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6

‘네가 기뻐야 나는 기뻐’



어떻게 하면 아내가 웃을 수 있을까?


젊은 사업가인 P는 아내에게 헌신적이다.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고, 철마다 함께 여행도 떠나고, 아내가 좋아할 만한 공연을 챙겨서 보러 간다. 늘 아내에게 “뭐 필요한 거 없어?”를 묻지만 정작 본인은 뭘 요구하는 법이 없다. 그뿐인가! 처갓집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본가보다 더 챙긴다. P의 아내를 보며 친구들과 친정식구들은 모두 부러워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그녀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행복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자신이 남편의 딸이나 혹은 강아지처럼 느껴진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에서 자상한 보살핌 아래 마냥 행복해하는 강아지이기를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랑에 의문이 생기자 그녀의 얼굴에는 점점 웃음이 사라져갔다. 덩달아 남편 또한 심각해졌다. 이전보다 더 외식을 권하고, 더 선물을 해주고, 더 열심히 집안일도 한다. 그러나 아내는 예전처럼 기뻐하지 않는다. 웃음을 잃어가는 아내를 보며 P는 오늘도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아내가 웃을 수 있을까? 



첫사랑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한다


P의 부부관계는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의 영향을 받으며 반복적인 패턴을 보입니다. P의 유년시절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늘 슬퍼 보이는 엄마를 내가 기쁘게 하고 싶어!


사업가였던 P의 아버지는 P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사업에서 큰 실패를 했다. 그 이후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고 갈수록 성격이 괴팍해졌다. 교사인 어머니가 가계를 이끌었지만, 아버지는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심지어 별다른 이유가 없을 때도 어머니에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해댔다. 의처증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늘 슬퍼 보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어린 그에게는 말 못 할 고통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엄마의 기대에 있는 힘껏 부응하는 것이었다. 실제 그는 엄마의 기대처럼 공부도 잘했고, 동생들의 숙제까지 돌봐주는 의젓한 큰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엄마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흘렀다. ‘네 덕분에 내가 산다.’는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정말 기뻤다.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 그의 낙이었고 삶의 이유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절대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와 정반대로 자상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P는 줄곧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를 찾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상대방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했다.  



누군가를 돌봐야만 살아가는 사람들, 공동의존 



정신의학에서는 자기 자신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돌봄으로써 만들어진 왜곡된 관계를 ‘공동의존’이라고 합니다. 이는 일방적인 의존처럼 보이지만 보살피는 사람 역시 보살핌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다는 점에서 공동의존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그 양상이 다를 뿐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동의존이라는 말은 원래 중독자 가족들이 중독자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겉보기에는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고심하고 애를 쓰며 헌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건강하지 못한 도움을 줌으로써 오히려 중독을 조장하는 가족들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중독자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의 핵심 문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 ‘다른 사람의 삶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해결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과잉책임감’ 그리고, ‘자신을 외면하고 상대를 돌보는 타인 중심적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누군가를 돌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불화가 심해 한쪽 부모와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었거나, 부모의 병환이나 경제적 곤란으로 인해 일찍부터 가족들을 돌봐야 했던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때 이르게 주어진 돌봄의 역할로 인해 ‘누군가를 잘 돌봐야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틀을 가지고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문제가 있거나 힘든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그 기분이나 상황을 바꿔줘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노력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크게 좌절하고 상처받습니다. 


공동의존을 보이는 사람들의 특징


-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자기와 연결지어 받아들인다.

- 타인의 감정에 의해 자신의 감정이 쉽게 영향을 받고, 타인의 감정을 바꾸기 위해 애쓴다. 

- 문제 있는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감정이입하며 그들의 문제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느낀다.

-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힘들어도 참고 하거나 상대가 싫다는데도 베푼다.  

- 인위적인 자기가치감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도와야만 한다. 

- 누구도 자신이 베푼 만큼 자신을 위해주지 않는 것 같아 의기소침해 하고 신세를 한탄한다.   

