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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6년, 독일에서 특별한 학교가 문을 엽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그 시절, 전쟁에 따른 부상으로 시력을 잃은 장병들이 많아지자 그들의 눈과 발이 되어 줄 안내견을 배출하고자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명맥은 전 세계로 퍼져서 현재, 대한민국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올해는 그 최초의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활동한 지 100년이 되는 해로써 이를 기념하고자, 오늘은 한국 안내견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 안내견 훈련사들을 만나보겠습니다.



날씨가 화창한 4월, 안내견 훈련사들을 만난 곳은 분당의 한 번화가였습니다.

오지라퍼가 찾아간 날도 한 백화점 주변에서 안내견의 도보 훈련이 한창이었는데요. 


3명의 훈련사가 훈련을 받는 안내견들과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횡단보도도 건너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안내견학교 안에서도 많은 훈련이 이뤄지지만 안내견에게는 이렇게 실제 거리로 나와 여러 상황과 부딪히면서 진행하는 훈련이 무척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안내견 훈련은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살아 있는 역사라 불리는 박재만 책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천직이 되다

 

 

안내견학교에서 근무한 지 20년이 됐다고 들었어요. 어떤 인연으로 안내견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하긴, 1996년 8월부터 일했으니까 정말 딱 20년 됐네요.

처음 안내견학교의 문을 두드린 건 1996년이었어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죠.

1996년 봄 정도 되었을까요? 서울에서 수원 가는 열차 안에서 안내견을 처음 봤어요. 

이름이 '뷰티'였는데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졸업한 첫 안내견이었죠. 

 

그때 '뷰티'의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당당하고 멋있게 지하철 내리고 계단을 찾아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죠. 

 

그런데 '안내견학교'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공고가 난 거예요. 그래서 지원을 했고 그때부터 안내견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 같네요.

 


훈련을 맡으신 20년 동안, 안내견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죠?

제가 전문적으로 안내견 훈련을 맡게 된 건 2002년부터예요. 훈련을 맡은 지는 정확히 15년이 되지요.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죠. 먼저 가장 피부로 와 닿는 건 주변의 시선이에요.

예를 들어 10년 전만 해도 안내견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면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어요. '큰 개가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닌다, 사람을 물면 어떡하냐, 아무 데서 배변을 보면 어떡하냐' 등등.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많은 분이 알아보시고, 오히려 어떤 엄마는 자녀에게

직접 설명도 하시더라고요. 안내견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안내견에 대한 에티켓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고요.

 

그런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자리 잡았다고 할까요?

놀라운 발전이죠. 물론, 아직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당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그 부분은 참 아쉽죠. 

 


안내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많아 달라졌다는 이야기네요.

확실히 달라졌죠. 조금 전에 말씀드린 출입에 관한 이야긴데요.

훈련사들이 식당 문 앞에서 직원들과 이를 벌이고 있으면 손님들이 오히려 저희 편을 들어주세요. 정말 고맙죠.

 

직원들은 손님들이 불편하기에 안내견은 출입할 수 없다고 하는데… 손님들은 '안내견 출입을 거부하면 안 된다'라고 오히려 저희 편을 드니까 말이죠. 저희 손을 잡아 주시고 응원해주는 시민들도 계셔서 든든하기도 하고 또, 저 같은 훈련사가 안내견 문화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탠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죠.

 

장애인복지법 40조 3항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 또는 훈련 자원봉사자가 대중교통수단, 숙박시설, 공공장소 등에 출입할 때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한 경우, 장애인복지법 제90조에 따라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바꾸다

 

 

훈련 방법도 20년 전과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옛날에는 반복 훈련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동기부여가 명확하지 않으면 안내견들이 힘들어해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공부든, 일이든 이유가 없으면 재미없고 오래 하기 힘들잖아요. 

 

지금은 훈련이 놀이 형태로 바뀌었어요. 재밌게 훈련하고 또 그 훈련을 놀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죠. 최근엔 '클리커 훈련법'을 쓰고 있어요.

 

 

클리커 훈련법

'클리커'는 누르면 '똑딱'하는 소리가 나는 훈련 도구입니다. 훈련받는 예비 안내견들이 올바로 행동할 때마다 훈련사들은 손에 든 자그마한 클리커의 버튼을 눌러 '똑딱' 소리를 낸 후 칭찬의 의미로 사료를 줍니다.

 

훈련사의 기분 상태 등에 따라 음정이 달라질 수 있기에 안내견이 잘하고 있다면 동일한 소리를 내는 클리커로 신호를 줘서 칭찬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안내견들은 클리커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잘했다고 해주는구나, 잘해서 또 칭찬을 받아야지'라고 훈련에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안내견학교가 국내의 안내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처음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겠어요.

2002년부터 제가 본격적으로 훈련사 생활을 할 때도 어느 정도 훈련 체계가 잡혀 있었어요. 정말 힘들었던 분들은 제 위의 선배들이죠. 

1993년도에 안내견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 외국인 안내견 훈련사가 훈련 고문으로 계셨어요. 

