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5편

‘왜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



한 커플이 상담실을 찾았다. 남성의 데이트 폭력 문제로 함께 온 것이다. “남자친구가 너무 감정조절을 못하는데 고칠 수 있을까 해서요. (중략) 그런데 저한테도 문제가 있어요. 제가 자꾸 남자친구의 성미를 건드리거든요.” 여성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고성이나 폭언이었다가 최근에는 물을 끼얹고 세게 밀쳐서 넘어진 적도 있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 친구가 따지듯 이야기한다고 느낄 때 무시 받는 듯한 감정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분노, 두려움, 연민 등의 마음이 뒤엉켜 있었다. 문제는 자책감이었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자라난 남자친구의 상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적 행동이 벌어지면 이내 ‘내가 좀 이해해주고 넘어가도 됐을 텐데... 내가 또 이 사람의 상처를 건드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싸움이 일어나면 남자친구가 반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왜 너까지 나를 무시해. 왜 자꾸 나를 나쁜 사람이 되게 만들어.” “넌 내가 그런 말 들으면 어떨지 뻔히 알잖아. 왜 자꾸 나를 자극해!” 등의 말이다. 남자친구의 폭력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그녀는 헤어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남자친구의 기분을 살피느라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에게 나의 감정과 욕구를 속박 당한 ‘감정사슬’



사람이 가까워지면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의 끈이 생깁니다. 그것은 감정으로 만들어지지만, 사랑이나 친밀함 같은 좋은 감정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 자책감, 혹은 미움과 같은 안 좋은 감정도 많습니다. 물론 대부분 섞여 있기 마련이지요. 이때 좋은 감정으로 된 끈은 서로를 건강하게 이어주는 수평적인 연결고리가 되지만, 안 좋은 감정으로 된 끈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일방적인 사슬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감정사슬’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나와 가까운 사람에 의해 감정적 압박을 받아 내 감정과 욕구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속박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감정사슬이 만들어지면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됩니다. ‘휘두르는 사람’과 ‘휘둘리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죠. 


당신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자,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해보세요. 


첫째, 가까운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당신의 주장이나 결정권을 발휘하지 못하고 상대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고 느끼나요? 


둘째,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심리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나요? 


이 두 가지 질문 중 하나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감정사슬에 묶여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사슬의 종류


관계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또는 알아차린다고 해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은 특정한 ‘감정’에 지배받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한 감정사슬은 무엇일까요?


첫째, ‘두려움’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두려움일수도 있고, 상대에게서 벗어나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정신적인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이 지속되면 스스로 ‘힘이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둘째, ‘연민’입니다. 내가 상대를 책임지고 돌봐주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자신이 좀 더 인내하고 노력하면 관계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체념으로 바뀌어갑니다. 


셋째, ‘죄책감’입니다. 관계가 안 좋아지고 상대의 문제가 악화되는 데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결국 상대의 감정과 논리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발적인 순응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는 ‘감정조종자’



우리 주위에는 감정사슬을 잘 엮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친절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통제욕구를 드러냅니다. 이들은 차이를 존중하는 법이 없고 자신의 감정과 주장에 따를 것을 강요하지요. 그것은 노골적인 폭력과 위협의 형태일 수도 있고 달콤한 말일 수도 있어요. 역설적이긴 하지만, 헌신적인 보살핌 혹은 눈물 섞인 하소연이 감정사슬인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배우자 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못살겠다. 왜 네 마음대로 하려고 해.’ ‘누구 죽는 꼴 보려고 그래!’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러려고 나를 낳았어?’ 등의 표현은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통제하려고 합니다. 




감정사슬을 잘 엮는 이들을 우리는 ‘감정조종자’라고 합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잘못과 관계의 문제를 끝까지 상대의 책임으로 돌리며,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고 결국 나쁘게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정신의학에서는 ‘투사적 동일시’라고 합니다. 투사가 자신의 감정이나 문제를 단지 상대방의 탓으로 떠넘기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문제에 대한 책임을 느끼도록 집요하게 유도하고 조종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즉, 투사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던져버리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과 공유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방도 처음에는 저항하게 되지만, 감정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점점 이것이 누구의 문제이고 잘못인지가 모호해지고 맙니다. 