-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잘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노력할수록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 



이들은 아프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를 씁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상대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면 의미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상하게 노력할수록 상대의 문제는 악화되어 가고, 자신은 점점 소진될 정도로 상대의 삶에 깊이 얽히게 되는 것입니다. 공동의존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가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움으로 상대의 고통이 덜어지고 기분이 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당장 상대방을 덜 괴롭게 하거나 기쁘게 만들기 위해 상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거나, 편법을 동원하거나, 문제가 있는 상대를 무조건 지지하고 두둔해주거나,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바꾸려고 함으로써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켜버립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가 취해서 회사에 결근하게 되면 공동의존에 있는 가족이 대신 전화를 해서 아파서 못 나간다고 거짓말을 해주는 식입니다. 공동의존자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정서적 공감능력은 뛰어나지만,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고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인지적 공감능력은 떨어집니다. 그렇기에 노력을 하면 할수록 상대의 문제는 심각해지는 모순에 빠지고 맙니다. 더 큰 문제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까지 부정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히려 비난당하기까지 합니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공동의존자들을 위해 이러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옛날 노나라 왕궁에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왕은 기뻐서 그 새를 다른 나라의 군주를 맞이하는 예로써 극진히 대접합니다. 술을 마시게 하고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소, 돼지, 양고기를 갖추어 상을 차립니다. 그러나 새는 한 조각도 먹지 않고 사흘 만에 죽어버리게 됩니다. 이 얼마나 허망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인가요! 



어떻게 공동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하면 공동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먼저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처를 치유해야 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관계의 패턴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계가 뒤얽히지 않도록 자아가 바로 서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 칼럼에서는 간단히 몇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자신을 사랑해야 해요.


공동의존자들은 상대의 삶에 대해서는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이 뭘 원하는지는 알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이들에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필요한 일은 의식의 안테나를 안으로 돌리는 것이고 홀로 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돌보지 않고도 홀로 기쁨을 느끼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기쁠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삶에 필요 이상 개입하지 않을 수 있으며, 뒤얽힌 관계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둘째,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대신, 상황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세요. 


공동의존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고통이나 불편을 당장 덜어주는 것에만 급급해합니다. 이들은 늘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원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상대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냉정함과 한 템포 느린 반응이에요.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바로 베풀기 전에 무엇이 상대를 위하는 것인지 긴 안목에서 생각해보세요. 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셋째, 인지적 공감이 서툴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세요. 


자신이 늘 상대를 신경 쓰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고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의 마음읽기는 오류투성이입니다. 상대를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무언가를 베풀려고 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건강한 관계에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외에 ‘나’와 ‘너’의 공간이 공존해야 해요. 그래야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상대의 인생에 대한 책임 이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먼저 필요합니다.








다양한 보험 정보와 생활Tip이 궁금하다면? 

삼성화재 SNS와 친구가 되어주세요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5편

‘왜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



한 커플이 상담실을 찾았다. 남성의 데이트 폭력 문제로 함께 온 것이다. “남자친구가 너무 감정조절을 못하는데 고칠 수 있을까 해서요. (중략) 그런데 저한테도 문제가 있어요. 제가 자꾸 남자친구의 성미를 건드리거든요.” 여성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고성이나 폭언이었다가 최근에는 물을 끼얹고 세게 밀쳐서 넘어진 적도 있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 친구가 따지듯 이야기한다고 느낄 때 무시 받는 듯한 감정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분노, 두려움, 연민 등의 마음이 뒤엉켜 있었다. 문제는 자책감이었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자라난 남자친구의 상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적 행동이 벌어지면 이내 ‘내가 좀 이해해주고 넘어가도 됐을 텐데... 내가 또 이 사람의 상처를 건드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싸움이 일어나면 남자친구가 반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왜 너까지 나를 무시해. 왜 자꾸 나를 나쁜 사람이 되게 만들어.” “넌 내가 그런 말 들으면 어떨지 뻔히 알잖아. 왜 자꾸 나를 자극해!” 등의 말이다. 남자친구의 폭력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그녀는 헤어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남자친구의 기분을 살피느라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에게 나의 감정과 욕구를 속박 당한 ‘감정사슬’



