적절한 공감이 이루어지면 만 3세경에 아이의 자아는 일차적 분화를 거칩니다. 이는 엄마라는 애착대상이 내면화되어 잠시 엄마가 보이지 않더라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고 혼자서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안정적인 애착이 중요한 이유는 안정적인 자아분화를 돕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착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되면 자아발달의 왜곡이 일어납니다. 이를 자아의 ‘조기 분화(early differentiated)’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애착대상과의 연결을 유지한 안정적인 분화가 아니라 애착대상과의 단절된 ‘분리’를 의미합니다. 상호적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관계적 자아가 깨져버린 채 자기 세계에 갇혀버린 것이죠. 반대로 3세가 넘었는데도 불안이나 심리적 밀착 때문에 제때 자아가 분화되지 못한 채  ‘미분화(undifferentiated)’ 상태로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자아의 개별성이 없이 애착대상과 얽혀있는 상태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정훈 씨의 경우는 미분화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 두 유형에 대한 전형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코(echo)와 나르키소스(narcissus)’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나르키소스는 자아의 조기분화로 인해 자기 안에 갇혀있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만 되받아서 이야기하는 에코는 자아의 미분화로 대상 안에 갇혀 있는 양극단의 모습입니다. 이 둘에게는 ‘건강한 경계’가 없습니다. 나르키소스의 자아경계는 폐쇄적이고, 에코의 자아경계는 너무 희미합니다. 



지금 나의 바운더리는 건강할까? 

 


잘 분화된 자아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갖춥니다. 폐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열려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과 친밀함을 주고받을 만큼 그 여닫음이 잘 이루어집니다. 해로운 것은 안 받아들이고 좋은 것은 받아들입니다. 마치 정원이 살짝 보이고 넝쿨이 자라고 있는 주택의 잘 세워진 울타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위압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들어갈 정도로 허술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조기 분화된 자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밖에 모르는 폐쇄적인 바운더리로 나타납니다. 너무 높고 철조망이 드리워진 울타리와 같습니다. 관계를 차단한 채 그저 방어적인 관계만 하거나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거나 자기 욕구만을 채우려는 아이 같은 관계를 하려고 하지요. 그에 비해 미분화된 자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잘 못 느끼고 거절이나 자기주장을 못하는 약한 바운더리의 모습을 보입니다. 담장이 너무 낮거나 큰 구멍이 나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허술한 울타리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바운더리를 존중하지 않고 관계를 지배하려고 드는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쉽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행복보다는 상대의 욕구와 행복을 우선적으로 채워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아가 제대로 분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약한 바운더리를 튼튼히 하는 3단계 연습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운더리가 희미하고 약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바운더리를 세우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자아인식에 바탕을 두고 자기에게 맞는 바운더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지,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잘 되지도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3단계로 나누어 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1단계는 ‘일단 멈춤!’입니다. 바운더리가 약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순응적인 자동반응을 보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예!’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와 같은 순응적이거나 모호한 표현을 합니다. 일단 이 자동적인 반응을 멈추고 조금 늦게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잠깐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자기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갖고 난 뒤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2단계는 ‘감정과 욕구의 인식’입니다. 무조건 거절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는 것이 바운더리를 세우는 데 중요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려고 해도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지?’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지?’라고 반복적으로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3단계는 ‘자기표현’입니다. 가능한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기반을 두고 표현을 늘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온갖 두려움이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두려움은 과장된 것입니다. 당신을 점잖게 드러낸다고 해서 관계가 한없이 불편해지거나 찍히거나 단절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어 보세요! 내가 원하는 것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자신을 돌보면서도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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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간절하게 소망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기대와 바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반면, 특정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잘 안될 거라는 인식이 결국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소개할 심리법칙은 긍정적인 기대가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의 ‘피그말리온 효과’,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인 낙인 찍기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미의 ‘스티그마 효과’ 입니다. 