감정사슬에 잘 결려 드는 사람들 



이들은 한 마디로 자아가 약한 사람들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은 이들을 잘 알아봅니다. 자기세계를 가지고 있고, 비교적 자기표현이 뚜렷한 이들을 지배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약한 사람들은 늘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을 필요로 하고,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데 익숙하기에 이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통제마저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혼동하기 쉽기에 뒤늦게야 관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를 인식한다 해도 자신이 참고 노력하면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지요. 그러나 상대가 감정조종자라면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감정조종자들은 상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나 자신이 상대방에 의해 점점 더 휘둘리고 있나요?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나오기 어려운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감정사슬에 묶여 관계의 덫에 빠져든 것입니다. 이때는 신중해야 해요.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일 수도 있고 때로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데이트 폭력에 놓여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최근 4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은 300건이 넘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필히 법률적 지원, 혹은 관련기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첫째,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를 존중하세요. 너무 식상한 표현인가요? 하지만 이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감정사슬에 엮인 것은 일차적으로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요. 자신의 바운더리(심리학 용어로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자아의 경계)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바운더리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 감정을 존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감정과 욕구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거예요. 그것을 표현하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둘째, 감정사슬의 감정과 관련 사고를 자세히 살펴보세요. 당신이 끌려 다니는 것은 과장된 감정과 그로 인한 감정적 사고 때문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 연민, 죄책감 등은 증폭된 것이에요. 감정과 그 관련 사고를 관찰해보세요. ‘저 사람이 떠나면 난 살수가 없어!’ ‘나까지 모른 체 하면 저 사람은 살아갈 수 없을 거야!’ ‘저 사람이 저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야.’ ‘내가 노력하면 우리는 좋아질 수 있어.’라는 생각들에 대해 ‘정말 그런가?’라고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진실만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답니다. 


셋째, 내 감정과 욕구를 반복적으로 표현하세요.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해 판단하지도 말고, 감정적으로 휘말리지도 않는 거예요. 자기표현의 핵심은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설득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감정과 힘듦에 대해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죠. ‘당신이 ~할 때 난 너무 힘들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의 특징은 늘 이전투구로 끌고 갑니다. 그래야 자신의 문제가 상대방에게 공유되기 때문이죠. 가능한 차분하고 명료하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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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4편

‘명절 트러블, 이렇게 대처해보자



이제 곧 추석입니다. 우리는 또 여느 때처럼 고향을 갑니다. 길 막히고, 시간 걸리고, 돈도 적잖게 들지만 그럼에도 연어들처럼 고향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모인 명절이 우리에게 휴식이 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이 되기도 하는데요. 좋은 날 다 같이 모여 기분 좋게 헤어지면 좋으련만, 크고 작은 말다툼은 물론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명절 기간 112 전화로 유입되는 일반 범죄 신고는 줄어들지만, 가정폭력 전화는 급증한다고 합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3년도부터 2015년도까지 명절 때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하루 평균 873건으로 평소보다 1.6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해야 할 가족이 오히려 가장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안가도 욕먹고, 가도 욕먹는 것, 그냥 안 가고 욕먹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까요. “고향에 내려가 명절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혼자 지내는 게 낫다”며 아예 고향을 찾지 않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명절이 스트레스가 된 이유 



왜 우리의 명절은 이렇게 스트레스와 트러블의 화약고가 되어버렸을까요? 


첫째, 개인주의 생활에 익숙한 핵가족 생활에서 갑자기 한 집에 여러 가족이 모이는 대가족 생활로의 전환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됩니다. 먹는 것부터 잠자리까지 모든 게 불편한 것투성이죠. 농촌보다 도시가 그런 것처럼 실제 밀도가 조밀할수록 스트레스와 범죄율이 증가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둘째, 입니다. 명절 때는 과음에 대해 더욱 관대해지고 평소보다 자제력이 약해집니다. 결국,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문제들도 술로 인해 더 큰 문제로 증폭됩니다. 


