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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지난 6월, <MBC 다큐스페셜>을 통해 바다를 가로지른 한 남자가 한반도를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길이 13m 요트에 몸 하나 싣고 4만1,900여km 지구 한 바퀴를 돈 남자! 국내 최초로 단독 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김승진 선장입니다. 바다 위에서 떠돌았던 209일간, 그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오지라퍼가 직접 김승진 선장님을 만나봤습니다.

 

 

 

 

 

"홀로 요트를 타고 파도와 폭풍우를 숱하게 만났지만 어느 항구에도 기항하지 않고

육상지원팀으로부터 기상 정보를 받은 것 말고는 어떤 원조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태평양, 남극해, 대서양 인도양을 지나 세계일주를 한다."

바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입니다  

 

김승진 선장은 세계에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공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를 국내 최초로 성공했습니다.

김 선장은 후지산케이TV 외국인 1호 정사원으로 일한 프로듀서 출신입니다. 30대 후반에 한국의 한 프로덕션에 스카우트돼 다큐멘터리 PD로 일하다 프리랜서 PD로 전향했는데요. 그 무렵 훌쩍 떠난 뉴질랜드 여행에서 처음 요트를 접했고 이내 그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합니다.

 

※ 인터뷰 질문지는 <삼성화재 트위터>를 통해 받았습니다.

 

 

선장님~ 안녕하세요, 우선, 한국 최초!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하신 점, 축하드려요. 쉽지 않는 도전이었을텐데… 막상 떠난다고 하셨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가족들 반응이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제대로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한 것 같아요. 사실 그 전에도 요트로 바다를 건너는 일이 몇 번 있었거든요. 아마 가족들이 그 정도 '여행'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또 가족들이 제가 뭘 한다면 반대를 안 하는 편이라... 초반에는 성공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붙기 전이라 가족들과도 연락을 안 했어요. 가족들은 나중에 알고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따님이 있잖아요.  


한 명 있죠. 딸 아이가 덤덤해요. 뉴질랜드에서 지내고 있는데… 딸의 생일 날 전화했죠. "생일 축하한다. 친구들과 파티했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아빠가 어떤 행동을 하든 무엇을 하든 존중해 주는 딸이에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죠. 사실, '도전'을 하기 전에 딸 아이를 불렀어요. 마지막일지 모르니까 저희 팀 사무국장에게 딸의 한국행 비행기를 좀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죠.

그때도 덤덤하게 아빠를 보내 준 아이였는데 요트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 온 날, 항구에서 둘이 붙잡고 울었죠. 딸 아이도 걱정을 많이 했겠죠.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아마 많이 걱정했을 거에요. 그렇게 많이 우는 딸을 처음 봤거든요. 아마, 딸도 그럴 거에요. 그렇게 많이 우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봤을 겁니다.

 

 

(질문자 ID: 릴리슈슈님) 209일간 항해하면서 포기하고 싶어진 순간이 매번 찾아 왔을텐데요. 어떤 순간이 가장 힘들었나요?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정말 한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요트에 이상이 생기거나 사고를 당해서 항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했죠. 스스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었죠.

물론 항해하면서 늘 위험한 순간이 찾아 오는데 가장 섬뜩했을 때는 남극해에서 유빙을 만났을 때?

'사면유빙'! 어디를 봐도 유빙천지인데 순간 방심하면 휘융~~ 

 

 

 

'사우스조지아 섬 '주변에서 발견한 유빙들... 남극해의 유빙은 세계 일주의 가장 큰 위험요소다.  

유빙을 발견한 경이로움 때문에 일부로 다가갔다는 '김승진 선장'. 그는 천상 모험가인 것이다.

 

처음 유빙을 봤을 때 두 가지 마음이 들었어요. 책에서만 봤던 실체를 실제로 본다는 경이로움 그리고 죽음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가는 긴장감! 정말, 신기했어요. 어마어마하게 큰 유빙들이 둥둥 떠 다니는데.. 하나의 섬이에요. 물개도 살고 있고요. 순간 다른 세계로 들어 온 느낌이랄까~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나더라고요.

 

 

<MBC 다큐스페셜>을 보니까…  바다 한 가운데에서 상어를 만났더라고요. 그때 상황이?


아.. 그때요!  방송엔 상어가 한번 다가온 걸로 나왔던데 여러 차례 만났어요.

저도 그땐 경황이 없어서 상어가 오면 셀카봉 밀어서 쫓아내고 그럼, 도망가고 등을 보이면 또 와요. 그렇게 여러 차례 쫓아왔어요. 상어를 피해서 오리발도 안 벗고 후다닥 배에 올라오는 순간 모든 게 안심되더라고요. '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제 표정을 찍었죠. 보니까 콧물도 안 닦고 찍었더라고요. 그때 죽는구나 싶었어요. 다리 하나 물렸다면 더 유명해졌으려나?? 하하하

 

 

 

항해 도중 요트 수리 중인 김승진 선장, 높은 곳까지 척척~ 정말.. 겁이 없으시군요.

 


209일간의 순간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던데… 혼자 촬영 하신 거에요? 


 혼자 촬영했습니다. 힘들었어요. 출항하기 전, MBC와 다큐에 대해서 이야기가 되었고, 요트 세계일주 기록 조건이 단독이었으니까요! 

한 신을 찍을 때 카메라 두세 대를 가동시켰어요. 넓게 찍은 것도 있고 여러 각도로 인서트 따로 찍고….

일선에서 일하는 피디도 진짜 속았다고 누군가 옆에서 찍어 줬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순간 순간 놓치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많이 찍었죠. 촬영 테이프가 어마어마해요. 

 

 

(질문자 ID: 타락천사 님) 온갖 종류의 생선은 다 먹어 봤을 것 같은데… 가장 맛있던 생선은 뭐였나요? 육지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나요?


항해 내내 생선만 먹었을 것 같다는 건 선입견이에요. 요트 안에서 채소도 키웠어요. 물론 새싹이긴 했지만 말이죠!! 빵도 만들어 먹었어요. ^^* 나중에 밀가루가 떨어졌는데, 정말 빵이 너무 먹고 싶은 거에요. 왜목항을 목전에 두고 저희 팀 사무국장에게 빵이 가장 먹고 싶다고 했더니 정말 빵을 한 봉지 가득 사왔더라고요.

그 빵을 며칠을 두고 먹었네요.

 

 

 

요트 안에서 빵을 만들어 먹었다길래..  믿기 어려워 '에이~' 했더니 사진을 한장 보여주셨다.

와우! 제법 요리솜씨가 좋으신 선장님!  그런데 표정이 참 코믹합니다. 유쾌한 김승진 선장님 답죠.

 

요트 세계일주 항해 내내 많은 육지 위 음식들이 생각났는데요. 그 중 하나만 꼽으라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육류들입니다! 건조하고 냉동 된 딱딱한 고기만 먹으니까 싱싱한 생고기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요트 위에서 먹었던 음식이 오히려 생각이 나요. 특히 '참치 김치찌개'! 김치찌개 하면 무조건 돼지가 진리인 줄 알았는데… 갓 잡은 참치 넣어서 끓여 보니까… 와우~!

불포화지방산이라는 것이 정말 좋더라고요. 몸이 맑아지는 느낌. 정말 부드럽고 국물까지 버릴 게 없어요. 

 

 

(질문자 ID: wnoul 님) 단독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일주 하기 전과 후, 뭐가 달라졌나요?


