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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8편

‘눈치도 없는 어른 vs 눈치만 있는 어른’



“이 사람과는 정말 대화를 못 하겠어요.” 부부 상담을 온 부인이 먼저 불만을 터뜨렸다. 남편도 덩달아 “아이고! 누가 할 소리를...”라며 맞불을 놓는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 눈치가 없다는 게 불만이고, 남편은 아내가 늘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하루는 남편의 술 모임이 늦어져서 남편은 아내에게 먼저 자라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그날 아침에 두통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도 않고 자기 늦겠다는 이야기만 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들은 남편은 바로 전화를 끊고 술을 마시다가 밤늦게 들어갔다. 


아내는 그날부터 말문을 닫았다. 남편은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아니, 불만이 있으면 무엇이 불만이라고 이야기를 해! 괜히 눈치 보게 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어디를 가나 꼭 눈치 없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회사 경영이 어려운데 비싼 곳에서 회식을 하자는 직원도 있고, 배우자 가족들 앞에서 배우자의 흠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죠. 누군가는 ‘남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눈치 없는 사람들 주위에는 그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혼란스러워집니다. 눈치는 좋은 것인가? 그래서, 눈치를 봐야 하는 건가?


눈치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상황에 미루어 알아내는 것’ 분위기 파악, 즉, ‘낌새’와 같은 의미로 대화가 아니라 상대의 표정이나 억양 등을 보고 직관적으로 심리를 파악하는 것을 뜻합니다. 빠르지만 정확도가 떨어지죠. 


특히 주관적인 심리상태에 따라 왜곡되기 쉽고, 표정 읽기와 관련된 뇌의 능력에 따라 편차가 크답니다. 단번에 상대의 심리를 눈치채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참 눈치를 보는데도 엉뚱하게 잘못 파악하는 이들도 있죠. 예를 들어, 자존감이 낮은 이들의 경우 상대는 잠을 못 자 피곤할 뿐인데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 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 눈치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서열을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흔하게 관찰됩니다. 일반적으로 집단에서 힘이 약한 개체는 힘이 강한 개체의 눈치를 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말이죠. 이는 눈치가 자기보호와 사회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능력임을 의미합니다. 힘없는 개체가 눈치까지 없다면 그 집단에서 살아가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모방과 눈치에서 공감과 배려로 

 


동물의 사회성과 달리, 인간의 사회성은 2단계의 발달을 거칩니다. 1단계는 동물적 사회성으로 이는 본능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모방과 눈치입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42분에서 72시간 사이에 다른 사람의 표정을 정확하게 모방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과 행위를 애쓰지 않아도 모방하게 되죠. 자라면서 어른의 눈빛이나 표정을 보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해서 그에 맞게 행동하는 눈치가 발달합니다. 이러한 발달은 언어와 이성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자기보호와 사회성을 위한 중요한 기능이 됩니다. 


인간의 사회성은 성인이 되면서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합니다. 모방과 눈치는 줄어들고 공감과 배려가 발달합니다. 이는 ‘의식과 자율성의 발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요. 모방이 상대의 감정에 전염되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눈치가 상대의 기분에 자신을 맞추려는 수동적인 태도라면, 배려는 상대를 존중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모방과 눈치가 자동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라면, 공감과 배려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방과 눈치가 열등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며,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인 것이죠. 건강한 어른은 모방과 눈치라는 직관적 사회성과 함께 공감과 배려라는 이성적 사회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조절하여 살아갑니다. 즉, 사회성이 뛰어난 이들은 남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말하지 않아도 잘 파악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압니다. 



눈치도 없는 어른 그리고 눈치만 있는 어른 


눈치는 중요한 사회적 지능의 한 부분으로 대인관계에 있어 기본적인 센스랍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닌 이상 인간관계를 눈치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른의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하고 언어와 이성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실제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하고, 이를 통해 눈치의 오류를 수정할 줄 알아야 하며, 상대의 눈치만 살필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할 줄도 알아야죠. 

