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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대한민국에 똑똑한 아이들이 이렇게 많았나요? SBS <영재발굴단>을 보면 늘 깜짝깜짝 놀라는 오지라퍼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저 나이에 난 뭐했지?', '저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똑똑하지?' 하고 부러워한답니다. 도대체 어떤 게 그 아이들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요? SBS <영재발굴단> 제작팀을 만나봤습니다.

 

영재는 타고난 것일까?


(왼쪽으로부터 김재원 팀장, 박재호 메인작가, 이경선 메인작가, 황성준 부팀장)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인도 히말라야 지역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동 일곱 걸음을 떼고 이렇게 외쳤다지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예~ 맞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부처, 석가모니입니다.

 

지금의 잣대로 있는 그대로 그 아이를 평가하자면~ 태어나자마자 걷고 말한 그는 분명, '영재'인 거죠.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셈인데요.

 

영재는 타고난 것일까요? '넘사벽'인 존재인 걸까요? 

 

김재원 팀장은 <영재발굴단>을 처음 제작할 때 영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힘들었다고 합니다.

김재원 팀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볼까요?




김재원 팀장 : 주변에서 영재가 있어야 알지요. 처음엔 단순하게 '영재들의 책상을 보자, 어떤 책을 보는지 보자, 어떻게 공부하는지 보자, 얼마나 똑똑한지 살펴보자'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우리도 영재에 대한 이해심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상처 입은 부분이 보였고, 또 아이들보다 부모의 고민이 깊었어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제작진이 만난 영재를 둔 부모는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했을까요? 

 

김재원 팀장 : 아이들은 모두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어요. 그 재능을 어떻게 키워주고 유지하느냐란 부분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죠. 우리는 그걸 '부모 지지도'라고 해요. 지지도가 낮으면 아이들의 반짝이는 재능은 금세 사라지더라고요. 

 

이경선 메인작가는 화학소년 신희웅 군의 어머니를 가장 기억했는데요.

 

이경선 메인 작가 : 영재 부모들이 100% 다 자신의 아이를 지지하는 건 아니에요. 아이의 유별난 행동에 적응하지 못 하는 부모들도 있지요. 뭔가에 빠진 아이는 정말 그걸 계속 되풀이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지식이 넓어지고요. 

'국내 최연소 한자사범 자격증'을 취득한 최현승 군의 경우도 아이의 계속된 질문에 부모들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죠. 곤충박사 예찬 군 역시, 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믿음이 적었는데요. 놀랍게도 심리치료 결과 예찬 군은 아이큐 140의 영재였습니다.

하지만 예찬 군 부모님의 지지도에 있어선 나무는 크고 싶은데 물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았죠. 부모는 아이가 좀 별나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렇게 부모의 벽에 부딪히면 아이의 재능은 꺾이게 돼요. 

다행히,  예찬 군 부모님은 <영재발굴단>을 만나면서 달라졌다고 할 수 있죠.

화학소년 신희웅 군의 부모경우, 참 특별해요. 청각장애인 어머니는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 넘게 희웅이의 이야기에 집중했거든요. 검사 결과 부모 지지도가 100점이 나왔어요. 그런 부모의 지지도가 영재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희웅군 부모경우, 부모가 지지도의 영재였던 거죠!"




'리틀 에디슨' 한성현 군의 아버지 역시, 아이의 질문과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성현 군을 위해 홈스쿨링을 시작한 아버지! 아이를 위한 교육을 선택했던 거죠. 

영재 육아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부모의 양육 태도라고 합니다. 그건 바로 공감과 지지도입니다.

 

 

황성준 부팀장은 영재 부모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제작진 중 한 명입니다.

황성준 PD가 제작진을 만나면서 느끼는 게 있다고 합니다.




황성준 부팀장평범한 부모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를 지지해야 할지 모르는데요. 그런 부모를 만나면서 <영재발굴단>도 어떻게 프로그램을 이끌어갈지 체계를 잡아간 것 같아요.

실제 영재를 만나보면 이 아이들이 두 부류로 나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첫째, 호기심에 넘쳐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아이인데요. 이런 아이들은 정말 산만해요. 옛날 같으면 ADHD라고 했을지도 모를 정도예요. 방송국에 와서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요.

둘째는 제작진에게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에요. 자기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거죠. 대부분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고 자기가 궁금한 질문을 계속하는 거예요. 수학영재 유찬이가 그런 사례였죠.

극과 극인 아이들인데 공통점은 있어요. '과제집착력', '승부욕', '호기심'인데...

전 이 공통점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어요. 바로 그들이 되고 싶어하는 '멘토'가 있다는 거죠.

그 첫 '멘토'가 부모님이 되는 거예요. 

 

 

유아 교육과 초등 교육에 있어 부모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재발굴단> 제작진 역시 부모의 역할을 가장 크게 두었는데요.




박재호 메인작가 : 어찌 보면 아이가 뛰어나서 스스로 하는 아이도 있죠. 하지만 부모님이 어찌 됐든 굉장한 도움을 줬다는 건 부인할 수 없어요.

 

이경선 메인작가 : 아이가 어디에 홀딱 빠졌을 때가 있는데요. 처음에는 부모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관심을 가졌을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는 본인이 빠져서 주도적으로 관심과 흥미를 끌고 가요. 그런 아이들이 영재인 것 같아요.

 

박재호 메인작가 : 우리는 공부 잘하는 아이만 영재로 보는 게 아니에요. 자기 분야에 얼마나 많이 빠져 있는지, 또 얼마나 좋아하고 열정을 가졌는지를 봅니다.

 

 

황성준 부팀장 : 그런데 아이가 특정 분야에 빠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게 바로 부모의 역할인 거죠. 아이의 지식이 확장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역시 부모의 역할이에요.




자, 그럼 여기서 그동안 출연했던 영재들의 부모를 살펴보며 영재 교육법을 알아볼까요?