특별히 달라진 점은 사실 없어요. 전 인생이 모험이라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 피디로 일할 때도 하나의 모험이라고 생각했죠. 해외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촬영 현장에 가면 미리 알고 간 정보와는 다른 일이 많이 벌어져요. 내가 미리 준비한 정보와 다른 일들이 벌어지는 건 인생도 마찬가지죠. 모든 경험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단독무기항무원조'를 하면서 저는 진정한 저를 알게 됐죠.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면 안 되는구나." '단독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일주'를 통해 변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조금 바빠진 것 같네요. ^^*  알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요. 하지만, 제 인생관이 달라지진 않았어요. 

 

 

(질문자 ID: Ju min 님) 요트 얼마예요?? 나도 세계일주가 꿈인데요~^^ 요트 구입 비용이 제일 궁금해요! 요트 어떻게 구입하셨나요?


요트는 집을 팔아서 샀어요구입은 유럽에서 했고 세계일주 떠나기 전, 2010년에 연습 삼아서 유럽에서 한국으로 타고 왔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전초전으로 인도양을 거쳐 한국까지 요트를 타고 왔고 2013년도에 태평양을 횡단했습니다. 이번 세계일주가 세 번째 대항해였어요. 뭐 이번엔 모험이고 앞서 했던 것은 여행이니까 차원이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요~ ^^

 


 

2014년 10월 19일. 김승진 선장은 자신의 '아라파니호'를 타고 충남 당진의 왜목항에서 대한민국 최초 무기항 세계일주의 닻을 올렸다. 시속 9km/h인 이 요트 한대에 의지하여 총 4만1,900여km를 거쳐 왜목항으로 돌아왔다.  

 

 

항구에 들르지도 않고 요트에서 24시간을 생활해야 하는데… 멀미가 나진 않았어요?  


하하하 이런 질문은 처음인데요? '멀미'라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처음 어린 시절 배를 탔을 땐 멀미가 살짝 왔었죠. 하지만 지금은 전혀 없어요. 몸이 바다 위 생활에 적응한지 무척 오래 돼서 아! 멀미라니까 생각이 나네요. 당진 왜목항을 출발할 때 3~4일 동안 너무 피곤해서 멀미의 기운을 조금 느낀 것 같네요. 1년 동안 준비하면서 온 몸이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드디어 출발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는지 시름시름 앓더라고요. 어지럽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그래서 3일 동안은 잠만 계속 잔 것 같아요.

 


(질문자 ID: 으랏차차 님) 준비기간은 얼마나 됐나요?


직접적인 준비는 1년 정도 했어요. 항해 경험까지 포함한다면 2010년 여름부터 총 4년 정도 실전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네요. 요트 살 때부터 하고 싶었으니까. 실제 굳은 결심은 2013년 부터 마음 먹고 차근 차근 준비하니까 기회가 점점 가까이 오더라고요. 그리고 일부로 여기저기 동네방네 사람들에게 알리고 소문 냈어요. 그래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쏟아진 말은 주어담지 못하잖아요. 뱉어놔야 어떻게든 진행이 될 것 같았고. 그리고 실제 불가능할 것 같았던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가 시작됐던 거죠.  

 

 

드디어, 험난한 여정을 향해 닻을 올린 김승진 선장! 그때까진 그도 미처 몰랐을 겁니다.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어떤 즐거움과 경이로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의 진짜, 모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만나 볼게요.

 


사진 제공 : 김승진 선장님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예능국의 속살까지 제대로 보여준, 차태현, 공효진, 김수현, 아이유 주연의 드라마 KBS <프로듀사>가 지난 주 마지막 방송으로 종방했습니다. 쌈닭 피디, 허당 피디, 아이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예능국을 드라마판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지요. 특히 예능국 여자 피디, '탁예진'의 동전 양면같은 성격이 매력적이었어요. 기센 사람들의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하는 예능국! 그 속에서 살아 남은 여자 피디들의 생존 비법은 뭘까요? 실제 예능국 15년차 여자 피디, '남윤선 피디'를 만나서 물어봤습니다.

 

※ 인터뷰 질문은 삼성화재 트위터(https://twitter.com/SamsungfireTalk)를 통해 받았습니다.



남윤선 피디의 첫인상은 "이 사람… 만화 속에서 톡 튀어나온 인물처럼 통통 튈 것 같다." 였습니다. 

보이시한 커트 머리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콧잔등에 걸치고 있는 남피디에게서는 상상했던 쌈닭 같은 느낌, 날카로움보다는 친근함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사진을 몇 장 찍겠다고 말하자 처음엔 당황하는 것 같더니 재치있게 한 마디 던졌어요. 

"그래요, 화장은 안 했지만 다행히 오늘 아침에 머리는 감았으니까…."

오늘 새벽까지 편집 작업을 하고 아침에서야 집에 들어가 머리를 감고 나왔답니다. 어쩐지 그 한마디가 피디가 어떤 직업인지, 전부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남윤선 피디는 현재 JTBC <화이트 스완>을 만들고 있으며 그 전엔 SBS <GoShow>, MBC <찾아라! 맛있는 TV>등 다수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질문자 ID_rlarudfud : 현실 속에서도 탁예진 PD처럼 옷을 잘 입는 여자 PD가 있는지 궁금해요~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인데… 물론, 옷 잘 입는 피디도 있고 아닌 피디도 있지요. 드라마 <프로듀사> 탁예진 피디는 예쁘고 몸매 좋고 그리고 예쁜 옷이 많으니까… 뭐든 안 예쁘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탁예진 피디만큼은 아니더라도 감각 있는 피디가 많아요. 예능감이나 센스 감각이 옷발에도 스며든다고 생각하니까요. 예전처럼 365일 24시간 꼬질꼬질 후드티에 청바지 한 장으로 스타일 때우는 피디 스타일은 많이 없어졌어요. 

 


그럼, 복장 규정은 따로 없나요?


네, 따로 복장 규정이 있진 않아요. 그런데 야외 촬영이나 헌팅을 다니다 보면 정장 차림으로 일하기는 불편하니까 캐주얼한 옷을 입게 되고 편집할 때는 몸빼를 선호하게 되죠.

겨울엔 수면 바지, 여름엔 널널한 치마를 불편하지 않게 입어요. 

아! 그리고 꼭 여자 피디들이 챙기는 게 있어요. 여행용 세면 도구 가방이에요. 왜냐면요~ 머리를 못 감으니까요! 씻어야 개운하거든요. 샴푸, 클렌징 크림, 빗, 칫솔 등 사무실에서 씻고 화장할 수 간단한 도구(?)라고나 할까요?

그런 가방이 항상 사무실에 놓여져 있어요. 

요즘에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도 해요. '메르스는 방송계에 안 찾아 올 것이다' 왜냐! 다들 편집실에서 나가질 않으니까!

 

 


프로그램 시작하면 일주일에 3일은 편집실 쇼파에서 자게 된다는 남윤선 피디!

JTBC <화이트 스완>을 제작하고 있는 지금, 집보다 편집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세안 도구 가방이 사무실 필수품인지 알 것 같아요.


 

질문자 ID_ponystory : 예능국 여자 피디의 현실은 어떤가요? 


외주제작사와 본사의 제작 환경이 많이 다르긴 한데요. 외주제작사 경우 예능 쪽 여자 피디가 이 일을 그만두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려워서인 거 같아요. 이건 철저히 제 개인적인 생각에요~.

육아는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점이겠지만요. 사실 방송 일이 회사 일보다 근무 시간이 더 일정하지가 않거든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 육아를 전적으로 도맡아서 도와주시는 분이 없다면 계속 일하기가 참 힘들 거예요. 회사 가서 울고 집에 가서 울고 이런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주변을 살펴보면 엄마인 피디들은 아침 교양 프로그램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일단 아침 교양 프로그램은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요. 

