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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올 한해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번 주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후회하지 않아'를 통해 한 해를 되돌아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져 보세요! 

 

  2014년도 여지없이 저물어 갑니다. 돌아보면, 괜스레 애쓰며 힘을 뺀 적도 있었고 그저 담담히 걷다 보니 훌쩍 계절을 지나쳐버린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너그럽게 품으며, '그래 애썼다. 내년에도 화이팅!'...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어떤 날은 어느 한 장면에 꽂혀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대개는 현재의 불만으로 인해 과거를 왜곡시켜 바라보기도 하지만, 과거의 고통이 고스란히 이어져 후회와 자책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면, 일단 멈추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2007년 겨울, 시내의 작은 극장에서 <라 비 앙 로즈>란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다지 추운 날씨도 아니었는데 스크린 곳곳에 숨은 온기를 찾느라 분주했던 것 같고, 그 덕인지 영화의 후반부에는 몸과 마음이 뜨거워졌었죠. 겨울만 되면 이 영화가 그리운 이유입니다. '장밋빛 인생'을 뜻하는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의 원제는 <La Mome>로, 프랑스의 가수 '에디트 삐아프(Edith Piaf)'의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어린 소녀가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와 사창가에서 지내던 시절, 서커스 단을 나온 아버지와 거리를 헤매며 노래로 푼돈을 벌고, 술과 약물에 취한 나날들. 행운을 잡았다가 곧 놓쳐 버리는 안타까운 역사 속에서 우리는 참담한 기분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래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그녀는, 그녀의 열정과 슬픔을 우리는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교차 편집을 통해 에디트 삐아프의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보여 줍니다. 누더기 옷차림에 방치된 소녀 에디트와 가수로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그녀를,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가수 에디트와 죽음을 앞 둔 외로운 그녀의 모습을 나란히 배치하여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듭니다. 이같은 영화적 기법을 통해 어쩌면 우리는, 슬픔에도 기쁨에도 충분히 머무를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을 간접 체험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노래 뿐이었는지요. 

 

  자기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유아는 취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대상(selfobject)'을 필요로 합니다. 이는 아이의 행동을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반영해주고, 이상화된 가치를 제시하며 발달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상을 말합니다. 성가신 물건처럼 이 곳 저 곳에 맡겨졌던 에디트는 누구 하나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 주는 이 없이, '자기대상'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한 채 어른이 됩니다. 그녀가 유일하게 관심을 받는 일은 노래를 하는 것뿐이었죠. 훗날 인터뷰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노래하지 않는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며 무대 위에 올라 조명이 켜질 때의 짜릿함은 그녀가 아기일 때부터 그토록 원하던, 그러나 한 번도 온전히 주어지지 않았던 누군가의 '관심'이었을 것입니다. 관객들의 시선에서 희망을 찾은 그녀는 무대 위의 커튼이 닫히는 그 순간부터 공허함을 견딜 수 없어 술과 약물에 의존하게 됩니다. 

 


  평소 성공이나 성취에 대한 압박이 큰 사람은, 이와 비슷한 구조일 수 있습니다. 칭찬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결과물을 끊임없이 내야하고, 그렇지 못할 때 심한 무력감에 빠집니다. 스스로 만족하거나 위로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고 싶어 합니다. 소수의 부정적 평가에 매달려 괴로워하고 있다면, 술이나 쇼핑, 관계 등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면 내 안에 상처받아 웅크리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말을 걸어 보세요. '누군가가 필요했던 그 시절, 너 참 많이 외로웠겠구나.' 라고 말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죽기 직전의 에디트 삐아프는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아이가 있었다고 말이죠. '마르셀'이라는 아이의 이름을 외치며 지난날을 회상합니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방탕하게 살던 젊은 시절, 그녀는 여자 아이를 낳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보았던 어린 소녀 에디트처럼 작고 귀여운, 어딘가 슬픔에 잠긴 듯한 아이, '마르셀'은 뇌수막염으로 죽게 됩니다. 제대로 먹이지도 보호해주지도 못했던 아이에 대한 감정은 이후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 역시 '마르셀'이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르죠. 에디트의 죄책감과 후회는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 자신을 버리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딸을 버렸으며, 사랑하는 사람도 지키지 못했다(애인이었던 마르셀은 에디트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사고로 사망합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그녀의 탓은 아닙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것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것도, 비행기 사고를 막을 수 없었던 것 모두가 그녀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내가 그런 선택만 하지 않았어도...'란 생각을 깔고 있습니다. 나아가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다며 자책합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선택은 내가 하지만, 그에 대한 결과까지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또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면 된다'란 구호는 자칫 세상 모든 일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키워, 좌절의 상황에서 심한 우울감에 빠질 수 있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된다'에 꽂혀 하는 것 자체를 미루기보다는 '그냥 한다'가 낫습니다. 또 때론 환경을 탓할 수도 있어야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가난, 폭력 등의 사회 문제를 개인의 과실로 돌리는 것은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억압된 억울함과 외로움을 심어 주어 우울증의 발병률을 높이는 지도 모릅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에디트 삐아프는 말년에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란 곡을 노래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곡을 온 몸으로 연주하는 그녀는 비로소 과거와 화해하고 상실을 애도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등장합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탓은 아닙니다. 그러니 더 이상 후회하지 않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시간,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혹 진심을 다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참 많이 애썼다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또다시 길을 가보자고 말입니다.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17편. 음악이 주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