 


문제는 ‘눈치도 없는 어른’과 ‘눈치만 있는 어른’입니다. 


우선, ‘눈치도 없는 어른’들을 볼까요. 눈치가 없는 이들은 당연히 공감과 배려도 잘 못합니다. 눈치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능력으로, 공감과 배려는 눈치에서 발달하기 때문이죠. 이는 선천적인 원인과 함께 자라는 과정에서 받는 영향도 큽니다. 아이들은 눈치를 통해 적절한 사회성을 발달시켜 나가는데, 훈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들은 필요한 눈치조차 보지 않고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최근 과도한 인지교육과 문자 위주의 디지털 대화는 표정, 억양 등을 읽어내는 능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결국 눈치가 없는 이들은 사회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더라도 불편을 끼치게 됩니다. 


반대로 ‘눈치만 있는 어른’들도 문제입니다. 눈치는 유아동기에 주요한 사회성 기능으로, 성인이 되면 공감과 배려가 주요 사회성 기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발달 과정의 문제로 낮은 자존감과 불안, 과도한 의존성을 가진 채 어른이 되면 여전히 눈치가 사회성의 주기능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쉽게 상대의 감정과 의도에 끌려다니거나, 과도한 친절과 배려로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거나 대화를 나누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둘은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결국 성인과 성인으로서의 상호적 관계를 하지 못하고 상대와의 관계에서 고자세를 취하거나 반대로 저자세를 취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센스 있는 인간관계를 위하여 


눈치를 보는 것은 단지 비겁하고 못나서가 아니랍니다. 눈치는 대인관계의 기본감각입니다. 다만, 눈치는 정확도가 떨어지기에 이성의 보완이 꼭 필요하죠. 다음은 센스 있는 인간관계를 위해 생각해볼 점들입니다. 

 


첫째, 눈치를 조절하라.


어른도 눈치가 필요합니다. 눈치를 너무 안 본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상대의 마음이 어떨지를 헤아려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반대로 늘 상대의 눈치만 보고 지레짐작한다면 대화를 통해 실제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눈치와 이성이 만나면 눈치는 센스가 됩니다. 이를 위해 평소처럼 ‘느끼는 대로’ 혹은 ‘습관처럼’ 행동하는 대신, 잠시 멈추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눈치를 조절한다는 것은 바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대화한 후 표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상호존중의 태도를 가져라.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안테나의 방향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두고 있는데, 그중 절반은 상대를 향해 돌려야 합니다. 반대로 눈치만 있는 사람들은 외부로만 향해 있는 안테나의 절반을 자신을 향해 돌려야 하죠. 상대의 의도와 감정을 존중하는 것처럼 자신의 의도와 감정 역시 존중해야 합니다. 이는 누가 틀리고 맞는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처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셋째, 지레짐작하지 말고 ‘질문’을 하라.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자신이 상대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상대를 잘 안다고 하는 순간부터 인간관계는 꼬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상대의 기분과 의도를 잘 헤아린다고 앞서 판단하지 말고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지난번에 카푸치노 마셨다고 “카푸치노 드실 거죠?”라고 성급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지난번에는 카푸치노 드셨는데 오늘은 뭐가 좋으세요?”라고 묻는 것이 더 센스 있는 태도랍니다. 



넷째,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라.


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유연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상대 맥락의 수위에 맞춰 대화를 할 줄 알죠. 글에 행간이 있는 것처럼 대화에도 맥락이라는 게 있습니다. 맥락이 낮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과 그 말 속에 담긴 뜻이 거의 같습니다. 반면, 맥락이 높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 곳곳에 숨은 뜻이 많죠. 저맥락은 직선적인 대화를 뜻하고 고맥락은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괜찮습니다’라고 할 때, 상대가 저맥락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고맥락 대화를 하는 이라면 한 번 더 권하거나 정말 괜찮은 것인지 묻습니다. 글 도입부에 등장한 부부가 서로 대화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맥락의 수위가 너무 달랐고, 자기 방식대로만 대화를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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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김슬기의 마음 치료 6편

‘봄이면 뜬다’ 조울증



한순간에 양극으로 치닫는 감정


현주씨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우울증이 시작됐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무기력감으로 온종일 집에서 잠만 자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지요. 


