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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삼성화재의 새로운 관점, ‘門問, 물음을 여는 문’

고전음악가들의 인생 속 건강과 행복, 삶의 균형을 전문가의 눈으로 살피고

인문학적 관점을 더해, 깊이 있는 질문과 의미 있는 해답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삼성화재와 함께 삶의 혜안을 찾고 인생의 봄날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18세기 유럽인에게 와인은 건강 음료였습니다. 베토벤의 할머니부터 아버지까지 집안 대대로 와인을 물처럼 마시곤 했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18세기 유럽에 버금갈 정도로 알코올에 관대한 대한민국. 베토벤의 이야기 속에는 한국인 특유의 음주 습관에 경종을 울릴 만한 성찰이 숨어 있습니다.



베토벤의 습관, 한국인의 중독


의학사에 ‘알코올 중독’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베토벤이 죽은 뒤 20여 년이 지난 1849년이었습니다. 19세기 말까지도 와인은 건강 음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후대인들이 자신을 알코올 중독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베토벤이 안다면 무척이나 억울해하지 않을까요?



베토벤의 운명을 바꾼 할아버지의 부업


베토벤이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 음악가에 대한 처우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교회나 궁정에 소속돼 활동하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8세기의 평범한 음악가들은 여러 가지 부업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부업은 악보 출판이었습니다.

 

바흐 같은 음악가는 결혼식, 장례식 음악을 부업으로 삼다 보니 전염병이 돌아 사망자가 많아지면 수입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토벤의 조부이자 이름도 같았던 루트비히판 베토벤의 부업이 와인 판매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존경받는 궁정악장이자 베이스 가수였던 베토벤의 조부는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와인 판매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기보다 일종의 재테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와인은 깨끗하지 못한 식수를 대신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생활에 밀착한 상품이었습니다. 다만 베토벤가(家)의 누구도 이 같은 부업이 비극의 씨앗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부업 때문에 베토벤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와인을 더 많이 마시고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베토벤의 할머니는 말년에 알코올 중독으로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 아들인 요한, 즉 베토벤의 아버지도 극심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신의 삶을 망가트렸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부모 혹은 조부모 아래서 성장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알코올 중독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대부분 연구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상반된 의견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관(相關) 관계와 인과(因果) 관계를 구분하고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음악 관련 책에서는 베토벤 본인의 알코올 중독을 일종의 가족력(家族歷)과 비슷한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알코올 중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잇는 알코올 중독과 상관 관계는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전적 질환과 같은 인과 관계를 가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베토벤이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와인을 많이 마셨다고는 하지만, 당시 와인은 지금으로 치면 조금 더 비싼 음료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의학사에서 알코올 의존성 때문에 생기는 건강 문제를 지적하고 ‘알코올 중독’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베토벤이 죽은 지 20여 년 후인 1849년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때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만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을 뿐, 19세기 말까지 와인이나 맥주, 사과주 등 발효주는 건강 음료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베토벤가(家)의 와인 사랑은 건강한 습관


베토벤이 살던 18세기에는 상하수도 시설1)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인성 (水因性) 전염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티푸스, 콜레라 같은 병을 한두 번씩 경험한 이도 많았습니다. 특히 장티푸스에 걸린 사람들은 흔히 내이염, 중이염 등으로 청력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고 베토벤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 상하수도 시설: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은 인구가 밀집한 도시들을 대거 탄생시켰으나 동시에 공중위생 시설의 부족 등으로 인한 전염병의 확산에 기여했다. 특히 상하수도 시설의 부족은 이 같은 공중위생의 핵심적 문제였다. 독일은 18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출범과 함께 네덜란드인 기술자를 불러와 베를린과 포츠담에 운하와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었다.


 


이처럼 베토벤이 청력을 잃게 된 것은 장티푸스의 후유증이기도 하고, 더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위생 환경이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18세기는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같은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 같은 전염병이 더 빨리, 더 많은 이에게 퍼져 피해가 컸습니다. 때문에 더러운 물 대신 와인을 마시는 일은 이 같은 수인성 전염병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베토벤이 와인에 친숙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이른 나이에 건강을 잃고 사망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베토벤가 사람들의 와인 사랑은 건강한 습관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요?


이처럼 인과 관계를 보다 세밀하게 살피다 보면 지금까지 고려되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제3의 요인이 진짜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관관계를 인과 관계로 착각하는 것은 단순히 관련되어 있는 두 대상을 어느 하나가 원인이고 다른 것은 결과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음악 관련 서적에서 베토벤 본인의 알코올 중독을 일종의 가족력과 비슷한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는 부분은 재고할 여지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알코올 중독은 유전적 질환과 인과 관계가 있다기보다 당시 수인성 전염병의 확산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 판단에 가깝습니다.