또 하나 더! 예능 피디는 녹화나 야외 촬영 때 최소 5~60명을 통솔해야 해요. 촬영 때엔 다들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 통솔하기가 만만치 않죠. 녹록하지 않은 카메라 감독님, 종편 감독님들, 후배 피디들, 예능계에서 경력을 쌓아 온 출연자, MC 통솔까지…. 소리 없는 기 싸움을 계속해가야 하는 거죠. 그런 스트레스를 못 견뎌서 그만두는 피디들도 있어요. 여자 피디뿐만이 아니라요. 

우리가 하는 일 중 많은 부분이 기계화되고 있다지만 방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만드는 거예요. 사람을 잘 다루는 것도 큰 재주라는 거지요.

 

제 경우엔 처음엔 '세게 가 볼까? 쌈닭 피디가 되어볼까?' 하다가 편안하고 웃기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남들을 재밌게 해주니 괴짜로만 보다가 호감을 만들고 그다음에 결과물로 보여주는 거지요.

결과물이 좋으면 모든 기 싸움에서 승리의 깃발을 잡았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 여자 피디가 10년 정도 예능판에서 살아남았다! 게다가 유부녀 피디다? 이러면 그 피디는 정말 멘탈 갑이라는 거예요.

 

참, 그런데 예능 여자 피디보다 더 긴 센 여자들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여.배.우들!  

최소 15년 이상 영화계에서, 방송계에서 살아남은 여배우들! 오우~ 그런 여배우들은 그야말로 카리스마 덩어리예요. 앗, 딴 길로 샜네요. 미안합니다. ^^*

 

 

질문자 ID_darbylove :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8년 차 정도 됐을 때가 가장 일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저는 그때 거절 못 하고 두 프로그램을 동시에 하고 있었어요. 하나는 SBS에서 하는 <GoShow>를 편집하고 다른 하나는 채널A에서 하는 <웰컴 투 시월드>의 메인을 맡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집에 들어가는 날을 손에 꼽을까요? 한 일주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가기도 했어요. 아… 일주일을 사람이 노숙 생활하면서도 살 수 있구나, 하고 그때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때 바쁜 일정에 제 집안 문제까지 겹쳐졌어요.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윤석 씨가 '방송 일 때문에 아버지 임종에 못 갔다'라며 운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그 방송을 보면서 '에이~ 어떻게 그래'라고 생각했는데… 저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더라고요. 제 아버지가 그때 편찮으셨는데 아버지 병간호와 방송 일을 동시에 못 한 거였죠. 방송이라는 게 철저하게 시간과의 싸움이거든요. 

집에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때 피디가 잔인한 직업이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가 피디라는 직업에 딱 맞는구나, 하고요.

교통사고도 당해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실에 앉아서 편집해야 하고요. 동물 프로그램을 하면서 시베리안 허스키에게 물려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해야 해요.

촬영이 다 끝나고 출연진을 숙소에 보낸 후에 시골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죠.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냐고 물으셨잖아요. 우습게도 일로 극복했어요. 일하면서 희열을 맛보고 보람을 찾고.

만약 힘들어서 방송을 쉬잖아요. 그럼 몇 주, 몇 달은 좋아요. 그런데 금단증세가 금세 찾아와요.

그래서 다시 방송 바닥으로 돌아오게 되고요. 그래서 방송쟁이들은 방송을 '마약과 같다'고 해요.

  



JTBC <화이트스완> 스튜디오 촬영 현장. 메인 피디는 출연진, 카메라 감독, 작가진을 비롯해 많은 사람을 통솔하는 큰 함선의 선장과 같습니다.

 

 

질문자 ID_ponystory : 시청률만 높으면 최고의 PD인가요?


아무래도 예전엔 1순위가 시청률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비중이 5:5 정도일까요? 시청률 5! 그리고 대중의 평가 5예요!

예전엔 TV가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주 매개체라면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스마트폰으로 보기도 하고 인터넷 다시보기로도 많이들 보시고. 또 클립본으로도 보는 등 다채널 시대가 왔죠.

그래서 시청률만으로 평가하진 않아요. 실시간 반응이 어떤지, 대중들 평가는 어떤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죠. 요즘 예능은 웃고 떠들고 즐기는 것을 넘어 '공감' 코드가 있어야 하거든요.

 

시청자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예능에서 얻은 정보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지요. <삼시세끼>나 <냉장고를 부탁해> 같이 프로그램이 뜨는 이유도 바로 실생활에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요즘 누가 TV만 보나요. 사실 저도 TV 잘 안 보게 되거든요. 지금은 손안의 세상이잖아요. ^^* 

 

남윤선 피디와의 인터뷰! 어떠셨나요? 요즘 방송국 이야기가 드라마 소재로 많이 나오는데요.

[예능국 속살 보기] 1편에서는 예능 피디의 직업을 집중 조명했다면 2편에서 예능국 뒷이야기를 탈탈 털어 드리겠습니다. '아이돌 스타의 불편한 진실?', '예능국 연애 스토리?' 감동 있고! 스릴 있고! 눈물까지 흐르는~ [예능국 속살 보기] 2편, 개봉박두! 2편도 한 번만 봐 주십쇼!~

 

※ 윗글은 KBS <프로듀사> '예고의 이해'편을 반영해 작성된 예고 글입니다. 본편을 다소 뻥 튀겨 포장했을 수도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


어떻게 나 같은 애를 좋아할 수가 있지, 라는 순수한 경이로움. 어떤 사랑이든 사랑 그 자체가 내 인생에 찾아온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새로운 사랑이 내게 도래할 거라는 믿음. 상처는 아물고 어느새 나는 한 뼘 성장해 있다. 슬픔에 아름다움이 깃드는 순간이다.

-『태도에 관하여』(임경선 글, 한겨레출판 펴냄) 중에서


거리마다 벚꽃이 환하게 불을 켠 듯 꽃을 피워낸 4월의 어느 날, 오지라퍼는 최근에 책을 펴낸 한 작가를 만났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열어놓은 창으로 봄바람이 살며시 불어와 뺨에 닿곤 했습니다. 이야기는 사랑으로 가서 닿았다가 다시 일로 옮겨가기도 했고 결국 우리의 삶, 어떻게 내 삶을 마주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오지라퍼가 만난 사람은 임경선 작가입니다. 마케팅·홍보로 호텔, 광고대행사, 인터넷 회사 등 다양한 곳에서 12년 동안 일해 왔고 이후에는 여러 매체에 사랑과 일에 대한 글을 연재했습니다. 그렇게 글밥을 먹은 지도 11년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캣우먼으로 불리며 라디오와 신문 지면에서 독자들과 상담을 진행하고 몇 권의 에세이집과 단편소설, 장편소설을 들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5살부터 17살까지 그녀는 일본과 미국, 포르투갈과 브라질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으며 스무 살에 처음 발병한 갑상선암은 이후에도 여러 번 재발했습니다. 

어쩌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가운데 평범한 삶이 어디 있을까요. 제각각 다 모양이 다르고 색이 다르겠지요. 그 모양과 색에 따라 품은 이야기도 각각 다를 것입니다. 임경선 작가가 가진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날 만나 나눈 이야기의 한 자락을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앞에 꺼내놓습니다. 황진이가 동짓달 기나긴 밤을 베어내 춘풍 이불에 넣었다가 어론님 오시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라고 했던 것처럼. 이 오지라퍼는 그날의 시간을 한 허리 베어내어 여러분 앞에 굽이굽이 펼쳐놓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방향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근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을 펴내셨어요. 큰 수술도 마치셨다고도 들었어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최근 10년 만에 이렇게 쉬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수술받고 지금 회복하면서(임경선 작가는 최근 다섯 번째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쉬엄쉬엄 쉬고 있어요. 쉬고 있다고 해도 병원 입원 중에 책 커버를 컨펌하고 정리하고 그랬기에 퇴원하자마자 책이 나왔고 책 관련된 인터뷰 등을 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있는 편이에요. 재충전하는 셈이죠.


