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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9편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신혼 때의 일이다. 아내는 요리 공부를 하며 여러 가지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늘 기대 어린 표정으로 어서 먹어보라고 재촉했다. “맛있어?” 그럴 때면 종종 난감했다. 간혹 맛있었지만 대부분 맛이 별로였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나는 요리를 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맛이 없을 때도 “괜찮네” “맛있어”라고 대답했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들통나고 말았다. 아내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아니, 왜 솔직하게 이야기를 안 했어? 솔직하게 말을 해줘야 내 요리 실력이 더 늘 텐데…” 내 걱정과는 달리 아내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더라도 기분이 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은 피드백이 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러했다. 나의 하얀 거짓말은 사실 불필요한 배려였다. 나는 아내와 달리, 누군가로부터 안 좋은 평가를 받으면 쉽게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비단 나뿐이랴. 많은 사람들이 속마음을 감춘다. 꼭 해야 할 말조차 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만다. 꼭 상대를 위한 배려 때문은 아니다. 대개 솔직함을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고 솔직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솔직함은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사람들이 안 좋게 생각하고, 집단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과연 그럴까?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이 친구와 만나 비교적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왠지 상대의 마음이 상한 것 같고 관계가 불편해진 것처럼 느꼈다. 그럼 어떨 것 같은가? 내가 불편을 느낀 만큼 상대도 나를 불편하게 여길 것 같은가? 상대도 불편함을 느낀다면 뭐가 걱정되는가? 상대가 나를 싫어하고 멀리할 것 같은가? 만일 그렇다면 그 불편한 관계는 일시적인가? 계속 갈 것 같은가? 


만일 내가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상대가 계속 나를 싫어하고 피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상대가 나를 계속 불편해한다면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을 후회하겠는가? 그럼 앞으로 계속 마음을 감추고 지내야 하는가? 물론 그것은 자기 선택이다. ‘솔직함’보다 ‘관계의 작은 불편함조차 만들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중요한 가치라면 솔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자. 당신이 할 말을 못 해서 혹은 자신을 속여서 느껴지는 그 불편함은 무시해도 될 작은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솔직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깊이 파고들어 가야 한다.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두려움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그 두려움을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왜 이렇게 따져 물어야 하느냐고? 우리의 두려움은 늘 부풀려져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솔직함이 왜 나에게는 무례함일까?


그럼, 솔직함으로 인해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란 말인가? 솔직함이 정말 위험하지 않다는 말인가? 이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즉, 모든 솔직함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모든 솔직함이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솔직하다는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어에서 솔직하다는 말은 여러 단어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frank’‘honest’가 있다. 둘 다 ‘솔직한’이라는 형용사이지만 그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다. ‘frank’는 때로는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친 솔직함’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팀장인데 팀원 중에 업무이해력이 떨어져서 종종 실수하는 직원이 있다고 해보자. 당신이 “L대리는 왜 그래? 우리 회사 정식으로 들어온 거 맞아?!”라고 한다면 어떨까? 물론 당신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이 그냥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상대방은 마음이 다친 뒤다. 


거친 솔직함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니, 그 사람 기분 상한 것을 왜 내가 신경 써야 해! 그런 말 듣기 싫으면 처음부터 잘하면 되지.” “아니,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 그럼 좋다고 말해?!” 이들은 자신의 표현에 대해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솔직함을 우리는 ‘무례함’이라고 부른다.



나의 솔직함이 매력이 되려면  


사람들은 솔직한 사람을 싫어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그것이 솔직함의 두 얼굴이다. 그렇다면 어떤 솔직함은 인간관계의 매력이 될까? 바로 ‘honest’이다. 이 말은 ‘상대의 마음을 염두에 두고 표현하는 걸러진 솔직함’을 말한다. 이는 거칠고 무례하지 않고 부드럽고 정중하다. 

 


그렇다면 부드러운 솔직함(honest)은 무엇이 다를까? 3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부드러운 솔직함은 이성과 감정이 연결된 상태이다. 이성과 감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감정을 조절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에 비해 거친 솔직함은 감정과 이성이 분리된, 감정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야생의 밀림보다는 잘 다듬어진 숲길을 좋아하지 않는가!


둘째, 부드러운 솔직함은 상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나 상황을 표현한다. 상대에 대한 판단은 많은 경우 공격이나 비난으로 들리기 쉽다. 이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 반격하거나 변명을 하게 만든다. 


셋째, 부드러운 솔직함은 1인칭과 2인칭 관점을 오간다. 즉,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뱉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염두에 두면서 표현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입장이나 마음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다. 