 

부모들의 영재 교육

1. 아이의 이야기에 끝까지 귀를 기울인다. (화학소녀 신희웅 군의 부모)

2. 아이와 함께 질문의 해답을 찾는다. (리틀에디슨 한성현 군의 부모)

3. 자신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환경,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 (천재화가 김민찬 군의 부모)

4. 책을 너머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최연소 문화해설사 송재근 군의 부모)

5. 아이의 의사를 존중한다. (잔혹동시 이순영 양의 부모)

 

그리고 이 모든 교육법보다 가장 앞서는 게 있습니다. 바로 '사랑'인데요.

아이는 누구보다 부모에게 가장 인정 받기를 원하고 부모가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바랍니다.

<영재발굴단>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영재 교육법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결국,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육아법이 영재 교육법이라는 거죠.


자, 그럼 오지라퍼는 다음에도 더 재미난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 입니다.

요즘 아이 교육에 있어서 생각의 전환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죠. 바로 SBS <영재발굴단>입니다.

방송 후엔 늘 실시간 검색 1위를 차지하며 저 바다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흑진주 같은 아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데요. 매회 특별한 아이들을 만나는 <영재발굴단> 제작진들! 그들이 생각하는 영재란, 어떤 아이들일까요?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인터뷰 내내 쏟아집니다!

 

(왼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재원 팀장, 박재호 메인작가, 이경선 메인작가, 황성준 부팀장)

 

스튜디오 녹화가 있던 지난 목요일, <영재발굴단> 제작진을 만났습니다.

녹화를 앞두고 있지만 다소 여유로운 모습인데요. 사실, 어제 새벽까지 마무리 작업하고 잠깐 눈붙이고 나왔다고 하네요. 방송 한 편 한 편에 어린 제작진의 노고가 느껴지더라고요.


앗~ 서두 길었죠? 이제 제작진이 이야기하는 <영재발굴단> 속 영재들 뒷이야기 풀어 볼게요.

   


<영재발굴단>을 하기 전에는 '영재'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김재원 팀장.

팀장인 그 역시 초기에는 프로그램의 방향을 단순히 <스타킹> 신동 편의 확장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영재만의 아픔을 치유하고 싶었다고요. 그 역시, 메인 팀장 이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였기 때문일까요?

 

 

<영재발굴단>이 처음에는 설연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초반에는 <스타킹>의 신동 편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최근에는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성격이 달라진 것 같아요.


김재원 팀장 : 처음 기획안 쓸 때는 '<스타킹>의 신동 편을 좀 벗어나 보자, 대한민국의 대단한 아이들을 모아보자'라는 의도로 시작했어요. 강남 쪽에 '수학 영재'로 통하는 아이가 있는데. 강남 쪽 엄마들이 그 '수학 영재' 아이의 책상을 그렇게 보고 싶어 한데.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책이 꽂혔는지… 거기서 착안했어요. 

'영재들의 책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영재들의 하루는 어떨까?'란 궁금증이었어요. 사실, 단순하다면 단순한 생각일수도 있어요. 제작진도 영재를 만나볼 기회가 없었고 주변에 영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영재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거죠. 

 

이경선 메인작가 맞아요. 정말 단순하게 '스타킹의 무대를 집으로 옮겨 보자'란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 제작하다 보니 아이가 얼마나 뛰어나고 어떻게 능력을 갖췄는지 보다 중요한 게 있더라고요.

 


더 중요한 게 뭔가요?


김재원 팀장 : 아이가 똑똑하다는 걸 부모가 알게 된 뒤, 부모에게는 고민이 생겨요. 이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그런 부분이 정말 고민거리더라고요. 아이가 똑똑하다 보면 주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또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 되는데요. 이 아이가 주변에서 받을지도 모르는 상처에도 부모는 겁이 나지요. 또, 아이의 능력을 잘 키워줘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기도 하고요. 이런 고민을 남들에게 털어 놓지도 못해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요.

 

이경선 작가 : 네, 잘난 척 한다고 여기니까요.

 

김재원 팀장 : 그렇죠. <영재발굴단>도 회를 거듭하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부모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체계가 잡혀갔던 것 같아요.

 

 

<영재발굴단>을 만난 후 부모들은 만족해했나요?


박재호 메인작가 : 지금까지는 거의 만족해했죠. 부모들도 답답했는데 속을 좀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할까요? 가려운 부분을 우리가 긁어줬던 거죠.

 

황성준 부팀장 : 고민을 해결해주는 일만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열정을 응원하는 게 중요해요. 제작진이 할 수 있는 건 사실 대단한 게 아니에요. 아이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거예요. 그게 바로 방송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특히 지방에 있는 아이들이 방송 때문에 서울에 오는 것도 영향이 크더라고요. 실제로 멘티를 만난다든가, 검사를 받아본다거나 이런 부분도 부모 입장에서는 만족할 만한 부분이고요.

 


 

설연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해 온 이경선 메인작가. 

그녀 역시 3살 아이를 둔 초보 엄마라고 해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어떻게 아이와 소통해야 할지' 몰랐던 이경선 메인작가는 <영재발굴단>과 함께 엄마로 성장하고 있다고 해요.

 

출연할 아이를 찾기 위해 헌팅을 많이 다니실 텐데요. 아이를 만나다 보면 '앗, 이 아이는 다르네?'라는 영재만의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나요?


김재원 팀장 : 영재라는 게 지표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지만요. 우리 프로그램과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


이경선 메인작가 : 아이가 미술이든, 음악이든 대상이 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빠져 있는지를 보는데요. 빠져 있다 보면 지식의 깊이가 달라지더라고요. 사교육이 알려주는 지식이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고 우리도 모르는 지식의 범위까지 파고들어 가서 자기가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익혀요. 그런 아이를 봤을 때, '이 아이는 잠재력 있구나, 가능성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들이 똑똑해서 아이들이 똑똑한 경우는 별로 없어요. 오히려 부모는 평범한데, 아이가 영재이다 보니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경우 우리는 '부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 혹은 '이 아이가 성장해 가는 데 우리 프로그램이 멘토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촬영하게 돼요.