사람이 가까워지면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의 끈이 생깁니다. 그것은 감정으로 만들어지지만, 사랑이나 친밀함 같은 좋은 감정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 자책감, 혹은 미움과 같은 안 좋은 감정도 많습니다. 물론 대부분 섞여 있기 마련이지요. 이때 좋은 감정으로 된 끈은 서로를 건강하게 이어주는 수평적인 연결고리가 되지만, 안 좋은 감정으로 된 끈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일방적인 사슬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감정사슬’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나와 가까운 사람에 의해 감정적 압박을 받아 내 감정과 욕구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속박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감정사슬이 만들어지면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됩니다. ‘휘두르는 사람’과 ‘휘둘리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죠. 


당신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자,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해보세요. 


첫째, 가까운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당신의 주장이나 결정권을 발휘하지 못하고 상대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고 느끼나요? 


둘째,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심리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나요? 


이 두 가지 질문 중 하나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감정사슬에 묶여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사슬의 종류


관계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또는 알아차린다고 해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은 특정한 ‘감정’에 지배받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한 감정사슬은 무엇일까요?


첫째, ‘두려움’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두려움일수도 있고, 상대에게서 벗어나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정신적인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이 지속되면 스스로 ‘힘이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둘째, ‘연민’입니다. 내가 상대를 책임지고 돌봐주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자신이 좀 더 인내하고 노력하면 관계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체념으로 바뀌어갑니다. 


셋째, ‘죄책감’입니다. 관계가 안 좋아지고 상대의 문제가 악화되는 데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결국 상대의 감정과 논리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발적인 순응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는 ‘감정조종자’



우리 주위에는 감정사슬을 잘 엮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친절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통제욕구를 드러냅니다. 이들은 차이를 존중하는 법이 없고 자신의 감정과 주장에 따를 것을 강요하지요. 그것은 노골적인 폭력과 위협의 형태일 수도 있고 달콤한 말일 수도 있어요. 역설적이긴 하지만, 헌신적인 보살핌 혹은 눈물 섞인 하소연이 감정사슬인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배우자 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못살겠다. 왜 네 마음대로 하려고 해.’ ‘누구 죽는 꼴 보려고 그래!’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러려고 나를 낳았어?’ 등의 표현은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통제하려고 합니다. 




감정사슬을 잘 엮는 이들을 우리는 ‘감정조종자’라고 합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잘못과 관계의 문제를 끝까지 상대의 책임으로 돌리며,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고 결국 나쁘게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정신의학에서는 ‘투사적 동일시’라고 합니다. 투사가 자신의 감정이나 문제를 단지 상대방의 탓으로 떠넘기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문제에 대한 책임을 느끼도록 집요하게 유도하고 조종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즉, 투사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던져버리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과 공유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방도 처음에는 저항하게 되지만, 감정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점점 이것이 누구의 문제이고 잘못인지가 모호해지고 맙니다. 



감정사슬에 잘 결려 드는 사람들 



이들은 한 마디로 자아가 약한 사람들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은 이들을 잘 알아봅니다. 자기세계를 가지고 있고, 비교적 자기표현이 뚜렷한 이들을 지배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약한 사람들은 늘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을 필요로 하고,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데 익숙하기에 이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통제마저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혼동하기 쉽기에 뒤늦게야 관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를 인식한다 해도 자신이 참고 노력하면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지요. 그러나 상대가 감정조종자라면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감정조종자들은 상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나 자신이 상대방에 의해 점점 더 휘둘리고 있나요?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나오기 어려운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감정사슬에 묶여 관계의 덫에 빠져든 것입니다. 이때는 신중해야 해요.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일 수도 있고 때로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데이트 폭력에 놓여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최근 4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은 300건이 넘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필히 법률적 지원, 혹은 관련기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첫째,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를 존중하세요. 너무 식상한 표현인가요? 하지만 이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감정사슬에 엮인 것은 일차적으로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요. 자신의 바운더리(심리학 용어로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자아의 경계)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바운더리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 감정을 존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감정과 욕구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거예요. 그것을 표현하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둘째, 감정사슬의 감정과 관련 사고를 자세히 살펴보세요. 당신이 끌려 다니는 것은 과장된 감정과 그로 인한 감정적 사고 때문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 연민, 죄책감 등은 증폭된 것이에요. 감정과 그 관련 사고를 관찰해보세요. ‘저 사람이 떠나면 난 살수가 없어!’ ‘나까지 모른 체 하면 저 사람은 살아갈 수 없을 거야!’ ‘저 사람이 저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야.’ ‘내가 노력하면 우리는 좋아질 수 있어.’라는 생각들에 대해 ‘정말 그런가?’라고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진실만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답니다. 