부드러운 솔직함을 가진 사람은 할 말을 하지만 트러블을 만들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풀어간다. 이들의 솔직함은 상대를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은 아무나 갖지 못한다. 결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도 존중하고 남도 존중하는 사람’ 즉, 진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은 존중하지 못하고 상대만 존중하는 사람이다. 거칠게 솔직한 사람은 자신만 존중하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이들이다. 즉,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고, 거친 솔직함을 보이는 이들은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갖는 사람들인 것이다. 



부드러운 솔직함을 위하여 


인간관계는 늘 균형이 중요하다. 문제는 그 균형추가 고정된 게 아니라 상황, 때, 상대에 따라 늘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다듬지 않으면 그 표현이 거칠고, 마음을 너무 다듬으면 표현이 진실 되지 못한다. 상대를 생각하되 내 마음과 표현이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이 바로 부드러운 솔직함이다.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솔직함을 위해 몇 가지 노력해볼 것을 제안한다.  

 


첫째, 잠시 멈춰라. 바로 응답하지 마라. 솔직하지 못한 것은 습관이다. 우리는 거절해야 할 때조차 습관적으로 “괜찮아”라고 자동반응을 한다. 그것은 뿌리 깊은 습관이다. 우리는 항상 솔직할 수는 없지만 잠깐 멈출 수만 있다면 상대나 상황에 따라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다. 멈춰야만 이성과 감정은 연결되고, 1인칭과 2인칭을 오갈 수 있다. 


둘째,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솔직하라. 솔직함은 상대가 아닌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 우선이다. ‘~ 하는 척’하지 않는 것이 솔직함의 출발점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기, 상대가 싫은데 좋은 척하지 않기, 돈이 없는데 있어 보이는 척하지 않기 등 일상에서 자신에게 좀 더 진실해지도록 노력하자. 자신에게 진실할수록 우리는 상대에게 솔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부드러운 솔직함은 ‘상대에 대한 판단의 솔직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욕구에 대한 솔직함’이 핵심이다. 나는 남편의 생일선물을 챙기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왜 그렇게 무성의해!”라고 화를 내고 말 것이 아니라, “나는 당신이 나를 위해 선물을 해줄 때 사랑받는다고 느껴”와 같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드러운 솔직함의 핵심은 감정이 아니라 욕구이다.  


셋째, 유연하게 표현하고 대안을 제시하라. 표현에 있어 늘 ‘예, 아니요’ 혹은 ‘싫어, 좋아’만 있을 수는 없다. 아내의 된장찌개가 맛이 없더라도 굳이 “맛없어”라고 이야기하기보다 “고추를 더 넣어 칼칼한 맛이 나면 더 맛있겠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친구가 오늘 보자고 전화가 왔는데 일이 많다고 해보자. “바빠서 안 돼!”라고 끊는 것은 야박하다. “오늘은 일 때문에 어렵고, 다음 주는 좋은데 그때는 어때?”라고 대안을 이야기하면 좋다. 부드러운 솔직함은 문제를 풀고 서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문제를 꼬이게 하고 관계를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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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8편

‘눈치도 없는 어른 vs 눈치만 있는 어른’



“이 사람과는 정말 대화를 못 하겠어요.” 부부 상담을 온 부인이 먼저 불만을 터뜨렸다. 남편도 덩달아 “아이고! 누가 할 소리를...”라며 맞불을 놓는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 눈치가 없다는 게 불만이고, 남편은 아내가 늘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하루는 남편의 술 모임이 늦어져서 남편은 아내에게 먼저 자라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그날 아침에 두통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도 않고 자기 늦겠다는 이야기만 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들은 남편은 바로 전화를 끊고 술을 마시다가 밤늦게 들어갔다. 


아내는 그날부터 말문을 닫았다. 남편은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아니, 불만이 있으면 무엇이 불만이라고 이야기를 해! 괜히 눈치 보게 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어디를 가나 꼭 눈치 없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회사 경영이 어려운데 비싼 곳에서 회식을 하자는 직원도 있고, 배우자 가족들 앞에서 배우자의 흠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죠. 누군가는 ‘남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눈치 없는 사람들 주위에는 그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혼란스러워집니다. 눈치는 좋은 것인가? 그래서, 눈치를 봐야 하는 건가?


눈치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상황에 미루어 알아내는 것’ 분위기 파악, 즉, ‘낌새’와 같은 의미로 대화가 아니라 상대의 표정이나 억양 등을 보고 직관적으로 심리를 파악하는 것을 뜻합니다. 빠르지만 정확도가 떨어지죠. 