 

박재호 메인작가 :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우리가 처음 아이 집에 갔는데 아이는 제작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빠져서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이 바로 좋아해서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고 공부하는 '빠져 있는 아이들'이에요.

 


그렇게 여러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영재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경선 메인작가: 사교육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그런 경우인데요. 누가 시켰을 경우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인의 의지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잘할 것 같은 아이들은 취재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해요. 



아이가 영재면 부모도 영재이거나 아이큐가 높을 것 같다는 게 대부분의 인식이잖아요.


김재원 팀장 : 우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죠. 없진 않은데요. 어떻게 보면 아이가 뛰어나서 스스로 자신의 탐구를 이어가는 아이도 있고요. 어찌 되었든 부모가 영향을 주고 도움을 준다는 건 부인할 수 없죠. 

 

이경선 메인작가 : 아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된 계기에는 부모나 다른 사람의 영향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첫 시작 이후에는 본인이 중요해요. 아이가 빠져들어서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런 아이들이 영재가 아닐까 해요. 

 

박재호 메인작가 : 우리는 단순히 공부를 잘해야 영재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자기 분야에 얼마나 빠져 있는지, 얼마나 좋아하고 열정을 가졌는지가 중요하고요. 바로 그렇게 자기 분야에 빠져 있고 열정을 가진 아이들이 영재인 것 같아요.

 

황성준 부팀장 : 살펴보니, 자기 분야에 빠진 아이들은 빠진 분야를 열심히 파고, 그러다 보니 다른 영역까지 지식이 확장되더라고요. 


이경선 메인작가 : 사실, 그런 애들이 공부도 잘해요.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아이들이 결국 공부도 스스로 잘하더라고요. 


황성준 부팀장 : 그러니까요.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빠졌다고 무조건 나무랄 건 아닌 거 같아요.(웃음)

 


화가 민찬이와 방송 후에도 계속 연락하는 황성준 부팀장!

민찬이는 <영재발굴단> 제작진을 만난 후 영상에 더욱 관심이 많아졌다고 해요.

신발 사진과 함께 민찬이가 보내온 짧은 글. 여기에 황성준 부팀장이 답장으로 자신의 신발을 찍은 사진과 함께 "삼촌 신발 속엔 냄새가 있다"며 메시지를 보내자 민찬이가 다시 답문을 보내왔다고 해요. 이렇게!

"아니야, 삼촌 신발 속엔 추억이 있어."


 

만났던 아이들이 다 기억에 남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면요?


이경선 메인작가 : ‘유주’라는 아이가 있어요. 방송도 했는데요. 작사, 작곡에 영재성이 보인다고 한 아이였어요. 이 아이가 500편의 곡을 만들었더라고요. 그런데 음이 다 똑같아요.(웃음) 곡 만드는 일에 아이는 굉장히 심각해요. 그렇다면 이 아이는 그냥 평범한 아이일까요? 아니에요. 이 아이의 열정이 대단한 거죠. 하루종일 곡 만들 생각만 하고 계속 흥얼거려요. 스스로 결과에 만족해하고 행복해하죠. '영재다, 영재가 아니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이가 자기 분야에 몰두하는 그 순간에 행복하고 기쁘면 된다고 봐요. 자신이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려준 아이죠. 그래서 기억에 남아요.

 

황성준 부팀장 : 전 '예찬'이가 생각나는데요. 곤충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죠. 곤충 관련 책의 오류를 지적할만큼 지식이 깊었어요. 밤에 제작진이 아이를 관찰하는데… 새벽에 아이가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와서 곤충이 밤에 어떻게 활동하는지 지켜보는 거예요. 그런데 예찬이 엄마, 아빠는 제발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고 말렸어요. '예찬'이의 영재 수치는 높게 나왔는데요. 부모의 지지도는 낮게 나왔어요. 부모의 지지가 영재 교육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에피소드였어요. 


 

부모의 지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재원 팀장 : 그럼요. 영재들은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외로움을 느끼죠. 그럴 때 부모의 지지가 아이에게 큰 위로가 되고 힘을 불어넣어주지요. <영재발굴단>은 어떻게 보면 부모 반성 프로그램이에요.(웃음)

 

황성준 부팀장 : 저는 '민찬'이도 참 기억에 많이 남는데요.

 

이경선 메인작가 : 맞아요. 우리가 처음 '민찬'이 전시회 갔다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다고요. 어떻게 여덟 살이 저런 생각을 하고 이런 그림을 그리지 싶었어요. 오랫동안 '민찬'이를 만나왔어요. 9개월 동안이었죠? 

 

황성준 부팀장 : 네, 맞아요. 9개월 동안 만났는데요. '민찬'이는 다른 영재들에 비해서도 민감하고 예민했어요. '민찬'이를 만나러 집에 갔을 때였는데요. 한 번은 조명이 너무 눈부시다고 해서, 제작진이 그냥 돌아갔고요. 또 한 번은 카메라가 너무 크다고 해서 촬영을 접고 돌아갔어요. 남달랐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기다린 시간이 9개월 정도였어요. 친해지는 과정이었죠. 

 

박재호 메인작가 : 진짜, 오랫동안 촬영했어요. 촬영하는 동안 '민찬'이네 집이 이사를 갈 정도였으니요. 

 

김재원 팀장 : 어려운 조건에서 열심히 하는 아이를 보며… 어른으로 반성하게 돼요.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진짜 <영재발굴단>은 반성적인 프로그램이라니까요.(웃음)

 

 

 

제작진이 생각하는 영재란 어떤 아이들인가요?