셋째, 기대심리 때문입니다. 명절에는 각자 상대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집니다. 아내는 남편이 먼저 친정을 생각해주길 바라고, 남편은 아내가 시댁 일을 자기 집안일처럼 기꺼이 해주기를 바랍니다. 또 부모 입장에서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만큼은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주길 바라고, 자녀들은 잔소리나 걱정보다는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러한 기대는 실망과 짜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넷째, 비교의 문제입니다. 여러 가족이 모이기 때문에 서로가 비교의 대상이 됩니다. 누가 언제 내려왔고, 누가 설거지를 했고, 누가 무엇을 사 왔고, 누가 공부를 더 잘하고, 누가 더 돈을 잘 벌고 등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교를 하고 비교를 당합니다. 이러한 비교는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되고 맙니다. 


실제로 얼마 전 삼성화재 페이스북에서 진행한 ‘추석, 이 말만은 참아주세요’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취업준비는 잘 되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표정이 왜 그러냐. 인상 좀 펴라’ 등을 지적이나 간섭이 아니라 관심과 걱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마음은 편치 않을 수 있습니다. 관심과 애정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좀 더 효과적인 표현이 필요합니다.



명절 기간 가족트러블을 막아주는 한마디



그렇다면 명절에 가족 간의 트러블을 최소화하거나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요? 쉽지는 않지만 서로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방법이 왜 없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명절 전에 필요한 것은 ‘관심’의 표현입니다. 


간단히 ‘괜찮아?’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친구 중에 아내로부터 매너 좋은 사람으로 꼽히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가만히 보면 작은 것에 강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 중 과속방지 턱에서 충분히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차가 덜컹거렸다고 해봅시다. 친구는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괜찮아? 안 놀랐어?” 그 말 한마디에 아내는 남편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고 존중해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명절 트러블을 예방하는 것 또한 작은 관심의 표현에 있는데, 특히 명절 전에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라면 ‘당신 요즘 괜찮아? 명절 때문에 미리부터 신경 쓰이는 것 없어?’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꼭 어떻게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상대의 마음 상태를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관심받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려가기 전에 ‘괜찮으세요? 명절 때문에 걱정되시거나 힘든 점은 없으세요?’라고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예방법입니다. 

 


둘째, 명절 중에는 ‘부탁’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우리 ~해요.”와 같은 말입니다. 부탁할 때는 자신이 못마땅한 감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이며, 상대에게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자고 청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명절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 중 하나가 평소에는 내게 관심도 보이지 않던 형제나 친인척들이 명절이라고 꼭 한마디씩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본인이 스트레스를 느끼는 아픈 부분을 건드린다면 더 듣기 싫겠죠. 앞서 페이스북 설문 결과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설익은 관심에 버럭 화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족 간에는 좀 더 부드러운 대처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듣고 싶지 않은 정치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 정치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 해요. 요즘에는 친구들끼리 만나도 사이가 멀어지니까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잘 안 해요’라는 식으로 대화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남편이 돕지 않고 TV만 보고 있다면 “우리 같이 정리 좀 해요.”라고 해보세요. 물론 이렇게 한 번 이야기한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가 곡해하기도 하고 들은 체 만 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해소는 상대가 부탁을 들어주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가 가만히 있지 않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부탁과 거절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나는 부탁할 수 있고, 상대는 거절 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좀 더 가볍게 해보세요. 이때 부드럽게 웃으면서 물어본다면 더욱 좋겠죠? 



셋째, 명절 후에는 ‘감사’의 표현이 중요합니다. 


‘당신, 정말 애썼어요!’ 혹은 ‘00야, 고마워!’라고 먼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의 행동이나 마음이 당신의 기대에는 못 미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거나 더 잘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는 상대가 할 수 있는 역량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한계이자 동시에 최선입니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기대일 뿐입니다. 


명절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싸우지 않았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잘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는 가족관계에 계속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 명절 연휴가 지난 뒤에는 이혼소송의 건수가 올라갑니다. 명절 이후에는 ‘이혼’에 대한 검색 횟수가 20% 전후로 늘어나고, 이혼한 4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남자는 44.5% 그리고 여성은 60.2%가 명절이 이혼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습니다. 