이번에 내신 책은 태도에 관한 내용이던데요. 쓰시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10년 동안 《메트로》 신문의 상담 칼럼을 진행해왔어요. 또 라디오에서도 상담을 진행했는데 그 내용이 다 종이로 정리되어 있어요. 그걸 들춰보다가 한 번 정리하자고 읽어봤더니 제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태도에 대한 이야기, 다섯 가지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다섯 가지 태도에서 삶을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의미에서 책을 쓰게 되었어요. 동시에 저에겐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자 하는 일종의 다짐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연애나 커리어 등 다양한 주제로 상담하셨어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연애칼럼을 쓰셨는데요. 요즘엔 '썸'이나 '연애 기술'에 관해 코칭해주는 프로그램도 많고 책이나 강연들도 많더라고요. 


《매트로》 신문 상담은 10년하고 중단하게 되었어요. 그 지면에서는 연애뿐만 아니라 다른 인생사 관련 등 다양한 주제를 상담했어요. 연애 관련해서 주로 쓴 건 작업 초창기예요. 사실 사랑이라면 모를까 '썸 탄다'는 식의 연애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프로그램 섭외가 많이 들어와도 하질 않아요. 

그런 식으로 가볍게 다뤄지는 게 전 참 싫더라고요. 연애를 학습한다는 식의 프로그램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개인에게나 재밌는 거고 남의 이야기는 크게 도움도 되지 않아요. 게다가 이게 옳다, 저게 옳다는 연애기술 관련된 이야기들은 감도가 떨어져요. 하나의 스팩처럼 연애를 잘해야 한다는 전제라는 게 사실 전 이해가 안 되고요. 그런 트렌드는 재미가 없어요. 우리는 소설도 읽고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감도를 키워야 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가야 하는 거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도 타인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계기를 마련해주거든요. 그런데 연애기술이라든지 연애솔루션이라는 식으로 가면서 얻는 얕은 기술은 우리 삶 어디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태도나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책에도 썼지만 관대함이에요. 상대에게 최대한 자유를 많이 줘야 한다는 생각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자유를 주는 게 아니라 상대방 자유를 인정해야 하는 거예요.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죠. 또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린 관계라고 할까요? 유연한 관계가 좋은 거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전제 조건이 하나 있어요. 바로 내가 굉장히 강해져야 한다는 점이에요. 질투나 열등감 같은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의 감정 안에 개입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요.

특히 이건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문제예요. 서로 구속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고, 가둬놓는 건 굉장히 숨 막히는 일이거든요. 가만히 보면 다들 인간관계 갈등을 힘들어해요.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무척 좋아요. 그러다가 차츰차츰 상대방에게서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보게 되잖아요. 그 마음에 안 드는 점에 너무 얽매여서 어떻게 하면 내가 그 사람을 고칠 수 있을까, 바꾸려고 하는데요. 그건 사실은 굉장히 오만한 거예요. 상대방은 바꿀 수 없어요. 

자신에게 나는 그만큼 잘났는가도 물어보세요. 사람은 다 불완전한 부분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에게도 불완전한 부분이 있는데 왜 자신의 입장에 맞게끔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굉장히 오만하고 그만큼 자기의 그릇이 작다는 거예요. 상대방을 품질 못한다는 건데 그런 게 좀 안타깝죠. 

남들하고 비교하면서 남들은 이런데 우린 왜 이러냐고 질책하고 상처 주고. 아니, 그걸 왜 비교를 하나요? 둘이 좋으면 되는 거예요. 사랑이나 인간관계는 굉장히 단순하고 본능적인 거예요. 그런데 갈수록 복잡해지고 법칙이 자꾸 생기잖아요. 그렇게 복잡해지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더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 같아요. 그냥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헤어지는 거예요. 

관계란 그렇게 물처럼 흘러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안에 사람들이 자꾸 작위성을 넣는 것 같아요. 남들이랑 비교하고 잣대를 들이대고요. 자기에게 가혹해지니까 타인에게도 가혹해지죠. '내가 너를 위해서 이만큼 희생하는데 너는 왜 나한테 그만큼 못 해!' 같은 '본전을 뽑겠다'식의 마음도 있고요. 

맞아요. 주변을 보면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가 오히려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또 사랑에 관해서는 남의 일일 땐 문제가 잘 보이고 해결점도 잘 보이는데 정작 내 일이 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자기 마음을 잘 살펴봐야 해요. 내 마음인지 남이 나에게 주입한 생각인지를 발라내려면 자기 자신과 독대를 많이 해야 하거든요. 혼자 가만히 있는다고 독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이나 반응을 스스로 지켜볼 수 있어야 하죠. 그게 안 되면 그냥 외부에서 들어오는 주입식 정보에 휘둘리게 돼요. 


이성적 판단으로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관계에서는 그게 잘 안되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사랑에서 그런데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관대해지는 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잘 안되거든요.


사실 잘 안 되는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질투가 전혀 없는 상태는 힘들죠. 그런 상태가 자연스러운 거긴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해야 해요. 관계에 있어서 참아야 할 건 참지 못하고 참으면 안 되는 건 참는 경우가 많거든요. 상대방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건 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해요. 잘 발라내야 해요. 반대로 오히려 상대방이 잘못하지 않은 것,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의 배경 등으로 가혹하게 굴기도 하는데요. 배경을 가지고 이 사람에겐 미래가 없다고 단정 짓는 건 안타깝죠. 



작가님 칼럼 중에 사랑을 잘하는 사람들은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던데요.


네. 그런데 다들 자기가 어떻게 하면 상처 입지 않을까 궁리하고 이득만을 취하려고 하잖아요. 그 전제 자체가 이상한 것 같아요. 


또 상대방과 자신 사이에 거리 두기를 잘 못 해서 너무 빠져버리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건 본인이 정말 좋아하면 겪어내야 하는 홍역 같은 거예요. 그런데도 이 사람이 정말 좋다, 그러면 그냥 가는 거예요. 그만큼 뜨거운 것도 있기에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해요. 예방주사를 맞듯이 어차피 한 번 겪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마 잘 안 될 거예요. 문제가 있어서 큰 상처를 입고 헤어질지도 몰라요. 그래도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고 '이건 나의 선택이었다'며 납득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그럼 배우는 게 있어요. 하지만 '쟤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면서 상대방을 원망하고 '내 시간이 아깝다'며 함께한 시간을 후회하면 답이 없어요. 

저는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면 좋겠어요. 상대방에게 자신이 당했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건 오히려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에요. 지나간 옛 연인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기지요.


나한테 마음의 문을 연 만큼 딱 그만큼만 나도 마음을 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선 그 누구보다도 내가 그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에서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인 것 같다. 사랑하면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가 있다.

-『태도에 관하여』(임경선 글, 한겨레출판 펴냄) 중에서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런 분들에게 전해줄 팁은 무엇일까요?


제가 팁에는 약해요. 다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자기 자신을 어필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는 차분히 들어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그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좋은 거 같아요. 


작가님은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세요?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아요. 매력 있는 사람 만나면 좋지만, 일부러 찾아서 만나지는 않죠. 우연히 만나면 좋은 거고 그 외에는 원래 친했던 사람을 만나요. 또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그런 시간도 갖고요. 혼자만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까닭은요?