김재원 팀장 : 저희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놀란 게 있어요. 우리나라에 뛰어난 아이들이 많다는 부분인데요. 다만, 상위 몇 퍼센트가 영재이다. 이렇게 규정짓는 건 아니라고 봐요. 우리가 생각하는 영재는 한 분야에 빠진 아이예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아이죠. 그게 바로 영재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해요. 

 

이경선 메인작가 : 영재의 특성이 세 가지가 있어요. 과제집착력, 호기심, 승부욕이더라고요. 그걸 가진 아이들은 영재가 아닐까요?


황성준 부팀장 : 영재들을 만나보면 정말 고집이 세요. 부모들이 아이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요. 어른에게도 지는 걸 싫어해요. 제작진이 맨날 9살, 10살 이런 아이들과 기 싸움을 한다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의 그런 부분까지 이해하고 안아주고 기다려주는 게 바로 어른들의 몫인 것 같아요.

 

<영재발굴단>은 지난 10월, <달에서 온 아이> '민찬'이 편으로 이달의 PD상을 받았습니다. 아이의 아픔을 오랜 시간 동안 공감해준 제작진의 수고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마음의 문을 꼭 걸어 닫은 아이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진심만한 게 없지요. 육아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게 아이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일인데요.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게 참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 같아요.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제작진이 생각하는 '우리 아이 영재 육아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여러분은 '5억 원짜리 슈퍼 버스'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전국 곳곳 구강 상태가 좋지 않은 소외 계층의 아이들을 찾아가는 <행복한 미소 치과버스>! 그 버스가 바로, 5억 원짜리 '슈퍼 버스'입니다.

물론 버스 가격이 5억 원은 아니고요~ 안을 치과처럼 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대략 5억 원 정도라고 보고 있지요. 사실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는 돈보다도 더한 가치를 가진 하나뿐인 이동 치과 병원예요. 

아이들에게 환한 미소를 되찾아 주는 버스.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를 꾸려가는 주지훈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주지훈 원장님,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에 대한 관심이 참 높더라고요. 버스 자체를 치과처럼 개조하셨던데… 운영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한 곳에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버스엔 치과의자 두 대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의료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그냥 치과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예요. 말처럼 버스를 운영한다는 게 쉽지는 않고 비용 역시 많이 들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차라리 무료 진료소를 차리는 게 낫지 않냐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진료소를 운영하다 보면 문제점이 생겨요. 진료소를 한 곳에서만 운영하면 지속성이 떨어지는데요. 한 치과에서 계속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이 커지고 그러다 보면 지속해서 운영하기가 어려워지죠. 또 지역의 한계를 갖는데요. 진료소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진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죠. 

 


혼자 무료 진료를 하시는 게 아닌가봐요.


혼자 하기엔 좀 힘든 작업이죠. 상시 활동하는 사람이 13명 정도 있고요. 중간에 왔다갔다하는 분들이 30명까지 있습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학교 선후배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무료 봉사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다른 대학 선생님도 오시고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언제부터 운영하셨어요?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자' 라고 생각해서 치과 버스를 구상했고요. 그 구상 후부터 실제로 운행되기까지는 3년 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아주 소박하게 생각했어요. 봉고차로 가볍게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일이 커진 거예요. 후원해줄 곳을 찾고 버스를 구하고 우리가 봉사갈 지역도 찾아야 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저희도 어떻게 봉사를 가야할지 잘 몰라서 헤매기도 했어요.  2012년 4월 첫 운행된 후로 지금까지 4년째 소외계층 어린이들이 있는 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1,000여 명의 아이들이 치과 버스에서 진료를 받았죠.

 

 

 

 

 
우~와! 정말, 많은 아이들을 만났네요. 그중에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면요? 


정말 많은 아이들의 구강 상태가 안 좋아요. 보호자인 어른들이 신경을 써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유아들의 치아 관리는 교육을 통해서 이뤄지고 지속적으로 어른들이 관리를 해줘야 하거든요.

어떤 친구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치아의 반 이상이 썩었더라고요. 

20대 초반인 소년소녀 가장도 진료를 하는데요. 그중 앞니가 반 정도 부러졌고 어금니도 다 망가진 친구가 있었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교정까지 해야겠더군요. 그 친구는 지속적으로 병원 방문을 해 치료를 받게 했어요. 치아 상태가 안 좋은 친구들, 안타까운 친구들이 기억에 남네요.

 

 

그런데 왜 아이들만 치료를 하나요? 


저희가 한 달에 두 번 즉, 2주에 한 번에 봉사를 갑니다. 그러다 보니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건 힘들어요. 어른들 치아의 경우에는 문제가 생기면 한두 번의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요. 보통 잇몸 문제까지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이의 치아는 달라요. 한두 번만 제대로 치료를 해도 치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어요.

또 아이들의 경우 구강 상태가 영양 섭취와 직결되기 때문에 성장과 대인관계,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죠. 한창 밝게 커나가야 할 아이들이 치아 때문에 잘 웃지도 못하고 고생하는 걸 보면서 어른들보다 아이들의 구강 치료가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찾아가는 지역은 어떻게 선정하고 어떻게 방문하나요?


처음엔 저도 방문할 지역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막막했죠. 정보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는 먼 지역까진 갈 수 없었어요. 5시간 동안 진료하고 집에 복귀해야하는데 장거리는 봉사자들에게 부담이 되거든요. 운전해주시는 자원봉사 분도 다시 돌아 와야 하고요. 물론 1년에 한두 번은 1박 2일로 기간을 길게 잡고 멀리까지 갔다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과 경기도 안에서 찾아갈 곳을 선정해야 하고… 또 정말 필요한 지역을 찾아야 하고… 그래서 처음에는 봉사 관련 단체와 손을 잡고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후엔 다문화가정 센터, 탈북청소년 센터와 연계해서 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 운행하는 데 어려운 점이나 힘든 점은 없나요?