사실 명절 스트레스를 철저히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싸움도 피하기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싸울 때 싸우지만 잘 화해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커플은 안 싸워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화해를 잘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싸우고 난 뒤에 다시 대화하면서 ‘고마워. 미안해. 좀 더 노력할게’라는 표현을 잘 사용합니다. 



지금까지 명절 기간 가족간의 표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명절 트러블의 주된 원인으로는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노동과 배우자가 서로의 집안에 덜 신경 쓴다고 서운해하는 것 등이 있을 텐데요.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평소보다 더 배려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남성들은 식사와 다과상 준비를 하거나 처가에서 설거지를 돕고, 여성들은 양가 부모님 앞에서 배우자를 칭찬하고 어른들께 더 따뜻하고 배려 깊은 태도로 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에게는 이미 그들이 학업과 취직, 사회생활에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 놀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는 걸 말해준다면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의 시간은 즐겁고 따뜻한 경험이 될 거예요.


추석은 감사의 시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해 가장 먼저 수확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올렸습니다. 내가 고생해서 얻은 수확이지만 그 수확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내 입에 털어 넣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있게 해준 조상과 천지신명께 감사의 마음으로 바친 것이죠.


가족트러블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 또한 구체적인 화법이나 표현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올 추석은 완벽하지 않은 오늘의 삶에서 감사함을 배우고, 내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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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3편

‘그건 사랑이 아니야

 

 

K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책상 위에 휴지가 한 움큼 쌓여갔다. 6개월 전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부터라고 했다. 


2년을 조금 넘게 사귄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좋다고 쫓아다녀서 시작했던 연애였기에 그의 이별통보는 더욱 충격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지칠 만큼 지쳤기에 먼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많았었다. 


시간이 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다른 여자를 새롭게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마음이 쑥대밭이 되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잘 해보자며 사정을 해보기도 했지만 전 남자친구는 냉정했다. 그녀는 매일 전 남자친구의 SNS에 들어가 그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밤 마다 울다 지쳐 쓰러지고 눈을 뜨면 증오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그 사람도 고통스럽겠지요?” 



파멸로 치닫는 비극적 사랑



▲ 벨기에 화가 Joseph Stallaert의 <The Death of Dido (1872)>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라는 책에서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가 멸망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트로이의 장수입니다. 그는 유민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 모험 길에서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들렀다가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유민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다짐을 잊어버리고 디도와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신들은 인간의 행복을 질투합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어 그가 잊고 있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부하들을 불러 은밀히 출항준비를 시킨 뒤 디도에게 알리지도 않고 훌쩍 떠나 버립니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겠지요. 


홀로 남겨진 디도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며칠 동안 괴로워하던 그녀는 궁정마당에 장작을 쌓고 아이네이아스가 남겨둔 무기와 옷 그리고 함께 쓰던 침대를 태웁니다. 추억의 물건과 함께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장작이 활활 타오르자 디도는 갑작스럽게 화염에 싸인 침대위로 몸을 던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연인과의 이별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며, 자기의 붕괴입니다. 그렇기에 디도의 죽음은 자살이면서 동시에 타살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아이네이아스를 남김없이 파괴시켜버리고 자신을 배신한 아이네이아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싶은 복수의 마음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중 아만테스(amantes)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글자 하나 차이인 아멘테스(amentes)는 ‘정신 나간 사람’을 뜻하지요. 예부터 사람들은 사랑을 일종의 광기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비극적 사랑이 탄생하는 과정 



왜 어떤 사랑은 이렇게 치명적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애정)과 애착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의 비극적인 사랑은 애정이 아니라 애착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격렬합니다. 우리는 흔히 애착을 사랑이라는 말과 혼동합니다. 그리고 유아기 애착의 중요성으로 인해 애착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착은 사랑과 다르며, 성인의 애착은 관계를 파멸로 몰아가기 쉽습니다. 


