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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손해보험협회 홈페이지에 '손해보험'으로 인생위기를 넘긴 분들의 감동스토리가 올려져 있는데요.

지난 주에 이어 오지라퍼 여러분에게 그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정릉일기>입니다.

 


 

 

정릉의 가을은 유난히 아름답다.

북한산과 마주해 크고 작은 숲길 속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옛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동네라 가을이 내려앉으면 더욱 애잔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또 어떤 가족의 역사가 골목골목 마다 숨 쉬고 있어서 동네 자체가 한 권의 앨범인 곳도 많다.
나에게도 2년 전까지 가을은 그저 아름답고, 나 같은 초로의 노인도 감상에 젖게 만드는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가을은 자식을 먼저 보내며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눈물마저 말라붙게 만들었던 계절로 기억되게 되었다. 딸아이는 2년 전 가을, 꼭 저 같이 고운 딸 하나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딸이 떠나던 날, 그 정신 없고 황망한 와중에도 나는 아이가 태어나던 날이 자꾸만 떠올랐다.

 

한 품으로 안아도 바스러질 듯 작은 아이, 가녀린 숨을 쉬며 오롯이 내 팔에 의지해 잠을 자던 아이를 나는 영원히 지켜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품 안의 자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딸아이가 자라서 세상 속으로 나가고, 그 안에서 부딪히고 만나게 되는 그 모든 불행들을 내가 다 막아주고 또 걸러줄 수는 없었다.

어릴 때 아이들이 영웅처럼 떠받들던 강철로봇처럼 아이에게 닥친 어려움과 나쁜 일들을 다 막아주고 싶었지만, 딸아이가 만난 세상도 내가 살아낸 세상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딸아이가 이혼한 후 외손녀를 데리고 처음 집에 왔을 때, 나는 딸에게 닥칠 불행은 거기서 끝인 줄로만 알았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면서도 부모인 우리에게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 고개를 들 수 없다던 딸아이에게 우리 부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 네 결혼이 끝났다면 이제 남은 것은 새로운 시작뿐이겠지. 그 시작에 언제나 그랬듯이 아빠와 엄마가 함께 해주겠다.’ 그 마음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첫 날, 잠든 외손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딸을 데리고 정릉 숲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딸이 하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선하다.


“아빠, 난 이 동네가 너무 좋아. 서울 시내에서 가을이 제일 예쁜 동네야, 그지?”

집에 돌아와서 좋다던 말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도 가을 노을 속으로 사라졌지만 어렴풋이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딸이 더 강해졌구나. 나처럼 부모가 되더니, 그 모진 풍파 속에도 더욱 강한 어머니가 되었구나.

 

안타까운 마음 너머 나는 어쩐지 딸이 듬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앞으로 내가 힘이 남아 있는 한 딸에게 닥칠 불행들을 막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아내도 나이가 들어 딸의 곁을 떠날 것이기에 무언가 단단한 버팀목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이 바로 보험이었다. 당시 나는 내 주변 사람들보다 보험의 중요성을 빨리 깨달은 편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폐암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면서, 가세가 기울고 결국 늦둥이 막내딸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던 나는 보험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딸이 정릉 집으로 돌아온 다음 주에 평소 알고 지냈던 보험사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소장, 날세. 정릉 김00이야.”
“아이고, 어르신. 오랜만에 전화 주셨네요. 그간 별고 없으셨지요?”
“무탈하네. 김소장도 평안하신가?”
“저야 늘 동동거리며 살죠. 근데,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닐세. 내 딸아이가 보험이 하나 필요한데, 설계사를 좀 소개해 주시게. 경력도 좀 있고, 책임감 있게 봐줄 사람이면 좋겠네.”

 

 

십 년 가까이 알고 지낸 김소장을 보면서 나는 보험 가입을 결정하는 것도, 보험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설계사와 인연을 맺고 유지하는 것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딸아이의 보험 가입을 위해 김소장에게 부탁을 했고, 좋은 설계사를 소개해주리라 기대했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인연을 믿는 사람 중 하나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어쩌면 길을 가다 만나는 많은 사람들 하나하나가 길고 긴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와 보험이라는 이해관계를 통해 만났지만 오랜 시간 긴 인연을 유지했던 김소장에
게 딸아이의 보험을 부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정릉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누른 설계사는 내 기대와는 좀 다른 면이 있었다. 척 봐도 아직 이 십 대, 의욕은 있을지언정 믿음은 쉽게 가지 않은...그저 펄떡거리는 가슴만 뜨거운 젊은이가 서 있었다.

 

패기 있게 마루에 앉더니 아내가 준 냉수 한 사발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자식이라고는 딸아이 하나가 전부인 나는 사실 사위에게 아들의 모습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위는 우리의 기대를 채워 주기는커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에게 상처와 아픔만을 남긴 채 남이 됐다. 그 후 젊은 남자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 같은 것이 있었던 나였지만, 소탈하게 앉아 억지로 긴장감을 감추고 물을 마시는 설계사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내와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괜히 굳은 표정으로 나이와 경력을 묻는 나를 면박 주더니, 설계사가 꺼내는 가입설계서와 청약서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5년 이내 병원에 입원하시거나, 치료 받은 적 있으세요?”
“아니요, 없어요. 얼마 전에 종합검진 받았는데 하나도 이상 없었고요.”


