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김슬기의 마음 치료 3편

‘죄책감이 뭐죠?’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



최근 한 고등학생이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저지른 끔찍한 사건이 회자되었지요. 치밀하게 계획하고, 일말의 죄책감 없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은 사이코패스(Psychopath) 즉, 반사회적 성격장애(품행장애)의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비정상적으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후회나 죄책감 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현대 정신의학 분류체계인 DSM-5에서는 이러한 행동 양상을 반사회적 성격장애(소아 청소년기는 품행장애)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진단내리는 질환명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정황상 추측할 뿐이지요. 마찬가지로 반사회적 성격장애도 진단받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등의 질환이 우선적으로 고려됩니다. 때문에 사이코패스를 범죄자와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견해라 할 수 있습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특징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 반사회적 성격장애(품행장애) 환자의 특징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들 케빈은 어려서부터 보통 애들과 좀 달랐습니다. 끊임없이 엄마에게 분노와 반항을 쏟아내고 엄마의 실수를 약점으로 잡고 조종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아이의 악마 같은 모습을 알고 남편에게 이야기하지만, 케빈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연기를 해서 남편은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런 케빈이 자라면서 저지르는 행동들은 더욱 과감하고 잔혹해집니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케빈의 얼굴,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왜 그랬니?” 라는 엄마의 질문에 “나도 몰라요.”라는 케빈의 대답은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어떻게 그런 범죄들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그의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엄마를 괴롭히고 싶었을 수도 있죠. 목적을 달성한 케빈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죄책감이나 후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화 속 케빈처럼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는 사회 규범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없고 타인의 권리를 빼앗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의리, 정직함 등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갖기 어렵습니다. 



생체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 모두 원인으로 작용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불안을 느끼면 행동하는 것을 망설이게 됩니다. 즉 불안은 행동의 억제 효과가 있는 거죠.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는 ‘불안’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러한 환자들의 충동성과 공격성은 전두엽 피질의 감소, 측두엽 부피 감소, 세로토닌 전달 기능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정과 관련이 있는 변연계(Limbic system) –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회로의 기능 저하와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인지 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위험한 자극을 찾게 된다는 설명도 있고요.


최근에는 MRI 검사를 통해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들의 뇌의 특정 부분들이 정상 대조군에 비해 회백질(Grey matter) 부피에서 차이가 난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품행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대조군에 비해 뇌의 피질(Coretex)의 부피가 현저히 작다는 결과 보고가 있어, 뇌의 구조적인 이상이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발생에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모두 작용합니다. 가까운 가족 중 환자가 있을 경우, 이 질환의 발생 비율은 정상 대조군에 비해 5배가량 높아집니다. 하지만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병의 발생이나 진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 하더라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 성장하는 아이의 발병률은 낮아지는 반면, 같은 유전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아이가 결핍이 있거나 폭력적인 가정환경 속에 방치되는 경우, 더욱 쉽게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발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피에타’에서 주인공 ’강도’의 삶은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까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채업자인 ‘강도’는 돈을 받기 위해서 그 어떤 끔찍하고 잔혹한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채무자들의 눈물, 원망, 저주, 자살까지도 그를 흔들지 못합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혼자 살아남은 그에게 갑자기 ‘엄마’라는 사람이 찾아옵니다. 처음으로 느껴본 ‘엄마’의 다정함과 따스함에 냉기만 흐르던 그도 차츰 변해갑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을 통해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누군지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죄책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엄마’를 만나기 전의 ‘강도’는 끔찍한 행동을 일삼는 악마 같은 인간이었다면 ‘엄마’를 만나고 난 후의 ‘강도’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도 하고 처절하리만큼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강도’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처음부터 엄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품행장애를 보이는 아동들을 살펴보면 아이가 자라온 환경이 원만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부재, 이혼, 가정폭력, 물질남용, 일관적이지 않고 방임하는 양육 방식 등 부정적인 환경은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뜻한 관심과 진심 어린 이해로 극복



충동적인 성향이 있는 아이에게 부정적인 성장 환경에 대한 분노까지 더해진다면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발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거죠. 이러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행동상의 문제를 보였을 때 훈계나 체벌보다는 꾸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넌 불쌍하지도 않니?’ 처럼 느끼기 어려운 감정을 강요하기보다는 어떠한 행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그러한 행동을 했을 때 본인에게 어떤 손해가 있는지 알려줘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에서는 약물치료도 도움이 되는데 우울증이나 약물중독, 불안장애와 같은 동반된 증상을 치료하거나 충동성을 조절하는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많이 쓰입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치료가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이해해 주려는 주변의 도움과 본인의 강한 의지가 있다면, 보다 효과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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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atia 2017.09.12 1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이코패스도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늘 도움이 되는 정보 감사합니다. ^^

  2. 간장소스 2017.09.12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흉흉한 사건이 많아서 걱정이네요. 우리나라도 정신과적 질환에 대한 이해와 치료가 하루빨리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3편

‘그건 사랑이 아니야

 

 

K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책상 위에 휴지가 한 움큼 쌓여갔다. 6개월 전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부터라고 했다. 