잠시 애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까요? 애착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동물의 애착행동에 착안하여 애착 이론을 발달시켰습니다. 포유류의 새끼들은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맺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새끼들은 필사적으로 어미에게 매달리게 되어있고, 어미는 새끼들로부터 잠시라도 한 눈을 팔지 않도록 설정되어있는 본능적 프로그램이 바로 애착입니다. 이는 새끼가 어미에게 매달리는 일방적인 의존 상태입니다. 


인간의 애착은 더 강합니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크게 우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양육자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분리불안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양육자가 보이지 않으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도 공포를 느끼고 비명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강한 항의행동(protest behavior, 애착 대상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한 과도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아이에게 양육자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양육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즉각적 욕구만족’을 원하고 늘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에 비해 성인의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본능과 감정 외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친밀함을 쌓아나갈 수 있는 이성과 의지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네가 필요해’ vs ‘너를 사랑해’



애착은 일방적이지만 사랑은 상호적입니다. 애착은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공생관계이지만 사랑은 나와 너의 개별성의 토대 위에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유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마음은 ‘난 네가 행복하기를 원해!’이지만 애착은 ‘난 네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해’입니다. 즉, 사랑은 ‘나는 너를 사랑해’이지만 애착은 ‘나는 네가 필요해’입니다. 애착은 이기적입니다. 애착은 타인의 존재에 일방적으로 의지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생존본능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애착욕구가 너무나 크고 오랜 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이를 양육자들이 충족시켜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민한 아이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아이들은 크고 작은 애착손상을 가진 채 어른이 됩니다. 그 손상이 클수록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호적인 애정관계보다는 일방적인 애착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조차 충족해주지 못했던 애착욕구를 어떻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맛보았던 일체감이 사그라지면 결국 애착욕구의 좌절이 찾아옵니다. 


물론 애정관계에서도 좌절이 있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시적인 균열을 다시 복구시킬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애착관계에서의 좌절은 과도한 반응을 유발합니다. 마치 양육자가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이 보이는 과도한 절망행동이나 항의행동과 유사합니다. 공포심을 느끼고 매달리거나, 증오를 퍼붓거나, 상대방을 조정해서 계속 자신의 요구대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사랑은 추격과 전투와 도망이 반복되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비극적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극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K의 고통은 남자친구가 떠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뿌리는 치유되지 못한 애착손상에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네가 태어날 때 너무 못 생겨서 버릴까 생각했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보잘것없는 나’라는 자기이미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활발했지만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깊은 수치심을 느껴왔습니다. 그러한 좌절감과 수치심은 마음의 응어리가 되었고 인간관계를 왜곡시켜왔습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그 감정적 응어리를 풀어내야만 과도한 애착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둘째는, 대상의 신중한 선택입니다. 이들은 과도한 애착욕구로 인해 비현실적인 구원의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애착손상을 가진 대상을 만납니다. 그러나 애착손상을 가진 이들끼리의 만남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신을 존중해주고 갈등을 풀어갈 줄 아는 안정적인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로는, 자기위로의 기능을 발달시켜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지해서 위안 받는 습관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을 벗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행복하게 해줄 책임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고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통해서 행위의 보상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지를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기쁨은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경계를 세우고,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또 다른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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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2편

‘관심과 간섭은 다른 거야’



30대 후반의 K는 지방도시의 대학교수이다. 시간강사를 떠돌다가 작년에 어렵게 임용되었지만, 지금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니, 어떨 때는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을 정도다. 바로 인간관계 때문이다. 왜 대한민국에는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까?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몇몇 교수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방을 찾아온다. 마실 것을 갖다 주거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까진 좋지만 대화는 늘 사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만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금방 불편해지고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 같아서는 ‘제발 저에게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는 방 안에 있으면서도 ‘외출중’이라는 푯말을 걸어놓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퇴근한 후에는 어떨까. K교수 부부는 다른 부부들과 달리 공유하는 게 별로 없다. 경제 관리나 취미 생활도 각자 할 뿐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으로 정해놓은 잠자리 외에는 잠도 각자 방에서 잔다. 각자 나름대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점점 공허감이 깊어가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관계’를 지니고 산다

 


사람은 누군가와 하나가 되려는 뿌리 깊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K교수는 상대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누군가와 하나가 되려는 욕구에 무관심한 걸까요? 아닙니다. 무관심한 게 아니라 방어적일 뿐입니다. 