 

거기다 훈련 기술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 후에 선배들이 뉴질랜드에 연수를 받고 오면서부터죠. 3년에서 5년 정도 뉴질랜드 안내견학교에 파견 나가서 훈련 기술을 배워왔고요. 그 후로도 틈틈이 6개월씩 외국의 선진 기술을 배웠지요.

 

사실 그때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어요. 안내견 훈련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다른 나라에 요청을 자주 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거절당했어요.

 


어머! 왜요?

안내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낮을 뿐만 아니라 보신탕 문화가 있는 나라라고 거부하더라고요. 안내견 문화가 정착될 수 없다고….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유일하게 허락해준 거죠. 뉴질랜드 안내견학교에서 훈련 기술을 배워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만의 훈련기술을 만들었어요. 안내견을 훈련하기 위해선 먼저 사람이 훈련되어야 했거든요.  

 

그렇게 어렵게 훈련을 받아 온 인력이 또 다른 인력을 키우고… 지금은 오히려 일본, 대만 등 다른 나라의 훈련사들이 배우러 오죠.

예전 뉴질랜드의 안내견학교 역할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아시아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덕분에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그렇죠. 안내견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많이 자리 잡았죠. 불모지에서 시작했는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안내견들은 60두 정도 되고, 그만큼 안내견의 위상도 제법 높아졌죠.

무엇보다 법적인 보장도 잘 되어 있어요. 이런 기능들이 잘 되다 보니까 빨린 안내견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아! 여기에 성숙한 시민 문화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네스를 잡는다

 

 

요즘 같이 화창한 봄 날씨엔 훈련할 기분이 나겠어요. 훈련사의 하루는 어떤가요?

훈련사의 하루라… 집에서 아침 7시에 나와서 아침 8시까지 학교로 출근해요.

아침밥을 먹이고 훈련견들과 함께 훈련 장소로 이동하죠. 약 40곳 정도 훈련지가 있어요.

 

계절별로는 여름철은 그늘이 많은 곳, 겨울철은 햇볕이 따뜻한 곳으로 나뉘고,

난이도별로는 산책로 같이 보행만 하는 곳, 시장같이 번잡한 곳, 자동차 같은 장애물이 많은 곳으로 나뉘죠. 중간에 휴식도 취하면서 오후 6시까지 훈련을 합니다.

 

한 마리를 5시까지 훈련하는 건 아니고 여러 마리가 돌아가면서 훈련하죠.

훈련사들은 계속 밖에서 훈련하는데… 훈련견들은 1시간 훈련하고 3시간 정도 쉰다고 생각하면 돼요. 어쩔 땐 쉬고 있는 개들이 부럽다니까요.(웃음)

 


온종일 밖에서 일하면 힘들겠어요.

그래도 요즘 같은 봄철에는 훈련하기 딱 좋죠. 이제 여름, 겨울이 되면 힘들겠지만….

한여름에 탄 얼굴이 열심히 일한 훈장이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더울 땐 개가 힘들까봐 더위를 피해 지하로 들어가요. 

가까운 분당 지역이 여름엔 가로수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자주 훈련하고 있어요.

 

겨울은 추워서 힘드니, 그럴 땐 히터가 따뜻하게 나오는 사무실이 그립죠.

그래도 일하는 내내 훈련견들이랑 붙어 있어 외롭지 않아요.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을 분양받을 때 어떤 점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줄 아세요?

 


글쎄요. 전보다 자유롭게 도보할 수 있게 된 점일까요?

그분들은 흰지팡이만으로도 도보를 잘하세요.

안내견을 분양받을 때 가장 좋았다는 게 이제부터 혼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안내견은 눈이 되어줄 뿐 아니라, 친구가 되어주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훈련사들에게도 마찬가지죠. 

 


직업병이 있을 것 같아요.

거리에서도 강아지들에게 말을 건다는 점?(웃음) 농담이고요. 가끔 왼쪽 어깨가 아파요.

늘 하네스를 왼손에 잡고 걸으니까요.

 

처음 훈련을 시작한 아이는 엄청나게 활동적이어서 훈련사와 힘겨루기를 하며 보행을 해요. 그렇게 몇 년씩 힘 싸움을 하다 보니 왼쪽 어깨가 아프더라고요.  

 


보람도 있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보람없이 어떻게 20년 가까이 같은 일을 하나요.

내가 훈련 시킨 훈련견이 안내견이 되고 시각장애인들과 만나 행복한 하루를 보낼 때와

처음엔 말썽만 피우던 훈련견이 여러 과정을 통과하여 시각장애인 파트너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 살아갈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안내견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요. 내가 훈련한 안내견으로 인해 생활이 달라졌다고 파트너들이 이야기할 때도 보람을 느끼죠.

 

시각장애인과 나란히 걸으면서 안내견이 기분이 좋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을 보면 훈련사로서 책임감이 느껴진답니다.  

 

 

예비 안내견 10마리를 훈련하면 그 중 오직 3마리 정도가 안내견으로 완성됩니다. 이 30% 확률을 뚫기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와 훈련사들이 땀을 흘리며 노력하는데요. 다음 편에는 어떤 과정을 통해 안내견이 탄생하는지 박재만 훈련사와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