치과 버스를 운영하는 일이 쉽지는 않더군요. 지역에 갔을 때 우리만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지역에서도 할 일이 많고 모든 지역이 두 팔 벌리고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를 반겨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걸 조율하는 일도 쉽지 않더라고요. 곳곳에서 암초를 만납니다. 충분히 치과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치료를 요구하기도 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진료 버스를 ‘혐오 시설’이라며 주차 공간을 내주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진료로 인해 힘들다기보다는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들의 냉대 때문에 어려움을 겪죠.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그런 냉대보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거예요. 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로 받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요?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이 있죠, 저도 힘든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아마 주변의 도움이 없었으면 공부를 계속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저도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를 운영할 수 있는 거예요.

사회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또 다른 따뜻한 사회를 만들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그런 믿음이 치과 의사들이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에 오르는 힘이 되는 거예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는 한 아마 치과 버스는 계속 운영이 될 겁니다.

 

 

 


치료만큼 예방도 중요하니, 이 질문을 던져봅니다. 아이들의 올바른 치아 관리를 위한 생활 습관을 추천하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양치질을 잘 하는 게 중요하죠. 보통 아이들 경우 양치질이 귀찮아서 2~30초 정도 칫솔질을 하다가 거품이 나면 딱 끝내죠. 양치질 습관을 잘 잡아야 합니다. 거품을 여러 번 뱉어내고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3분에서 5분 이상 해야 제대로 된 양치질이죠.

그리고 치아 표면뿐 아니라, 치아 사이사이 솔이 들어갈 수 있도록 양치질 합니다. 거기에 음식물 끼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중요하죠.

마무리는 치실이 좋은데요. 아이들은 치실을 사용하는 게 힘드니까 어른들이 도와줘야겠죠.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치과 버스를 1~2대 정도 늘리고 거점 병원을 만들고 싶어요. 그때는 조금씩 연령층을 높여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분들에게도 도움을 드리고 싶네요.

또 개인이든, 기업이든 노력을 해서 함께 조금 더 밝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에게 밝은 미소를 돌려주고 싶은 치과 의사 주지훈 원장!

착한 일은 해피 바이러스라고 하잖아요. 주지훈 원장으로 인해 해피 바이러스가 퍼지고 많은 이들이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10여명에서 시작했던 <행복한 미소 치과 버스>가 지금은 30명이 동참하는 버스로 바뀐 거 보면 말이죠~ 점점 더 많은 해피 바이러스가 번져가길 바라봅니다!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바둑계 전설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아마 열 명이면 열 명 다 이 분 성함을 말할 거예요. 

네, 맞습니다. 바로 '조훈현 국수'님. 유일하게 '國手(국수)'라고 칭해지는, 바둑계의 '전설'.

오지라퍼가 지금 조훈현 국수님을 만나 뵈러 갑니다.

 

이 시대 최고의 승부사, 조훈현 국수

 

세계 최다승(1,935승), 세계 최다 우승(160회) 기록을 보유한 이 시대 최고의 승부사!

변방으로 평가받던 한국 바둑을 세계 바둑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장본인!

그리고 최근 한·중·일 원로 바둑대회에서 우승하며 저력을 보여준 바둑계의 살아 있는 '전설'!

이 모든 수식어가 의미하는 바로, 바로, 바로! 조훈현 국수입니다!


여기는 어딜까요? 오늘 인터뷰는 조훈현 국수님 댁에서 하기로 했는데요.

나오시는 모습에서부터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옵니다.

최근에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이란 책을 펴내고 스케줄이 꽉꽉, 찼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자~ 그럼 책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죠?

 

 

녕하세요. 조훈현 국수님, 오랜만에 책을 쓰셨는데요. 그런데 기존엔 바둑에 관련된 책을 쓰셨는데 이번엔 인생에 대해서 쓰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책을 써야겠다'라고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좀 일찍 쓰게 된 것 같네요.

2년 전에 갑자기 폐가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사진을 찍어 보니 폐가 새하얀 거예요. 안 좋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암이면 손도 쓸 수 없고 균이면 약으로 고칠 수 있다고 했지요. 약을 2주 동안 먹어 보고 또 정밀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2주 동안 경과를 기다리는데… 많은 생각이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었는데, 제가 남긴 게 하나도 없더군요. 뭔가 살아온 인생을 정리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도 들고요.

그래서 제가 수많은 경기를 치러오면서 느낀 점, 스승님께 배운 점, 바둑판 위에서 배운 정신 이런 걸 인생 후배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배웠다고 내가 느낀 점을 공유하고 싶었던 거죠.

 


스승님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어떤 분이고 어떻게 만나셨나요?


제가 바둑을 시작하고 바둑으로 선진국인 일본으로 유학 떠날 결심을 했는데요. 그때 나이가 겨우 열 살이었어요. 그러니 제가 결심했다기보다는 저희 부모님이 결심했다는 게 맞겠죠. 그 당시 바둑계 대부가 조남철 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의 일본 스승이 바로 기타미노입니다.

한국에서 바둑을 배운 사람은 모두 그분 제자로 들어갔죠. 저도 원래 그분의 제자가 될 예정이었고요. 그런데! 저를 일본에 데리고 가신 분이 일본에서는 기타미노 보다 세고에 겐사쿠라는 분이 더 훌륭하다고 평이 나 있다며 그분에게 데리고 간 거예요.

그렇게 해서 스승님을 만났는데… 그때 스승님 나이가 96세였습니다. 전 열 살이고요.

원래 제자를 안 받으셨는데 그 나이에 한국에서 온 제자를 받으신 거예요.

나중에 그 분 말씀이 한국에서 넘어온 바둑 문화를 다시 한국에 돌려주고 싶었대요. 그 당시엔 일본이 바둑계를 휘어잡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바둑 기술과 문화를 한국에 돌려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큰 어른이신 거죠. 자신의 이익보다 더 큰 걸 생각하는….

 


열 살 때 홀로 일본에서 유학했는데요. 언뜻 생각해도 힘들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거 같아요.