특히 주관적인 심리상태에 따라 왜곡되기 쉽고, 표정 읽기와 관련된 뇌의 능력에 따라 편차가 크답니다. 단번에 상대의 심리를 눈치채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참 눈치를 보는데도 엉뚱하게 잘못 파악하는 이들도 있죠. 예를 들어, 자존감이 낮은 이들의 경우 상대는 잠을 못 자 피곤할 뿐인데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 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 눈치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서열을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흔하게 관찰됩니다. 일반적으로 집단에서 힘이 약한 개체는 힘이 강한 개체의 눈치를 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말이죠. 이는 눈치가 자기보호와 사회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능력임을 의미합니다. 힘없는 개체가 눈치까지 없다면 그 집단에서 살아가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모방과 눈치에서 공감과 배려로 

 


동물의 사회성과 달리, 인간의 사회성은 2단계의 발달을 거칩니다. 1단계는 동물적 사회성으로 이는 본능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모방과 눈치입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42분에서 72시간 사이에 다른 사람의 표정을 정확하게 모방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과 행위를 애쓰지 않아도 모방하게 되죠. 자라면서 어른의 눈빛이나 표정을 보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해서 그에 맞게 행동하는 눈치가 발달합니다. 이러한 발달은 언어와 이성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자기보호와 사회성을 위한 중요한 기능이 됩니다. 


인간의 사회성은 성인이 되면서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합니다. 모방과 눈치는 줄어들고 공감과 배려가 발달합니다. 이는 ‘의식과 자율성의 발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요. 모방이 상대의 감정에 전염되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눈치가 상대의 기분에 자신을 맞추려는 수동적인 태도라면, 배려는 상대를 존중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모방과 눈치가 자동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라면, 공감과 배려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방과 눈치가 열등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며,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인 것이죠. 건강한 어른은 모방과 눈치라는 직관적 사회성과 함께 공감과 배려라는 이성적 사회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조절하여 살아갑니다. 즉, 사회성이 뛰어난 이들은 남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말하지 않아도 잘 파악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압니다. 



눈치도 없는 어른 그리고 눈치만 있는 어른 


눈치는 중요한 사회적 지능의 한 부분으로 대인관계에 있어 기본적인 센스랍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닌 이상 인간관계를 눈치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른의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하고 언어와 이성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실제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하고, 이를 통해 눈치의 오류를 수정할 줄 알아야 하며, 상대의 눈치만 살필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할 줄도 알아야죠. 

 


문제는 ‘눈치도 없는 어른’과 ‘눈치만 있는 어른’입니다. 


우선, ‘눈치도 없는 어른’들을 볼까요. 눈치가 없는 이들은 당연히 공감과 배려도 잘 못합니다. 눈치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능력으로, 공감과 배려는 눈치에서 발달하기 때문이죠. 이는 선천적인 원인과 함께 자라는 과정에서 받는 영향도 큽니다. 아이들은 눈치를 통해 적절한 사회성을 발달시켜 나가는데, 훈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들은 필요한 눈치조차 보지 않고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최근 과도한 인지교육과 문자 위주의 디지털 대화는 표정, 억양 등을 읽어내는 능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결국 눈치가 없는 이들은 사회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더라도 불편을 끼치게 됩니다. 


반대로 ‘눈치만 있는 어른’들도 문제입니다. 눈치는 유아동기에 주요한 사회성 기능으로, 성인이 되면 공감과 배려가 주요 사회성 기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발달 과정의 문제로 낮은 자존감과 불안, 과도한 의존성을 가진 채 어른이 되면 여전히 눈치가 사회성의 주기능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쉽게 상대의 감정과 의도에 끌려다니거나, 과도한 친절과 배려로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거나 대화를 나누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둘은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결국 성인과 성인으로서의 상호적 관계를 하지 못하고 상대와의 관계에서 고자세를 취하거나 반대로 저자세를 취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센스 있는 인간관계를 위하여 


눈치를 보는 것은 단지 비겁하고 못나서가 아니랍니다. 눈치는 대인관계의 기본감각입니다. 다만, 눈치는 정확도가 떨어지기에 이성의 보완이 꼭 필요하죠. 다음은 센스 있는 인간관계를 위해 생각해볼 점들입니다. 

 


첫째, 눈치를 조절하라.