1인당 술 소비량 세계 13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18세기 유럽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종류를 가릴 것 없이 술에 관대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유럽 사람들이 깨끗하지 못한 식수에 불안을 느껴 와인에 관대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에도 생각하지 못한 인과 관계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요?



아난다마이드와 한국인의 ‘아무거나’ 문화



한국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별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고민하고 메뉴에도 없는 추가 사항을 덧붙이는 외국인들에 비하면 주문도 간단하고 특별히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이런저런 요구를 더하는 법도 없습니다. ‘아무거나’라는 주문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죠.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남들의 선택을 따라 하거나, 아예 자신의 취향을 생각해본 적도 없이 ‘몰취향’으로 살아갑니다. 비단 음식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죠. 음식뿐 아니라 옷, 선호하는 브랜드나 삶의 방식에서도 자신만의 개성보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을 더 우선시합니다.


반면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 자신의 취향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행복감을 쉽게 느끼고 뇌에서는 아난다마이드2)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많이 생성됩니다. 그리고 도박ㆍ약물ㆍ게임 등에 대해 중독자가 거의 없습니다. 왜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이 많습니다. 행복한 일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만 끊임없이 집착하고 몰두할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피하고 막아야 하는 것에 관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무엇을 싫어합니까’라는 질문에는 짧은 시간에도 굉장히 많은 대답을 하지만 ‘무엇을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머뭇거리면서 ‘그저 아무거나’라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잘 모른다는 방증입니다.


2) 아난다마이드 (Anandamide): ‘행복’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아난다’에서 따온 신경 전달 물질.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화학 물질로 몸속 마리화나, 내인성 모르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분비됐다가 금세 분해되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이 성분이 잘 분비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시름을 잠시 피하게 만들어주는 혹은 외면하게 만들어주는 불안 완화제, 즉 술에 몰입하기 쉬운 성격으로 살아갑니다. 외국 심리학자들이 흔히 “한국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 마시면서 화내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움을 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고 말합니다. 술이라는 도구가 행복이나 기쁨 촉진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지고 그만큼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술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일한 진정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들여다보면 술에 관대하기보다 술 이외의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는 법


베토벤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사가들이 묘사한 베토벤을 살펴보면 스승ㆍ연인ㆍ가족 누구와도 관계 맺기에 미숙하고, 쉽게 불화했으며, 음악 이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즉 중독에 빠지기 쉬운 성격이었던 것이죠. 

 



결국 중독이란 만성적 습관이 만들어내는 부정적 결과입니다. 특정 습관이 지속되어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가 되고, 결국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 결과를 우리가 중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독의 원인은 습관입니다. 그런데 한국인, 특히 음주에 빠진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이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다는 오해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의지만으로 나쁜 습관, 즉 중독을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로이 보마이스터3) 교수에 의하면 나쁜 관행이나 습관을 의지력으로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무모하면서도 위험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피곤해서 의지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 평소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3) 로이 보마이스터(Roy Baumeister):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 특히 그는 관행이나 습관을 의지력으로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하는 심리학자로 유명하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자아고갈(Ego Depletion)’은 사람이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면 이후 다른 상황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중독을 만드는 나쁜 습관을 억제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특히 그 사람의 의지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그 실패의 가능성은 극대화됩니다. 나쁜 습관은 다른 좋은 습관으로 덮어씌워야 없어집니다. 여행, 대화, 좋은 사람들과 맛난 음식 먹기 등 좋은 습관들을 만들어 대체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수많은 좋은 것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삼성화재 VIP 매거진 문문


글쓴이: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국내에 드문 인지심리학 전문가다.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Austin 심리학 박사,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 한국음악지각인지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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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7편

‘인맥관리에서 공유관계로’



인맥 관리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허무함으로…


“정작 제가 힘들어지니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없네요.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관리해오느라 애썼던 것이 너무 허무합니다.” 직장인 K의 첫마디이다. 그는 인맥을 잘 관리하는 것이 사회적 성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왔다. 


그런데 최근 회사에서 실수에 비해 과도한 징계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을 당한 것도 억울했지만 K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말로만 ‘힘내!’라고 한마디씩 건넬 뿐, 각자의 일에만 열중했고 오히려 K를 피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직장동료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조차 이미 지난 일이니 잊어버리라며 술을 권할 뿐, K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동안 인간관계를 위해 애써왔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었다는 느낌에 걷잡을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나도 혹시 ‘인간관계 번아웃 증후군’?