그냥 나는 바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바둑 외에 다른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거예요.

 

 

어떻게 바둑을 시작하게 됐나요?


제가 어렸을 땐 사람들이 바둑을 좋게 생각하진 않았죠. 지금이야 바둑을 두고 머리싸움이다, 두뇌 활동에 좋다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바둑'을 노름이라고 해서 '기박'이라고 했죠.

아버님이 그 당시 일본에 유학을 가서 바둑을 배우셨어요. 아버님이 바둑 두는 걸 옆에서 구경하곤 했는데, 제가 소질이 있다고 느끼셨는지 동네 기원에 데리고 다녔어요. 그때 기원 원장이 '바둑에 재주가 있으니까 키워봐라' 라고 조언을 해서 서울로 올라와 바둑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가 겨우 다섯 살이었어요.

진로가 다섯 살 때 정해진 거죠.

 

 

 

바둑 경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음… 기술력도 필요하지만 가장 기본은 '체력'이에요. 프로들의 실력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 흐름이 많이 달라지죠. 결국 나중엔 집중력, 체력 싸움이 됩니다. 열 시간 동안 경기하면서 얼마큼 끝까지 버틸 수 있냐가 관건인 거죠. 

한번은 바둑판 앞에 앉아서 열두 시간 동안 경기한 적도 있어요. 하루종일 바둑판만 바라보며 머리싸움을 하다 보니까 나중에 경기가 끝났을 때는 머리에서 열이 난다고 할까요? 머리가 뜨끈뜨끈하더라고요.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이 떨어지고 정신력이 떨어지면 결국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이건 바둑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어떤 운동도, 공부도, 회사 일도 체력부터 제대로 쌓아야 합니다.

체력이 떨어지면 좋은 아이디어가 안 나와요. 체력이 국력이라고 하죠. 전 그 말 공감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생존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만의 바둑을 두고 있어요.

이 바둑에서 흐름을 잡기 위해선 체력을 강하게 키우세요.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바둑판을 인생에 많이 비유해요. 체력 외에 바둑과 인생에서 필요한 게 뭘까요?  


세상사를 바둑판이라고 생각한다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반드시 해결됩니다. 해결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근성만 있으면 됩니다. 그 근성이란 바로 생각입니다.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성,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상식, 체계적인 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 모든 걸 포괄하는 개념을 저는 '생각'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세상사가 바둑판과 같다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당장은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악화될 것처럼 보이지만, 의지를 갖고 바라보면 해결책은 반드시 있습니다.

물론 그 해결책이라는 게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일 수는 없죠. 하지만 최상이 아니라면 최선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30대 때인 한창때 제자를 두었. 바로 이창호 기사인데요. 그렇게 일찍 제자를 둔 이유가 있나요? 


제자를 두는 건 자식을 두는 것이랑 똑같아요. 스승에게 인성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가 됐다고 해도 스승에게 받은 기술과 은혜를 스승에게 돌려줄 수는 없어요. 그러면 그 은혜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전 그게 바로 제자를 두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스승에게 받은 정신을 대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창호랑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인성으로도 욕을 안 먹고 사니까… 된 거지!

 

 

이창호 기사와의 운명적인 대결을 빼놓을 수 없어요. 제자를 너무 잘 키우신 거죠. 제자에게 타이틀을 모두 빼앗기게 되는데… 그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19952, 마지막 남은 대왕 타이틀을 빼앗기던 날, 20년 만에 무관이 된 거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하리만치 홀가분했어요. 정상에 오를 때는 정상만 보며 올랐고, 오르기만 하다 보니 진다는 걸 몰랐는데…. 하나둘씩 뺏길 때는 불안에 떨었는데 더이상 아무것도 잃을 게 없으니 오히려 편해졌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다시 올라가면 되는 거니까요. 

후 더 열심히 대회에 참가했어요. 거의 사흘에 한 번꼴로 대회에 나갔죠. 그리고 1998년 국수전에서 다시 창호를 만났는데… 그때 제가 이겼죠? 하하하

 

현실에 불만을 품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더 좋은 것이 있을 거라고 대부분 막연하게 생각을 하죠. 하지만 제가 깨달은 건 바로 지금 여기가 최고의 환경이라는 거예요.

내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받아 들여야 새로운 문이 여기서부터 열린다는 거죠.

 

 

 

자제분들은 바둑을 하나요?  


아뇨. 바둑 못해요. (왜요? 안 가르치셨어요?) 이 정도 환경이면 안 가르쳐줘도 스스로 알아야 해요. 아빠가 바둑 둘 때 옆에 와서 몇 수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그렇게 스스로 바둑을 터득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거 보면 바둑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바둑에 재능도 없는 거고 대신 다른 거 잘하면 되니까….

사람들은 행복이 돈이나 명예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튼튼한 '자아'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그럼 튼튼한 '자아'는 어떻게 만드냐, 바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제대로 찾는 거죠.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찾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바둑을 억지로 권하진 않았어요. 관심이 있으면 이 정도 환경에선 스스로 했을 거거든요.

 


마지막으로 청춘들에게 한마디 하다면요?


원칙과 도덕을 지키며 살아갔으면 해요. 요즘 참 편법이 횡행해서 말이죠.

생각은 나무처럼 가지를 뻗으며 자라요. 한번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면 계속 그 방향으로 자랄 수밖에 없죠. 그래서 간단한 일일지라도 원칙과 도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주가 덕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어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바둑계 전설보다는 인생의 스승을 만나고 온 기분이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훈현 국수님 댁의 마당에서 만난 고양이 두 마리~

고양이 키우시냐고 물었더니 길고양이랍니다. 밥을 계속 줬더니, 새끼까지 낳고 집 담장을 넘나든답니다. 따뜻한 국수님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돌아가는 오지라퍼를 향해서 눈인사를 보내는 고양이. 그럼,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다음번에도 알찬 인터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오지라퍼입니다!

