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칼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6.13 타이어, 시련이 남긴 열매 [AUTO & LIFE]
  2. 2017.05.11 전기차, 사실은 리턴 매치 [AUTO & LIFE]

 


지난달, 저는 한 자동차 전문지와 함께 시속 100km 가속 시간이 3초대인 모델들을 한 자리에서 경험하는 기획을 진행했었습니다. 속칭 ‘제로백’ 3초대라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초고가의 슈퍼카들이나 가능했던 엄청난 고성능이었는데, 그것도 옛말인가 봅니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다섯 대의 모델 가운데 세단이 두 대나 있었을 정도니까요. 자동차 마니아의 입장에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자동차의 성능은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능이 확 달라진다 해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타이어’입니다. 3톤에 육박하는 SUV나 최고급 리무진, 1,000마력을 능가하는 슈퍼카도 결국은 각각 손바닥 하나만큼 땅에 닿아 있는 타이어가 전부입니다. 이 ‘손바닥 네 개’가 말 1천 마리의 힘을 땅으로 전달하고, 집채만 한 차체를 조종하는 유일한 물리적 연결이라는 뜻입니다. 생각할수록 기특한 타이어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타이어가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닙니다. 그 원조는 6천 년 전 나무를 켜서 만든 원시적 형태의 바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다 19세기 중반 고무로 만든 타이어가 등장했는데, 그나마도 속이 꽉 찬 이른바 ‘통 고무’ 타이어였습니다. 1845년에 이미 특허를 받은 공기 주입식 타이어가 있었지만, 도로 사정이 나빴던 당시에는 펑크가 나지 않는 통 고무 타이어가 더욱 사랑받았다고 합니다. 




19세기 말까지 타이어가 본격적으로 발달하지 않았던 이유는 타이어의 역할이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타이어들은 비포장도로의 요철을 잘 흡수하여 승차감을 높이고 바퀴가 부서지지 않도록 보호하며, 짐을 많이 실은 마차의 바퀴가 진흙탕에 빠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역할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즉, 바퀴는 말을 따라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등장으로 상황이 반전합니다. 차를 움직이고, 방향을 바꾸고, 멈추게 하는 등, 차량을 조종할 때 바퀴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차량을 뜻대로 조종하려면 바닥에 요철이 있더라도 타이어가 노면을 잘 움켜쥐어 접지력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충격 흡수력이 우수한 공기 주입식 타이어가 충격을 받으면 튀어 오르는 통 고무 타이어를 밀어내고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공기 주입식 타이어는 자전거에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엔진 대신 사람이 바퀴를 굴리지만, 타이어 자체의 역할은 자동차와 똑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전거용 공기 주입식 타이어는 영국, 정확하게는 북아일랜드의 보이드 던롭(Boyd Dunlop)이란 사람이 사라질 뻔했던 1945년의 공기 주입식 타이어의 특허를 되살려 세계 최초로 제품화에 성공합니다. 


자동차에 공기식 타이어를 최초로 사용한 것은 1895년 프랑스 파리-보르도 자동차 레이스에 참가한 미쉐린(Michelin) 형제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우승엔 실패했지만, 공기 주입식 타이어에 대한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하였고, 이는 공기 주입식 타이어가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공기 주입식 타이어는 불과 100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우선 소재, 즉 타이어를 만드는 고무부터 볼까요? 천연 그대로의 고무는 탄성만 훌륭할 뿐 타이어의 소재로 사용하기에는 안정성이 부족했습니다. 여름에는 지나치게 물렁거리거나 심할 경우 녹아버렸고, 공기를 넣으면 압력이 차는 대신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버리기 일쑤였죠.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굳이어(Goodyear)가 천연고무에 황을 첨가하여 발명한 가황 고무(Vulcanized rubber)였습니다. 물리적으로 훨씬 안정적인 가황 고무의 탄생으로 비로소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어서 1931년 미국의 듀퐁 사(Dupont)가 합성 고무를 개발, 포드 T 모델이 가져온 자동차의 대중화에 발맞춘 타이어의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습니다.




또 하나의 분기점은 저압 타이어의 출현입니다. 


초기의 자동차는 오늘날의 자전거나 리어카처럼 가느다란 공기 주입식 타이어로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자동차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노면의 충격이 더 강하고 빠르게 타이어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전의 가느다란 타이어로는 더이상 안정적으로 달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타이어 안에 더 많은 공기를 담는 대신 공기의 압력을 낮춘 저압 타이어였습니다. 노면의 요철을 타이어가 훨씬 안정적으로 흡수하기 위해선 저런 구조가 안성맞춤이었죠. 타이어의 접지 면적이 넓어지며 조종 성능까지 향상되었으니 일석이조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대부분의 자동차용 타이어가 공기압 2~3 바아(bar) 내외의 저압 타이어인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단, 초기의 타이어처럼 얇은 자전거용 타이어 가운데에는 5 바아 이상의 고압 타이어도 아직 많습니다.