K에게 그동안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기준은 ‘숫자’였습니다. 그는 주소록에 등록된 인원, 페이스북 친구들의 숫자, 하루에 받는 카톡과 문자의 개수, SNS에 올린 글에 대한 ‘좋아요’나 댓글의 개수, 주고받은 명함의 숫자 등을 늘 헤아렸습니다. 그 숫자가 많을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적을수록 우울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이 숫자를 유지하고 늘릴 수 있을지 항상 고심합니다. 명절마다 지인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고 친구들의 애경사나 동창 모임 등을 앞장서서 챙깁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위해 교회와 독서 동호회도 나가고 있습니다. 다들 꺼리는 모임의 총무나 간사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종종 과장된 글을 올리고 무심코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에게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마치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많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그런 자신의 성격이 너무 싫어졌고, 친구가 많은 아이들을 보며 늘 열등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고 앞에 나서며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불편할 때가 많았지만,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K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힘이 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좋은 모습만을 보이려고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이번 힘든 일을 겪고 난 뒤에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한 달 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입니다. 


이는 과연 K만의 문제일까요?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두잇서베이가 지난 2017년 4월 공동 기획한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인 남녀 2526명 가운데 85%는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껴본 적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상당 수가 업무 때문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에 허무감과 무기력감을 겪는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습니다. 왜 인간관계는 우리를 소진시키는 것일까요? 


 

시대가 강요하는 외향성 선호문화와 리더형 인간



바람직한 인간상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이상적인 인간유형은 다릅니다. 


하버드 대학교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남서부에 사는 나바호 인디언의 중심 가치는 ‘조화’입니다. 이들은 우주와의 조화로운 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그렇기에 이 집단 안에서는 온화하고 원만한 성격의 사람들이 바람직한 인간형이 됩니다. 반대로 성급함, 경쟁심, 지나친 자기주장 등은 비난거리가 됩니다. 그에 비해 크와큐틀 인디언은 ‘능력’이 중심 가치입니다. 이들은 남보다 힘이 세거나 능력이 우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창피하게 여깁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개성’보다는 ‘조화’를 중시해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은 이를 잘 나타내어주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는 기존의 문화를 아주 빠르게 전복시켜 버렸습니다. 사회가 개인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기주장과 성공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리더형’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상이 되면서 인간관계 역시 어느덧 경쟁력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도 외모처럼 투자를 해야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성공을 위해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부모들부터 이를 부채질합니다. 어려서부터 능력 있는 친구들을 짝 지어주려고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조종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외향성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의 성향은 무시한 채 무리에서 리더가 되거나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문화에서 자라나는 우리들은 인간관계를 자연스럽게 맺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장하고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인간관계가 아니라 인맥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인맥관리 관계’의 끝은?


인간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공유관계communial relationship'와 '교환관계exchange relationship'입니다. 공유관계는 서로의 친밀함과 관심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이에 비해 교환관계는 서로의 필요와 이익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즉, 공유관계는 기본적으로 동질감을, 교환관계는 기본적으로 손익에 관계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유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고 편해지지만, 교환관계는 계속 겉돌거나 진정성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서로의 필요와 이익이 맞지 않으면 쉽게 허물어지고 맙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유관계는 '휴식'에 가깝다면, 교환관계는 '일'에 가깝습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하고, 불편한 사람이라도 속 마음을 감추고 인간관계를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균형이 필요합니다. 실제 인간관계에서 소진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교환관계가 비대하고 공유관계는 미미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능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쟁 사회의 산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 연인, 친구, 사제 등의 관계조차도 교환관계처럼 교류하게 됩니다. 한번 연락오면 나도 한 번 연락하고,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만나고 별 이익이 없으면 피하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안 만나는 '거래'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가 변질되고 맙니다. 