찌는 듯한 더위 앞에 맥도 못 추고 요즘 같은 날씨에는 정말 바다로 훌~쩍 떠나고 싶은데요. 망망대해에서 수영하며~ 음식을 먹으며~ 며칠을 그렇게 지내고 싶은데… 실제 그 생활을 하신 분이 계시죠.

바로, 국내 최초로 단독 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김승진 선장입니다.

13m 요트로 4만1,900여km 지구 한 바퀴를 돈 그를 만나는 두 번째 시간! 

바다 위에서 살았던 209일간, 그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오지라퍼가 직접 김승진 선장님을 만나봤습니다.




"홀로 요트를 타고 파도와 폭풍우를 숱하게 만났지만 어느 항구에도 기항하지 않고

육상지원팀으로부터 기상 정보를 받은 것 말고는 어떤 원조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태평양, 남극해, 대서양 인도양을 지나 세계일주를 한다."

바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입니다  

 

김승진 선장은 세계에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공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를 국내 최초로 성공했습니다.

김 선장은 후지산케이TV 외국인 1호 정사원으로 일한 프로듀서 출신입니다. 30대 후반에 한국의 한 프로덕션에 스카우트돼 다큐멘터리 PD로 일하다 프리랜서 PD로 전향했는데요. 그 무렵 훌쩍 떠난 뉴질랜드 여행에서 처음 요트를 접했고 이내 그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합니다.

 

※ 인터뷰 질문지는 <삼성화재 트위터>를 통해 받았습니다.

 

지난 인터뷰 살펴보기▽

[삼성화재 세상을 만나 봄 인터뷰] 9편 :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 항해 김승진 선장, 그가 지구를 만나는 법 1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출발했습니다. 출발하자마자 내내 잠을 자셨다고 지난번에 말씀하셨는데요. 생각보다 평화로운 출발이었나 봐요? 


직접 준비 기간은 1년 정도 걸렸죠. 그런데 혼자 힘으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는 불가능해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분들 도움으로 요트 장비를 보강하고 개조했습니다.

요트 세계일주는 일반적인 항해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개조를 꽤 많이 해야 해요. 일단 발전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게 태양에너지를 전력화시키는 장비죠. 이번 일주에서 태양광 충전 장치는 국산 장비로 설치했어요. 단 한 번의 고장 없이 아주 훌륭했어요. 문제는 '펄링(세일을 말았다가 폈다 하는 장비)'이었죠. 출발 전 모든 장비를 점검하고 불필요한 것은 교체했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펄링은 교체하지 못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출발한 지 겨우 2주… 태평양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펄링이 부러진 거예요.

스테인리스 철을 찾아서 대충 성형해서 부러진 부분을 접합시켰어요. 고치고 나니 펄링의 길이가 짧아졌습니다. 지금도요. 하하.

 

내 뜻과 다르게 '세계일주'가 실패로 좌절될까 걱정했죠. 일 년을 준비했는데 겨우 2주 만에 실패로 돌아가면 얼마나 준비 기간이 아깝고 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어요!  

도와주신 분들 얼굴 떠올리면서 두 달 동안 요트만 계속 고쳤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2개월 후에는 태풍에도 무사한, 거의 완벽한 요트로 만들 수 있었죠. ^^*

 

 

(질문자 ID: 길봉 님)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일상이 가장 아름다웠어요. 특별히 어떤 지점이 아름답다! 그게 아니라… 그냥 배 위에서 보내는 일상 자체가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거의 매일 저녁 노을을 봤습니다.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안심, 내일에 대한 기대감! 노을을 바라보며 매일 매일, 행복한 감정을 느꼈어요. 일찍 저녁을 먹고 바닷물로 샤워하고 바다 위 노을을 감상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시간이었죠.

 

 

 

김승진 선장님이 찍은 풍경 사진 중엔 유독 일몰 사진이 많다.

바다 위로 사라지는 저녁해를 보며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해 매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는 김승진 선장!

하루를 무사히 마감할 수 있는 기쁨. 그 감사한 마음이 저녁노을을 더 빛나게 보이게 한 건 아닐까?

 

(질문자 ID: 아싸 님) 케이프혼을 찍었을 때 어떠셨어요?


출발하기 전 '케이프혼'의 등대를 촬영하라는 미션을 받았어요. 

케이프 혼은 '선원들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놓은 지역이에요. 최대 10m의 파도, 100km/h가 넘는 바람이 자주 부는 극한의 바다인 거죠. 그런데 제가 도착한 날은 날씨까지 안 도와주는 겁니다. 그래도 미션인데 해야죠. 힘겹게 가서 등대 사진 촬영에 성공했죠. 그런데 육지지원팀이 날씨가 안 좋아서 '등대 사진은 찍지 말라' 말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벌써 등대까지 찍고 왔는데!  하하하~

 

'케이프혼'을 갔다 온 사람에게만 주는 귀걸이가 있대요. 거기 통과할 정도의 뱃사람이라면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해 중에 사고라도 당하면 수습을 부탁한다는 의미를 가진 귀걸인 거죠! 왼쪽 귀에 달고 있으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통과한 모험가이고 오른쪽 귀에 달고 있으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통과한 모험가라는 뜻이라네요.


 

 

요트 위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금방이라도 요트를 덮칠 것 같다.

이런 파도를 모두 이겨냈다니 '김승진 선장'의 도전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새삼 실감 난다.

 

 

케이프 혼이나 중요지점을 통과했을 때 세리모니는 따로 했나요?


처음 적도를 통과할 때는 밤이었어요. 카메라를 다 설치해놓고, GPS 촬영도 해놓고 딱 통과한 다음 술 한잔 했어요. 자축 주였죠~ 출발 전 럼주 하나를 선물 받았는데… 기념으로 그 럼주와 맥주를 한잔 했죠. 그런데 나중엔 얼굴이 새빨개져서 한참 동안 취기가 안 가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질문자 ID: 슈가걸 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요. 유빙을 만났을 때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실제론 어떠셨나요?