셋째, 내 감정과 욕구를 반복적으로 표현하세요.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해 판단하지도 말고, 감정적으로 휘말리지도 않는 거예요. 자기표현의 핵심은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설득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감정과 힘듦에 대해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죠. ‘당신이 ~할 때 난 너무 힘들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의 특징은 늘 이전투구로 끌고 갑니다. 그래야 자신의 문제가 상대방에게 공유되기 때문이죠. 가능한 차분하고 명료하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세요.








다양한 보험 정보와 생활Tip이 궁금하다면? 

삼성화재 SNS와 친구가 되어주세요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4편

‘명절 트러블, 이렇게 대처해보자



이제 곧 추석입니다. 우리는 또 여느 때처럼 고향을 갑니다. 길 막히고, 시간 걸리고, 돈도 적잖게 들지만 그럼에도 연어들처럼 고향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모인 명절이 우리에게 휴식이 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이 되기도 하는데요. 좋은 날 다 같이 모여 기분 좋게 헤어지면 좋으련만, 크고 작은 말다툼은 물론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명절 기간 112 전화로 유입되는 일반 범죄 신고는 줄어들지만, 가정폭력 전화는 급증한다고 합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3년도부터 2015년도까지 명절 때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하루 평균 873건으로 평소보다 1.6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해야 할 가족이 오히려 가장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안가도 욕먹고, 가도 욕먹는 것, 그냥 안 가고 욕먹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까요. “고향에 내려가 명절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혼자 지내는 게 낫다”며 아예 고향을 찾지 않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명절이 스트레스가 된 이유 



왜 우리의 명절은 이렇게 스트레스와 트러블의 화약고가 되어버렸을까요? 


첫째, 개인주의 생활에 익숙한 핵가족 생활에서 갑자기 한 집에 여러 가족이 모이는 대가족 생활로의 전환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됩니다. 먹는 것부터 잠자리까지 모든 게 불편한 것투성이죠. 농촌보다 도시가 그런 것처럼 실제 밀도가 조밀할수록 스트레스와 범죄율이 증가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둘째, 입니다. 명절 때는 과음에 대해 더욱 관대해지고 평소보다 자제력이 약해집니다. 결국,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문제들도 술로 인해 더 큰 문제로 증폭됩니다. 


셋째, 기대심리 때문입니다. 명절에는 각자 상대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집니다. 아내는 남편이 먼저 친정을 생각해주길 바라고, 남편은 아내가 시댁 일을 자기 집안일처럼 기꺼이 해주기를 바랍니다. 또 부모 입장에서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만큼은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주길 바라고, 자녀들은 잔소리나 걱정보다는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러한 기대는 실망과 짜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넷째, 비교의 문제입니다. 여러 가족이 모이기 때문에 서로가 비교의 대상이 됩니다. 누가 언제 내려왔고, 누가 설거지를 했고, 누가 무엇을 사 왔고, 누가 공부를 더 잘하고, 누가 더 돈을 잘 벌고 등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교를 하고 비교를 당합니다. 이러한 비교는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되고 맙니다. 


실제로 얼마 전 삼성화재 페이스북에서 진행한 ‘추석, 이 말만은 참아주세요’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취업준비는 잘 되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표정이 왜 그러냐. 인상 좀 펴라’ 등을 지적이나 간섭이 아니라 관심과 걱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마음은 편치 않을 수 있습니다. 관심과 애정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좀 더 효과적인 표현이 필요합니다.