어른도 눈치가 필요합니다. 눈치를 너무 안 본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상대의 마음이 어떨지를 헤아려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반대로 늘 상대의 눈치만 보고 지레짐작한다면 대화를 통해 실제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눈치와 이성이 만나면 눈치는 센스가 됩니다. 이를 위해 평소처럼 ‘느끼는 대로’ 혹은 ‘습관처럼’ 행동하는 대신, 잠시 멈추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눈치를 조절한다는 것은 바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대화한 후 표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상호존중의 태도를 가져라.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안테나의 방향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두고 있는데, 그중 절반은 상대를 향해 돌려야 합니다. 반대로 눈치만 있는 사람들은 외부로만 향해 있는 안테나의 절반을 자신을 향해 돌려야 하죠. 상대의 의도와 감정을 존중하는 것처럼 자신의 의도와 감정 역시 존중해야 합니다. 이는 누가 틀리고 맞는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처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셋째, 지레짐작하지 말고 ‘질문’을 하라.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자신이 상대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상대를 잘 안다고 하는 순간부터 인간관계는 꼬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상대의 기분과 의도를 잘 헤아린다고 앞서 판단하지 말고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지난번에 카푸치노 마셨다고 “카푸치노 드실 거죠?”라고 성급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지난번에는 카푸치노 드셨는데 오늘은 뭐가 좋으세요?”라고 묻는 것이 더 센스 있는 태도랍니다. 



넷째,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라.


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유연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상대 맥락의 수위에 맞춰 대화를 할 줄 알죠. 글에 행간이 있는 것처럼 대화에도 맥락이라는 게 있습니다. 맥락이 낮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과 그 말 속에 담긴 뜻이 거의 같습니다. 반면, 맥락이 높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 곳곳에 숨은 뜻이 많죠. 저맥락은 직선적인 대화를 뜻하고 고맥락은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괜찮습니다’라고 할 때, 상대가 저맥락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고맥락 대화를 하는 이라면 한 번 더 권하거나 정말 괜찮은 것인지 묻습니다. 글 도입부에 등장한 부부가 서로 대화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맥락의 수위가 너무 달랐고, 자기 방식대로만 대화를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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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7편

‘인맥관리에서 공유관계로’



인맥 관리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허무함으로…


“정작 제가 힘들어지니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없네요.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관리해오느라 애썼던 것이 너무 허무합니다.” 직장인 K의 첫마디이다. 그는 인맥을 잘 관리하는 것이 사회적 성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왔다. 


그런데 최근 회사에서 실수에 비해 과도한 징계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을 당한 것도 억울했지만 K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말로만 ‘힘내!’라고 한마디씩 건넬 뿐, 각자의 일에만 열중했고 오히려 K를 피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직장동료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조차 이미 지난 일이니 잊어버리라며 술을 권할 뿐, K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동안 인간관계를 위해 애써왔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었다는 느낌에 걷잡을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나도 혹시 ‘인간관계 번아웃 증후군’?



K에게 그동안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기준은 ‘숫자’였습니다. 그는 주소록에 등록된 인원, 페이스북 친구들의 숫자, 하루에 받는 카톡과 문자의 개수, SNS에 올린 글에 대한 ‘좋아요’나 댓글의 개수, 주고받은 명함의 숫자 등을 늘 헤아렸습니다. 그 숫자가 많을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적을수록 우울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이 숫자를 유지하고 늘릴 수 있을지 항상 고심합니다. 명절마다 지인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고 친구들의 애경사나 동창 모임 등을 앞장서서 챙깁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위해 교회와 독서 동호회도 나가고 있습니다. 다들 꺼리는 모임의 총무나 간사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종종 과장된 글을 올리고 무심코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에게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마치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많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그런 자신의 성격이 너무 싫어졌고, 친구가 많은 아이들을 보며 늘 열등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고 앞에 나서며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불편할 때가 많았지만,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K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힘이 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좋은 모습만을 보이려고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이번 힘든 일을 겪고 난 뒤에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한 달 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입니다. 


이는 과연 K만의 문제일까요?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두잇서베이가 지난 2017년 4월 공동 기획한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인 남녀 2526명 가운데 85%는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껴본 적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상당 수가 업무 때문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에 허무감과 무기력감을 겪는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습니다. 왜 인간관계는 우리를 소진시키는 것일까요? 


 

시대가 강요하는 외향성 선호문화와 리더형 인간



바람직한 인간상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이상적인 인간유형은 다릅니다. 


