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어디 갔나~ 빨리 와라~"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울음을 터뜨려 버리는 손녀를 달래기 위해 친정엄마가 나를 부른다. 아이를 낳고 나는 '껍데기'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친정엄마, 친할머니, 시어머니까지 아이를 이미 다 키우신 어른들은 하나같이 아이와 나를 '껌딱지와 껍데기'로 부르신다. 나는 이 말이 싫었다. 알맹이를 잃은 채 흐물흐물 껍질만 남아있는 듯한 느낌의 '껍데기'라는 단어는, 엄마가 된 후 '나'를 잃었다는 생각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더욱 거북스러운 말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껍데기’라는 말을 들은 후에야 보이기 시작했다. ‘껍데기’라는 말을 내뱉을 때의 친정엄마와 친할머니 표정이. 껌딱지인 아이와 껍데기 처지가 된 내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는 듯한 표정이. 그 표정을 보며 어쩌면 ‘껍데기’라는 말은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어. 

하나라도 더 먹이려면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면

하루라도 더 일해야 했는데.”


 


엄마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냐는 내 말에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새끼 잘 키워서 시집 장가 잘 보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오랜 시간을 앞만 보며 달려오셨다고 한다. 그 바쁜 시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고. 두 아이를 다 키워 놓고 딸까지 시집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내가 보인다고. 그래서 나를 ‘껍데기’라고 부르던 엄마의 표정은 쓸쓸해 보였나 보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늘 뒷전으로 미뤄 왔던 것은 ‘나의 삶’이었는데, 아이가 다 자라 자신의 품을 떠나가버리니 남은 것은 나이 들고 오랜 일에 지친 몸뿐이라는 현실이 당신을 더욱 허무하게 만들었나 보다. 겨우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도 그렇다.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느라, 밀린 집안일을 끝내느라, 남편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내가 ‘껍데기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아라”

 



어릴 적부터 엄마가 내게 해왔던 말이다. 어떤 일이든 여자라고 포기하지 말고 꿋꿋이 그 길을 걸어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여자라고 겁먹지 말라는 뜻으로만 알았다. 나는 엄마가 되어 나의 꿈을 잠시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꿈이야 다시 꾸면 되지.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던 내 자리를 포기하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로 살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꿈을, ‘나’라는 사람의 삶을 잃지 않기를 바랐던 엄마의 마음을. 내 딸만큼은 자신의 꿈을 끝까지 이어 가길 바랐던 엄마의 마음을.



“멈춘 것만 같았던 시간”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육아라는 것은 내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 ‘오늘은 무엇을 먹일까’, ‘오늘은 무엇을 입힐까’,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까’를 고민하다 하루가 갔다. 마치 삶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로 옮겨 간 것 같았다. 하루에 잠시라도 ‘나’라는 사람으로 사는 시간이 없었다. 거기다 내가 꿈꾸었던 직장까지 내려놓고 나니 정말 ‘나’라는 존재가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내 품에서 떨어지질 않는 아이를 안은 채 시계소리만 가득한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을 땐 모든 게 멈춰버렸다는 생각만 들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나는 이곳에 멈춰 버렸기에 앞으로도 영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란 불안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울함이 깊어질수록 작은 일로도 아이를 다그치고 화내는 날이 늘어났다. 내 기대와는 달리 육아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했다.



“스스로를 껍데기로 만들지 말자”

 



악순환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우울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사소한 일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해 자책하고.. 이런 감정 소모를 반복하다 보니 점점 육아에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아이가 울면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고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절박하게 우울하고 힘들었던 순간에 내게 힘이 되었던 것은 “네가 너로 살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너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던 지인의 조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일상에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 스스로를 껍데기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다. 어릴 적 내 모습, 내가 좋아하던 것들, 내가 꿈꾸던 일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다 문득, 나만의 시간에 어릴 적부터 그려 보고 싶었던 그림을 그려 보기로 했다.