그 교환관계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휴식 없는 노동이 결국 소진 증후군을 불러오는 것처럼, 교환관계에 매달리는 인간관계의 끝은 소진입니다. 특히, K씨처럼 어려운 일이 닥치면 좀 더 빨리 소진이 찾아옵니다. 그 수많은 인간관계의 피상성에 깊은 허무감과 외로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은퇴를 하고 난 뒤에 깨닫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해관계가 없어지자 아무런 연락도 없는 관계들을 보면서 정작 자신에게 누가 중요한 사람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외향적인 사람들은 비교적 덜 힘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향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사교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노동을 하며 인맥관리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억지 외향성’으로 자신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모임의 리더를 자처하거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이런 저런 대외 활동에 뛰어들었다가 어느 순간 탈진하듯 주저앉고 맙니다. 이들은 억지로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가 원하던 사교성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 자기초점, 신중함, 배려와 같은 내향적인 성격의 장점마저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위하여


우리는 공유관계와 교환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공유관계는 점점 중요해집니다. 인간은 언제나 관계의 연결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적 생명의 끈은 공유관계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함을 느끼고 어려울 때 찾아갈 수 있는 상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공유관계를 늘려갈 수 있을까요? 



첫째,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에너지는 한정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깊이를 더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나에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건강한 자아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자아의 기능 중의 하나는 자기의 관심사를 찾는 것입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찾으면 저절로 자기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어릴 때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저절로 친구가 만들어지지만 성인이 되면 친구는 손익기반의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관심기반의 친목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즉, 자신의 관심사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성인들의 공유관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심사의 핵심은 ‘오티움(Otium)’을 말합니다. 오티움이란 라틴어로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인 여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이 보상이나 결과를 떠나 그 자체로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오티움입니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등산, 뜨개질, 합창, 동식물 기르기, 시낭송, 댄스, 봉사활동, 명상이나 요가, 글쓰기, 요리, 공부 등 다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즉,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다보니 저절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유관계는 상대에게 지나치게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오티움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셋째, 갈등을 풀어보는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공유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밀해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 편안함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공유관계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오해와 마찰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공유관계란 교환관계와 달리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회복할 수 없는 단절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가까워지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갈등, 즉 불편함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더욱 더 친밀해지고 편안해집니다. 교환관계는 갈등이 생기면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공유관계는 그 갈등을 풀 수 있을 때까지 풀어봐야 합니다. 그냥 덮어두거나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때문에 기분이 상했고 불편함을 느꼈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약속을 여러 번 어겨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단, 화난 감정을 쏟아붓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왜 무시해!'가 아니라 '네가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에 말입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산을 넘지 못하고 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등을 대화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편안함은 점점 멀어지고 언젠가는 결국 더 큰 상처를 주고받으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깊은 공유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갈등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등을 회복하고 더 가까워지는 '갈등회복력'이 높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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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6

‘네가 기뻐야 나는 기뻐’



어떻게 하면 아내가 웃을 수 있을까?


젊은 사업가인 P는 아내에게 헌신적이다.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고, 철마다 함께 여행도 떠나고, 아내가 좋아할 만한 공연을 챙겨서 보러 간다. 늘 아내에게 “뭐 필요한 거 없어?”를 묻지만 정작 본인은 뭘 요구하는 법이 없다. 그뿐인가! 처갓집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본가보다 더 챙긴다. P의 아내를 보며 친구들과 친정식구들은 모두 부러워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그녀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행복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자신이 남편의 딸이나 혹은 강아지처럼 느껴진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에서 자상한 보살핌 아래 마냥 행복해하는 강아지이기를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랑에 의문이 생기자 그녀의 얼굴에는 점점 웃음이 사라져갔다. 덩달아 남편 또한 심각해졌다. 이전보다 더 외식을 권하고, 더 선물을 해주고, 더 열심히 집안일도 한다. 그러나 아내는 예전처럼 기뻐하지 않는다. 웃음을 잃어가는 아내를 보며 P는 오늘도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아내가 웃을 수 있을까? 



첫사랑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한다


P의 부부관계는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의 영향을 받으며 반복적인 패턴을 보입니다. P의 유년시절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늘 슬퍼 보이는 엄마를 내가 기쁘게 하고 싶어!


사업가였던 P의 아버지는 P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사업에서 큰 실패를 했다. 그 이후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고 갈수록 성격이 괴팍해졌다. 교사인 어머니가 가계를 이끌었지만, 아버지는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심지어 별다른 이유가 없을 때도 어머니에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해댔다. 의처증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늘 슬퍼 보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어린 그에게는 말 못 할 고통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엄마의 기대에 있는 힘껏 부응하는 것이었다. 실제 그는 엄마의 기대처럼 공부도 잘했고, 동생들의 숙제까지 돌봐주는 의젓한 큰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엄마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흘렀다. ‘네 덕분에 내가 산다.’는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정말 기뻤다.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 그의 낙이었고 삶의 이유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절대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와 정반대로 자상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P는 줄곧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를 찾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상대방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했다.  



