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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대부분의 분들이 

가장 소중하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에서 '가족의 의미'를 한 번 더 새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얼마 전 운 좋게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곳을 옮겨 다녀서인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다가가면 화들짝 놀라 숨어 버리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뒤늦게 새 아이를 얻은 엄마가 된 것처럼, 고양이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깁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족의 의미도 조금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가족과 관련된 상담은 기업상담실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현재 3,40대의 부모가 느끼는 갈등은 시대적 혼란을 반영합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며 결국 외로운 삶을 살았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들은 '나는 결코 그런 아버지가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죠. 끊임없이 성장을 강요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돈도 잘 벌고 다정하기도 한 완벽한 아버지에 대한 이상은 이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 넣기도 합니다. 무력감에 빠진 우리는 뭐든 쉽게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되고, '결국 돈이 최고야'를 되풀이하며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소외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3년 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Like father, like son)>는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부모와 자녀 간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영화입니다. 건축가로 성공한 '료타'는 호텔같이 깔끔하고 다소 삭막한 집에서 6살 된 아들과 주부로서 헌신하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들 '케이타'는 순한 아이지만 치열하게 무언가를 배우지 못하고, 자기 주장을 하기 보다는 순응하는 편이었죠. '료타'는 자신만큼 경쟁적이고 똑똑하지 못한 아들을 못마땅해 합니다. 어느 날 '케이타'를 낳은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은 후, 이들의 삶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료타'의 가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가족을 만나고, 아이들과 늘 가까이 허물없이 지내는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 '료타'는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죠. 상대 부모에게 '돈은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두 아이 모두 키우게 해달라'고 요구하던 '료타'는 결국, 자신과 꼭 닮은 친아들 '류세이'의 마음을 돌리려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류세이'와 더불어 6년간의 아들, '케이타'를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상대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게 되면 그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됩니다. , 양육에 있어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은 수십 권의 육아책을 읽는 것보다, 수시간의 부모교육을 듣는 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아이를 공감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6년만에 친아들 '류세이'를 찾은 '료타'는 적응기간을 마치고 '류세이'를 집에 데려와 앞으로 지켜야 할 사항에 대해 교육시킵니다. 그러나 무언가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류세이는 반복해서 '?'라고 묻고 반항하며 이전 부모를 그리워합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거절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 '료타'는 새어머니를 거부했던 어린 나를 떠올리게 되고, 어머니의 마음과 함께 어린 나도 끌어안으면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 또한 변화합니다. 키워 준 부모를 만나기 위해 가출했던 '류세이'에게 '나도 가출한 적이 있어'라며 달래는 모습. 매정한 아빠를 원망하며 달아나는 6년간의 아들 '케이타'에게 '나도 피아노 치다가 그만 뒀었어'라고 고백하는 '료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하고 강한 아버지로 비춰집니다.


 


  아이와의 기싸움이 치열해질 때, 나도 모르게 버럭 하거나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게 될 때, 아이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불안, 무력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칠 때 먼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세요. 싸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어쩌면 아이가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 자신을 꾸짖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때론 무섭고 원망스러운 아버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 나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서 그저 담담한 척 덮어두고 괜찮은 척 방어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나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녀의 상처도 볼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 아버지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 아들이었습니다. 나아가 누군가의 자녀이기 이전에 상처받기 쉽고 때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하나의 생명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해체되기 쉬운 사회가 되었다면 또 다른 의미의, 더 큰 의미의 공동체가 가족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됩니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 줄 부모나 형제 자매가 점점 줄어드는 사회라면, 서로 좀 더 가깝게 좀 더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두 가족이 한 가족으로 뒤섞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이제 더 이상 '핏줄'로 선을 긋는 가족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여섯 살 아이가 등원 길에 자랑합니다. 작년엔 숫자 8을 쓸 때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었는데, 지금은 이어서 그릴 수 있다고요. ", 발전했네~"라고 칭찬해주니, "엄마, 그럼 우리도 가훈을 하루하루 발전하기 라고 해요. 매일매일 사랑하기 말고..." 가훈을 적어오라는 어린이집 숙제에 급히 '매일매일 사랑하기'라고 보냈었는데, 발전했다는 칭찬에 신이 나 다른 친구네 가훈이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매일 사랑하면 저절로 발전할 수 있어"라고 말이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얼떨결에 한 말인데 제법 근사한 말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먼저 사랑하세요. 인생은 장기전이며, 함께 할 때 비로소 안정적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