명절 기간 가족트러블을 막아주는 한마디



그렇다면 명절에 가족 간의 트러블을 최소화하거나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요? 쉽지는 않지만 서로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방법이 왜 없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명절 전에 필요한 것은 ‘관심’의 표현입니다. 


간단히 ‘괜찮아?’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친구 중에 아내로부터 매너 좋은 사람으로 꼽히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가만히 보면 작은 것에 강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 중 과속방지 턱에서 충분히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차가 덜컹거렸다고 해봅시다. 친구는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괜찮아? 안 놀랐어?” 그 말 한마디에 아내는 남편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고 존중해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명절 트러블을 예방하는 것 또한 작은 관심의 표현에 있는데, 특히 명절 전에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라면 ‘당신 요즘 괜찮아? 명절 때문에 미리부터 신경 쓰이는 것 없어?’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꼭 어떻게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상대의 마음 상태를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관심받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려가기 전에 ‘괜찮으세요? 명절 때문에 걱정되시거나 힘든 점은 없으세요?’라고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예방법입니다. 

 


둘째, 명절 중에는 ‘부탁’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우리 ~해요.”와 같은 말입니다. 부탁할 때는 자신이 못마땅한 감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이며, 상대에게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자고 청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명절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 중 하나가 평소에는 내게 관심도 보이지 않던 형제나 친인척들이 명절이라고 꼭 한마디씩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본인이 스트레스를 느끼는 아픈 부분을 건드린다면 더 듣기 싫겠죠. 앞서 페이스북 설문 결과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설익은 관심에 버럭 화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족 간에는 좀 더 부드러운 대처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듣고 싶지 않은 정치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 정치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 해요. 요즘에는 친구들끼리 만나도 사이가 멀어지니까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잘 안 해요’라는 식으로 대화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남편이 돕지 않고 TV만 보고 있다면 “우리 같이 정리 좀 해요.”라고 해보세요. 물론 이렇게 한 번 이야기한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가 곡해하기도 하고 들은 체 만 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해소는 상대가 부탁을 들어주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가 가만히 있지 않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부탁과 거절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나는 부탁할 수 있고, 상대는 거절 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좀 더 가볍게 해보세요. 이때 부드럽게 웃으면서 물어본다면 더욱 좋겠죠? 



셋째, 명절 후에는 ‘감사’의 표현이 중요합니다. 


‘당신, 정말 애썼어요!’ 혹은 ‘00야, 고마워!’라고 먼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의 행동이나 마음이 당신의 기대에는 못 미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거나 더 잘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는 상대가 할 수 있는 역량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한계이자 동시에 최선입니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기대일 뿐입니다. 


명절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싸우지 않았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잘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는 가족관계에 계속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 명절 연휴가 지난 뒤에는 이혼소송의 건수가 올라갑니다. 명절 이후에는 ‘이혼’에 대한 검색 횟수가 20% 전후로 늘어나고, 이혼한 4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남자는 44.5% 그리고 여성은 60.2%가 명절이 이혼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습니다. 


사실 명절 스트레스를 철저히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싸움도 피하기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싸울 때 싸우지만 잘 화해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커플은 안 싸워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화해를 잘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싸우고 난 뒤에 다시 대화하면서 ‘고마워. 미안해. 좀 더 노력할게’라는 표현을 잘 사용합니다. 



지금까지 명절 기간 가족간의 표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명절 트러블의 주된 원인으로는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노동과 배우자가 서로의 집안에 덜 신경 쓴다고 서운해하는 것 등이 있을 텐데요.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평소보다 더 배려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남성들은 식사와 다과상 준비를 하거나 처가에서 설거지를 돕고, 여성들은 양가 부모님 앞에서 배우자를 칭찬하고 어른들께 더 따뜻하고 배려 깊은 태도로 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에게는 이미 그들이 학업과 취직, 사회생활에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 놀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는 걸 말해준다면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의 시간은 즐겁고 따뜻한 경험이 될 거예요.


추석은 감사의 시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해 가장 먼저 수확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올렸습니다. 내가 고생해서 얻은 수확이지만 그 수확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내 입에 털어 넣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있게 해준 조상과 천지신명께 감사의 마음으로 바친 것이죠.