누군가를 돌봐야만 살아가는 사람들, 공동의존 



정신의학에서는 자기 자신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돌봄으로써 만들어진 왜곡된 관계를 ‘공동의존’이라고 합니다. 이는 일방적인 의존처럼 보이지만 보살피는 사람 역시 보살핌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다는 점에서 공동의존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그 양상이 다를 뿐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동의존이라는 말은 원래 중독자 가족들이 중독자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겉보기에는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고심하고 애를 쓰며 헌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건강하지 못한 도움을 줌으로써 오히려 중독을 조장하는 가족들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중독자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의 핵심 문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 ‘다른 사람의 삶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해결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과잉책임감’ 그리고, ‘자신을 외면하고 상대를 돌보는 타인 중심적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누군가를 돌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불화가 심해 한쪽 부모와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었거나, 부모의 병환이나 경제적 곤란으로 인해 일찍부터 가족들을 돌봐야 했던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때 이르게 주어진 돌봄의 역할로 인해 ‘누군가를 잘 돌봐야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틀을 가지고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문제가 있거나 힘든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그 기분이나 상황을 바꿔줘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노력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크게 좌절하고 상처받습니다. 


공동의존을 보이는 사람들의 특징


-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자기와 연결지어 받아들인다.

- 타인의 감정에 의해 자신의 감정이 쉽게 영향을 받고, 타인의 감정을 바꾸기 위해 애쓴다. 

- 문제 있는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감정이입하며 그들의 문제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느낀다.

-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힘들어도 참고 하거나 상대가 싫다는데도 베푼다.  

- 인위적인 자기가치감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도와야만 한다. 

- 누구도 자신이 베푼 만큼 자신을 위해주지 않는 것 같아 의기소침해 하고 신세를 한탄한다.   

-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잘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노력할수록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 



이들은 아프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를 씁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상대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면 의미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상하게 노력할수록 상대의 문제는 악화되어 가고, 자신은 점점 소진될 정도로 상대의 삶에 깊이 얽히게 되는 것입니다. 공동의존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가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움으로 상대의 고통이 덜어지고 기분이 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당장 상대방을 덜 괴롭게 하거나 기쁘게 만들기 위해 상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거나, 편법을 동원하거나, 문제가 있는 상대를 무조건 지지하고 두둔해주거나,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바꾸려고 함으로써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켜버립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가 취해서 회사에 결근하게 되면 공동의존에 있는 가족이 대신 전화를 해서 아파서 못 나간다고 거짓말을 해주는 식입니다. 공동의존자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정서적 공감능력은 뛰어나지만,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고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인지적 공감능력은 떨어집니다. 그렇기에 노력을 하면 할수록 상대의 문제는 심각해지는 모순에 빠지고 맙니다. 더 큰 문제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까지 부정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히려 비난당하기까지 합니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공동의존자들을 위해 이러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옛날 노나라 왕궁에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왕은 기뻐서 그 새를 다른 나라의 군주를 맞이하는 예로써 극진히 대접합니다. 술을 마시게 하고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소, 돼지, 양고기를 갖추어 상을 차립니다. 그러나 새는 한 조각도 먹지 않고 사흘 만에 죽어버리게 됩니다. 이 얼마나 허망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인가요! 



어떻게 공동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하면 공동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먼저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처를 치유해야 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관계의 패턴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계가 뒤얽히지 않도록 자아가 바로 서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 칼럼에서는 간단히 몇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자신을 사랑해야 해요.


공동의존자들은 상대의 삶에 대해서는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이 뭘 원하는지는 알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이들에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필요한 일은 의식의 안테나를 안으로 돌리는 것이고 홀로 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돌보지 않고도 홀로 기쁨을 느끼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기쁠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삶에 필요 이상 개입하지 않을 수 있으며, 뒤얽힌 관계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둘째,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대신, 상황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세요. 


공동의존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고통이나 불편을 당장 덜어주는 것에만 급급해합니다. 이들은 늘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원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상대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냉정함과 한 템포 느린 반응이에요.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바로 베풀기 전에 무엇이 상대를 위하는 것인지 긴 안목에서 생각해보세요. 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셋째, 인지적 공감이 서툴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세요. 