1950년대 이후 자동차가 더욱 고성능으로 발전하면서 타이어는 ‘원심력’이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합니다. 자동차가 빨라지면서 덩달아 회전 속도가 빨라진 타이어는 원심력에 의하여 스스로를 파괴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타이어 내부에 질긴 직물이나 강철 와이어 등을 넣어 원심력을 버티게 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타이어의 회전 방향과 나란하게 강화 섬유를 넣었던 바이어스(bias) 타이어였지만, 지금은 거의 모두 타이어의 둘레를 직각 방향으로 강화한 래디얼(radial) 타이어를 사용합니다. 승차감은 조금 단단해졌지만, 형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래디얼 타이어가 자동차의 고성능화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타이어는 자동차 서스펜션의 일부분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과제가 남았습니다. 공기가 들어 있는 타이어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펑크’입니다. 타이어의 공기가 빠져 주저앉으면 더 달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공기를 가두는 고무 주머니인 튜브를 사용하는 튜브 타이어는 펑크에 취약했지만, 타이어 자체가 공기를 담는 튜브 리스 타이어로 발전하며 이런 문제는 서서히 보완되었습니다. 튜브 리스 타이어는 타이어에 작은 구멍이 나더라도 단번에 주저앉지 않고 공기가 서서히 빠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탑승자의 안전을 지켜주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은 구멍은 스스로 수리할 수 있는 셀프 씰링 타이어(self sealing tire)와 공기가 빠져도 낮은 속도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런 플랫 타이어(run flat tire)가 연이어 탄생합니다. 더 나아가, 탄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동시에 가진 신소재를 사용하여 공기가 없어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는 비공기압 타이어(NPT, Non Pneumatic Tire)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또 한 번의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적 개념의 타이어는 백 년 남짓한 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자동차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자동차가 생활필수품, 그리고 문화적 도구로 발전하면서 타이어에 대한 기준과 기대치가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 대두된 환경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또 한 번의 발전을 가속하고 있지요.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이어의 발전 역시 도전과 시련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거기에 발전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 참, 아무리 우수한 요즘의 타이어라고 해도 타이어의 공기압이 올바르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나들이가 많은 계절입니다. 차량 탑승 전 공기압 체크부터 꼼꼼히 하셔서 안전하고 즐거운 기억을 많이 남기시길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집필가의 의견으로, 삼성화재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전기차의 리턴 매치


예 맞습니다. 요즘 가까운 미래의 자동차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전기차. 우리가 이제 맞아들이려 하는 전기차가 사실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전기차가 내연기관자동차보다 역사가 더 오래 되었고 자동차의 주류였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오늘은 전기차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창립자 가운데 한명인 칼 벤츠(Karl Benz)가 1885년에 만든 ‘파텐트 모터바겐 (Patent-Motorwagen)’을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대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파텐트 모터바겐은 이름이 설명하듯이 동력 기관을 사용하여 달리도록 처음부터 고안되어 특허를 취득한 최초의 자동차를 뜻합니다. 보다 정확하게 이 모델의 중요성을 표현한다면 ‘세계 최초로 내연기관을 사용하여 작동한 오늘날의 자동차의 선조가 되는 자동차’가 되겠습니다. 


제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단순하게 표현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내연기관이 아닌 다른 동력 기관을 사용한 자동차들이 이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려 120년이나 앞선 1769년에 프랑스의 니콜라스 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가 프랑스군이 대포를 견인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증기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차, 즉 자동차의 시효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전기차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이 배터리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최초의 전기차를 만든 것이 1830년대니까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대략 5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단, 이 최초의 전기차는 한 번 방전되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배터리를 사용했다는 점이 한계였습니다. 