그러다 얼마 전부터 밤에 잠이 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고 기분이 들뜨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사업 아이템이 있다며 밤새워 사업 계획을 하기도 했지요. 현주씨의 이런 모습을 본 어머니는 ‘이제 우울증에서 벗어났나 보다’ 싶어 반갑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주씨가 투자자를 모집한다고 친구들에게 돈을 꾸러 다니고, 갑자기 명품 가방과 구두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다니자 놀란 어머니는 그제야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저한테 1억은 돈도 아니에요. 사실 강남에 유명한 백화점도 제 이름으로 되어있거든요. 지금 여기 앉아있을 시간이 없어요. 스케줄이 꽉 차 있거든요. 매니저가 오늘은 쉬는 날이라…” 


오후엔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다며 횡설수설하는 현주씨에겐 아무래도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주씨처럼 감정의 양극단을 경험하는 질환을 ‘조울증’이라고 합니다. 특히 현주씨의 현재 상태는 ‘조증'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현주씨처럼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그걸 그대로 믿는 증상을 ‘허언증’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이 ‘허언’도 조증의 증상일 수 있습니다. 



조증, 단순히 기분이 좋은 증상일까?



조증은 단순히 기분만 좋아지는 증상이 아닙니다. 말과 생각이 많아지고 빨라져서 휙휙 날아다니죠. 외양이 화려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눈에 띄는 옷이나 밝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기도 합니다. 잠을 자지 않아도 에너지가 넘치고 피곤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많은 돈을 펑펑 쓰기도 하고 허황된 사업을 계획하기도 합니다. 뭘 하더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에너지가 넘치죠. 이러한 상태를 느끼기 위해 일부 환자들은 약을 먹지 않기도 합니다. 


조울증에 걸린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 ‘사랑에 미치다’에서 남자 주인공 마르코는 약을 먹으면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약을 수시로 중단합니다. 조증의 상태에 있을 때 훨씬 예술적 영감이 잘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죠. 여자 주인공 카를라도 조증일 때 쉴새 없이 떠오르는 시상을 손이 따라잡지 못합니다. 실제로 일부 유명한 예술가들은 조울증을 앓았고, 조증의 상태에서 미친 듯이 작품 활동을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증이 예술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증 상태가 위험 수위에 이르면 독자나 청중의 미적 공감을 얻는 대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카를라가 조증 상태에서 쓴 시가 결국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카를라는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시도 많이 썼던 대학 시절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부터 병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주치의의 말에 충격을 받습니다. 이처럼 조증 상태가 지속되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지고, 현실 감각이 떨어져 일상생활이 힘들어집니다. 



조울증은 어떻게 시작될까?


조증의 증상이 워낙 눈에 띄기 때문에 먼저 발견되지만, 대체로 그 전에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울증 환자의 70% 정도는 우울증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조증이 발병하면서 조울증 진단을 받게 됩니다.


처음엔 우울증의 모습을 보이지만 향후 조울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울증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기분 조절제(Mood stabilizer)를 통한 약물치료입니다. 기분이 가장 좋은 상태를 +10으로, 가장 우울한 상태를 -10으로 보았을 때, 약물치료는 기분을 -1 정도로 맞추어 줍니다.


극단적인 감정에 익숙해진 환자들은 차분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약물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약물을 임의로 중단할 경우 금방 재발하게 되고 기존 용량으로 쉽게 좋아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러므로 상태가 호전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약물치료와 함께, 감정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약물, 카페인, 술 등은 피하고 충분히 자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나, 조울증인가요?