자신이 늘 상대를 신경 쓰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고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의 마음읽기는 오류투성이입니다. 상대를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무언가를 베풀려고 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건강한 관계에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외에 ‘나’와 ‘너’의 공간이 공존해야 해요. 그래야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상대의 인생에 대한 책임 이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먼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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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5편

‘왜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



한 커플이 상담실을 찾았다. 남성의 데이트 폭력 문제로 함께 온 것이다. “남자친구가 너무 감정조절을 못하는데 고칠 수 있을까 해서요. (중략) 그런데 저한테도 문제가 있어요. 제가 자꾸 남자친구의 성미를 건드리거든요.” 여성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고성이나 폭언이었다가 최근에는 물을 끼얹고 세게 밀쳐서 넘어진 적도 있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 친구가 따지듯 이야기한다고 느낄 때 무시 받는 듯한 감정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분노, 두려움, 연민 등의 마음이 뒤엉켜 있었다. 문제는 자책감이었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자라난 남자친구의 상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적 행동이 벌어지면 이내 ‘내가 좀 이해해주고 넘어가도 됐을 텐데... 내가 또 이 사람의 상처를 건드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싸움이 일어나면 남자친구가 반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왜 너까지 나를 무시해. 왜 자꾸 나를 나쁜 사람이 되게 만들어.” “넌 내가 그런 말 들으면 어떨지 뻔히 알잖아. 왜 자꾸 나를 자극해!” 등의 말이다. 남자친구의 폭력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그녀는 헤어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남자친구의 기분을 살피느라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에게 나의 감정과 욕구를 속박 당한 ‘감정사슬’



사람이 가까워지면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의 끈이 생깁니다. 그것은 감정으로 만들어지지만, 사랑이나 친밀함 같은 좋은 감정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 자책감, 혹은 미움과 같은 안 좋은 감정도 많습니다. 물론 대부분 섞여 있기 마련이지요. 이때 좋은 감정으로 된 끈은 서로를 건강하게 이어주는 수평적인 연결고리가 되지만, 안 좋은 감정으로 된 끈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일방적인 사슬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감정사슬’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나와 가까운 사람에 의해 감정적 압박을 받아 내 감정과 욕구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속박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감정사슬이 만들어지면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됩니다. ‘휘두르는 사람’과 ‘휘둘리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죠. 


당신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자,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해보세요. 


첫째, 가까운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당신의 주장이나 결정권을 발휘하지 못하고 상대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고 느끼나요? 


둘째,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심리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나요? 


이 두 가지 질문 중 하나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감정사슬에 묶여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사슬의 종류


관계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또는 알아차린다고 해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은 특정한 ‘감정’에 지배받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한 감정사슬은 무엇일까요?


첫째, ‘두려움’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두려움일수도 있고, 상대에게서 벗어나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정신적인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이 지속되면 스스로 ‘힘이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둘째, ‘연민’입니다. 내가 상대를 책임지고 돌봐주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자신이 좀 더 인내하고 노력하면 관계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체념으로 바뀌어갑니다. 


셋째, ‘죄책감’입니다. 관계가 안 좋아지고 상대의 문제가 악화되는 데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결국 상대의 감정과 논리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발적인 순응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는 ‘감정조종자’



우리 주위에는 감정사슬을 잘 엮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친절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통제욕구를 드러냅니다. 이들은 차이를 존중하는 법이 없고 자신의 감정과 주장에 따를 것을 강요하지요. 그것은 노골적인 폭력과 위협의 형태일 수도 있고 달콤한 말일 수도 있어요. 역설적이긴 하지만, 헌신적인 보살핌 혹은 눈물 섞인 하소연이 감정사슬인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배우자 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못살겠다. 왜 네 마음대로 하려고 해.’ ‘누구 죽는 꼴 보려고 그래!’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러려고 나를 낳았어?’ 등의 표현은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통제하려고 합니다. 




감정사슬을 잘 엮는 이들을 우리는 ‘감정조종자’라고 합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잘못과 관계의 문제를 끝까지 상대의 책임으로 돌리며,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고 결국 나쁘게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정신의학에서는 ‘투사적 동일시’라고 합니다. 투사가 자신의 감정이나 문제를 단지 상대방의 탓으로 떠넘기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문제에 대한 책임을 느끼도록 집요하게 유도하고 조종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즉, 투사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던져버리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과 공유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방도 처음에는 저항하게 되지만, 감정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점점 이것이 누구의 문제이고 잘못인지가 모호해지고 맙니다. 