K교수에게 누군가 다가오는 것은 '관심'이 아닌 '간섭'으로 느껴지고, 가까운 인간관계란 ‘친밀함’이 아닌 ‘위협’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자신의 약한 자아가 무너지거나 상대에게 휘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그녀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어린 딸을 지나치게 걱정한 나머지 항상 전화기 옆에 붙어 지내게 하며 수시로 일과를 확인했죠.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늘 통근시간을 지켜야 했고 남들 다 가는 MT도 갈 수 없었습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지요. 딸을 위한다는 이유였지만, 엄마의 관심은 그녀에겐 구속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합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결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해서가 아니라 독립을 위해 한 결혼은 그녀에게 또 다른 구속일 따름이었습니다. 



관심과 간섭의 차이 


K교수에게 관심과 간섭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자신이 요청하지 않았는데 다가오거나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다가오면 모두 ‘간섭’이며 ‘오지랖’이라고 느낍니다. 상대방의 의도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죠. 물론 상대방이 아무리 관심을 갖고 다가오더라도 내가 간섭받는다고 느낀다면 의미 없겠지만, ‘내 마음에 들면 관심, 내 마음에 안 들면 간섭’으로 선을 긋는 것도 문제입니다.

 



관심과 간섭은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 여부'와 '상대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개입 여부’로 구분됩니다.


관심은 연민, 호감, 호기심이라는 감정의 토대 위에서 비롯되는, 대상에 대한 판단 이전의 이끌림입니다. 그렇지만 간섭은 감정보다는 이성의 토대 위에서 비롯되는 대상에 대한 판단적인 개입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의 부부가 아이를 안 낳고 두 사람끼리 살기로 했다고 해봅시다. 이때 그들이 왜 그렇게 살기로 했는지 궁금함을 느끼고 알고 싶은 것은 관심입니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라는 잣대로 두 사람에게 개입하는 건 간섭입니다. 두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기도 전에 “나중에 외로워서 어떻게 살려고 해!”라고 때 이른 조언을 하거나, 심지어 “두 사람 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라고 비난한다면 전형적인 간섭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관심의 목적은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데 있지만, 간섭의 목적은 상대방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의 변화를 바라는 간섭이 정작 긍정적인 반응 대신 더 큰 반발과 갈등만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려는 자율성의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관계는 개별성을 지켜준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탄생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왜 인간관계가 갈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태초의 인간 아담은 에덴동산 안에서 점점 쓸쓸함과 권태를 느낍니다. 다른 동물들은 짝이 있는데, 그만 혼자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조물주는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갈비뼈를 꺼내어 이브를 만듭니다. 즉,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있어 최초의 타인인 이브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아담의 일부인 셈입니다. 이는 인간이 타인을 자신의 일부처럼 바라보는 근원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잃어버린 일부를 되찾아 온전히 하나가 되고자 하는 합일의 욕구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상대가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느끼길 바랍니다. 하지만 양육의 핵심은 자녀의 독립이며, 우정의 지속은 차이의 존중에 있는 것처럼, 사랑 역시 각자를 인정하며 함께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합일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나와 너를 넘어선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유의 관계'입니다. 둘이 만나 셋이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공자는 건강한 인간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논어』 '자로' 편 -


이는 ‘군자는 화합하되 남들에게 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같아지려고 하지만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바란다면 우리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합일의 욕구를 포기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되 공통된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차이를 존중한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니 신경 쓰거나 간섭하지 말고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흔히 '쿨한 관계'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둘이 만나 하나가 되고자 하는 합일의 관계만큼이나 역기능적인 관계양상입니다. 서로를 이어주는 '우리'가 부재한 무늬만 관계일 뿐입니다.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위하여 



