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꾸밈 요소

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기쁜 일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픈 일은 함께 하면 반으로 준다고 하죠~

여기 자동차 사고 후 보험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난 분이 있습니다. 일곱 명을 잃고 얻은 일곱 가족.. 

그 사연, 들어 볼게요~

 


 

“자, 안녕하세요. 앞으로 여러분께서는 서로 돌아가면서 그 동안 겪었던 일들,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함께 이야기 나눠볼 건데요. 서로 그 아픔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게 가장 중요 합니다. 오늘 첫 번째로 이야기 해 주실 분은 누구죠?”

 


유족 모임은 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쭈뼛쭈뼛 말이 없었다. 그 때 앞 줄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방학재 사원 약혼녀 이은주입니다.”
“안녕하세요. 자, 다들 안녕하세요.”

상담 선생님의 말에 다들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학재 씨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는 지 모르겠어요. 이 사람이 사람들한테 참 잘 하는 거, 왜 지난 번에 부장님 댁 김장 때도 가서 도왔고, 조과장님 댁 이사도 도왔다고 했거든요.”


몇몇 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이은주 씨는 잠시 눈가를 훔쳤다.


“그 바보 같은 모습들이 쌓이고 쌓이니까요. 나중에는 제가 더 반하게 됐죠. 내년엔 꼭 결혼 하자고, 그래서 지금 같이 적금도 넣었거든요. 안 먹고 안 쓰고 천만 원이나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쓸 데가 없네요. ……. 젊으니까 금방 잊을 수 있다고 괜찮을 거라고 어떤 분은 그러시더군요. 저는 오히려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셨던 분들이 부러워요. 하루만 더 함께 보냈으면 얼마나 좋을지……. 아직도 실감이 안나요. 혹시 다들 어디 숨어버렸다거나, 뭔가 사정이 생겨서 죽은 척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닐까요? 저는 아직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요. 착오였다고, 미안하다고 전화가 올 것만 같아서요.”

 

워낙 갑작스러운 사고였고 생존자가 한 명도 없는 사고여서 남은 가족들이 받은 정신적 상처는 너무 컸다. 그래서 보상보다도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게 시급했다. 유족 정기 모임에서 유족들은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한 명 한 명 공유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다독였다.
다들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격해 있었다. 피해자 유족 모임에 계속 참여는 했지만, 결코 나를 반겨주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들이 소송으로 싸워 이겨야 되는 쪽의 대표였을 지도 모르니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 어쩌면 나도 가능하면 우리 보험사에 피해가 덜 한 쪽으로 생각했을 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도 모임은 계속 되었다. 눈총을 받으면서 한 쪽 구석에 앉아 나 역시 함께 했다.




이어지는 이야기 더보기




가족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던 날, 2010년 3월 26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천안함이 침몰한 날로 기억할 그 날이다. 이 날 대한민국 해군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된 대참사였다.
그렇지만 이 가족들에게는 충청남도 태안에서 7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날로 기억되어 있다. 안개가 자욱했던 밤, 바닷가를 달리던 승합차가 자라바위에 부딪혔던 날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 개 부서, 일곱 명의 직원 모두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일곱 가족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난 빈자리로 여전히 고통스러워했다. 날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 반복되는 기분……. 그 분들에게는 그 날 이후 모든 날이 다 3월 26일이었다. 다음 모임은 한 달 후에나 열릴 수 있었다. 모임이 처음 시작될 때 개나리가 피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목련이 질 때가 되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저는 조성훈 대리 아내 김연지예요.”
“안녕하세요.”
“아 참 저 이번에 아기 낳았어요. 여기 사진 보이시죠. 미처 데려오지는 못했어요. 감기 기운이 있더라고요. 처음 다들 경황이 없으실 텐데도 모두들 임산부가 그렇게 모진 일을 겪어서 어떡하냐고 저부터 걱정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사진을 꺼내 들자 다들 모여와 사진을 함께 둘러 보았다. 죽음만 가득했던 방 안에 생명이 잉태한 순간이었다. 모두들 처음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요. 그 때는 저도 죽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그래도 살아지네요. 하늘이 무너진 줄 알았더니 다들 살아있고……. 저 지금도 밤에 바람 소리만 들어도 가끔 놀라서 깨요. 그 사람이 돌아올 거라고 아직도 믿나 봐요. 참 그렇죠. 이렇게 아이를 얻었는데도 사람 욕심이 끝이 없나 봐요. 아직도 그 사람이 한 번만이라도 우리 애기 안아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꾸 바라고 더 바라게 돼요. 자꾸 그렇네요.”