그랬다. 딸은 한 눈에 봐도 혈색이 좋고, 건강했다. 이혼 후 다부지게 삶을 꾸려나가려면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며 종합검진부터 받을 정도로 영민하기도 했다. 나와 아내도 그런 딸아이의 똑 부러짐을 믿었다.
딸아이가 자신 있게 대답하니, 설계사는 조금씩 몸이 풀리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위내시경도 받으셨겠네요?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수면으로 하셨나요?”
“아뇨, 내시경은 좀 겁나기도 하고 위는 안 좋았던 적이 없어서 안 했어요.”

 

아직 젊은 나이니, 별 이상 없는 상태에서 굳이 위 내시경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만에 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직도 그 가을, 정릉 집 마루에서 딸아이의 건강을 처음 체크하던 그 날의 풍경이 잊히질 않는다.
보험 계약서를 딸아이에게 건네고, 대문을 나서며 나와 설계사는 악수를 했다. 우리의 첫 악수였다. 고객과 보험설계사 관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으로, 기댐과 위로로 더 뜨겁게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는 두 번의 악수가 남아있는 줄, 그 때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2005년 9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설계사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서툴렀던 첫 대면 이후 설계사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나와 딸 아이에게 한 달에 한 번은 전화를 하고, 문자를 전했던 터라 나에게는 이미 친근한 호칭인 “조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조선생, 딸아이가 위암 말기라고 하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오. 보험을 든 지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보상이 잘 되겠는지 알아봐줄 수 있겠소?”


담담하게 소식을 전하는 내 목소리가 비장했는지, 조선생은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순간 얼마나 고맙던지. 소란스러운 불행 앞에서 마음 놓고 울 수조차 없었던 내 무너진 가슴을 조용히 바라봐주는 것만 같은 바로 그런 침묵이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조선생은 병원으로 달려왔다.

 

겨우 8개월이 지났지만, 조선생은 더 믿음직한 보험 설계사가 되어 있었다. 이 사람, 병원 현관 앞에서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대뜸 다가와 또 덥석 손부터 잡는다.
이것이 조선생과 나의 두 번째 맞잡은 손이었다.
넋이 빠진데다, 갑자기 사정을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아무 말도 못하고 거의 기대 서 있다시피 하는 나에게 조선생은 단도직입적으로 돈 이야기부터 꺼낸다.

백 마디 말보다, 지금 이 순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가장 실질적인 위로가 되리라는 것을 알
만큼 조선생도 성장했던 것일까?


“아버님, 따님은 보험에 가입한 지 9개월째이고, 암은 가입한지 90일 이전에는 보상이 되지 않습니다만 90일 지나셨기 때문에 암 진단금도 100% 나오고요. 또 치료비도 전액 보상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보험 계약에 관련된 세부 사항을 알려주고 난 후에도 조선생은 고집을 피우며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딸아이를 보겠다며, 병실로 나를 이끌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딸아이에게는 위암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니,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5년 동안 난소로 대장으로 두 번의 전이가 이뤄지고, 차마 몸무게를 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말라가며 병마와 싸우던 딸아이의 건강을 챙기고 우리가 보험의 혜택 속에서 행여 벗어날까 늘 한결같이 마음을 써줬던 조선생. 그래서인지 나는 딸아이의 마지막 5년을 돌이켜보면, 늘 조선생이 떠오른다.


이어지는 이야기 더보기

 

 


# 든든한 울타리, 삼성화재 통합보험 <수퍼플러스>

 

손을 잡아줬던 보험 설계사 분 이야기까지 무척 감동적인데요.

가장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사람처럼 고맙고 감사한 일도 없죠.

가장 힘겨울 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줬던 보험..

보험이 있었기에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병마와 싸울 수도...... 그리고 남겨진 외손녀 걱정도 덜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정릉일기>처럼 질병과 싸울 때에도, 질병 후 고난이 왔을 때도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보험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삼성화재 통합보험 수퍼플러스> 인데요.

 

 

<무배당 삼성화재 통합보험 수퍼플러스>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상황에 맞는 보험만을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망보험과 건강관리를 집중 보장하는 '라이프 플러스'

예상치 못한 사고와 질병으로 인한 장해를 대비하는 '케어 플러스'

다양한 생활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는 '리빙 플러스'

로 구성 돼 있습니다


'내게 꼭 맞는 수퍼플러스' 라는 이름에 걸맞은 개인 맞춤 상품인 거죠. ^^
뿐만 아니라 질병 후 장애에 대해 12대 장애, 3등급까지 보장하고 있는데요.

기존 상품들이 보장하던 지적장애, 시각장애 등 8가지 질병 장애에 간, 안면, 호흡기 장애 등

4개 장애를 추가했습니다.


또한, 고객 필요에 따라 만기환급금 규모와 받는 시기를 조절할 수 있어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목돈을 계획적으로 마련할 수 있답니다.

행복을 위해 준비하는 보험,

삼성화재 수퍼플러스 통합보험으로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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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상여부 및 세부 내용은 해당 보험약관과 상품설명서 그리고 상품안내장을 참조하십시오.

* 보험계약 체결전엔 상품 설명서 및 약관을 꼭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