“아이와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

 



하루에 10분씩이라도, 나는 꼭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이 엄마라는 사실조차 잊고 내가 그리는 선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그냥 내가 생각한 것들을 그려내는 그 시간이 너무 기뻐서 아이를 재우고 보내는 ‘나만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온종일 엄마로 사느라 바빴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로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날짜도, 요일도 잊은 채 하루 버텨 하루 사는 ‘하루살이 인생’이, 매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나를 기다리는 ‘내 인생’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엔 ‘아이 보기도 벅찬데 내가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1년간 꾸준히 그림 그리는 일을 이어 오면서 내가 느낀 것은, 하루에 단 한 번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육아하면서 드는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랑의 시작은 ‘나’라고 하지 않던가.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주어야 하는 엄마도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이 있어야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다. 


스스로가 ‘껍데기’라고 느껴진다면, ‘나’를 잃어 가는 것만 같아 우울하다면 꼭 하루에 한 번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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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첫사랑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저 오지라퍼는 가끔 그때의 '흑역사'를 떠올리며 이불을 뻥뻥 차곤 하는데요^^; 그만큼 솔직하고 뜨겁게 사랑했던 흔적이구나~ 라는 생각에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20대 초반 여성 감독들이 이야기하는 첫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보시죠!






  며칠 전, 강릉 신영극장에서 열린 <애송이들의 브래지어>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20대 초반의 세 여자 감독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다큐 영화입니다. 사랑을 말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라 ‘애송이’란 제목을 붙였다고 하네요. ‘브래지어’는 여성에게 제약이자 특권이기도 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같은 여자로서, 20대의 질척한 연애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의 상처와 기쁨들을 빼거나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 용기에 감탄하게 되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각자의 20대를 떠올리는 분들의 소감이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지난 시절이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아리기도 하더군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서 이토록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영화란 매체의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다’며 헤어진 남자친구를 그리워하고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별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합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하죠. 관계의 단절이라는 게 매듭을 풀 듯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니, 걷잡을 수 없는 추측이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안 하려고 애쓸수록 생각은 더욱 커지죠. 영화 속에서도 기억을 기록하고 불태우는 의식을 치르고 여행을 떠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등.. 새로 거듭나려 애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가 다시 돌아오는 것만이 정답인 것 같았다’는 내레이션은 그저 슬픕니다. 상담에서도 수단에 집착하는 것을 지적하며 내 소중한 욕구를 위한 다른 대안들을 찾아보도록, 보다 넓은 시야로 주위를 살피도록 권유하기도 합니다. 결국 내가 사랑 받고 사랑했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지, 상대가 정답은 아니라는 걸 인식시키죠. 그러나 사랑만큼은 꼭 그와 함께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놓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행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전 남자친구에게 평온한 상태로 연락할 수 있게 됩니다. 지나온 사랑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기뻐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 그녀는, 더 예뻐졌습니다.