글 쓰는 사람은 그게 무조건 필요해요. 적어도 하루에 두세 시간은 혼자 있어야 해요. 그렇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요. 그 시간이 있어야 생각도 할 수 있고 이야기도 떠오르고요. 쉽게 말해 '멍 때리는' 그런 시간도 필요하고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해요. 감각을 일깨우는 건 혼자 있을 때 할 수 있거든요.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요즘 대부분의 사람이 '일과 생활의 균형', '업무와 사생활의 적절한 비중' 등을 이야기하는데, 작가님은 일에 의욕을 가지고 발을 푹 담그라고 하세요.


아니, 일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요. 절대 균형을 잡을 수 없어요. 비중은 일이 클 수밖에 없어요. 물론 우리나라의 근무환경이 빡빡한 탓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하루 동안 시간에서 일의 7 정도이고 개인 시간이 3 정도예요. 그러니 이왕이면 7의 부분을 노력해서라도 충실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7이 마음이 안 드니까 그건 포기하고 3을 잘 키워보겠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도 쉽지 않거든요. 그만큼 충만감도 없고요. 

일에서 충만감을 느끼는 게 가장 나를 충만하게 해요. 일에서의 만족도를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을 하대하지도 말고요.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일 속에서 의미를 찾는 건 내 몫이에요. 누군가가 내 일에 의미를 부여해주진 않거든요. '이건 보람찬 일이야' 하고 던져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겉으로 좋아 보이는 일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에요.


의미? 그런 건 원래 없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태도에 관하여』(임경선 글, 한겨레출판 펴냄) 중에서


기업에서 12년을 일하셨는데 그 시절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워커홀릭이셨더라고요. 그 시절 얻은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네, 워커홀릭이었던 거 같아요. 욕먹는 걸 싫어했거든요.

마지막 직장에서 제가 신입사원으로 뽑은 친구가 지금 예전 제 자리였던 팀장 위치에 있어요. 그게 뿌듯하고 좋더라고요. 지금도 연락하는데요. 뭐랄까요. 일터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 일에 내 발을 푹 담그는 자세예요. 적당히 주변에서 맴돌며 일을 깨작깨작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발을 푹 담그지 않으면 일이 겉돌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일을 피하려고 해요. 

일터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호불호로 가르지 말라고 전하고 싶어요. '나는 저 사람 좋아' 혹은 '나는 저 사람이 싫어' 같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간관계를 바라봐선 안돼요. 오히려 '난 저 사람이 필요해'라거나 '같이 일할 때 필요한 사람이야' 라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좋겠어요.

한 번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면 계속 그 사람의 안 좋은 점만 보게 되거든요. 감정에 자기가 휘말리게 되고 내 감정에 내가 빠져서 결국에는 '얼굴도 보기 싫다'거나 '같이 밥 먹기도 싫다'라는 상태가 돼요. 그럼 나중에 자기 자신이 그 사람을 못 견뎌서 회사를 먼저 나가버려요. 


그렇죠. 보통 회사를 옮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인간관계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맞아요. 거의 그럴 거예요. 특히 윗사람들과 관계에서 그렇죠. 자신이 보기엔 윗사람이 못나 보이거든요. 내가 왜 저런 사람과 일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근데 또 그 마음이 윗사람에게도 보이니까 그 사람은 나를 못살게 굴죠. 보통 그런 패턴으로 회사를 나오게 돼요. 


일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걸 신경 쓰면 좋겠다고 말하고픈 게 있으신지요?


자기 업무를 확장하고 싶을 때는 윗사람에게 알리라고 하고 싶어요. 자기가 업무에서 어떤 걸 더 배우고 싶은지, 더 시도해보고 싶은지를 윗사람들에게 알리세요. 당장은 일을 주지 않더라도 항상 '나는 이런 걸 해보고 싶다' 라고 이야기를 해놓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나쁠 거 하나도 없어요. 다들 좋아하고요. 또 그렇게 의욕을 보이면 다 기회가 되거든요. 주어진 일만 하지 말고 자꾸 자기 업무의 영역을 확장하는 게 중요해요. 그렇다고 나 혼자만 일 다하는 거 아닌가 싶지요? 절대 안 그래요. 




 


작가님이 보시기에 20~30대들이 바꿨으면 하는 태도를 꼽자면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요?


바꿨으면 하는 건 없어요. 제가 바꿨으면 한다는 건 그 그 자체가 벌써 꼰대질이에요. 본인에게 진심으로 충실한 길이 어떤 건지만 고민하고 그 길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해라' 라고만 하기에 너무나 개인사이기도 하고요.

제가 태도에 관해 썼을 때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런 태도를 신뢰하고 이런 태도에 기반을 둬서 내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그럼 너는 뭐니?' 하고 묻는 거예요. '너한테 있어서 중요한 가치는 뭐니?' 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건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극이라는 건 누군가가 나에게 심어주는 게 아니에요. '저 사람을 저렇구나, 그럼 나는 뭐지?' 하고 그 사람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그걸 그대로 흡수하면 그건 자극이 아니라 주입이에요. 그게 차이예요.


작가님 작업 이야길 좀 해볼까 해요. 작업이 잘 안되실 때는 어떤 방법으로 그 시간을 이겨내시나요?


작업이 안 될 때는 없어요. 그 시간은 소중하거든요. 안 될 수가 없어요. 안 되고, 되고 이런 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람들이 작업하기 전에 워밍업하거나 웹서핑하다가 작업한다고 하는데 전 사실 그게 잘 이해가 안 돼요. 전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거든요. 마감 때가 다 되야만 글이 잘 써진다는 말도 이해가 안 돼고요.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됐다고 하시는데요. 칼럼부터 소설, 상담까지 다양한 글을 쓰셨어요.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장르나 글이 있으신가요?


보통은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소설이 쓰기 어려워서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특별히 애착 가는 장르는 없어요. 

제 책 중에서는 『엄마와 연애할 때』를 제일 좋아해요. 그건 우리 집의 가보 같은 책이거든요. 판매랑 상관없이 제게 소중했던 찬란한 한 시절을 기록했던 책이라 제게 의미가 커요. 또 제 딸에게 주는 최고의 유산이 될 거라 특별하기도 하고요. 다행히 그 책이 가장 많이 팔렸고 지금도 꾸준히 나가고 있어요. 보통 장편소설을 귀하게 생각하시는데요. 그건 또 소설사대주의 같아요.(웃음) 그렇진 않아요.

 

그럼 이 인터뷰를 통해 작가님을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는 책은 『엄마와 연애할 때』일까요?


엄마와 연애할 때』는 결혼하신 분들에게는 좋을 것 같고요. 미혼이신 분들에게는 지금 나온 신간을 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태도에 대한 틀이 제 소설이나 에세이에 그대로 녹아 있거든요. 

 

글을 쓰고 나서 독자에게 공개되기 전 보여주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편집자에게 보여줘요. 굉장히 가깝기도 하고 긴밀한 관계예요. 수정 요청에 대해서는 100% 수용하는데요, 편집자의 전문성을 믿기 때문이에요.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게 그런 데서 나오더라고요. 저는 직업인의 전문성을 신뢰해요. 절대 수정하면 안된다 이런 건 없어요. 





작업할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요?


한때는 육아랑 같이 하는 게 힘들었어요. 육아도 하고 살림도 하면서 일하다 보니 버리는 시간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제 스케줄이 꽉 차 있으니 체력적으로 힘들더군요.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프리랜서이다 보니 수입이 불규칙하다는 게 힘들죠. 하지만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정면돌파하는 거죠. 그냥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거 말고는 없죠. 그리고 불평하지 않기! 