2년을 조금 넘게 사귄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좋다고 쫓아다녀서 시작했던 연애였기에 그의 이별통보는 더욱 충격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지칠 만큼 지쳤기에 먼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많았었다. 


시간이 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다른 여자를 새롭게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마음이 쑥대밭이 되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잘 해보자며 사정을 해보기도 했지만 전 남자친구는 냉정했다. 그녀는 매일 전 남자친구의 SNS에 들어가 그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밤 마다 울다 지쳐 쓰러지고 눈을 뜨면 증오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그 사람도 고통스럽겠지요?” 



파멸로 치닫는 비극적 사랑



▲ 벨기에 화가 Joseph Stallaert의 <The Death of Dido (1872)>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라는 책에서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가 멸망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트로이의 장수입니다. 그는 유민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 모험 길에서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들렀다가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유민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다짐을 잊어버리고 디도와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신들은 인간의 행복을 질투합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어 그가 잊고 있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부하들을 불러 은밀히 출항준비를 시킨 뒤 디도에게 알리지도 않고 훌쩍 떠나 버립니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겠지요. 


홀로 남겨진 디도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며칠 동안 괴로워하던 그녀는 궁정마당에 장작을 쌓고 아이네이아스가 남겨둔 무기와 옷 그리고 함께 쓰던 침대를 태웁니다. 추억의 물건과 함께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장작이 활활 타오르자 디도는 갑작스럽게 화염에 싸인 침대위로 몸을 던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연인과의 이별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며, 자기의 붕괴입니다. 그렇기에 디도의 죽음은 자살이면서 동시에 타살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아이네이아스를 남김없이 파괴시켜버리고 자신을 배신한 아이네이아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싶은 복수의 마음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중 아만테스(amantes)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글자 하나 차이인 아멘테스(amentes)는 ‘정신 나간 사람’을 뜻하지요. 예부터 사람들은 사랑을 일종의 광기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비극적 사랑이 탄생하는 과정 



왜 어떤 사랑은 이렇게 치명적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애정)과 애착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의 비극적인 사랑은 애정이 아니라 애착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격렬합니다. 우리는 흔히 애착을 사랑이라는 말과 혼동합니다. 그리고 유아기 애착의 중요성으로 인해 애착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착은 사랑과 다르며, 성인의 애착은 관계를 파멸로 몰아가기 쉽습니다. 


잠시 애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까요? 애착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동물의 애착행동에 착안하여 애착 이론을 발달시켰습니다. 포유류의 새끼들은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맺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새끼들은 필사적으로 어미에게 매달리게 되어있고, 어미는 새끼들로부터 잠시라도 한 눈을 팔지 않도록 설정되어있는 본능적 프로그램이 바로 애착입니다. 이는 새끼가 어미에게 매달리는 일방적인 의존 상태입니다. 


인간의 애착은 더 강합니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크게 우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양육자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분리불안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양육자가 보이지 않으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도 공포를 느끼고 비명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강한 항의행동(protest behavior, 애착 대상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한 과도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아이에게 양육자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양육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즉각적 욕구만족’을 원하고 늘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에 비해 성인의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본능과 감정 외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친밀함을 쌓아나갈 수 있는 이성과 의지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네가 필요해’ vs ‘너를 사랑해’



애착은 일방적이지만 사랑은 상호적입니다. 애착은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공생관계이지만 사랑은 나와 너의 개별성의 토대 위에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유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마음은 ‘난 네가 행복하기를 원해!’이지만 애착은 ‘난 네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해’입니다. 즉, 사랑은 ‘나는 너를 사랑해’이지만 애착은 ‘나는 네가 필요해’입니다. 애착은 이기적입니다. 애착은 타인의 존재에 일방적으로 의지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생존본능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애착욕구가 너무나 크고 오랜 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이를 양육자들이 충족시켜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민한 아이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아이들은 크고 작은 애착손상을 가진 채 어른이 됩니다. 그 손상이 클수록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호적인 애정관계보다는 일방적인 애착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조차 충족해주지 못했던 애착욕구를 어떻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맛보았던 일체감이 사그라지면 결국 애착욕구의 좌절이 찾아옵니다. 