가족트러블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 또한 구체적인 화법이나 표현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올 추석은 완벽하지 않은 오늘의 삶에서 감사함을 배우고, 내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

 






다양한 보험 정보와 생활Tip이 궁금하다면? 

삼성화재 SNS와 친구가 되어주세요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3편

‘그건 사랑이 아니야

 

 

K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책상 위에 휴지가 한 움큼 쌓여갔다. 6개월 전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부터라고 했다. 


2년을 조금 넘게 사귄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좋다고 쫓아다녀서 시작했던 연애였기에 그의 이별통보는 더욱 충격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지칠 만큼 지쳤기에 먼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많았었다. 


시간이 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다른 여자를 새롭게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마음이 쑥대밭이 되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잘 해보자며 사정을 해보기도 했지만 전 남자친구는 냉정했다. 그녀는 매일 전 남자친구의 SNS에 들어가 그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밤 마다 울다 지쳐 쓰러지고 눈을 뜨면 증오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그 사람도 고통스럽겠지요?” 



파멸로 치닫는 비극적 사랑



▲ 벨기에 화가 Joseph Stallaert의 <The Death of Dido (1872)>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라는 책에서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가 멸망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트로이의 장수입니다. 그는 유민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 모험 길에서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들렀다가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유민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다짐을 잊어버리고 디도와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신들은 인간의 행복을 질투합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어 그가 잊고 있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부하들을 불러 은밀히 출항준비를 시킨 뒤 디도에게 알리지도 않고 훌쩍 떠나 버립니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겠지요. 


홀로 남겨진 디도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며칠 동안 괴로워하던 그녀는 궁정마당에 장작을 쌓고 아이네이아스가 남겨둔 무기와 옷 그리고 함께 쓰던 침대를 태웁니다. 추억의 물건과 함께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장작이 활활 타오르자 디도는 갑작스럽게 화염에 싸인 침대위로 몸을 던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연인과의 이별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며, 자기의 붕괴입니다. 그렇기에 디도의 죽음은 자살이면서 동시에 타살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아이네이아스를 남김없이 파괴시켜버리고 자신을 배신한 아이네이아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싶은 복수의 마음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중 아만테스(amantes)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글자 하나 차이인 아멘테스(amentes)는 ‘정신 나간 사람’을 뜻하지요. 예부터 사람들은 사랑을 일종의 광기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비극적 사랑이 탄생하는 과정 



왜 어떤 사랑은 이렇게 치명적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애정)과 애착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의 비극적인 사랑은 애정이 아니라 애착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격렬합니다. 우리는 흔히 애착을 사랑이라는 말과 혼동합니다. 그리고 유아기 애착의 중요성으로 인해 애착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착은 사랑과 다르며, 성인의 애착은 관계를 파멸로 몰아가기 쉽습니다. 


잠시 애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까요? 애착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동물의 애착행동에 착안하여 애착 이론을 발달시켰습니다. 포유류의 새끼들은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맺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새끼들은 필사적으로 어미에게 매달리게 되어있고, 어미는 새끼들로부터 잠시라도 한 눈을 팔지 않도록 설정되어있는 본능적 프로그램이 바로 애착입니다. 이는 새끼가 어미에게 매달리는 일방적인 의존 상태입니다. 


인간의 애착은 더 강합니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크게 우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양육자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분리불안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양육자가 보이지 않으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도 공포를 느끼고 비명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강한 항의행동(protest behavior, 애착 대상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한 과도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아이에게 양육자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양육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즉각적 욕구만족’을 원하고 늘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에 비해 성인의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본능과 감정 외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친밀함을 쌓아나갈 수 있는 이성과 의지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네가 필요해’ vs ‘너를 사랑해’



애착은 일방적이지만 사랑은 상호적입니다. 애착은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공생관계이지만 사랑은 나와 너의 개별성의 토대 위에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유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마음은 ‘난 네가 행복하기를 원해!’이지만 애착은 ‘난 네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해’입니다. 즉, 사랑은 ‘나는 너를 사랑해’이지만 애착은 ‘나는 네가 필요해’입니다. 애착은 이기적입니다. 애착은 타인의 존재에 일방적으로 의지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생존본능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애착욕구가 너무나 크고 오랜 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이를 양육자들이 충족시켜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민한 아이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아이들은 크고 작은 애착손상을 가진 채 어른이 됩니다. 그 손상이 클수록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호적인 애정관계보다는 일방적인 애착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조차 충족해주지 못했던 애착욕구를 어떻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맛보았던 일체감이 사그라지면 결국 애착욕구의 좌절이 찾아옵니다. 