일과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아이랑 손잡고 등교할 때, 하교하는 아이를 마중 가서 같이 집으로 돌아올 때가 제일 좋아요. 아이 손을 잡고 아침 공기를 가르면서 걸어갈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어요. 안녕하면서 손 흔들고 이별했다가 다시 오후에 재회하잖아요. 하루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셈인데, 애틋하면서 행복한 기분을 느껴요. 사랑이 충만한 그런 느낌이요.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재충전한 다음 장편소설을 쓰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다음 장편소설은 깊이나 스케일에 있어서 발전해야겠다 싶어요. 다음 스텝에서는 확장하거나 깊어지거나 새로운 것, 셋 중에 하나는 해야 하니까요. 


가지고 있는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지금 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그게 꿈이에요. 한국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오래 버틴다는 건 쉽지 않거든요. 등단하지 않았지만 제가 10년 버틴 건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해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직업을 바꾼 셈이지만 제가 다시금 회사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이 일에 은퇴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물론, 계속 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요.

다들 '책을 안 읽는다, 책 시장은 이제 사장이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런 말에 반항하고 싶어요. 게다가 책을 워낙 좋아해요. 책이라는 매체가 주는 기쁨이 있거든요.

책은 능동성이 필요해요. 아날로그적인 기쁨도 있어요. 책과 음악은 개인화된 즐거움을 주잖아요. 보통 혼자 듣고, 혼자 읽는데 그렇기에 감정적인 작용을 하는 거 같아요. 내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주는 토대가 되어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어요.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따뜻한 봄과 함께 2015년 프로야구도 돌아왔습니다. 지금 한창 시범 경기가 열리고 있는데요. 

3월 28일에는 개막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사실, 오지라퍼는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문외한이에요. 1루, 2루, 3루나 홈런, 번트, 타자, 내외야수 정도가 아는 단어의 전부랄까요? 그렇지만 야구장에서 응원하며 보는 야구의 재미는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답니다. :D

2015년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의 나바로 선수를 만나러 오지라퍼가 대구로 출동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 선수지요~ 자, 여러분도 오지라퍼와 함께 고고!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도착하다!

대구에서 서울까지는 가깝고도 먼 거리~ KTX를 타면 2시간도 되지 않아 금방 도착한답니다. 

대구하면 뭐가 생각나시나요? 오지라퍼는 아무래도 그 유명하다는 막창 골목이 먼저 생각납니다. 역시나 먹을거리에 특화된 오지라퍼답지요. 하지만 오늘 방문한 곳은 막창 골목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입니다.



아직 야구장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야구야구의 냄새가 납니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야구 팬들 모습에서 새삼, 야구장에 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슬쩍 불어오는 바람에 봄 내음도 나고요. 


일명 대구구장으로 불리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198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1948년에 야구장이 개장했다고 하니 그 세월만 벌써 67년이 훌쩍 넘었네요. 오래된 야구장이다 보니 노후 문제도 있고 수용할 수 있는 관중 수도 적다고 해요. 

대구에서는 이 야구장을 대체할 새로운 야구장을 짓고 있습니다. 현재 공정률이 50%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아마도 내년 2016년 2월에는 완공되지 않을까 예측해봅니다. 



오지라퍼가 방문한 날은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와의 시범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 

오지라퍼는 빠른 발걸음으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들어섰습니다. 

넓은 그라운드, 야구공이 야구방망이에 맞부딪히면서 내는 쨍하는 소리, 맑은 하늘과 맞닿은 전광판, 선수들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는 야구 팬들의 목소리…. 야구장은 에너지로 가득 찼습니다. 


그때 멀리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머무르는 덕아웃을 발견했습니다!



야구장 한쪽에서 열심히 달리고, 공을 던지고 치면서 몸을 푸는 선수들. 

조금 뒤 있을 경기를 준비하며 다들 긴장된 얼굴이었는데요. 그 가운데서 오늘 오지라퍼가 만날 나바로 선수를 발견했습니다.




공을 치면서 몸을 푸는 나바로 선수. 다른 선수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잠깐, 저기 이승엽 선수도 보이네요. 나바로 선수와 마주 보며 도란도란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가까이서 사진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아시죠? 방해되면 안 된다는 점. 아쉽게도 멀리서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우리, 아쉬운 마음은 잠깐 접어두기로 해요! 조금 있으면 경기가 시작되고 그들의 본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요.




나바로? 야미? 그는 누구인가!


 

오지라퍼가 나바로 선수를 만나러 간다고 하자 열혈 야구 팬인 오지라퍼의 친구는 딱 이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나바로 잘하지, 잘해"


나바로 선수는 대체 누구길래 이런 말을 듣는 걸까요? 

궁금한 오지라퍼는 그를 만나기 전 사전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국적부터 파헤쳐봤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고 있는 야마이코 나바로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2014년부터 뛰고 있는데요. 2014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실력파! 기량이 뛰어난 선수이지요. 

현재는 대구구장 근처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야구 인생을 펼쳐가고 있다고 합니다. 


야마이코 나바로라는 이름 때문일까요? 동료 선수들이 나바로 선수를 부르는 애칭은 '야미'라고 해요.

훈련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한숨 돌리고 있는 나바로 선수를 만났습니다. 

간간이 웃기도 하고 말할 때마다 손짓해가며 활발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바로 선수. 

삼성 라이온즈의 야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벌써 2015년이 되었고 2015 KBO 개막을 앞두고 있어요. 2015 KBO 개막을 앞두고 지난해를 떠올려 볼 때 잊지 못할 기억이나 또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했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또 그날 MVP로 선정이 돼서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승하고 MVP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엄마가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승 소식을 알리고 기쁨을 같이 나눴어요.



그러고 보니 혼자 한국에 살고 있어요. 가족들이 그립거나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이 그리울 때는 어떻게 그리움을 달래나요?


도미니카 공화국이 그리울 때는 전화를 해요. 가족들에게도 전화하고 친구들에게도 전화하고…. 그러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안정을 찾아가요.



이제 한국 생활 2년 차인데요. 적응된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한국 생활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원정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면 대구에는 새벽 즈음 떨어져요. 새벽 한 2시? 3시? 그 정도 되는데요. 그러면 혼자 가방을 끌고 집까지 걸어가야 해요. 어둑한 밤길에 가방을 끌면서 혼자 걸어가고 있으면 처량한 기분이 듭니다. 그게 아직도 참 힘들어요.



훈련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얼 하고 지내나요? 


다른 사람과 비슷할 거 같아요. (웃음) 영화도 보고, 페이스북도 하고…. 여기에는 동료 선수들 외에 제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고 페이스북 한다든지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고요. 참, 남는 시간에는 산책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레스토랑도 가요.



경기 시작 전, 열심히 연습 중인 나바로 선수.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공에 맞을까(실제로는 절대로 공에 맞을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었어요) 

덜덜 떨면서도 오지라퍼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습니다. (셀프 쓰담쓰담)



팀에서 유달리 친한 선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선수들과 어떤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나요?


우리 팀 동료들과는 다 친해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승엽 선수, 박석민 선수, 박해민 선수와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승엽 선수는 처음에 제가 여기 왔을 때부터 먼저 호감을 표했어요. 야구 장비도 챙겨주고, 필요한 것들도 주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박석민 선수는 먼저 나서서 제게 농담도 많이 던지고 편하게 해줘서 가까워지게 됐어요. 



삼성 라이온즈에 오게 된 것, 한국에 오게 된 건 나바로 선수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전 여러 야구를 경험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에 온 건 저에게 또 다른 기회예요. 지난해에 한국에 왔지만 전 한국이 참 좋아요! 있어 보니까 여기서 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미국과는 좀 다르지만 한국도 그 나름의 장점과 매력이 있어요. 또 빼놓을 수 없는 우리 팬들도 좋아요! 