‘감정 기복’은 조울증뿐 아니라 인격장애나 불안장애 등과 같은 다른 정신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증상이 주가 되느냐에 따라 진단은 달라질 수 있어요.


신체 질환이 있을 때 조울증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갑상선 기능이 항진되었을 때 조증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갑상선 기능이 저하되었을 때는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죠. 이는 병원에서 갑상선 기능검사를 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진단 기준에 대한 내용을 읽어보고 자가진단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5)에 따른 조증의 진단 기준


A. 비정상적으로 의기양양하거나, 과대하거나 과민한 기분이 적어도 1주간(만약 입원이 필요하다면 기간과 상관없이) 지속되는 분명한 기간이 있다.


B. 기분 장애의 기간 도중 다음 증상 가운데 3가지 이상이 지속되며(기분이 과민한 상태라면 4가지), 심각한 정도로 나타난다.

 1) 팽창된 자존심 또는 심하게 과장된 자신감

 2) 수면에 대한 욕구 감소 (예: 단 3시간의 수면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낌)

 3)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계속 말을 하게 됨

 4) 사고의 비약 또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는 주관적인 경험

 5) 주의 산만 (예: 중요하지 않거나 관계없는 외적 자극에 너무 쉽게 주의가 이끌림)

 6) 목표 지향적 활동의 증가(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사회적 또는 성적인 활동) 또는 정신이나 행동상의 초조함.

 7)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쾌락적인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 (예: 흥청망청 물건 사기, 무분별한 성행위, 어리석은 사업투자)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사건, 계절, 기후, 건강 상태 등이 모두 기분에 영향을 줍니다. 하루의 날씨조차도 우리의 기분을 좌우하지요. 


하지만 기분이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라앉거나 문제가 될 정도로 들뜬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몸과 마음을 살펴 건강한 봄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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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7편

‘인맥관리에서 공유관계로’



인맥 관리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허무함으로…


“정작 제가 힘들어지니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없네요.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관리해오느라 애썼던 것이 너무 허무합니다.” 직장인 K의 첫마디이다. 그는 인맥을 잘 관리하는 것이 사회적 성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왔다. 


그런데 최근 회사에서 실수에 비해 과도한 징계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을 당한 것도 억울했지만 K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말로만 ‘힘내!’라고 한마디씩 건넬 뿐, 각자의 일에만 열중했고 오히려 K를 피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직장동료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조차 이미 지난 일이니 잊어버리라며 술을 권할 뿐, K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동안 인간관계를 위해 애써왔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었다는 느낌에 걷잡을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나도 혹시 ‘인간관계 번아웃 증후군’?



K에게 그동안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기준은 ‘숫자’였습니다. 그는 주소록에 등록된 인원, 페이스북 친구들의 숫자, 하루에 받는 카톡과 문자의 개수, SNS에 올린 글에 대한 ‘좋아요’나 댓글의 개수, 주고받은 명함의 숫자 등을 늘 헤아렸습니다. 그 숫자가 많을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적을수록 우울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이 숫자를 유지하고 늘릴 수 있을지 항상 고심합니다. 명절마다 지인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고 친구들의 애경사나 동창 모임 등을 앞장서서 챙깁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위해 교회와 독서 동호회도 나가고 있습니다. 다들 꺼리는 모임의 총무나 간사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종종 과장된 글을 올리고 무심코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에게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마치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많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그런 자신의 성격이 너무 싫어졌고, 친구가 많은 아이들을 보며 늘 열등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고 앞에 나서며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불편할 때가 많았지만,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K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힘이 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좋은 모습만을 보이려고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이번 힘든 일을 겪고 난 뒤에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한 달 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입니다. 


이는 과연 K만의 문제일까요?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두잇서베이가 지난 2017년 4월 공동 기획한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인 남녀 2526명 가운데 85%는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껴본 적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상당 수가 업무 때문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에 허무감과 무기력감을 겪는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습니다. 왜 인간관계는 우리를 소진시키는 것일까요? 