하버드 대학교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남서부에 사는 나바호 인디언의 중심 가치는 ‘조화’입니다. 이들은 우주와의 조화로운 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그렇기에 이 집단 안에서는 온화하고 원만한 성격의 사람들이 바람직한 인간형이 됩니다. 반대로 성급함, 경쟁심, 지나친 자기주장 등은 비난거리가 됩니다. 그에 비해 크와큐틀 인디언은 ‘능력’이 중심 가치입니다. 이들은 남보다 힘이 세거나 능력이 우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창피하게 여깁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개성’보다는 ‘조화’를 중시해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은 이를 잘 나타내어주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는 기존의 문화를 아주 빠르게 전복시켜 버렸습니다. 사회가 개인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기주장과 성공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리더형’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상이 되면서 인간관계 역시 어느덧 경쟁력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도 외모처럼 투자를 해야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성공을 위해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부모들부터 이를 부채질합니다. 어려서부터 능력 있는 친구들을 짝 지어주려고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조종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외향성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의 성향은 무시한 채 무리에서 리더가 되거나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문화에서 자라나는 우리들은 인간관계를 자연스럽게 맺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장하고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인간관계가 아니라 인맥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인맥관리 관계’의 끝은?


인간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공유관계communial relationship'와 '교환관계exchange relationship'입니다. 공유관계는 서로의 친밀함과 관심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이에 비해 교환관계는 서로의 필요와 이익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즉, 공유관계는 기본적으로 동질감을, 교환관계는 기본적으로 손익에 관계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유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고 편해지지만, 교환관계는 계속 겉돌거나 진정성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서로의 필요와 이익이 맞지 않으면 쉽게 허물어지고 맙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유관계는 '휴식'에 가깝다면, 교환관계는 '일'에 가깝습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하고, 불편한 사람이라도 속 마음을 감추고 인간관계를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균형이 필요합니다. 실제 인간관계에서 소진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교환관계가 비대하고 공유관계는 미미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능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쟁 사회의 산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 연인, 친구, 사제 등의 관계조차도 교환관계처럼 교류하게 됩니다. 한번 연락오면 나도 한 번 연락하고,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만나고 별 이익이 없으면 피하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안 만나는 '거래'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가 변질되고 맙니다. 


그 교환관계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휴식 없는 노동이 결국 소진 증후군을 불러오는 것처럼, 교환관계에 매달리는 인간관계의 끝은 소진입니다. 특히, K씨처럼 어려운 일이 닥치면 좀 더 빨리 소진이 찾아옵니다. 그 수많은 인간관계의 피상성에 깊은 허무감과 외로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은퇴를 하고 난 뒤에 깨닫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해관계가 없어지자 아무런 연락도 없는 관계들을 보면서 정작 자신에게 누가 중요한 사람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외향적인 사람들은 비교적 덜 힘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향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사교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노동을 하며 인맥관리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억지 외향성’으로 자신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모임의 리더를 자처하거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이런 저런 대외 활동에 뛰어들었다가 어느 순간 탈진하듯 주저앉고 맙니다. 이들은 억지로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가 원하던 사교성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 자기초점, 신중함, 배려와 같은 내향적인 성격의 장점마저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위하여


우리는 공유관계와 교환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공유관계는 점점 중요해집니다. 인간은 언제나 관계의 연결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적 생명의 끈은 공유관계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함을 느끼고 어려울 때 찾아갈 수 있는 상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공유관계를 늘려갈 수 있을까요? 



첫째,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에너지는 한정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깊이를 더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나에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건강한 자아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자아의 기능 중의 하나는 자기의 관심사를 찾는 것입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찾으면 저절로 자기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어릴 때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저절로 친구가 만들어지지만 성인이 되면 친구는 손익기반의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관심기반의 친목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즉, 자신의 관심사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성인들의 공유관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심사의 핵심은 ‘오티움(Otium)’을 말합니다. 오티움이란 라틴어로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인 여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이 보상이나 결과를 떠나 그 자체로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오티움입니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등산, 뜨개질, 합창, 동식물 기르기, 시낭송, 댄스, 봉사활동, 명상이나 요가, 글쓰기, 요리, 공부 등 다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즉,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다보니 저절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유관계는 상대에게 지나치게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오티움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셋째, 갈등을 풀어보는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공유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밀해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 편안함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공유관계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오해와 마찰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공유관계란 교환관계와 달리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회복할 수 없는 단절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가까워지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갈등, 즉 불편함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더욱 더 친밀해지고 편안해집니다. 교환관계는 갈등이 생기면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공유관계는 그 갈등을 풀 수 있을 때까지 풀어봐야 합니다. 그냥 덮어두거나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때문에 기분이 상했고 불편함을 느꼈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약속을 여러 번 어겨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단, 화난 감정을 쏟아붓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왜 무시해!'가 아니라 '네가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에 말입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산을 넘지 못하고 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등을 대화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편안함은 점점 멀어지고 언젠가는 결국 더 큰 상처를 주고받으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깊은 공유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갈등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등을 회복하고 더 가까워지는 '갈등회복력'이 높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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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3편

‘그건 사랑이 아니야


 

K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책상 위에 휴지가 한 움큼 쌓여갔다. 6개월 전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부터라고 했다. 