▶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누군가의 긍정적인 관심, 기대나 바람이 실제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합니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



피그말리온이란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이자 조각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여성을 혐오하여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피그말리온은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한 후 갈라테이아(Galate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조각상에 불과했지만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아내처럼 극진히 대하면서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갈라테이아 같은 아내를 맞이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결국, 이 사랑에 감동하여 아프로디테 여신이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이 신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이후 피그말리온 효과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 비슷한 말로 자기충족적 예언



피그말리온 효과와 비슷한 말로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사회학자 윌리엄 토마스(William Thomas)가 언급한 것으로 ‘누군가가 어떤 상황을 진실이라고 정의하면 그 상황은 결과적으로 진실이 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일이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면 실제로 잘 풀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피그말리온 효과와 비슷한데요. 하지만 자기 충족적 예언은 일이 안 풀릴 것으로 기대하면 실제로 잘 풀리지 않는다는 부정적 결과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좀 더 넓은 의미입니다. 


 

▷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한 심리학 실험 – 로젠탈 효과



1968년 하버드 대학교의 로젠탈(Robert Rosenthal) 교수는 미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피그말리온 효과에 관한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지능 검사를 실시합니다. 그 다음 지능 점수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20퍼센트의 학생을 뽑아 그들에게 ‘당신은 머리가 좋은 학생입니다’라고 말하고, 이 내용을 학생을 지도하는 담당 교사에게도 알려줍니다. 이 통보를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성적을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이전보다 성적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연구자의 이름을 따서 ‘로젠탈 효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로젠탈 효과는 명단에 오른 학생들에게 담당 교사들이 기대와 격려를 보내고, 이것이 실제 지능지수와 상관없이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 피그말리온 효과의 반대말,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



스티그마 효과는 한 번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면 실제로도 점점 더 나쁜 행동을 보이거나 부정적인 인식이 지속되는 경우를 뜻하며 ‘낙인 효과’라고도 부릅니다. ‘스티그마(Stigma)’는 빨갛게 달군 인두를 가축의 몸에 찍어 소유권을 표시하는 낙인을 말합니다. 


이 말은 1960년대 미국의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Howard Becker)가 언급한 것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면 그에게 범죄자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범죄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편견은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의지를 꺾게 되는 낙인효과로 작용하여 결국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 자녀 교육을 할 때 꼭 기억해 주세요!

 


1. 피그말리온 효과에서처럼 자녀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과 기대를 품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자녀가 잘한 행동을 구체적으로 칭찬하고 자녀에 대한 신뢰를 충분히 표현해 주세요. 부모님의 긍정적인 기대와 관심은 자녀의 성장과 성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자녀의 능력에 대한 얘기보다 자녀가 노력한 부분을 언급할 때 더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면, “이번에 감기가 걸려서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네가 스스로 세운 계획을 달성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엄마는 정말 감동했단다. 애 많이 썼어 00야!!!” 라고 하는 게 좋습니다. 



2. 자녀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를 얘기해 줌으로써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하되, 자녀의 인격이나 노력, 능력을 폄훼하거나 과소평가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특히 ‘실망했다’는 표현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런 말들은 자녀의 잠재력을 꺾고, 자녀와 부모 사이의 거리를 벌리는  지름길입니다. 



3. 자녀가 한번 잘못한 일을 두고 여러 번 언급하면서 ‘너는 늘 그래’ 혹은 ‘한번이라도 좀 제대로 해라’ 하는 말로 낙인 찍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자녀가 잘못한 것은 특정한 그 행동일 뿐, 모든 부분에서 ‘문제아’인 것이 아니랍니다. 


앞에서 소개한 ‘자기 충족적 예언’ 에서처럼, 아이들은 어른들의 부정적인 기대나 비관적인 말에 “난 안돼.. 난 틀렸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좌절하게 될 수도 있지요. 혹시라도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잘되라고 하는 말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아이들을 향한 ‘쓴소리’는 약이 되기보다는 상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청소년들을 상담하다 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신에게 했던 질책을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그 말이 자신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 울면서 얘기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점을 부모님들께서 꼭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긍정적인 기대나 믿음이 있을 때, 그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결과가 좋아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 그리고 이에 반해서 부정적인 편견과 낙인 찍기가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스티그마 효과’가 자녀들의 성장과 발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참고

이 칼럼의 내용은 ‘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 (이동귀 저, 이십일세기북스) 책 내용을 발췌, 수정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해리스택 설리번(Harry Stack Sullivan, 1892-1949)은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간 관계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집단주의와 관계 중심의 문화가 강한 한국인의 삶에서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또는 타인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신적으로는 많은 스트레스를 가중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 소개할 심리법칙은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과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입니다.