  두 번째는 ‘남자 없이 살 수 있다’고 선언하는 감독의 연애이야기입니다. 오해와 실망으로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떨치기 어려웠던 그녀의 고백이 담담히 전해집니다. 상대의 반응이 무서워 확인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 그럼에도 조금씩 용기를 내보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죠. 어렵게 연애를 시작한 남자친구에게 습관처럼 ‘헤어지자’고 말하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제안을 수용하는 남자친구의 태도를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나의 두려움 때문에 상대의 마음은 무시했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고백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후회하는 대부분의 상황은 두려움이 삼켜버린 기회들입니다.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두려움 따위 맞서 싸울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요? 다행히 그 실체를 바로 알아차린다면, 또 다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에서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야기. 원치 않는 첫경험을 밝히기가 부끄러워 내가 원하는 것을 바꾸고 포장하며 무감각하게 관계를 맺는 과정들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속상하고 억울한 심정이 전해진 것이겠죠. 상담에서도 ‘원하는 것’을 묻고 그것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현실에서 늘 원하는 것을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또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는 어쩌면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우리는 때로 실수도 하고, 끌려 다니기도 하며, 의존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나를 아는 것입니다. 실수한 나를, 흔들린 나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는 나를 말입니다. 그 모습이 맘에 들지 않고 그로 인해 나의 다른 욕구들이 희생되고 있다면 새로운 선택을 해보면 됩니다. 지난 일은 그저 지난 일일 뿐입니다. 그녀의 결말은 아픔의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희망적입니다. 그림을 그리며 나를 알아가고, 나를 사랑하는 기회들을 만드는 모습이 보여 기뻤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다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짧은 자극으로 담아낼 수 없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레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헤어지며 내 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20대, 그 시절이 문득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싸움을 동료와 함께 나누며 작품으로 만들어낸 세 명의 감독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운 좋게 해결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삶의 일부가 됩니다. 이왕 내 삶으로 들어왔으니, 피하려 애쓰기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활용해보면 어떨까요? 사랑의 상처가 한 편의 영화가 되기도 하니까요.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23편.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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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무언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두렵다면, 지금 들려드릴 용기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더 당차고, 용기있는 4월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봄입니다. 여전히 쌀쌀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여지없이 꽃은 피었습니다. 나른한 봄날, 이처럼 무거운 마음까지 겹치면 몸도 쉽게 피로해지고 스트레스에도 더욱더 취약해지죠. 어떻게 좀 더 힘을 내고, 용기를 내 볼 수 있을까요?

                                          

 대학시절, 학교 근처 작은 극장에서 <4월 이야기>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러브레터>를 만든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작품이라 기대를 했던 탓인지 1시간만에 끝나버린 영화가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러브레터>가 비장한 사랑의 서사시라면, <4월 이야기>는 힘을 빼고 그린 수채화 같습니다. 홋카이도에서 첫사랑을 따라 도쿄로 대학에 진학하는 청순가련형의 여주인공은 참으로 사랑스럽죠. 영화는 개성 있는 주변 인물과 대조를 이루는 밋밋한 그녀를 보여주지만, 뿌연 화면을 통해 비치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 태도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그 사이 결국, 만만치 않은 한 여인에게 푹 빠져들게 되죠. 의외로 고집스럽고, 의외로 강단 있으며, 확실히 용기가 대단합니다. 그녀의 용기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첫 장면은 딸을 멀리 유학 보내는 가족들의 인사로 시작됩니다. 정말이지 순박한 표정들이죠. 드디어 새로운 공간에 도착한 한 여인의 뒷모습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납니다. 너무나 순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녀의 색깔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삿짐을 들이는 남자들과의 대화에서도 그저 수동적이기만 합니다. 말을 못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없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학교에서도 수줍게 자기 소개를 하곤,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그저 고개를 떨군 채 주변을 살핍니다. 눈치 없이 들이대는 동기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생각도 없던 낚시 동아리까지 들다니, 좀 한심해 보이기도 하죠. 그러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당차고 고집스러운지 알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짝사랑하던 한 선배가 멀리 도쿄에 있는 대학에 갔다는 소식에 절망합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 머물지 않고 방법을 찾아내고 말죠. 도쿄에 다녀온 후배에게서 그가 일하는 서점을 알게 되고, 그가 있는 대학을 찾아보고 어떤 곳인지 묻고 그리고 그곳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결국 목표를 달성한 그녀는 홀로 떠나와 자기만의 공간을 꾸밉니다. 이웃에게 선물을 주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저녁을 같이 먹자고 벨을 누르기도 합니다. 혼자서도 자유롭게 잘 다니고 선배가 일하는 서점에 들러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죠. 물론 그녀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사랑의 기적이라 해맑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행복해 보이고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마치, ‘행복은 나처럼 용감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행복은 용감한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심리상담을 받으러 상담실을 찾는 이들에게, 이미 한 걸음 용감하게 내디딘 것을 격려합니다. 나는 너무 나약해서 혹은 문제가 심각해서 상담을 받는 것 같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누구나 약해질 때가 있고, 내 문제가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불의의 사고를 겪고 난 후라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익숙한 채로 견디고 사는 경우도 있고 때론 너무나 무기력해져 상담 받을 생각조차 못할 수도 있죠. 다만 나는 내 삶을 변화시키고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 본 것입니다. 꼭 상담이 아니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불의에 저항하며 목소리를 낸다거나, 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길을 찾는다거나, 혹은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을 선택하는 등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이미 용감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나를 격려해주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것과 그저 끌려가듯 버티는 것은 다릅니다. 