2년을 조금 넘게 사귄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좋다고 쫓아다녀서 시작했던 연애였기에 그의 이별통보는 더욱 충격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지칠 만큼 지쳤기에 먼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많았었다. 


시간이 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다른 여자를 새롭게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마음이 쑥대밭이 되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잘 해보자며 사정을 해보기도 했지만 전 남자친구는 냉정했다. 그녀는 매일 전 남자친구의 SNS에 들어가 그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밤 마다 울다 지쳐 쓰러지고 눈을 뜨면 증오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그 사람도 고통스럽겠지요?” 



파멸로 치닫는 비극적 사랑


▲ 벨기에 화가 Joseph Stallaert의 <The Death of Dido (1872)>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라는 책에서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가 멸망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트로이의 장수입니다. 그는 유민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 모험 길에서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들렀다가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유민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다짐을 잊어버리고 디도와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신들은 인간의 행복을 질투합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어 그가 잊고 있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부하들을 불러 은밀히 출항준비를 시킨 뒤 디도에게 알리지도 않고 훌쩍 떠나 버립니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겠지요. 


홀로 남겨진 디도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며칠 동안 괴로워하던 그녀는 궁정마당에 장작을 쌓고 아이네이아스가 남겨둔 무기와 옷 그리고 함께 쓰던 침대를 태웁니다. 추억의 물건과 함께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장작이 활활 타오르자 디도는 갑작스럽게 화염에 싸인 침대위로 몸을 던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연인과의 이별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며, 자기의 붕괴입니다. 그렇기에 디도의 죽음은 자살이면서 동시에 타살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아이네이아스를 남김없이 파괴시켜버리고 자신을 배신한 아이네이아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싶은 복수의 마음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중 아만테스(amantes)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글자 하나 차이인 아멘테스(amentes)는 ‘정신 나간 사람’을 뜻하지요. 예부터 사람들은 사랑을 일종의 광기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비극적 사랑이 탄생하는 과정 



왜 어떤 사랑은 이렇게 치명적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애정)과 애착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의 비극적인 사랑은 애정이 아니라 애착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격렬합니다. 우리는 흔히 애착을 사랑이라는 말과 혼동합니다. 그리고 유아기 애착의 중요성으로 인해 애착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착은 사랑과 다르며, 성인의 애착은 관계를 파멸로 몰아가기 쉽습니다. 


잠시 애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까요? 애착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동물의 애착행동에 착안하여 애착 이론을 발달시켰습니다. 포유류의 새끼들은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맺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새끼들은 필사적으로 어미에게 매달리게 되어있고, 어미는 새끼들로부터 잠시라도 한 눈을 팔지 않도록 설정되어있는 본능적 프로그램이 바로 애착입니다. 이는 새끼가 어미에게 매달리는 일방적인 의존 상태입니다. 


인간의 애착은 더 강합니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크게 우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양육자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분리불안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양육자가 보이지 않으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도 공포를 느끼고 비명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강한 항의행동(protest behavior, 애착 대상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한 과도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아이에게 양육자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양육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즉각적 욕구만족’을 원하고 늘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에 비해 성인의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본능과 감정 외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친밀함을 쌓아나갈 수 있는 이성과 의지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네가 필요해’ vs ‘너를 사랑해’



애착은 일방적이지만 사랑은 상호적입니다. 애착은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공생관계이지만 사랑은 나와 너의 개별성의 토대 위에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유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마음은 ‘난 네가 행복하기를 원해!’이지만 애착은 ‘난 네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해’입니다. 즉, 사랑은 ‘나는 너를 사랑해’이지만 애착은 ‘나는 네가 필요해’입니다. 애착은 이기적입니다. 애착은 타인의 존재에 일방적으로 의지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생존본능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애착욕구가 너무나 크고 오랜 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이를 양육자들이 충족시켜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민한 아이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아이들은 크고 작은 애착손상을 가진 채 어른이 됩니다. 그 손상이 클수록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호적인 애정관계보다는 일방적인 애착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조차 충족해주지 못했던 애착욕구를 어떻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맛보았던 일체감이 사그라지면 결국 애착욕구의 좌절이 찾아옵니다. 