관심과 간섭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잔소리 하는 엄마처럼 인간관계에서 관심과 간섭은 늘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그 양면을 다 볼 줄 알고 이를 적절히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채근담에 보면 '해미불함(海味不醎)'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해산물은 바닷물에 살지만 먹어도 짜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필요한 만큼만 염분을 받아들이고 해로울 수 있는 나머지 양은 다시 내보낼 수 있는 능동적인 세포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바닷물의 짠 소금처럼 사람들의 관심이나 간섭은 넘쳐납니다. 그렇다고 마냥 받아들이거나 마냥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수위조절과 자기표현의 방법을 꾸준히 익혀가야 합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흘려보내며, 지나친 관심과 개입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요구를 표현함으로써 경계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상황이나 사람마다 다르기에 그 적정선을 잡는다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균형을 잡았다 싶다가도 금방 흔들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발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균형을 잃은 것 같으면 반대로 핸들을 틀어주어 다시 균형을 잡아가는 것처럼 자아와 관계의 균형 역시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다시 회복해나가는 끝이 없는 과정입니다.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시리즈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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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7.06.20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이라 생각했지만 간섭이었던 적이 많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1편

‘착한 게 아니라 약한 거야’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정훈 씨가 상담실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어 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아무 색깔 없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그는 어디서든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무언가를 토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고 다수의 의견을 따랐다. 경청이나 배려라기보다는 자기 생각이 뚜렷하지 않아서였다.


주변의 일방적인 부탁 역시 뿌리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맡고 싶어하지 않는 수업이나 불리한 시간표는 그의 몫이 되어갔다.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도 늘 끌려 다녔다. 마음속으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해지자고 늘 마음먹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네.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하며 물러서고 만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요새 사람 같지 않고 너무 점잖고 착한 분이다’는 칭찬을 한다.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어리숙하고 흐리멍덩한 사람이라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럴 바에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착하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미숙한 착함’과 ‘성숙한 착함’

 


여러분은 어른이 되어 착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나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아이들에게 착하다는 말은 칭찬일 수 있지만 어른들은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개성이 난무하고 자기 PR이 중요한 이 시대에 ‘착하다’는 말은 마치 어리숙하고 개성이나 매력이 없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처럼 되어버린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착하다는 말은 흔히 ‘남을 잘 돕는’,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등 긍정적 성격 특성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서 ‘자기주장을 못하는’, ‘자기 것을 못 챙기고 남 좋은 일만 하는’, ‘재미도 없고 자기 색깔도 없는’ 등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요. 


우리는 ‘미숙한 착함’과 ‘성숙한 착함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숙한 착함’이란 간단히 말해 ‘순응’입니다. 이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순순히 따르는 어린이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착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이 어질며 선하다.’는 의미입니다. 독립적인 자아를 갖추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공감할 줄 알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기준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행동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자아의 바운더리(boundary)’

 


성인이 되어서도 미숙한 착함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아의 미발달’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기호나 취향이 뚜렷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취향에 자신의 생각이 흡수되기 쉽습니다. 한 예로, 정훈 씨는 자신이 끌리는 노래가 있더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별로라고 하면 자신이 끌린 노래보다는 친구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더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맛있게 먹은 식당이라도 동료가 별로라고 하면 ‘그런가?’하고 먼저 자신의 기호를 의심할 것입니다. 이처럼 미숙한 착함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자아의 경계가 모호하고 지나치게 열려 있습니다.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자아의 경계를 심리학에서는 ‘바운더리(boundary)’라고 합니다. 바운더리는 몸으로 이야기하면 피부와 같은데요. 피부에는 약 5백만 개 이상의 감각신경이 있어 다양한 감촉을 느끼고, 수분과 전해질의 외부 유출을 방지하고, 땀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며, 외부 병원체로부터의 일차적인 면역기능을 담당합니다. 피부가 없거나 약하다고 상상해보세요! 피부가 있기에 우리는 몸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자아의 바운더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운더리가 약하면 자아는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고 위험해집니다. 우리는 바운더리가 있기에 타인과 구분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의 욕구, 사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건강한 바운더리가 있을 때, 끌려 다니거나 휩쓸리지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바람직한 자아형성을 도와

 