감정사슬에 잘 결려 드는 사람들 



이들은 한 마디로 자아가 약한 사람들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은 이들을 잘 알아봅니다. 자기세계를 가지고 있고, 비교적 자기표현이 뚜렷한 이들을 지배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약한 사람들은 늘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을 필요로 하고,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데 익숙하기에 이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통제마저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혼동하기 쉽기에 뒤늦게야 관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를 인식한다 해도 자신이 참고 노력하면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지요. 그러나 상대가 감정조종자라면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감정조종자들은 상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나 자신이 상대방에 의해 점점 더 휘둘리고 있나요?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나오기 어려운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감정사슬에 묶여 관계의 덫에 빠져든 것입니다. 이때는 신중해야 해요.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일 수도 있고 때로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데이트 폭력에 놓여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최근 4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은 300건이 넘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필히 법률적 지원, 혹은 관련기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첫째,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를 존중하세요. 너무 식상한 표현인가요? 하지만 이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감정사슬에 엮인 것은 일차적으로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요. 자신의 바운더리(심리학 용어로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자아의 경계)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바운더리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 감정을 존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감정과 욕구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거예요. 그것을 표현하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둘째, 감정사슬의 감정과 관련 사고를 자세히 살펴보세요. 당신이 끌려 다니는 것은 과장된 감정과 그로 인한 감정적 사고 때문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 연민, 죄책감 등은 증폭된 것이에요. 감정과 그 관련 사고를 관찰해보세요. ‘저 사람이 떠나면 난 살수가 없어!’ ‘나까지 모른 체 하면 저 사람은 살아갈 수 없을 거야!’ ‘저 사람이 저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야.’ ‘내가 노력하면 우리는 좋아질 수 있어.’라는 생각들에 대해 ‘정말 그런가?’라고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진실만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답니다. 


셋째, 내 감정과 욕구를 반복적으로 표현하세요.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해 판단하지도 말고, 감정적으로 휘말리지도 않는 거예요. 자기표현의 핵심은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설득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감정과 힘듦에 대해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죠. ‘당신이 ~할 때 난 너무 힘들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감정조종자들의 특징은 늘 이전투구로 끌고 갑니다. 그래야 자신의 문제가 상대방에게 공유되기 때문이죠. 가능한 차분하고 명료하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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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4편

‘명절 트러블, 이렇게 대처해보자



이제 곧 추석입니다. 우리는 또 여느 때처럼 고향을 갑니다. 길 막히고, 시간 걸리고, 돈도 적잖게 들지만 그럼에도 연어들처럼 고향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모인 명절이 우리에게 휴식이 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이 되기도 하는데요. 좋은 날 다 같이 모여 기분 좋게 헤어지면 좋으련만, 크고 작은 말다툼은 물론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명절 기간 112 전화로 유입되는 일반 범죄 신고는 줄어들지만, 가정폭력 전화는 급증한다고 합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3년도부터 2015년도까지 명절 때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하루 평균 873건으로 평소보다 1.6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해야 할 가족이 오히려 가장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안가도 욕먹고, 가도 욕먹는 것, 그냥 안 가고 욕먹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까요. “고향에 내려가 명절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혼자 지내는 게 낫다”며 아예 고향을 찾지 않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명절이 스트레스가 된 이유 



왜 우리의 명절은 이렇게 스트레스와 트러블의 화약고가 되어버렸을까요? 


첫째, 개인주의 생활에 익숙한 핵가족 생활에서 갑자기 한 집에 여러 가족이 모이는 대가족 생활로의 전환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됩니다. 먹는 것부터 잠자리까지 모든 게 불편한 것투성이죠. 농촌보다 도시가 그런 것처럼 실제 밀도가 조밀할수록 스트레스와 범죄율이 증가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둘째, 입니다. 명절 때는 과음에 대해 더욱 관대해지고 평소보다 자제력이 약해집니다. 결국,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문제들도 술로 인해 더 큰 문제로 증폭됩니다. 


셋째, 기대심리 때문입니다. 명절에는 각자 상대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집니다. 아내는 남편이 먼저 친정을 생각해주길 바라고, 남편은 아내가 시댁 일을 자기 집안일처럼 기꺼이 해주기를 바랍니다. 또 부모 입장에서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만큼은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주길 바라고, 자녀들은 잔소리나 걱정보다는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러한 기대는 실망과 짜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넷째, 비교의 문제입니다. 여러 가족이 모이기 때문에 서로가 비교의 대상이 됩니다. 누가 언제 내려왔고, 누가 설거지를 했고, 누가 무엇을 사 왔고, 누가 공부를 더 잘하고, 누가 더 돈을 잘 벌고 등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교를 하고 비교를 당합니다. 이러한 비교는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되고 맙니다. 


실제로 얼마 전 삼성화재 페이스북에서 진행한 ‘추석, 이 말만은 참아주세요’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취업준비는 잘 되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표정이 왜 그러냐. 인상 좀 펴라’ 등을 지적이나 간섭이 아니라 관심과 걱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마음은 편치 않을 수 있습니다. 관심과 애정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좀 더 효과적인 표현이 필요합니다.