물론 애정관계에서도 좌절이 있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시적인 균열을 다시 복구시킬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애착관계에서의 좌절은 과도한 반응을 유발합니다. 마치 양육자가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이 보이는 과도한 절망행동이나 항의행동과 유사합니다. 공포심을 느끼고 매달리거나, 증오를 퍼붓거나, 상대방을 조정해서 계속 자신의 요구대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사랑은 추격과 전투와 도망이 반복되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비극적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극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K의 고통은 남자친구가 떠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뿌리는 치유되지 못한 애착손상에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네가 태어날 때 너무 못 생겨서 버릴까 생각했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보잘것없는 나’라는 자기이미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활발했지만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깊은 수치심을 느껴왔습니다. 그러한 좌절감과 수치심은 마음의 응어리가 되었고 인간관계를 왜곡시켜왔습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그 감정적 응어리를 풀어내야만 과도한 애착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둘째는, 대상의 신중한 선택입니다. 이들은 과도한 애착욕구로 인해 비현실적인 구원의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애착손상을 가진 대상을 만납니다. 그러나 애착손상을 가진 이들끼리의 만남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신을 존중해주고 갈등을 풀어갈 줄 아는 안정적인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로는, 자기위로의 기능을 발달시켜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지해서 위안 받는 습관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을 벗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행복하게 해줄 책임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고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통해서 행위의 보상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지를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기쁨은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경계를 세우고,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또 다른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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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1편

‘착한 게 아니라 약한 거야’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정훈 씨가 상담실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어 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아무 색깔 없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그는 어디서든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무언가를 토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고 다수의 의견을 따랐다. 경청이나 배려라기보다는 자기 생각이 뚜렷하지 않아서였다.


주변의 일방적인 부탁 역시 뿌리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맡고 싶어하지 않는 수업이나 불리한 시간표는 그의 몫이 되어갔다.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도 늘 끌려 다녔다. 마음속으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해지자고 늘 마음먹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네.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하며 물러서고 만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요새 사람 같지 않고 너무 점잖고 착한 분이다’는 칭찬을 한다.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어리숙하고 흐리멍덩한 사람이라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럴 바에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착하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미숙한 착함’과 ‘성숙한 착함’

 


여러분은 어른이 되어 착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나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아이들에게 착하다는 말은 칭찬일 수 있지만 어른들은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개성이 난무하고 자기 PR이 중요한 이 시대에 ‘착하다’는 말은 마치 어리숙하고 개성이나 매력이 없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처럼 되어버린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착하다는 말은 흔히 ‘남을 잘 돕는’,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등 긍정적 성격 특성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서 ‘자기주장을 못하는’, ‘자기 것을 못 챙기고 남 좋은 일만 하는’, ‘재미도 없고 자기 색깔도 없는’ 등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요. 


우리는 ‘미숙한 착함’과 ‘성숙한 착함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숙한 착함’이란 간단히 말해 ‘순응’입니다. 이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순순히 따르는 어린이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착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이 어질며 선하다.’는 의미입니다. 독립적인 자아를 갖추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공감할 줄 알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기준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행동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자아의 바운더리(boundary)’

 


성인이 되어서도 미숙한 착함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아의 미발달’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기호나 취향이 뚜렷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취향에 자신의 생각이 흡수되기 쉽습니다. 한 예로, 정훈 씨는 자신이 끌리는 노래가 있더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별로라고 하면 자신이 끌린 노래보다는 친구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더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맛있게 먹은 식당이라도 동료가 별로라고 하면 ‘그런가?’하고 먼저 자신의 기호를 의심할 것입니다. 이처럼 미숙한 착함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자아의 경계가 모호하고 지나치게 열려 있습니다.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자아의 경계를 심리학에서는 ‘바운더리(boundary)’라고 합니다. 바운더리는 몸으로 이야기하면 피부와 같은데요. 피부에는 약 5백만 개 이상의 감각신경이 있어 다양한 감촉을 느끼고, 수분과 전해질의 외부 유출을 방지하고, 땀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며, 외부 병원체로부터의 일차적인 면역기능을 담당합니다. 피부가 없거나 약하다고 상상해보세요! 피부가 있기에 우리는 몸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자아의 바운더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운더리가 약하면 자아는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고 위험해집니다. 우리는 바운더리가 있기에 타인과 구분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의 욕구, 사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건강한 바운더리가 있을 때, 끌려 다니거나 휩쓸리지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바람직한 자아형성을 도와

