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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 마중하는 꽃이 있다. 창덕궁 후원과 낙선재 사이의 능수벚나무다. 여느 벚나무와 달리 꽃자루가 버드나무 가지처럼 늘어진다. 궁궐의 꽃담과 어울려 일품이다. 어영부영하는 새 꽃이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는 봄꽃이 유독 빨리 다녀갔다. 금세 매화가 지고 또 금세 목련이 지고 또 금세 벚꽃이 졌다. 벚꽃엔딩은 벚꽃의 끝이 아니라 봄꽃의 끝인 양하다. 여행도 일이다. 사는 게 그리 바쁘다. 보고픈 꽃도 못 보고 보고픈 사람도 못 보고 산다. 그래도 살아진다. 꽃 진 자리에 초록이 돋고 열매가 자라는 법이다. 


꽃 지고 나서 가는 마을이 있다. 예산의 대흥마을이다. 

창덕궁 능수벚나무에게 봄 마중 간다면, 대흥마을에는 봄날과 어울려 놀러간다. 



대흥마을의 전경


꽃이 진다고 봄마저 질까. 대흥마을에 갈 때는 장항선 기차를 탄다. 간이역을 촘촘하게 돌던 기차는 그 많던 간이역이 사라진 지금도 꿋꿋이 달린다. 온양온천역을 지나고 신례역을 지나 예산역에 내린다. 역 앞에서 대흥 가는 버스를 탄다. 시골 할머니들 수다와 뒤섞여 흔들린다. 곧 창밖으로 호수가 보인다. 예당저수지다. 사람이 만든 거대한 물웅덩이도 나이를 먹으니 호수란 말이 어울린다. 예당호에는 물속으로 뿌리 내린 버드나무가 운치 있다. 벚꽃 달린 능수벚나무는 아닌데 연두빛이 꽃처럼 곱다. 


응봉을 지나 대흥에서 내린다. 대흥마을은 처음 듣는 이도 이미 알고 있는 마을이다. 우선 슬로시티 마을이다. 지난 2009년에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대부분 '인증'이 개발을 의미하는데 대흥마을은 단단하다. 슬로시티가 되고 새로 생긴 건물은 단층의 황토집, 방문자센터 딱 하나다. 사람들은 여전히 슬로(slow)하게 산다. 우선 방문자센터에서 지도 두 장을 챙기길 권한다. 하나는 느린꼬부랑길 지도다. '느린꼬부랑길'은 세 구간이다. '옛이야기길'은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군을 공격할 때 배를 맨 1,000살의 느티나무가 있고, 의좋은 형제 이성만·이순형제길이 있다. 


의좋은형제마을을 상징하는 의좋은형제 동상


여기서 '의좋은형제길'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형은 아우의 볏단이, 아우는 형의 볏단이 더 작아 보여 밤새 서로를 위해 볏단을 옮겼다는 바로 그 이야기다. 교훈 섞인 동화가 아니라 조선 세종 때 대흥마을에서 있었던 실화다. '느림길'에는 예산 유일의 동헌인 대흥동헌이 있다. 동헌 마루150에 앉아 쉬노라면 부귀영화가 무심하다. 동헌 앞에는 또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아래 조선 시대 세운 효제비가 '의좋은형제'를 기리는 증거다. 사람뿐일까. 대흥마을에서는 나무도 돈독하다. '사랑길'에는 몸속에 느티나무를 품고 사는 700년 은행나무가 있다. 년을 같이 살아 이제는 사랑나무라 부른다. 


느티나무 품은 은행나무



그 사이로 고샅길의 투박한 정감이 깃든다. 사랑길의 반환점에서는 누구나 걸음을 멈춘다. 예당호 전망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사랑길 반환점에서 본 예당호



꽃 진 봄날이 못내 아쉽거든 방문자센터에서 나머지 지도 한 장을 챙겨들 일이다. 손바닥정원지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보물 지도다. 대흥마을은 집집마다 정원을 가꾼다. 그리고 정원이 예쁜 집을 골라 지도를 만들었다. '가위손의 덩쿨장미 정원'은 영화 <가위손>에 나오는 정원처럼 주인장의 손길이 나무마다 배어 있다. '개구리가 있는 연못'은 제초제를 쓰지 않았더니 개구리가 알을 낳아 그리 부른다. '진회씨의 하늘정원은 온갖 골동품'이 가득하다. 솟대정원에는 꽃들과 솟대가 조화롭다.

 


손바닥정원_가위손의 덩쿨장미정원


느린꼬부랑길이나 손바닥정원길에 나오지 않는 마을의 명소도 여럿이다. 옛이야기길의 배맨나무와 힐링체험장을 지나 첫 번째 오른쪽 오솔길로 접어든다. 옛이야기길과 무관한 길이다. 다랑이 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내려간다. 완만한 내리막에서는 예당호와 마을의 전경이 편안하게 눈을 맞춘다. 길 위의 전망대라 부를 만하다. 예당호 쪽으로는 예당호중앙생태공원이 빼어나다. 호수 위로 데크를 놓아 산책할 수 있도록 했다. 물 위로 자라는 버드나무가 한층 가깝다. 예당호중앙생태공원 입구 옆에는 예당생태교육관이 있다. 건물 옥상에서 대흥마을과 봉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옥상전망대라 부를 만하다. 산에 오르는 걸 버거워하지 않는 이들은 봉수산자연휴양림 지나 임존성을 찾는다. 산 정상부에 옛 성터를 복원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장관이다.



복신 등이 백제부흥을 도모한 임존성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마을 의좋은형제공원에서 의좋은형제장터가 열린다. 시끌벅적한 시골 장터의 정취가 고스란하다. 


대흥마을을 산책할 때는 입구의 달팽이 인형도 눈여겨봐야 한다. 들어와도 좋다는 표시다. 


개방하는 집을 뜻하는 달팽이 인형


주인장과 차 한 잔 나누는 일이 그리 드물지만은 않다. 느림이 뼛속까지 스민 대흥마을 사람과 말이라도 섞다 보면 시간은 마냥 정처 없다. 삶은 꽃처럼 지는 게 아니라 지고 나서 다시 피는 거라는 사실을 안다. 


마을에서 만나는 소박한 행복 풍경


Tip_먹고 자고

느린꼬부랑길의 옛이야기길 끝자락에 봉수산자연휴양림(www.bongsoosan.com, 041-339-8936~8)이 있다. 봉수산 계곡과 봉수산수목원을 품은 휴양림이다. 


봉수산자연휴양림


숙소동은 숲속의집과 산림문화휴양관으로 나뉜다. 숲속의집은 숲속의 독채다. 산림문화휴양관은 방 안에서 예당호의 일출을 볼 수 있다. 


예당호는 예전부터 어죽이나 민물새우매운탕이 유명하다. 어죽은 비리지 않고 얼큰하다. 

 

예당호 별미 어죽


민물새우매운탕은 새우 맛이 아니라 국물 맛으로 먹는다. 대흥마을 인근에 서하가든(주소:대흥면 예당로 829, 전화:041-332-0102)과 대흥식당(주소:대흥면 예당긍모로 403, 전화:041-335-6034)이 잘 한다. 이웃한 광시면에는 광시한우거리가 있다. 매일한우타운(주소:광시면 예당로 171, 전화:041-333-2604)이 유명하다.  

 

Information

충남 예산군 대흥면 중리길 49 대흥슬로시티마을, 041-331-3727, slowcitydh.com

용산역-예산역, 무궁화/새마을호 하루 12회(06:23~20:35) 운행

예산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대흥마을 방면 버스 30~60분 단위 운행


글.사진 박상준(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