여러 팀에서 생활해봤을 텐데요. 삼성 라이온즈만의 다른 분위기나 특징이 있나요? 


삼성 라이온즈가 다른 점은 연습이 많다는 점? (웃음) 연습 강도가 강하고 연습 시간도 길어요. 처음에 왔을 때 적응이 안 돼서 많이 피곤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오늘 훈련을 열심히 하면 다음 날 더 좋아질지도 모르는데 저는 좀 안 그런 거 같아요. 전 연습을 많이 하면 피곤하고 오히려 지치는 거 같아요. 

삼성 라이온즈는 정말 좋은 팀이에요. 다른 팀에서 있을 때보다 삼성 라이온즈 사람들은 제게 말도 많이 걸어주고 농담도 자주 던져요. 대화를 많이 하면서 화합이 잘 되는 팀인 거 같아요. 



완전 진지한 얼굴로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나바로 선수.

저 집중력으로 공을 노려보는 거겠죠? ^^;


다른 팀에서 인상 깊은 한국 선수가 있나요?


넥센에 있었던 강정호 선수가 인상적이었어요. 또 박병호 선수도 기억에 남아요. 물론, 우리 팀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고요!(웃음)



이 인터뷰가 끝나고 잠시 뒤에 한화와 경기를 가질 텐데요. 


오늘 한화와 경기는 시범 경기지만 저는 시즌 경기와 똑같다고 생각해요. 경기는 경기이니까요. 저는 그저 볼에 집중하고 플레이를 열심히 하는 데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2015년 KBO 리그 개막을 앞두고 있어요. 올해 KBO 리그에서 목표나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지난해처럼 경기를 잘하는 게 목표예요.  안타 잘 치고, 우리 팀을 위해서 경기를 잘 풀어가는 게 제 목표지요. 결국에는 한국시리즈 승리라고 할 수 있어요.



야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나바로 선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나의 인생!(나바로 선수는 "마이 라이프-My life"라고 답을 하고 껄껄 웃었어요) 야구는 내 인생이에요.



마지막으로 나바로 선수의 개인적인 꿈은 무엇인가요?


제 꿈이라…. 음, 일단 전 가족을 잘 챙기고 싶어요. 그리고 제게 중요한 야구! 야구를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어요. 제 꿈은 그게 다예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어요.(웃음)



인터뷰를 끝내고 씩 웃어주는 나바로 선수!

이번 경기도 끝낸 다음 그렇게 씩 웃어주세요~




 

 

안녕하세요. '블레어' 씨! 한국말을 정말, 잘하세요. 한국에 오신 지 오래 됐나 봐요? 언제 오셨나요?


지금처럼 한국에서 살기 전에 한 달 동안 잠깐 놀러 온 적이 있었어요. 호주에서 한국 친구가 교환학생으로 왔는데, 그때 그 친구와 많이 친했어요. 지금도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이고요. 그리고 2007년 여름방학 때 그 친구를 따라 한국에 놀러 왔지요. 그때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이 남았어요. 2010년에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왔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고 있네요. ^^*

호주와 한국을 계속 왔다 갔다 했고 지금 한국서 쭉 산 지는 총 3년 넘었어요.



지금 회사에 다닌다고 들었어요.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디지털 마케팅이라고 아세요? 특정 브랜드의 SNS 웹 사이트를 운영하고 그 브랜드의 디지털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한국 SNS 시장은 '구글' 위주인 다른 나라랑 달라요. 네이버와 다음에서 디지털 마케팅이 주로 이뤄지고 있고 시스템도 좀 특이해요. 그래서 한국 IT 문화를 모르는 외국 브랜드 경우 SNS 마케팅 진행이 어려워요. 저는 외국 브랜드 SNS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중에 외국 분들이 많겠어요?


직원이 약 4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10명이 외국인이에요. 대부분 프랑스 사람이죠. 저랑 핀란드, 캐나다에서 온 사람도 있어요.

 


회사 일에 JTBC <비정상회담> 녹화까지 바쁘지 않나요?


일과 방송일의 병행, 사실 어느 정도는 힘들어요. 다만 매주 일요일에 녹화해서 일에 지장을 받진 않아요. 대신 녹화가 새벽에 마치게 되면, 아시겠지만 집에 오면~ 뻗어요! 월요일 출근이 힘들죠.

전 주말까지 일을 가지고 오진 않아요. 주중에 일을 마치려고 하지요. 원래 바쁘게 사는 걸 좋아해서 회사 일도 하고 비정상회담 녹화 하는 것도 괜찮아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행운을 즐기겠어요. 

 

 

 

 

인터뷰 내내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 '블레어'! 가족 이야기할 때는 보고 싶은 마음에 시무룩~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진지~  또 <비정상회담> 출연자들을 이야기할 때는 무척 밝았습니다.

 


20대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있는 JTBC<비정상회담>,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비정상회담> 출연 전에 줄리안을 알고 있었어요. 작년 여름에 다른 호주 친구랑 파티에 갔는데 그 파티를 주최한 사람이 '줄리안'이었어요. 줄리안이 성격이 좋잖아요. 그래서 금세 친구가 됐는데 어느날, 줄리안이 <비정상회담>에 대표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혹시 1일 비정상을 할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는데 얼마 안 돼 작가님이 전화를 줬어요. 그래서 작가님과 만나고 다음 날인가? 곧바로 녹화했어요. 

 


1일 비정상 대표가 되고 고정이 됐어요. 긴장되거나 부담되진 않았나요?


1일 비정상 대표할 때는 부담되지 않았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갔고, 재밌게 촬영했지요. 

고정이 된 후 첫 방송 때 많이 긴장한 것 같아요. 다른 대표분들이 한국말을 너무 잘하더라고요. 

그런데 방송 출연보다 부담스러운 건 호주 대표라는 자리예요. 호주가 얼마나 큰 나라인데. 제가 아무리 호주에서 자랐다고 해도 호주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순 없어요.

여러 가지 색깔 중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전 브리즈번에서 온 '블레어'인 거죠. 

대학교 친구 중에 호주에서 자란 필리핀 사람이 있는데 그 친구의 호주와 시즈니에서 자란 친구의 호주가 달라요. 전 방송에서 블레어의 호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시청자분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블레어를 인터뷰하기 전에는 그의 말 속도를 타자로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의 오만(?)이었죠. 어찌나 한국말을 잘하고 속도가 빠른지… 결국 녹음기를 켜야 했답니다.

 


<비정상회담> 방송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음…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도 좀 생소하고 특이해요.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는데 그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고요. 지금은 모든 것이 좋아요. 흥미롭고 할 만해요.

방송하면 마케팅 쪽도 배울 수 있고 또 방송 매체도 경험할 수 있어서 일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팬들에게 선물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녹화 때 선물을 주시는 분이 참 많아요. 거의 과자, 편지, 음료 이런 건데 음식 같은 경우에는 저한테만 주는 게 아니라 <비정상회담> 출연자들의 선물까지 준비해서 제 이름으로 주고 그러세요.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할 때도 있어요. 제 팬이 거의 10대, 20대 학생들인데 용돈을 모아서 사주는 거잖아요. 학생들에게 이런 선물을 받는 게 부담되죠.


그중 기억에 남는 선물은 동그란 공처럼 생겨서 흔들면 눈이 내리는 장식품, '스노우볼'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스노우볼 안에 같이 넣었더라고요. 시중에 파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든 선물이었어요. 지금도 가족들 보고 싶을 때 그 '스노우볼'을 봐요.

 

 

  


가족들과 자주 연락하나요? JTBC <비정상회담> 출연에 대한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요?


매일 엄마랑 통화하고 있어요. 그래도 보고 싶어요. 호주에 안 간 지 꽤 됐거든요.