물론 애정관계에서도 좌절이 있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시적인 균열을 다시 복구시킬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애착관계에서의 좌절은 과도한 반응을 유발합니다. 마치 양육자가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이 보이는 과도한 절망행동이나 항의행동과 유사합니다. 공포심을 느끼고 매달리거나, 증오를 퍼붓거나, 상대방을 조정해서 계속 자신의 요구대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사랑은 추격과 전투와 도망이 반복되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비극적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극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K의 고통은 남자친구가 떠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뿌리는 치유되지 못한 애착손상에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네가 태어날 때 너무 못 생겨서 버릴까 생각했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보잘것없는 나’라는 자기이미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활발했지만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깊은 수치심을 느껴왔습니다. 그러한 좌절감과 수치심은 마음의 응어리가 되었고 인간관계를 왜곡시켜왔습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그 감정적 응어리를 풀어내야만 과도한 애착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둘째는, 대상의 신중한 선택입니다. 이들은 과도한 애착욕구로 인해 비현실적인 구원의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애착손상을 가진 대상을 만납니다. 그러나 애착손상을 가진 이들끼리의 만남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신을 존중해주고 갈등을 풀어갈 줄 아는 안정적인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로는, 자기위로의 기능을 발달시켜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지해서 위안 받는 습관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을 벗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행복하게 해줄 책임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고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통해서 행위의 보상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지를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기쁨은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경계를 세우고,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또 다른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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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항상 보던 애인이나 배우자가 이유 없이 싫어졌던 감정, 저 오지라퍼만 느껴본 적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들려드릴 이야기는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비극으로 끝이 난 어떤 부부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했었어야 할까요?






 2009년 개봉작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뛰어난 연기 덕인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끊임없이 삶에 의문을 품으며 살던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차가운 현실로 다가옵니다. 인간의 어떤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우리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요?


 파티장에서 처음 만난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첫눈에 반합니다. 꿈에 대해 묻고 답하는 대화에서, 우리는 어설프게나마 여자의 환상과 남자의 허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부부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정착한 네 식구는 평온해 보입니다. 남자는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매일 아침 일찍 말끔히 차려 입고 기차를 타고, 연기를 공부하던 여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서 절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때로는 극단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하죠. 물론, 형편없는 연기였으나 그녀는, 부부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서 빛나던 그들은, 둘만 남겨졌을 땐 그저 평범한 부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간격만큼 그들은 공허합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C.G.Jung은 인격을 크게 두 가지, ‘페르조나’(외적 인격)와 ‘그림자’(내적 인격)로 구분합니다. 가면이란 뜻의 페르조나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체면’ 혹은 ‘역할’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일반적인 기대에 맞추는 태도로, 외부 세계에 적응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아가 페르조나와 동일시 되면, 즉 남들이 보는 모습에 집착하여 이면의 욕구를 무시한다면 공허해집니다.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 분)이 사람들을 벗어난 공간에서 과격하게 싸우는 것은 민낯의 서로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남편은 아내의 형편없는 연기가 내 탓은 아니라며 비참한 그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아내는 남자답지 못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며 자존심을 긁죠. 에이프릴은 교양 있고 아름다운 아내이기 이전에 나약한 한 인간입니다. 프랭크에게도 자상하고 든든한 가장은 하나의 역할일 뿐입니다. 역할은 흔들릴 수 있지만 내면의 자아는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화려한 모습 이면의 존재에 말을 걸었어야 합니다. 괜찮다고 보듬어주고 초라한 만큼 서로가 필요하다며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가족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용감한 커플이며, 나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릅니다. 남편은 어린 시절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꿈을 잃은 어른이 세상을 다 아는 양 거만하게 말하는 것이 싫었던 그 때처럼, 자신을 비난합니다. 아내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연기를 공부하던 그녀도,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남편도 분명 각자의 꿈을 갖고 있었으며, 어느 순간 선택을 미루고 상황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그들의 선택은 너무 성급하고 충동적입니다. 프랭크는 바닥에 떨어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순진한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에이프릴은 파리로 이민 갈 것을 추진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밀어붙였던 것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너무 싫어하거나 왜 그런지 모르게 너무 미운 사람이 생겼다면, 내 안의 ‘그림자’를 바라볼 기회입니다. 그림자란 나의 다른 면, 무의식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독립적인 여성이 실은 매우 의존적인 모습을 갖고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수용적인 남성이 집에선 괴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를 자각해야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두 부부가 왜 그토록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나고 싶은지 멈춰 바라보았어야 합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과거를 적극적으로 탐색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인지, 반대로 업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인지. 에이프릴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찬찬히 이야기해보았어야 합니다. 애초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지, 조금 더 자유롭고 싶은 것인지, 좋은 엄마의 역할이 버거웠던 것인지. 그녀가 원하는 삶을 남편과 분리해 생각했다면 현실을 회피하려는 간절함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비참한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페르조나)을 더욱더 키워 덮으려던 프랭크의 노력도, 꿈이라 믿는 허상에 목숨을 걸고 그림자를 벗어나려 했던 에이프릴도 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의 역할을 인정하는 가운데 내면의 욕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따뜻한 영화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내가 경험하는 현실을 털어놓아 보세요. 가면을 벗고 하나씩 천천히 말합니다. 이 때 두 가지를 기억하면 힘이 됩니다. 모든 인간의 욕구는 보편적이니 상대가 공감해줄 것을 믿는 것. 그리고 동시에 각자가 경험하는 현실은 다를 수 있으니, 이상해 보이는 나를 스스로 수용하면서 당당히 말해도 좋다는 것을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을 꼭 안아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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