그렇다면 자아의 바운더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먼저 인간의 심리적 탄생 즉, 자아가 언제 만들어지는지를 봅시다. 영유아기는 애착대상과 공생상태이기에 자아가 모호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와 ‘너’를 구분하게 되고 원시적인 자아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심리적 공생관계에서 자아가 갖춰지는 것을 ‘자아분화(ego differentiation)’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애착대상과 심리적 연결을 유지하는 가운데 독립적 자아를 발달시키는 것입니다. 즉, 잘 분화된 자아는 ‘나(I-ness)’와 ‘우리(We-ness)’, 개별적 자아와 관계적 자아가 함께 있습니다. 통상 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적절한 공감이 이루어지면 만 3세경에 아이의 자아는 일차적 분화를 거칩니다. 이는 엄마라는 애착대상이 내면화되어 잠시 엄마가 보이지 않더라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고 혼자서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안정적인 애착이 중요한 이유는 안정적인 자아분화를 돕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착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되면 자아발달의 왜곡이 일어납니다. 이를 자아의 ‘조기 분화(early differentiated)’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애착대상과의 연결을 유지한 안정적인 분화가 아니라 애착대상과의 단절된 ‘분리’를 의미합니다. 상호적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관계적 자아가 깨져버린 채 자기 세계에 갇혀버린 것이죠. 반대로 3세가 넘었는데도 불안이나 심리적 밀착 때문에 제때 자아가 분화되지 못한 채  ‘미분화(undifferentiated)’ 상태로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자아의 개별성이 없이 애착대상과 얽혀있는 상태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정훈 씨의 경우는 미분화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 두 유형에 대한 전형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코(echo)와 나르키소스(narcissus)’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나르키소스는 자아의 조기분화로 인해 자기 안에 갇혀있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만 되받아서 이야기하는 에코는 자아의 미분화로 대상 안에 갇혀 있는 양극단의 모습입니다. 이 둘에게는 ‘건강한 경계’가 없습니다. 나르키소스의 자아경계는 폐쇄적이고, 에코의 자아경계는 너무 희미합니다. 



지금 나의 바운더리는 건강할까? 

 


잘 분화된 자아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갖춥니다. 폐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열려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과 친밀함을 주고받을 만큼 그 여닫음이 잘 이루어집니다. 해로운 것은 안 받아들이고 좋은 것은 받아들입니다. 마치 정원이 살짝 보이고 넝쿨이 자라고 있는 주택의 잘 세워진 울타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위압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들어갈 정도로 허술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조기 분화된 자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밖에 모르는 폐쇄적인 바운더리로 나타납니다. 너무 높고 철조망이 드리워진 울타리와 같습니다. 관계를 차단한 채 그저 방어적인 관계만 하거나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거나 자기 욕구만을 채우려는 아이 같은 관계를 하려고 하지요. 그에 비해 미분화된 자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잘 못 느끼고 거절이나 자기주장을 못하는 약한 바운더리의 모습을 보입니다. 담장이 너무 낮거나 큰 구멍이 나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허술한 울타리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바운더리를 존중하지 않고 관계를 지배하려고 드는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쉽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행복보다는 상대의 욕구와 행복을 우선적으로 채워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아가 제대로 분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약한 바운더리를 튼튼히 하는 3단계 연습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운더리가 희미하고 약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바운더리를 세우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자아인식에 바탕을 두고 자기에게 맞는 바운더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지,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잘 되지도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3단계로 나누어 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1단계는 ‘일단 멈춤!’입니다. 바운더리가 약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순응적인 자동반응을 보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예!’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와 같은 순응적이거나 모호한 표현을 합니다. 일단 이 자동적인 반응을 멈추고 조금 늦게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잠깐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자기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갖고 난 뒤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2단계는 ‘감정과 욕구의 인식’입니다. 무조건 거절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는 것이 바운더리를 세우는 데 중요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려고 해도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지?’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지?’라고 반복적으로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3단계는 ‘자기표현’입니다. 가능한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기반을 두고 표현을 늘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온갖 두려움이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두려움은 과장된 것입니다. 당신을 점잖게 드러낸다고 해서 관계가 한없이 불편해지거나 찍히거나 단절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어 보세요! 내가 원하는 것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자신을 돌보면서도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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