사촌 동생도 여동생도 <비정상회담>을 챙겨 봐요. 물론 자막이 없어서 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다들 좋아해요. 엄마는 제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고요.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저 보고 TV와 어울릴 거라고 이야기했거든요. 제가 워낙에 말이 많아서. ^^* 그런데 호주도 아니고 어떻게 한국에서 방송 출연을 하게 됐냐고 신기하게 생각하세요.

 


가족들이 보고 싶지는 않나요? 


지금까진 괜찮았는데, 요즘 따라 고향이 많이 그리워요. 작년 4월에 갔으니까 안 간 지 1년이 됐어요. 엄마는 2주 전에 한국에 왔다 갔어요.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1년 가까이 못 봤어요.

지금은 바빠서 언제 갈지 모르겠어요. 동생도 보고 싶고, 아빠도 보고 싶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고 싶고…. 으아~ 호주 음식도 먹고 싶어요! 무엇보다 호주의 느긋한 분위기가 그리워요.

 


언제 가장 가족이 그리운가요?


명절이요.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한국과 분위기가 달라요. 한국은 크리스마스를 '연인의 날'로 생각하는데 호주는 무조건 '가족 위주'예요. 아시겠지만 호주는 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보내요. 그래서 한국에서 날씨가 조금 더워지면 저도 모르게~ '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네'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한국인데 말이죠.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과 쿠키를 만들고 음식 만들면서 보냈어요. 물론 재밌었지만 어딘가 허전하더라고요. 역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보내야 하는 것 같아요.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퍼지는 '블레어 윌리엄스'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티가 팍팍 나네요~ 그의 밝은 에너지는 가족의 사랑에서 뿜어져 나왔나 봅니다.

 


JTBC <비정상회담> 출연으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을 텐데요. 그중 가장 친한 친구를 꼽으라면요?


음… 어려운 질문이에요. 다 친하거든요. 처음에 각각 다른 나라 사람인데 모두 다 같이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멤버들 사이로 들어가니까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한국에 대한 관심, 긍정적인 에너지, 타지 생활 등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요. 가끔 사적으로 만나고 또 <비정상회담> 사전 인터뷰를 하면 다른 멤버들을 만나 밥 먹고 놀고~ 즐겁죠. 

그중 가장 친한 친구를 꼽으라면… 음… (열심히 고민 중) 수잔과 일리야? 

같이 시작을 했고 또 같이 인터뷰를 많이 하거든요.

 

아! 타쿠야랑도 친해요. 나이도 똑같고 JTBC <비정상회담> 막내고 또 여동생이 있는 가족 관계도 비슷해요.(웃음)

개인적으로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타일러'요. '타일러'는 정말 똑똑해요. 토론할 때 보면 저는 거의 못 알아 듣는 말이 많아요. 하지만 똑똑한 것보다 더 매력적인 건… 정말 웃겨요. 흥이 많고 무척이나 재밌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본받고 싶은 사람은 '알베르토'요. 멋진 것 같아요. 회사 일도 방송 일도 균형을 잘 맞춰서 하거든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지금은 어느 하나 놓치기 싫거든요.

 


JTBC <비정상회담> 녹화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대본이 있나요?


대본이 있긴 한데 주제가 뭔지만 알려줘요. 토크 포인트만 미리 알려주는 거지요. 주제가 정해지면 작가님과 사전 인터뷰를 하는데요. 사전 인터뷰할 때 토론 방향이 대충 정해져요. 

만약 호주에 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호주 입장의 토론 방향이 적혀 있죠. 하지만 대부분 대본처럼 진행되진 않아요. 토론하다 보면 산(?)으로… 산이라고 하는 게 맞아요? (오지라퍼 : 네!) 산으로 갈 때가 많아요.

그리고 주제가 엉뚱하게 진행될 때도 있죠. 그게 <비정상회담>의 매력인 것 같아요.

보통 저녁 6시 혹은 8시에 녹화해요. 그리고 새벽 2시 정도까지 토론하는데 시간이 금방 가요.

운동한 것도 아니고 토론하는 거니까 많이 힘들진 않아요.

 

 

다들 말을 잘하잖아요. 토론 중간에 끼어들기 힘들지는 않나요? 


갑자기 여기저기서 말할 때는 끼어드는 건 힘들어요. 주제가 어렵거나 제가 무슨 단어인지 모를 땐 힘들긴 한데… 부담스럽진 않아요. 완벽하게 한국어를 잘할 순 없으니까요. 그럴 때 손신호를 보내면 MC분들이 도와줘요. 그리고 <비정상회담> 멤버들도 많이 도와줘요.

 

 

 


호주 청년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어떤가요? 


한국에서 지낸 지 3년이 됐어요. 한국 참 좋아요. 제가 한국을 왜 좋아하냐면 사람들이 뭐랄까? 호주랑 달라요. 열정적이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해요. 한국이 이렇게 발전하는 데 30년밖에 안 걸렸다고 들었어요. 대단한 것 같아요. 호주는 한국과 분위기가 달라요. 여유롭고 뭐든지 '괜찮다'라는 분위기예요. 물론 그런 호주 분위기도 좋아하지만 뭐랄까… 느긋한 호주와 바쁜 한국을 반반 섞으면 좋겠어요. 호주와 한국을 반반 섞으면 그게 (엄지 척) 최고인 것 같아요.

 

 

자신이 한국 문화에 적응됐다고 생각할 때가 있나요?


목욕탕, 찜질방 가는 걸 좋아해요. 찜질방 가서 사람들과 같이 자고 달걀 먹고 그러면 스스로 한국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집에는 목욕탕이 없어요. 그래서 따뜻한 탕에 몸 담그는 걸 좋아하는데… 방송 나가고 나선 아직 안 갔어요. <비정상회담> 멤버들이 다 같이 가자고 하는데… 음 다 같이 가면 큰일 날 것 같아요. 너무 주목받지 않을까요?(웃음)

 

 

 


한국인 여자친구를 만난 적이 있나요?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데이트는 몇 번 했는데 여자친구를 만난 적? 만든 적? 뭐라고 해야 하죠? 여자친구는 없었어요.

친구랑 지내는 게 즐겁고 시간도 없고 일을 해서 바쁘니까 데이트할 시간도 잘 안 나더라고요.


다른 <비정상회담> 멤버들은 '오빠'라고 부르는 호칭의 느낌을 알고 좋아하는 것 같은데….

서양에는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는 단어가 없어요. '브라더(brother)'와 다른 느낌이잖아요.

전 아직 그 느낌을 모르겠어요. 전 내추럴하고 프리하며 여유로운 스타일의 연상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직 이상형을 생각한 적이 없어서 사실 잘 모르겠어요. ^^

 

 



2015년 블레어 씨의 계획은? 앞으로 바라는 점은?


원래 계획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미국이나 영국… 다른 나라로 가려고 했어요.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 2년 반 정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 했죠. 이런저런 도전을 해도 호주로 돌아갈 때는 30살 정도니까요. 그런데 계획이 달라졌어요. 방송도 하고, 여러 나라 사람을 한국에서 만날 기회도 접하고.

제 인생의 '봄'을 한국에서 만난 거죠. 물론 다른 '봄'이 다른 나라에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한국에 호주식 카페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한국 카페들은 대부분 미국식이잖아요.

음료 종류도 많고~ 규모도 크고…. 그것과 다른 스타일로 커뮤니티 카페를 만들고 싶어요.

음료도 커피도 딱 호주식 몇 개! 대신 아담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오지라퍼가 만난 '블레어' 씨는 무척 발랄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해피바이러스 같은 청년이었습니다. 지금은 <비정상회담>에서만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그의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