▶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으로 분노,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누른 채 늘 웃는 얼굴로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납니다. ‘스마일 페이스 증후군(Smile face syndrome)’이라고도 불리며, 일본 쇼인여대(樟蔭女大)의 나스메 마코토(夏目 誠)교수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마코토 교수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경우, 직장에 계속 다니기 위해서는 항상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며 실제 속마음과는 달리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고 스마일 마스크라는 가짜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가면성 우울증(Masked depression)’과 유사합니다. 다만, 가면성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반드시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고 주로 우울한 증상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감정노동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각종 전화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소위 ‘진상’ 고객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심한 경우 욕설 및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객에게 말대꾸하면 안 되고 서비스를 원활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방침과 사전교육 때문에 긍정적인 어조를 유지하며 고통에 시달리기가 쉽습니다. 때로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경우에도 고객 제일주의를 표방한 회사 측 지침 때문에 고객에게 사과하는 일이 반복되게 되면 웃는 얼굴 뒤에서 울고 있는 경우가 생기고 이는 자신의 감정과 유리되면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대중의 사랑과 인기가 중요한 연예인들도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의 위험성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늘 ‘팬들께 감사한다’는 말을 하면서 밝게 웃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 및 가족을 향한 도가 지나친 악성댓글이나 욕설을 접할 때면 속으로 울고 있는 경우가 많고 연예인 생활에 환멸을 느끼거나 심한 경우에는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 대처방안



1. 때때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희로애락)을 느끼는 것 자체를 억제하려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에 좀 더 집중해야 합니다. 


2. 부정적인 감정(예: 화가 날 때)을 표현할 때는 “나 전달법(I-message)”, 즉 자신을 주어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얘기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한 것을 기대했는데 상황이 내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서 혼란스러워.”라고 말하는 것이죠. 반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상대방을 주어로 대화를 시작하는 “너 전달법(You-message)” (예: 넌 맨날 그 모양이야. 한 번이라도 노력해 본 적이 있기는 하니?)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담기 쉽기 때문에 갈등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셔야겠습니다. 


3. 자신이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에 해당한다고 생각되신다면 꾸준히 가면을 벗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의 감정에 대해 무감각해지거나 자기를 환멸하며 우울해지는 증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타인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거절하는 말을 할 때는 “아쉽지만… 안타깝지만…” 이라는 말을 붙이고 그 다음 앞에서 언급한 ‘나 전달법’을 활용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4. 아울러, 국가와 기업은 감정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들이 경험하는 고통을 미리 예방하는 교육을 하고 복지시설을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한, 감정 노동자들을 대하는 사회 전체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는 건 물론입니다. 



▶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늘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기 위해 자신의 욕구나 바람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애쓰는 상태를 말합니다. 흔히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도 부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착한 아이 증후군’의 이면에 어린 시절 주 양육자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공포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와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한 아이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이른바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사랑 받지 못할 거라는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고 늘 부모의 눈치를 보는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커서도 다른 사람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또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나 바람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계속하고, 그 결과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착한 아이 증후군에 해당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입니다.


 


▷ 대처방안

 


1. 자녀가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 증후군을 보인다면 부모는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동시에, 자녀에게 부모가 바라는 특정한 가치(예: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최선의 노력, 과도한 책임감, 정리정돈, 완벽주의 등)를 주입하고 있지 않은지 자주 체크해야 합니다.  


2. 자녀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는 감정을 실어서 야단을 치기보다는 어떤 점이 적절하지 못한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하되, 자녀가 노력하고 있는 점도 함께 언급하며 격려하는 태도가 바람직합니다. 즉, ‘칭찬(praise)’보다 ‘격려(encouragement)’를 해 주는 게 좋다는 의미입니다. 칭찬은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녀가 행동했을 때 자녀에게 주어지는 것인 반면, 격려는 자녀가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북돋워 주는 것입니다. 


3. 부모들이 자식을 통제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전략으로 ‘죄책감 불러일으키기’(예: 내가 이러려고 너를 낳아서 이 고생하는구나. 내 팔자야. 자식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와 ‘주었던 사랑을 철회하기’(예: 평상시는 얘기를 잘하다가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입을 닫고 차갑게 대하기)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많이 사용하면 자식은 점점 더 불안하고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되며 이는 위축된 ‘착한 아이’로 자라게 될 위험성을 높입니다. 만약 이런 전략을 사용하고 계셨다면 즉각 중단하셔야겠습니다.