 

시대가 강요하는 외향성 선호문화와 리더형 인간



바람직한 인간상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이상적인 인간유형은 다릅니다. 


하버드 대학교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남서부에 사는 나바호 인디언의 중심 가치는 ‘조화’입니다. 이들은 우주와의 조화로운 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그렇기에 이 집단 안에서는 온화하고 원만한 성격의 사람들이 바람직한 인간형이 됩니다. 반대로 성급함, 경쟁심, 지나친 자기주장 등은 비난거리가 됩니다. 그에 비해 크와큐틀 인디언은 ‘능력’이 중심 가치입니다. 이들은 남보다 힘이 세거나 능력이 우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창피하게 여깁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개성’보다는 ‘조화’를 중시해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은 이를 잘 나타내어주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는 기존의 문화를 아주 빠르게 전복시켜 버렸습니다. 사회가 개인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기주장과 성공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리더형’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상이 되면서 인간관계 역시 어느덧 경쟁력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도 외모처럼 투자를 해야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성공을 위해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부모들부터 이를 부채질합니다. 어려서부터 능력 있는 친구들을 짝 지어주려고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조종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외향성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의 성향은 무시한 채 무리에서 리더가 되거나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문화에서 자라나는 우리들은 인간관계를 자연스럽게 맺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장하고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인간관계가 아니라 인맥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인맥관리 관계’의 끝은?


인간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공유관계communial relationship'와 '교환관계exchange relationship'입니다. 공유관계는 서로의 친밀함과 관심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이에 비해 교환관계는 서로의 필요와 이익에 기초한 관계입니다. 즉, 공유관계는 기본적으로 동질감을, 교환관계는 기본적으로 손익에 관계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유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고 편해지지만, 교환관계는 계속 겉돌거나 진정성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서로의 필요와 이익이 맞지 않으면 쉽게 허물어지고 맙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유관계는 '휴식'에 가깝다면, 교환관계는 '일'에 가깝습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하고, 불편한 사람이라도 속 마음을 감추고 인간관계를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균형이 필요합니다. 실제 인간관계에서 소진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교환관계가 비대하고 공유관계는 미미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능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쟁 사회의 산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 연인, 친구, 사제 등의 관계조차도 교환관계처럼 교류하게 됩니다. 한번 연락오면 나도 한 번 연락하고,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만나고 별 이익이 없으면 피하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안 만나는 '거래'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가 변질되고 맙니다. 


그 교환관계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휴식 없는 노동이 결국 소진 증후군을 불러오는 것처럼, 교환관계에 매달리는 인간관계의 끝은 소진입니다. 특히, K씨처럼 어려운 일이 닥치면 좀 더 빨리 소진이 찾아옵니다. 그 수많은 인간관계의 피상성에 깊은 허무감과 외로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은퇴를 하고 난 뒤에 깨닫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해관계가 없어지자 아무런 연락도 없는 관계들을 보면서 정작 자신에게 누가 중요한 사람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외향적인 사람들은 비교적 덜 힘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향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사교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노동을 하며 인맥관리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억지 외향성’으로 자신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모임의 리더를 자처하거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이런 저런 대외 활동에 뛰어들었다가 어느 순간 탈진하듯 주저앉고 맙니다. 이들은 억지로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가 원하던 사교성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 자기초점, 신중함, 배려와 같은 내향적인 성격의 장점마저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위하여


우리는 공유관계와 교환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공유관계는 점점 중요해집니다. 인간은 언제나 관계의 연결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적 생명의 끈은 공유관계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함을 느끼고 어려울 때 찾아갈 수 있는 상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공유관계를 늘려갈 수 있을까요? 



