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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09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27편. <타인의 삶>, 연결성을 확인하며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혼자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때는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보다 유난히 외롭고 힘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같은 욕구를 공유하며 공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상담심리사로 일하는 것은 때론 참 고달픈 일입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한다는 것이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유능감을 느끼기도 쉽지 않고, 괜한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이라도 내담자의 변화를 목격한 상담자들은, 결코 이 직업을 내려놓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독일 통일 전, 동독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타인의 삶>은 적대적인 관계에서조차 아름답게 확인되는 연결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84년 당시, ‘국가안보국’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철저히 감시했던 비밀경찰의 존재는 상상 그 이상이었죠. 고문관 비즐러(울리히 뮤흐 분)는 강단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이용하는 잔인한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그런 그가 중요한 인물의 감시자 역할을 맡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시 대상인 극작가 드라이만과 아내이자 여배우인 크리스타의 삶을 엿보며 비즐러는 조금씩 변화하죠. 무표정한 얼굴에 표정이 생기고 당의 지시를 기계처럼 따르지 않습니다. 그는 타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감시의 실패로 그는 좌천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 앞에서도 비즐러의 가난한 삶은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변화는, 새로운 시도는 과연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일까요?


 


  상담실에서 호소하는 문제는 결국 ‘욕구의 좌절’에 관한 것입니다.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등의 이야기는 성취와 인정, 사랑이 좌절된 현재 상태를 대변합니다. 이때 좌절된 욕구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감정’을 살피죠. 우리가 같은 상황에서도 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그 순간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정은 건물의 화재경보기와 같아서 내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가 됩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잘 느끼는 것이 심리치료의 시작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자각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건강의 신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것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성격으로 굳어지죠. 영화 <타인의 삶>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했던 감시를, 개인이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심리상담은 이러한 통제와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 나 그 자체로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영화 속에서 타인의 삶을 듣고 보며 감정을 되찾게 된 비즐러는, 나아가 위기에 처한 크리스타의 치유자 역할도 하게 됩니다. 당 서기관의 강요로 남편을 속이고 자괴감에 빠진 크리스타 앞에 나타나 ‘무대에 선 당신이 진짜이기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비즐러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그로 인해 용기를 내는 크리스타를 지켜보며 비즐러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자유를 지켜냅니다. 그는 드디어 비즐러 자신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내 느낌을 자각하고 욕구를 찾았다고 해서 언제나 해결책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욕구의 좌절을 애도하지 못해 더 비참하게 느끼고 무기력해질 수 있죠. 이때 우리는 욕구의 보편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같은 욕구를 공유하는 우리는 서로를 공감할 수 있고 그 자체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타인의 삶>에서 통일 후, 드라이만은 우연히 비즐러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아내를 잃고 새 작품을 쓰지 못한 채 힘겨워 하던 그는, 자신의 감시자임에도 철저히 그를 보호해준 ‘HGW XX/7’를 위한 희곡을 펴냅니다. 제목은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 이전에 드라이만이 선배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연주했던 곡이자, 도청 중인 비즐러가 들으며 눈물을 흘렸던 곡이기도 합니다. 서점에서 드라이만의 희곡을 펼친 비즐러가 자신에게 헌정한다는 한 줄의 글을 마주하며 눈빛을 반짝입니다. 타인의 삶이 나의 삶으로 들어와 변화했던 시절, 그 안에서 상대의 변화를 꾀했던 순간, 그리고 서로가 연결성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의 감동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참 따뜻한 영화입니다.

 

상담을 통해 만나는 모든 마음들은, 판단을 내려놓고 나면 모두 선합니다. 그 마음을 간직하며 함께 욕구를 공유할 수 있다면, 통제와 감시에 비할 바 없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지극히 이상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상담 장면에서 그 가능성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자니,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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