항해하면 위험한 순간이 찾아오는데요…. 가장 섬뜩했을 때는 남극해에서 유빙을 만났을 때예요.

'사면유빙'이랄까요? 어디를 봐도 유빙 천지인데…. 순간 방심하면 휘웅~.

 

 

 

'사우스조지아 섬' 주변에서 발견한 유빙들. 남극해의 유빙은 세계일주의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유빙을 발견한 경이로움 때문에 일부러 다가갔다는 '김승진 선장'. 그는 천상 모험가다.

 

큰 유빙의 경우 그 지름만 해도 400~500m에 달해요. 그 위에서 사는 동물들도 있고요.
부딪힐 경우에 배 파손은 물론, 목숨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유빙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날이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거기에 안개까지 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코앞까지 다가온 유빙을 발견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위험한 상황인데도 가슴이 막 뛴다는 거예요. 웃기죠?

 


(질문자 ID: 슭곰발 님)  선장님을 계속 따라오던 '이리와'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물론 보고 싶죠. 얼마나 정이 들었는데요. '이리와'는 앨버트로스라는 새예요. 날개를 펼치면 정말 크죠. 새 중에서도 가장 큰 새에 속할 거예요. 방송에는 '이리와' 한 마리만 나왔는데… '이리와', ' 저리가', '비켜', '순악질', '누더기' 등 여러 마리가 있어요. 그 무리가 계속 요트를 쫓아온 거죠. 재밌었어요.  

특히, '이리와'와 정이 많이 들었는데…수많은 바닷새 중 검은 무늬와 점으로 '이리와'를 구별했죠. 신기하게도 갑판에 나가 제가 날갯짓하듯 팔을 흔들면 '이리와'가 날아와 배 뒤편에 앉았어요. 소름 끼칠 정도로 저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잘 됐어요. 

폭풍이 치는데도 '이리와'가 제 요트 주위를 빙빙 돌았어요. 그 폭풍 속에서도 제 주변으로 내 앉으려고 몇 번씩 노력했죠. 요트를 쫓아 오려고 안간힘을 써요. 그러니… 정이 안 들겠습니까?  

 

 

 

그의 항해에서 유일한 동행자였던 새들. 멸치 하나도 나눠먹는 사이라고 할까~

작은 거 하나라도 나누는 그의 넉넉함이 많은 친구들을 배로 불러 모은 것 같다.

 

언제까지 '이리와'와 여행을 다니셨나요?


태평양에서 만나서 대서양, 인도양까지 계속 쫓아 왔죠. '이리와'는 약 2개월 이상, 항해의 3분의 1정도 넘는 기간을 함께했어요. 적도 지방을 넘어가면 앨버트로스도 날씨 때문에 못 쫓아오거든요. 시한부 만남인 거죠.

헤어지기 전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풍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아껴두었던 고기 캔 한 통 전부 다 줬어요. 계속 달라고 '꽥꽥' 거려서 웃다가 또 한 통을 땄죠. (요트 위에서 고기 캔이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 걔들이 아는지 몰라~) 걔들이야 물고기 잡아서 먹으면 되니까요. 

적도까지 북상하니까 3일 쫓아오더니 안 오더라고요.

 



7개월간 요트 위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살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자, 선장님은 무인도에 간다면 무엇을 챙기시겠어요? 단 세 가지만 챙길 수 있습니다.  


서바이벌의 의미로 물어보신 거라면 칼, 로프, 비닐봉지를 챙겨가겠습니다.

 


비닐봉지요?


비닐봉지 하나 있으면 집도 지을 수 있어요. 생존하는 데 전혀 지장 없어요. 커다란 비닐봉지가 없어도 뭐… 칼, 로프만 있다면 집을 지을 수 있긴 하죠. 칼만 있으면 작살을 만들 수 있으니 음식도 문제없어요.

 

 

 

 

세계일주를 하다 보니 적도에선 더위를, 남극해에선 추위를~ 모든 기상이변을 요트 위에서 만났다!

50대라는 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체력이 강한 김승진 선장.

분명 30대인 오지라퍼 보다 체력이 좋을 것 같다~

 

 

(질문자 ID: 싱잉 님) 20대 청년들이 김승진 선장님과 같이 요트 혹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일주에 도전한다면 조언해주고 싶은 건 어떤 것인가요?~^^


조언이라고 하면 좀 건방진 것 같고요. 같은 지구에서 동시대에 살아가는 동반자나 친구로 이야기하자면 20대 때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건 다 하세요. 지구는 물방울이에요. 아름다운 별이죠. 우리는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거예요. 아낌없이 사랑하세요. 아낌없이 주변을 사랑하고 하고 싶은 걸 모두, 하다 보면 인생의 목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을 즐겁게 살아야 미래도 즐거운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두 가지를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어요. 무기항 세계일주를 했다면 이번엔 기항세계일주, 육지의 항구를 들러가는 거죠. 물론 한 번 해봤는데요…. 이번에 혼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많은 사람에게 이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의 즐거움을 너무 몰라요. 어떤 국민보다 열심히 살잖아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항세계일주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요2~3척 정도 준비해서 릴레이 기항세계일주를 준비하고 싶고요. 또 다른 하나는 무기항 완주를 했으니까. 이번엔 기록면에서 다시 한 번 완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어떤 위기에서도 도전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김승진 선장!

망망대해에서 외롭지 않았냐는 오지라퍼의 질문에 한 번도 외로운 적이 없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요. 오히려 하루하루가 즐겁고 기대됐다고 합니다. 김승진 선장을 만나고 하나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는 분명 뼛속까지 천상 모험가이죠. 그래서 그의 모험은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거죠! 다음엔 어떤 모습으로 김승진 선장을 마주할지 벌써 기대됩니다. 

 

사진 제공: 김승진 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