물론 애정관계에서도 좌절이 있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시적인 균열을 다시 복구시킬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애착관계에서의 좌절은 과도한 반응을 유발합니다. 마치 양육자가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이 보이는 과도한 절망행동이나 항의행동과 유사합니다. 공포심을 느끼고 매달리거나, 증오를 퍼붓거나, 상대방을 조정해서 계속 자신의 요구대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사랑은 추격과 전투와 도망이 반복되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비극적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극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K의 고통은 남자친구가 떠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뿌리는 치유되지 못한 애착손상에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네가 태어날 때 너무 못 생겨서 버릴까 생각했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보잘것없는 나’라는 자기이미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활발했지만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깊은 수치심을 느껴왔습니다. 그러한 좌절감과 수치심은 마음의 응어리가 되었고 인간관계를 왜곡시켜왔습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그 감정적 응어리를 풀어내야만 과도한 애착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둘째는, 대상의 신중한 선택입니다. 이들은 과도한 애착욕구로 인해 비현실적인 구원의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애착손상을 가진 대상을 만납니다. 그러나 애착손상을 가진 이들끼리의 만남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신을 존중해주고 갈등을 풀어갈 줄 아는 안정적인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로는, 자기위로의 기능을 발달시켜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지해서 위안 받는 습관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을 벗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행복하게 해줄 책임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고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통해서 행위의 보상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지를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기쁨은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경계를 세우고,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또 다른 열쇠입니다.








다양한 보험 정보와 생활Tip이 궁금하다면? 

삼성화재 SNS와 친구가 되어주세요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2편

‘관심과 간섭은 다른 거야’



30대 후반의 K는 지방도시의 대학교수이다. 시간강사를 떠돌다가 작년에 어렵게 임용되었지만, 지금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니, 어떨 때는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을 정도다. 바로 인간관계 때문이다. 왜 대한민국에는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까?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몇몇 교수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방을 찾아온다. 마실 것을 갖다 주거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까진 좋지만 대화는 늘 사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만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금방 불편해지고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 같아서는 ‘제발 저에게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는 방 안에 있으면서도 ‘외출중’이라는 푯말을 걸어놓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퇴근한 후에는 어떨까. K교수 부부는 다른 부부들과 달리 공유하는 게 별로 없다. 경제 관리나 취미 생활도 각자 할 뿐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으로 정해놓은 잠자리 외에는 잠도 각자 방에서 잔다. 각자 나름대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점점 공허감이 깊어가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관계’를 지니고 산다

 


사람은 누군가와 하나가 되려는 뿌리 깊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K교수는 상대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누군가와 하나가 되려는 욕구에 무관심한 걸까요? 아닙니다. 무관심한 게 아니라 방어적일 뿐입니다. 


K교수에게 누군가 다가오는 것은 '관심'이 아닌 '간섭'으로 느껴지고, 가까운 인간관계란 ‘친밀함’이 아닌 ‘위협’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자신의 약한 자아가 무너지거나 상대에게 휘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그녀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어린 딸을 지나치게 걱정한 나머지 항상 전화기 옆에 붙어 지내게 하며 수시로 일과를 확인했죠.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늘 통근시간을 지켜야 했고 남들 다 가는 MT도 갈 수 없었습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지요. 딸을 위한다는 이유였지만, 엄마의 관심은 그녀에겐 구속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합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결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해서가 아니라 독립을 위해 한 결혼은 그녀에게 또 다른 구속일 따름이었습니다. 