   



* 참고

해당 칼럼의 내용은 ‘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 (이동귀 저, 이십일세기북스) 책 내용을 발췌,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첫사랑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저 오지라퍼는 가끔 그때의 '흑역사'를 떠올리며 이불을 뻥뻥 차곤 하는데요^^; 그만큼 솔직하고 뜨겁게 사랑했던 흔적이구나~ 라는 생각에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20대 초반 여성 감독들이 이야기하는 첫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보시죠!






  며칠 전, 강릉 신영극장에서 열린 <애송이들의 브래지어>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20대 초반의 세 여자 감독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다큐 영화입니다. 사랑을 말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라 ‘애송이’란 제목을 붙였다고 하네요. ‘브래지어’는 여성에게 제약이자 특권이기도 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같은 여자로서, 20대의 질척한 연애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의 상처와 기쁨들을 빼거나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 용기에 감탄하게 되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각자의 20대를 떠올리는 분들의 소감이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지난 시절이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아리기도 하더군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서 이토록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영화란 매체의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다’며 헤어진 남자친구를 그리워하고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별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합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하죠. 관계의 단절이라는 게 매듭을 풀 듯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니, 걷잡을 수 없는 추측이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안 하려고 애쓸수록 생각은 더욱 커지죠. 영화 속에서도 기억을 기록하고 불태우는 의식을 치르고 여행을 떠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등.. 새로 거듭나려 애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가 다시 돌아오는 것만이 정답인 것 같았다’는 내레이션은 그저 슬픕니다. 상담에서도 수단에 집착하는 것을 지적하며 내 소중한 욕구를 위한 다른 대안들을 찾아보도록, 보다 넓은 시야로 주위를 살피도록 권유하기도 합니다. 결국 내가 사랑 받고 사랑했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지, 상대가 정답은 아니라는 걸 인식시키죠. 그러나 사랑만큼은 꼭 그와 함께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놓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행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전 남자친구에게 평온한 상태로 연락할 수 있게 됩니다. 지나온 사랑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기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 그녀는, 더 예뻐졌습니다.





  두 번째는 ‘남자 없이 살 수 있다’고 선언하는 감독의 연애이야기입니다. 오해와 실망으로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떨치기 어려웠던 그녀의 고백이 담담히 전해집니다. 상대의 반응이 무서워 확인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 그럼에도 조금씩 용기를 내보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죠. 어렵게 연애를 시작한 남자친구에게 습관처럼 ‘헤어지자’고 말하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제안을 수용하는 남자친구의 태도를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나의 두려움 때문에 상대의 마음은 무시했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고백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후회하는 대부분의 상황은 두려움이 삼켜버린 기회들입니다.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두려움 따위 맞서 싸울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요? 다행히 그 실체를 바로 알아차린다면, 또 다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에서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야기. 원치 않는 첫경험을 밝히기가 부끄러워 내가 원하는 것을 바꾸고 포장하며 무감각하게 관계를 맺는 과정들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속상하고 억울한 심정이 전해진 것이겠죠. 상담에서도 ‘원하는 것’을 묻고 그것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현실에서 늘 원하는 것을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또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는 어쩌면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우리는 때로 실수도 하고, 끌려 다니기도 하며, 의존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나를 아는 것입니다. 실수한 나를, 흔들린 나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는 나를 말입니다. 그 모습이 맘에 들지 않고 그로 인해 나의 다른 욕구들이 희생되고 있다면 새로운 선택을 해보면 됩니다. 지난 일은 그저 지난 일일 뿐입니다. 그녀의 결말은 아픔의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희망적입니다. 그림을 그리며 나를 알아가고, 나를 사랑하는 기회들을 만드는 모습이 보여 기뻤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다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짧은 자극으로 담아낼 수 없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레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헤어지며 내 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20대, 그 시절이 문득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싸움을 동료와 함께 나누며 작품으로 만들어낸 세 명의 감독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운 좋게 해결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삶의 일부가 됩니다. 이왕 내 삶으로 들어왔으니, 피하려 애쓰기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활용해보면 어떨까요? 사랑의 상처가 한 편의 영화가 되기도 하니까요.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23편.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다면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항상 보던 애인이나 배우자가 이유 없이 싫어졌던 감정, 저 오지라퍼만 느껴본 적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들려드릴 이야기는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비극으로 끝이 난 어떤 부부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했었어야 할까요?