첫째,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에너지는 한정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깊이를 더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나에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건강한 자아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자아의 기능 중의 하나는 자기의 관심사를 찾는 것입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찾으면 저절로 자기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어릴 때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저절로 친구가 만들어지지만 성인이 되면 친구는 손익기반의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관심기반의 친목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즉, 자신의 관심사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성인들의 공유관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심사의 핵심은 ‘오티움(Otium)’을 말합니다. 오티움이란 라틴어로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인 여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이 보상이나 결과를 떠나 그 자체로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오티움입니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등산, 뜨개질, 합창, 동식물 기르기, 시낭송, 댄스, 봉사활동, 명상이나 요가, 글쓰기, 요리, 공부 등 다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즉,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다보니 저절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유관계는 상대에게 지나치게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오티움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셋째, 갈등을 풀어보는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공유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밀해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 편안함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공유관계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오해와 마찰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공유관계란 교환관계와 달리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회복할 수 없는 단절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가까워지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갈등, 즉 불편함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더욱 더 친밀해지고 편안해집니다. 교환관계는 갈등이 생기면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공유관계는 그 갈등을 풀 수 있을 때까지 풀어봐야 합니다. 그냥 덮어두거나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때문에 기분이 상했고 불편함을 느꼈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약속을 여러 번 어겨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단, 화난 감정을 쏟아붓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왜 무시해!'가 아니라 '네가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에 말입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산을 넘지 못하고 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등을 대화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편안함은 점점 멀어지고 언젠가는 결국 더 큰 상처를 주고받으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깊은 공유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갈등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등을 회복하고 더 가까워지는 '갈등회복력'이 높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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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김슬기의 마음 치료 3편

‘죄책감이 뭐죠?’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



최근 한 고등학생이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저지른 끔찍한 사건이 회자되었지요. 치밀하게 계획하고, 일말의 죄책감 없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은 사이코패스(Psychopath) 즉, 반사회적 성격장애(품행장애)의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비정상적으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후회나 죄책감 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현대 정신의학 분류체계인 DSM-5에서는 이러한 행동 양상을 반사회적 성격장애(소아 청소년기는 품행장애)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진단내리는 질환명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정황상 추측할 뿐이지요. 마찬가지로 반사회적 성격장애도 진단받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등의 질환이 우선적으로 고려됩니다. 때문에 사이코패스를 범죄자와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견해라 할 수 있습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특징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 반사회적 성격장애(품행장애) 환자의 특징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들 케빈은 어려서부터 보통 애들과 좀 달랐습니다. 끊임없이 엄마에게 분노와 반항을 쏟아내고 엄마의 실수를 약점으로 잡고 조종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아이의 악마 같은 모습을 알고 남편에게 이야기하지만, 케빈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연기를 해서 남편은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런 케빈이 자라면서 저지르는 행동들은 더욱 과감하고 잔혹해집니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케빈의 얼굴,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왜 그랬니?” 라는 엄마의 질문에 “나도 몰라요.”라는 케빈의 대답은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어떻게 그런 범죄들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그의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엄마를 괴롭히고 싶었을 수도 있죠. 목적을 달성한 케빈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죄책감이나 후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화 속 케빈처럼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는 사회 규범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없고 타인의 권리를 빼앗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의리, 정직함 등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갖기 어렵습니다. 



생체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 모두 원인으로 작용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불안을 느끼면 행동하는 것을 망설이게 됩니다. 즉 불안은 행동의 억제 효과가 있는 거죠.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는 ‘불안’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러한 환자들의 충동성과 공격성은 전두엽 피질의 감소, 측두엽 부피 감소, 세로토닌 전달 기능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정과 관련이 있는 변연계(Limbic system) –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회로의 기능 저하와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인지 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위험한 자극을 찾게 된다는 설명도 있고요.




