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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항상 보던 애인이나 배우자가 이유 없이 싫어졌던 감정, 저 오지라퍼만 느껴본 적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들려드릴 이야기는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비극으로 끝이 난 어떤 부부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했었어야 할까요?






 2009년 개봉작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뛰어난 연기 덕인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끊임없이 삶에 의문을 품으며 살던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차가운 현실로 다가옵니다. 인간의 어떤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우리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요?


 파티장에서 처음 만난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첫눈에 반합니다. 꿈에 대해 묻고 답하는 대화에서, 우리는 어설프게나마 여자의 환상과 남자의 허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부부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정착한 네 식구는 평온해 보입니다. 남자는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매일 아침 일찍 말끔히 차려 입고 기차를 타고, 연기를 공부하던 여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서 절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때로는 극단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하죠. 물론, 형편없는 연기였으나 그녀는, 부부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서 빛나던 그들은, 둘만 남겨졌을 땐 그저 평범한 부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간격만큼 그들은 공허합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C.G.Jung은 인격을 크게 두 가지, ‘페르조나’(외적 인격)와 ‘그림자’(내적 인격)로 구분합니다. 가면이란 뜻의 페르조나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체면’ 혹은 ‘역할’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일반적인 기대에 맞추는 태도로, 외부 세계에 적응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아가 페르조나와 동일시 되면, 즉 남들이 보는 모습에 집착하여 이면의 욕구를 무시한다면 공허해집니다.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 분)이 사람들을 벗어난 공간에서 과격하게 싸우는 것은 민낯의 서로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남편은 아내의 형편없는 연기가 내 탓은 아니라며 비참한 그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아내는 남자답지 못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며 자존심을 긁죠. 에이프릴은 교양 있고 아름다운 아내이기 이전에 나약한 한 인간입니다. 프랭크에게도 자상하고 든든한 가장은 하나의 역할일 뿐입니다. 역할은 흔들릴 수 있지만 내면의 자아는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화려한 모습 이면의 존재에 말을 걸었어야 합니다. 괜찮다고 보듬어주고 초라한 만큼 서로가 필요하다며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가족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용감한 커플이며, 나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릅니다. 남편은 어린 시절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꿈을 잃은 어른이 세상을 다 아는 양 거만하게 말하는 것이 싫었던 그 때처럼, 자신을 비난합니다. 아내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연기를 공부하던 그녀도,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남편도 분명 각자의 꿈을 갖고 있었으며, 어느 순간 선택을 미루고 상황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그들의 선택은 너무 성급하고 충동적입니다. 프랭크는 바닥에 떨어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순진한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에이프릴은 파리로 이민 갈 것을 추진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밀어붙였던 것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너무 싫어하거나 왜 그런지 모르게 너무 미운 사람이 생겼다면, 내 안의 ‘그림자’를 바라볼 기회입니다. 그림자란 나의 다른 면, 무의식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독립적인 여성이 실은 매우 의존적인 모습을 갖고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수용적인 남성이 집에선 괴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를 자각해야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두 부부가 왜 그토록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나고 싶은지 멈춰 바라보았어야 합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과거를 적극적으로 탐색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인지, 반대로 업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인지. 에이프릴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찬찬히 이야기해보았어야 합니다. 애초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지, 조금 더 자유롭고 싶은 것인지, 좋은 엄마의 역할이 버거웠던 것인지. 그녀가 원하는 삶을 남편과 분리해 생각했다면 현실을 회피하려는 간절함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비참한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페르조나)을 더욱더 키워 덮으려던 프랭크의 노력도, 꿈이라 믿는 허상에 목숨을 걸고 그림자를 벗어나려 했던 에이프릴도 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의 역할을 인정하는 가운데 내면의 욕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따뜻한 영화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내가 경험하는 현실을 털어놓아 보세요. 가면을 벗고 하나씩 천천히 말합니다. 이 때 두 가지를 기억하면 힘이 됩니다. 모든 인간의 욕구는 보편적이니 상대가 공감해줄 것을 믿는 것. 그리고 동시에 각자가 경험하는 현실은 다를 수 있으니, 이상해 보이는 나를 스스로 수용하면서 당당히 말해도 좋다는 것을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을 꼭 안아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