관심과 간섭의 차이 


K교수에게 관심과 간섭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자신이 요청하지 않았는데 다가오거나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다가오면 모두 ‘간섭’이며 ‘오지랖’이라고 느낍니다. 상대방의 의도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죠. 물론 상대방이 아무리 관심을 갖고 다가오더라도 내가 간섭받는다고 느낀다면 의미 없겠지만, ‘내 마음에 들면 관심, 내 마음에 안 들면 간섭’으로 선을 긋는 것도 문제입니다.

 



관심과 간섭은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 여부'와 '상대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개입 여부’로 구분됩니다.


관심은 연민, 호감, 호기심이라는 감정의 토대 위에서 비롯되는, 대상에 대한 판단 이전의 이끌림입니다. 그렇지만 간섭은 감정보다는 이성의 토대 위에서 비롯되는 대상에 대한 판단적인 개입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의 부부가 아이를 안 낳고 두 사람끼리 살기로 했다고 해봅시다. 이때 그들이 왜 그렇게 살기로 했는지 궁금함을 느끼고 알고 싶은 것은 관심입니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라는 잣대로 두 사람에게 개입하는 건 간섭입니다. 두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기도 전에 “나중에 외로워서 어떻게 살려고 해!”라고 때 이른 조언을 하거나, 심지어 “두 사람 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라고 비난한다면 전형적인 간섭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관심의 목적은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데 있지만, 간섭의 목적은 상대방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의 변화를 바라는 간섭이 정작 긍정적인 반응 대신 더 큰 반발과 갈등만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려는 자율성의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관계는 개별성을 지켜준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탄생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왜 인간관계가 갈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태초의 인간 아담은 에덴동산 안에서 점점 쓸쓸함과 권태를 느낍니다. 다른 동물들은 짝이 있는데, 그만 혼자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조물주는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갈비뼈를 꺼내어 이브를 만듭니다. 즉,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있어 최초의 타인인 이브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아담의 일부인 셈입니다. 이는 인간이 타인을 자신의 일부처럼 바라보는 근원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잃어버린 일부를 되찾아 온전히 하나가 되고자 하는 합일의 욕구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상대가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느끼길 바랍니다. 하지만 양육의 핵심은 자녀의 독립이며, 우정의 지속은 차이의 존중에 있는 것처럼, 사랑 역시 각자를 인정하며 함께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합일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나와 너를 넘어선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유의 관계'입니다. 둘이 만나 셋이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공자는 건강한 인간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논어』 '자로' 편 -


이는 ‘군자는 화합하되 남들에게 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같아지려고 하지만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바란다면 우리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합일의 욕구를 포기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되 공통된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차이를 존중한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니 신경 쓰거나 간섭하지 말고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흔히 '쿨한 관계'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둘이 만나 하나가 되고자 하는 합일의 관계만큼이나 역기능적인 관계양상입니다. 서로를 이어주는 '우리'가 부재한 무늬만 관계일 뿐입니다.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위하여 



관심과 간섭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잔소리 하는 엄마처럼 인간관계에서 관심과 간섭은 늘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그 양면을 다 볼 줄 알고 이를 적절히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채근담에 보면 '해미불함(海味不醎)'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해산물은 바닷물에 살지만 먹어도 짜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필요한 만큼만 염분을 받아들이고 해로울 수 있는 나머지 양은 다시 내보낼 수 있는 능동적인 세포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바닷물의 짠 소금처럼 사람들의 관심이나 간섭은 넘쳐납니다. 그렇다고 마냥 받아들이거나 마냥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수위조절과 자기표현의 방법을 꾸준히 익혀가야 합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흘려보내며, 지나친 관심과 개입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요구를 표현함으로써 경계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상황이나 사람마다 다르기에 그 적정선을 잡는다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균형을 잡았다 싶다가도 금방 흔들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발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균형을 잃은 것 같으면 반대로 핸들을 틀어주어 다시 균형을 잡아가는 것처럼 자아와 관계의 균형 역시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다시 회복해나가는 끝이 없는 과정입니다.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시리즈 보러가기

▶ #1. 착한 게 아니라 약한 거야 (클릭)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 2017.06.20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이라 생각했지만 간섭이었던 적이 많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