최근에는 MRI 검사를 통해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들의 뇌의 특정 부분들이 정상 대조군에 비해 회백질(Grey matter) 부피에서 차이가 난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품행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대조군에 비해 뇌의 피질(Coretex)의 부피가 현저히 작다는 결과 보고가 있어, 뇌의 구조적인 이상이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발생에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모두 작용합니다. 가까운 가족 중 환자가 있을 경우, 이 질환의 발생 비율은 정상 대조군에 비해 5배가량 높아집니다. 하지만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병의 발생이나 진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 하더라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 성장하는 아이의 발병률은 낮아지는 반면, 같은 유전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아이가 결핍이 있거나 폭력적인 가정환경 속에 방치되는 경우, 더욱 쉽게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발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피에타’에서 주인공 ’강도’의 삶은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까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채업자인 ‘강도’는 돈을 받기 위해서 그 어떤 끔찍하고 잔혹한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채무자들의 눈물, 원망, 저주, 자살까지도 그를 흔들지 못합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혼자 살아남은 그에게 갑자기 ‘엄마’라는 사람이 찾아옵니다. 처음으로 느껴본 ‘엄마’의 다정함과 따스함에 냉기만 흐르던 그도 차츰 변해갑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을 통해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누군지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죄책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엄마’를 만나기 전의 ‘강도’는 끔찍한 행동을 일삼는 악마 같은 인간이었다면 ‘엄마’를 만나고 난 후의 ‘강도’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도 하고 처절하리만큼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강도’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처음부터 엄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품행장애를 보이는 아동들을 살펴보면 아이가 자라온 환경이 원만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부재, 이혼, 가정폭력, 물질남용, 일관적이지 않고 방임하는 양육 방식 등 부정적인 환경은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뜻한 관심과 진심 어린 이해로 극복



충동적인 성향이 있는 아이에게 부정적인 성장 환경에 대한 분노까지 더해진다면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발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거죠. 이러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행동상의 문제를 보였을 때 훈계나 체벌보다는 꾸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넌 불쌍하지도 않니?’ 처럼 느끼기 어려운 감정을 강요하기보다는 어떠한 행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그러한 행동을 했을 때 본인에게 어떤 손해가 있는지 알려줘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에서는 약물치료도 도움이 되는데 우울증이나 약물중독, 불안장애와 같은 동반된 증상을 치료하거나 충동성을 조절하는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많이 쓰입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치료가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이해해 주려는 주변의 도움과 본인의 강한 의지가 있다면, 보다 효과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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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의 인간관계 심리학 3편

‘그건 사랑이 아니야


 

K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책상 위에 휴지가 한 움큼 쌓여갔다. 6개월 전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부터라고 했다. 


2년을 조금 넘게 사귄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좋다고 쫓아다녀서 시작했던 연애였기에 그의 이별통보는 더욱 충격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지칠 만큼 지쳤기에 먼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많았었다. 


시간이 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다른 여자를 새롭게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마음이 쑥대밭이 되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잘 해보자며 사정을 해보기도 했지만 전 남자친구는 냉정했다. 그녀는 매일 전 남자친구의 SNS에 들어가 그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밤 마다 울다 지쳐 쓰러지고 눈을 뜨면 증오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그 사람도 고통스럽겠지요?” 



파멸로 치닫는 비극적 사랑


▲ 벨기에 화가 Joseph Stallaert의 <The Death of Dido (1872)>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라는 책에서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가 멸망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트로이의 장수입니다. 그는 유민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 모험 길에서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들렀다가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유민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다짐을 잊어버리고 디도와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신들은 인간의 행복을 질투합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어 그가 잊고 있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부하들을 불러 은밀히 출항준비를 시킨 뒤 디도에게 알리지도 않고 훌쩍 떠나 버립니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겠지요. 


홀로 남겨진 디도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며칠 동안 괴로워하던 그녀는 궁정마당에 장작을 쌓고 아이네이아스가 남겨둔 무기와 옷 그리고 함께 쓰던 침대를 태웁니다. 추억의 물건과 함께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장작이 활활 타오르자 디도는 갑작스럽게 화염에 싸인 침대위로 몸을 던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랑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연인과의 이별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며, 자기의 붕괴입니다. 그렇기에 디도의 죽음은 자살이면서 동시에 타살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아이네이아스를 남김없이 파괴시켜버리고 자신을 배신한 아이네이아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싶은 복수의 마음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중 아만테스(amantes)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글자 하나 차이인 아멘테스(amentes)는 ‘정신 나간 사람’을 뜻하지요. 예부터 사람들은 사랑을 일종의 광기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비극적 사랑이 탄생하는 과정 