 


그렇다면 자아의 바운더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먼저 인간의 심리적 탄생 즉, 자아가 언제 만들어지는지를 봅시다. 영유아기는 애착대상과 공생상태이기에 자아가 모호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와 ‘너’를 구분하게 되고 원시적인 자아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심리적 공생관계에서 자아가 갖춰지는 것을 ‘자아분화(ego differentiation)’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애착대상과 심리적 연결을 유지하는 가운데 독립적 자아를 발달시키는 것입니다. 즉, 잘 분화된 자아는 ‘나(I-ness)’와 ‘우리(We-ness)’, 개별적 자아와 관계적 자아가 함께 있습니다. 통상 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적절한 공감이 이루어지면 만 3세경에 아이의 자아는 일차적 분화를 거칩니다. 이는 엄마라는 애착대상이 내면화되어 잠시 엄마가 보이지 않더라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고 혼자서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안정적인 애착이 중요한 이유는 안정적인 자아분화를 돕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착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되면 자아발달의 왜곡이 일어납니다. 이를 자아의 ‘조기 분화(early differentiated)’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애착대상과의 연결을 유지한 안정적인 분화가 아니라 애착대상과의 단절된 ‘분리’를 의미합니다. 상호적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관계적 자아가 깨져버린 채 자기 세계에 갇혀버린 것이죠. 반대로 3세가 넘었는데도 불안이나 심리적 밀착 때문에 제때 자아가 분화되지 못한 채  ‘미분화(undifferentiated)’ 상태로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자아의 개별성이 없이 애착대상과 얽혀있는 상태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정훈 씨의 경우는 미분화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 두 유형에 대한 전형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코(echo)와 나르키소스(narcissus)’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나르키소스는 자아의 조기분화로 인해 자기 안에 갇혀있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만 되받아서 이야기하는 에코는 자아의 미분화로 대상 안에 갇혀 있는 양극단의 모습입니다. 이 둘에게는 ‘건강한 경계’가 없습니다. 나르키소스의 자아경계는 폐쇄적이고, 에코의 자아경계는 너무 희미합니다. 



지금 나의 바운더리는 건강할까? 

 


잘 분화된 자아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갖춥니다. 폐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열려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과 친밀함을 주고받을 만큼 그 여닫음이 잘 이루어집니다. 해로운 것은 안 받아들이고 좋은 것은 받아들입니다. 마치 정원이 살짝 보이고 넝쿨이 자라고 있는 주택의 잘 세워진 울타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위압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들어갈 정도로 허술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조기 분화된 자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밖에 모르는 폐쇄적인 바운더리로 나타납니다. 너무 높고 철조망이 드리워진 울타리와 같습니다. 관계를 차단한 채 그저 방어적인 관계만 하거나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거나 자기 욕구만을 채우려는 아이 같은 관계를 하려고 하지요. 그에 비해 미분화된 자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잘 못 느끼고 거절이나 자기주장을 못하는 약한 바운더리의 모습을 보입니다. 담장이 너무 낮거나 큰 구멍이 나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허술한 울타리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바운더리를 존중하지 않고 관계를 지배하려고 드는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쉽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행복보다는 상대의 욕구와 행복을 우선적으로 채워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아가 제대로 분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약한 바운더리를 튼튼히 하는 3단계 연습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운더리가 희미하고 약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바운더리를 세우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자아인식에 바탕을 두고 자기에게 맞는 바운더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지,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잘 되지도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3단계로 나누어 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1단계는 ‘일단 멈춤!’입니다. 바운더리가 약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순응적인 자동반응을 보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예!’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와 같은 순응적이거나 모호한 표현을 합니다. 일단 이 자동적인 반응을 멈추고 조금 늦게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잠깐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자기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갖고 난 뒤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2단계는 ‘감정과 욕구의 인식’입니다. 무조건 거절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는 것이 바운더리를 세우는 데 중요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려고 해도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지?’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지?’라고 반복적으로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3단계는 ‘자기표현’입니다. 가능한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기반을 두고 표현을 늘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온갖 두려움이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두려움은 과장된 것입니다. 당신을 점잖게 드러낸다고 해서 관계가 한없이 불편해지거나 찍히거나 단절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어 보세요! 내가 원하는 것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자신을 돌보면서도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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