즉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갖고 노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고 아직은 본격적인 교통수단이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충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가 1859년에 발명되자 비로소 전기차가 쓸모 있는 교통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요즘의 순수 전기차와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의 충전식 전기차가 등장한 것은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2년 늦은 1887년 이었습니다. 미국인 화학자 윌리엄 모리슨(William Morrison)이 만든 이 충전식 전기차는 1888년 그가 살던 아이오와 주 데스 모이네스에서 열린 퍼레이드에서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였습니다. 1890년 그는 4마력 모터와 24 배터리 셀을 갖춘 신형 모델로 특허를 출원합니다. 이 모델은 최고 속도가 시속 약 20km, 1회 충전으로 무려 100마일, 즉 160km 이상도 달릴 수 있는 본격적인 모델이었고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 스터지스(Sturgis)와 손잡고 만든 새로운 모델을 전시하여 전기차와 배터리의 실용성을 홍보하였습니다. 모리슨의 전기차는 이후 전기차가 20세기 초의 대세가 되는 데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시속 100km의 벽을 처음으로 허문 자동차도 전기차였습니다. 초기의 자동차가 사람이 걷는 속도인 시속 4km, 칼 벤츠의 파텐트 모터바겐이 시속10km, 그리고 모리슨의 전기차도 사람이 빠르게 달리면 잡을 수 있는 시속 20km 정도였고 당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던 말도 평균 시속 50km, 최고 속도 80km/h 전후였습니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들의 극소수만이 유일하게 시속 100km의 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비포장 도로를 흙먼지 가득 일으키며 시속 100km로 달리는 자동차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시속 100km를 최초로 기록한 자동차는 프랑스의 ‘La Jamais Contente’입니다. 프랑스어라서 발음은 힘들지만 뜻은 아주 명쾌합니다. 그 뜻은 바로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Never satisfied)’. 두 개의 68마력짜리 모터로 바퀴를 직접 구동하는 어뢰를 닮은 유선형 차체가 인상적인 이 전기차는 20세기가 오기 직전인 1899년 4월 29일 파리 근교에서 사상 최초로 시속 100km의 벽을 뛰어넘었습니다. 이것은 한 달 전에 가솔린 엔진을 단 자동차가 세운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기차의 우세를 확고히 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초에도 전기차의 우세는 이어집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전기차의 단순한 구조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기차는 엔진처럼 ‘시동’이라는 개념이 없고 전기를 모터에 전달하면 바퀴가 굴러갑니다. 따라서 엔진은 시동되어 있지만 달리지 않을 때를 위하여 엔진과 바퀴의 연결을 끊어주는 클러치가 필요 없습니다. 또한 초창기의 엔진은 회전수에 따라 점화 시기를 운전자가 직접 조절해야 하는 등 조작하기가 매우 복잡합니다. 걸핏하면 망가지고 사람이 기름범벅이 되기 십상인 엔진의 신뢰성도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시동입니다. 당시의 엔진에는 지금과 같은 전기식 시동 모터가 없고 사람이 크랭크 축에 손잡이를 꽂아서 돌려서 시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지간한 남자에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엔진 자동차는 깔끔하고 조용한 전기차에 비하여 성가시고 불편한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당대의 발명왕이자 재산가였던 토머스 에디슨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전기차는 미래가 밝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기차가 1920년대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가격입니다. 지금의 전기차도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가격 경쟁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헨리 포드가 모델 T로 생산 라인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엔진 자동차는 품질은 향상되고 가격은 훨씬 저렴해졌습니다. 1912년 기준으로 전기차의 가격이 1750 달러였던 것에 비하여 포드 모델 T의 가격은 단 650 달러였습니다. 그리고 전기식 시동 모터가 발명되면서 엔진을 시동하는 것이 손쉬워졌습니다. 1회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짧고 충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기차의 한계가 더욱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휘발유도 구하기 쉬워졌습니다. 마침내 전기차는 실질적으로 퇴장합니다.


20세기의 시작을 희망차게 함께 했던 전기차가 20세기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다시 돌아왔었습니다. 1996년에 만들어진 제너럴 모터스의 EV1이라는 전기차입니다. EV1은 배출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차를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강제하는 캘리포니아 주의 환경보호법에 대비하면서, 동시에 전기차 판매의 사업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리스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던 시범 사업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고 전기차가 실용적일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되어가던 중, 1999년 제너럴 모터스는 EV1 전체를 수거하여 거의 대부분을 폐차함으로써 갑자기 종료되었습니다. 정유 업계의 로비설 등 수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인 ‘Who Killed the Electric Car?’가 제작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잊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기차가 다시 다가옵니다. 이번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듯합니다. 이전에는 신기한 장난감, 상대적으로 편리한 도구, 혹은 미래를 가늠하는 제한적 실험이었다면, 이번에 돌아온 전기차는 ‘달리는 스마트 폰’이라는 말이 설명하듯 IT와 자동차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종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일백년 만에 벌어지는 전기차의 리턴매치. 이번에는 결과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 본 콘텐츠는 집필가의 의견으로, 삼성화재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