왜 어떤 사랑은 이렇게 치명적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애정)과 애착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의 비극적인 사랑은 애정이 아니라 애착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격렬합니다. 우리는 흔히 애착을 사랑이라는 말과 혼동합니다. 그리고 유아기 애착의 중요성으로 인해 애착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착은 사랑과 다르며, 성인의 애착은 관계를 파멸로 몰아가기 쉽습니다. 


잠시 애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까요? 애착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동물의 애착행동에 착안하여 애착 이론을 발달시켰습니다. 포유류의 새끼들은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맺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새끼들은 필사적으로 어미에게 매달리게 되어있고, 어미는 새끼들로부터 잠시라도 한 눈을 팔지 않도록 설정되어있는 본능적 프로그램이 바로 애착입니다. 이는 새끼가 어미에게 매달리는 일방적인 의존 상태입니다. 


인간의 애착은 더 강합니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크게 우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양육자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분리불안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양육자가 보이지 않으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도 공포를 느끼고 비명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강한 항의행동(protest behavior, 애착 대상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한 과도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아이에게 양육자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양육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즉각적 욕구만족’을 원하고 늘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에 비해 성인의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본능과 감정 외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친밀함을 쌓아나갈 수 있는 이성과 의지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네가 필요해’ vs ‘너를 사랑해’



애착은 일방적이지만 사랑은 상호적입니다. 애착은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공생관계이지만 사랑은 나와 너의 개별성의 토대 위에 ‘우리’를 만들어가는 공유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마음은 ‘난 네가 행복하기를 원해!’이지만 애착은 ‘난 네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해’입니다. 즉, 사랑은 ‘나는 너를 사랑해’이지만 애착은 ‘나는 네가 필요해’입니다. 애착은 이기적입니다. 애착은 타인의 존재에 일방적으로 의지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생존본능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애착욕구가 너무나 크고 오랜 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이를 양육자들이 충족시켜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민한 아이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아이들은 크고 작은 애착손상을 가진 채 어른이 됩니다. 그 손상이 클수록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호적인 애정관계보다는 일방적인 애착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조차 충족해주지 못했던 애착욕구를 어떻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맛보았던 일체감이 사그라지면 결국 애착욕구의 좌절이 찾아옵니다. 


물론 애정관계에서도 좌절이 있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시적인 균열을 다시 복구시킬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애착관계에서의 좌절은 과도한 반응을 유발합니다. 마치 양육자가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이 보이는 과도한 절망행동이나 항의행동과 유사합니다. 공포심을 느끼고 매달리거나, 증오를 퍼붓거나, 상대방을 조정해서 계속 자신의 요구대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사랑은 추격과 전투와 도망이 반복되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비극적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극적인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K의 고통은 남자친구가 떠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뿌리는 치유되지 못한 애착손상에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네가 태어날 때 너무 못 생겨서 버릴까 생각했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보잘것없는 나’라는 자기이미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활발했지만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깊은 수치심을 느껴왔습니다. 그러한 좌절감과 수치심은 마음의 응어리가 되었고 인간관계를 왜곡시켜왔습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그 감정적 응어리를 풀어내야만 과도한 애착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둘째는, 대상의 신중한 선택입니다. 이들은 과도한 애착욕구로 인해 비현실적인 구원의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애착손상을 가진 대상을 만납니다. 그러나 애착손상을 가진 이들끼리의 만남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신을 존중해주고 갈등을 풀어갈 줄 아는 안정적인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로는, 자기위로의 기능을 발달시켜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지해서 위안 받는 습관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을 벗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행복하게 해줄 책임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고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통해서 행위의 보상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지를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기쁨은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경계를 세우고,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또 다른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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