명절 기간 가족트러블을 막아주는 한마디



그렇다면 명절에 가족 간의 트러블을 최소화하거나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요? 쉽지는 않지만 서로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방법이 왜 없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명절 전에 필요한 것은 ‘관심’의 표현입니다. 


간단히 ‘괜찮아?’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친구 중에 아내로부터 매너 좋은 사람으로 꼽히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가만히 보면 작은 것에 강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 중 과속방지 턱에서 충분히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차가 덜컹거렸다고 해봅시다. 친구는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괜찮아? 안 놀랐어?” 그 말 한마디에 아내는 남편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고 존중해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명절 트러블을 예방하는 것 또한 작은 관심의 표현에 있는데, 특히 명절 전에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라면 ‘당신 요즘 괜찮아? 명절 때문에 미리부터 신경 쓰이는 것 없어?’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꼭 어떻게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상대의 마음 상태를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관심받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려가기 전에 ‘괜찮으세요? 명절 때문에 걱정되시거나 힘든 점은 없으세요?’라고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예방법입니다. 

 


둘째, 명절 중에는 ‘부탁’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우리 ~해요.”와 같은 말입니다. 부탁할 때는 자신이 못마땅한 감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이며, 상대에게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자고 청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명절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 중 하나가 평소에는 내게 관심도 보이지 않던 형제나 친인척들이 명절이라고 꼭 한마디씩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본인이 스트레스를 느끼는 아픈 부분을 건드린다면 더 듣기 싫겠죠. 앞서 페이스북 설문 결과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설익은 관심에 버럭 화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족 간에는 좀 더 부드러운 대처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듣고 싶지 않은 정치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 정치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 해요. 요즘에는 친구들끼리 만나도 사이가 멀어지니까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잘 안 해요’라는 식으로 대화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남편이 돕지 않고 TV만 보고 있다면 “우리 같이 정리 좀 해요.”라고 해보세요. 물론 이렇게 한 번 이야기한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가 곡해하기도 하고 들은 체 만 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해소는 상대가 부탁을 들어주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가 가만히 있지 않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부탁과 거절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나는 부탁할 수 있고, 상대는 거절 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좀 더 가볍게 해보세요. 이때 부드럽게 웃으면서 물어본다면 더욱 좋겠죠? 



셋째, 명절 후에는 ‘감사’의 표현이 중요합니다. 


‘당신, 정말 애썼어요!’ 혹은 ‘00야, 고마워!’라고 먼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의 행동이나 마음이 당신의 기대에는 못 미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거나 더 잘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는 상대가 할 수 있는 역량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한계이자 동시에 최선입니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기대일 뿐입니다. 


명절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싸우지 않았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잘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는 가족관계에 계속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 명절 연휴가 지난 뒤에는 이혼소송의 건수가 올라갑니다. 명절 이후에는 ‘이혼’에 대한 검색 횟수가 20% 전후로 늘어나고, 이혼한 4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남자는 44.5% 그리고 여성은 60.2%가 명절이 이혼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습니다. 


사실 명절 스트레스를 철저히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싸움도 피하기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싸울 때 싸우지만 잘 화해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커플은 안 싸워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화해를 잘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싸우고 난 뒤에 다시 대화하면서 ‘고마워. 미안해. 좀 더 노력할게’라는 표현을 잘 사용합니다. 



지금까지 명절 기간 가족간의 표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명절 트러블의 주된 원인으로는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노동과 배우자가 서로의 집안에 덜 신경 쓴다고 서운해하는 것 등이 있을 텐데요.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평소보다 더 배려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남성들은 식사와 다과상 준비를 하거나 처가에서 설거지를 돕고, 여성들은 양가 부모님 앞에서 배우자를 칭찬하고 어른들께 더 따뜻하고 배려 깊은 태도로 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에게는 이미 그들이 학업과 취직, 사회생활에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 놀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는 걸 말해준다면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의 시간은 즐겁고 따뜻한 경험이 될 거예요.


추석은 감사의 시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해 가장 먼저 수확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올렸습니다. 내가 고생해서 얻은 수확이지만 그 수확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내 입에 털어 넣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있게 해준 조상과 천지신명께 감사의 마음으로 바친 것이죠.


가족트러블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 또한 구체적인 화법이나 표현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올 추석은 완벽하지 않은 오늘의 삶에서 감사함을 배우고, 내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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