모임이 끝나갈 무렵 나도 처음으로 일어났다. 내가 할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곱 분 고인의 유가족께 총 30억 원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가치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회사에서 유족보상금을 최대한 책정했습니다.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살면서 돈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자식인 사람들이……. 어디 기껏 돈으로 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
내가 그 분들을 이해하는 만큼 유가족들은 이제는 나를 살뜰히 챙겨 주었다. 내가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 때 손수건을 챙겨주고 웃을 때 손을 꼭 잡아 준다. 유대감이 생겼다. 우리는 정말 가족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윤지 할미예요.”
“안녕하세요.”
“우리 윤지가 어려서 애비, 애미 없이 할미랑 살았어요. 어려서부터 제가 뭐하나 해주면 그거 꼭 가지고 있다가 할머니 드시라고 이렇게 가져오고, 그런 착한 애였어요. 남들 다 가는 학원 한 번 못 보냈는데도 대학 4년 장학금 받아서 들어가고……. 이제 우리 윤지 시집가는 것만 보고 내가 눈을 감아야지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윤지가 갈 줄은 몰랐네요. 제가 뭘 알겠어요. 교회도 가보고 절에도 가봤는데, 그냥 허망한 마음만 자꾸 듭니다. 어려서부터 모질게 고생만 했던 우리 윤지, 부디 그 곳에서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거기서는 아빠도 보고 엄마도 보고, 행복 했으면, 그러면 좋겠네요.”


늘 먼저 와서 고구마도 쥐어주고, 감자도 쥐어주던 할머니의 이야기에 왠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우리가 이제 잘 모시겠다고,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모임이 끝나고 다들 모여서 나를 불렀다. 소송까지는 가고 싶지 않다고, OO손해보험 서기수 팀장을 믿겠다고 손을 잡고 그렇게 얘기해 주었다. 이미 이 일곱 가족과는 남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제시한 금액을 받아 들고, 다시 모임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마지막 유족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제 여기에 서는 것도 마지막이겠네요. 저는 김성필 부장 딸이에요. 삼 남매 대표로 오늘은 제가 이 자리에 서네요.”

 

“안녕하세요.”
“저희 아버지는요. 저희 집에서 별명이 심봉사였어요. 엄마를 일찍 보내시고 남자가 혼자서 저희 삼 남매를 다 키워내셨거든요. 다들 잘 모르셨을 거예요. 아침에 저희 밥상을 다 차려주시고 혹시 엄마 없는 티 날까 봐 소세지까지 부쳐서 도시락까지 다 싸주시고 출근하신 이야기요. 저희 아빠 그런 분이셨어요. 회사에서는 그렇게 엄하고 카리스마 있다고 하시지만요. 저희 아빠요. 우리들 마음 다칠까 봐 늘 그렇게 전전긍긍……. 자식 사랑에 눈이 먼 심봉사였어요. 이제 저희 삼 남매 잘 자라서 우리 아버지 호강시켜드리려고, 이번에 환갑에 다같이 해외여행 가려고 저금하고 있었는데……. 심봉사가 심청이 효도도 못 받고 그냥 돌아가셨네요. 우리 아빠가 사실 그럴 리가 없었거든요. 삼 남매 천애 고아 안 만들겠다고 그렇게 운동도 열심히 하셨는데… 엄마는 일찍 보내도 본인은 오래오래 우리 곁에 살아있기로 약속하셨는데요.”


이 부서를 책임지는 김부장님의 이야기는 다들 많이 했었다. 좋은 분이었다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서로 손을 꼭 잡았다.


“처음엔 아빠 원망도 하고, 엄마 원망도 했어요. 왜 아빠까지 데려가셨는지 몰라서요.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아빠 딸, 엄마 아들이란 거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해요. 열심히 살려고요.”


서로 박수를 치며 모임을 끝낼 때쯤 보상금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전해 드렸다. 돈만 봤을 때는 적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사라진 빈자리는 어떻게 채워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드릴 말씀이 없다 했더니, 오히려 유가족 분들께서는 나의 어깨를 두들겨 주셨다. 여기 모임에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 많이 얻었다고, 난 사람의 자리는 새 사람들이 또 채워주는 거 아니겠냐고…….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번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을 얻은 것이다. 기쁜 일은 7배로 슬픈 일은 1/7로 줄일 수 있는 일곱이나 되는 대가족을 나는 그 날 얻었다.

 


 

# 인연을 만들어주는 삼성화재, <삼성화재 운전보험 안심동행>

 

교통상해사망시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건 바로 남은 가족들이죠.

이럴 때 월급처럼 매월 꼬박꼬박 나오는 사망보험금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교통사고 사망시 사망보험금을 매월 300만원씩 10년간 월급처럼 지급이 되고요, (해당 특약 가입시)

장시간 자주 운전하는 분들에게 발생하기 쉬운 2대 질병 수술비... 디스크질환 수술비, 운전자 관절증(엉덩, 무릎) 수술비를 최초 1회한 30만원 한도로 보장합니다. (해당 특약 가입시)

 

뿐만 아니라,

<삼성화재 운전보험 _ 안심동행>의 경우, 갱신 없이 만기까지 동일한 보험료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든든하게 보장 받고 싶다면

역시 삼성화재 운전 보험이죠? ^^

 

▶ <무배당삼성화재 운전보험 안심동행> 상품설명 홈페이지 바로가기

 

* 보상여부 및 세부 내용은 해당 보험약관과 상품설명서 그리고 상품안내장을 참조하십시오.

* 보험계약 체결 전엔 상품 설명서 및 약관을 꼭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