 2009년 개봉작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뛰어난 연기 덕인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끊임없이 삶에 의문을 품으며 살던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차가운 현실로 다가옵니다. 인간의 어떤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우리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요?


 파티장에서 처음 만난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첫눈에 반합니다. 꿈에 대해 묻고 답하는 대화에서, 우리는 어설프게나마 여자의 환상과 남자의 허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부부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정착한 네 식구는 평온해 보입니다. 남자는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매일 아침 일찍 말끔히 차려 입고 기차를 타고, 연기를 공부하던 여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서 절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때로는 극단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하죠. 물론, 형편없는 연기였으나 그녀는, 부부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서 빛나던 그들은, 둘만 남겨졌을 땐 그저 평범한 부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간격만큼 그들은 공허합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C.G.Jung은 인격을 크게 두 가지, ‘페르조나’(외적 인격)와 ‘그림자’(내적 인격)로 구분합니다. 가면이란 뜻의 페르조나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체면’ 혹은 ‘역할’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일반적인 기대에 맞추는 태도로, 외부 세계에 적응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아가 페르조나와 동일시 되면, 즉 남들이 보는 모습에 집착하여 이면의 욕구를 무시한다면 공허해집니다.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 분)이 사람들을 벗어난 공간에서 과격하게 싸우는 것은 민낯의 서로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남편은 아내의 형편없는 연기가 내 탓은 아니라며 비참한 그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아내는 남자답지 못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며 자존심을 긁죠. 에이프릴은 교양 있고 아름다운 아내이기 이전에 나약한 한 인간입니다. 프랭크에게도 자상하고 든든한 가장은 하나의 역할일 뿐입니다. 역할은 흔들릴 수 있지만 내면의 자아는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화려한 모습 이면의 존재에 말을 걸었어야 합니다. 괜찮다고 보듬어주고 초라한 만큼 서로가 필요하다며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가족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용감한 커플이며, 나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릅니다. 남편은 어린 시절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꿈을 잃은 어른이 세상을 다 아는 양 거만하게 말하는 것이 싫었던 그 때처럼, 자신을 비난합니다. 아내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연기를 공부하던 그녀도,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남편도 분명 각자의 꿈을 갖고 있었으며, 어느 순간 선택을 미루고 상황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그들의 선택은 너무 성급하고 충동적입니다. 프랭크는 바닥에 떨어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순진한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에이프릴은 파리로 이민 갈 것을 추진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밀어붙였던 것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너무 싫어하거나 왜 그런지 모르게 너무 미운 사람이 생겼다면, 내 안의 ‘그림자’를 바라볼 기회입니다. 그림자란 나의 다른 면, 무의식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독립적인 여성이 실은 매우 의존적인 모습을 갖고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수용적인 남성이 집에선 괴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를 자각해야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두 부부가 왜 그토록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나고 싶은지 멈춰 바라보았어야 합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과거를 적극적으로 탐색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인지, 반대로 업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인지. 에이프릴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찬찬히 이야기해보았어야 합니다. 애초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지, 조금 더 자유롭고 싶은 것인지, 좋은 엄마의 역할이 버거웠던 것인지. 그녀가 원하는 삶을 남편과 분리해 생각했다면 현실을 회피하려는 간절함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비참한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페르조나)을 더욱더 키워 덮으려던 프랭크의 노력도, 꿈이라 믿는 허상에 목숨을 걸고 그림자를 벗어나려 했던 에이프릴도 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의 역할을 인정하는 가운데 내면의 욕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따뜻한 영화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내가 경험하는 현실을 털어놓아 보세요. 가면을 벗고 하나씩 천천히 말합니다. 이 때 두 가지를 기억하면 힘이 됩니다. 모든 인간의 욕구는 보편적이니 상대가 공감해줄 것을 믿는 것. 그리고 동시에 각자가 경험하는 현실은 다를 수 있으니, 이상해 보이는 나를 스스로 수용하면서 당당히 말해도 좋다는 것을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을 꼭 안아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