 <4월 이야기> 속 주인공이 사랑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온전히 마음을 두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 무언가에 몰입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파생될 상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미래는 본래 불확실한 것입니다. 그 어떤 논리나 경험을 따른다 해도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죠. 어느 정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충동적인 행동과 후회를 막는데 도움이 되지만, 나의 온 에너지를 예상질문을 뽑아 답을 만드는 것에 쏟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지금 어디에 마음을 두고 계신가요? 내가 마음을 두는 것, 내가 원하는 것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주세요. 주어진 역할이 많아 버겁다면,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내 보세요. 말 못하고 숨겨둔 일이 늘 내 발목을 잡는다면, 나는 지금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무도 내 슬픔을 알아주지 못 할거야’ 라고 되뇌고 있다면, 누군가는 내 슬픔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영화처럼 삶이 좀 더 투명해지면 좋겠습니다. 단순하고 투명하게, 소박하고 순박하게. 각자의 ‘4월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영화처럼 화사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한 그 삶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21편.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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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남들의 시선이 따갑다면 당당하게 표현하기 쉽지 않은데요. 하물며 내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오늘도 좋은 영화 한 편과 함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시내를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점심시간 거리를 점령한 직장인 부대, 시민단체에서 회원을 모집하는 활동가들, 아이와 나들이 나온 엄마들... 때로는 개인 혹은 단체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자주 눈에 띕니다. 고개가 끄덕여질 때도 있고 내 생각에 바빠 모른 척 지나갈 때도 있죠. 황당한 구호에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며 누구나 나름의 견해를 펼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주장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만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습니다. 이토록 자유와 인권, 나아가 사랑의 문제는 참 어렵습니다.


  20대의 나이에 세계적인 감독이 된 자비에 돌란은 2013년 <로렌스 애니웨이>라는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어 교사인 로렌스는 약혼녀 프레드와 함께 살며 아기자기한 사랑을 키워갑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이들에게 위기가 찾아오죠. 로렌스가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오랜 고민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남자친구의 생일맞이 여행을 계획했던 프레드는 로렌스의 말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로렌스는 단지 ‘내가 잘못된 몸을 타고 난 것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프레드는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진짜의 나를 찾겠다는 애인 앞에서 ‘그렇다면 나와의 관계 역시 가짜였냐’라고 되묻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의 근육과 남성성이 그토록 어색하고 싫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죠. 혼란에 빠진 프레드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프레드가 로렌스와 함께 하기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로렌스와 프레드의 지독한 사랑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줍니다. ‘사랑만이 유일한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확인하는 셈이죠. 어린 시절부터 성정체성에 대해 홀로 고민하던 로렌스는 더 이상 외로운 채로 견딜 필요가 없습니다. 여장을 하고 사회에 나서는 과정에서 힘을 주는 약혼녀가 있어 당당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프레드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여 또 다른 힘을 키워갑니다. 그 과정은 물론 험난합니다. 나도 소화시키지 못한 현실을 타인에게 납득시키고 항변해야 하는 프레드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된 그녀는 회사에서 잘리고, 동시에 로렌스 역시 학교에서 사직권고를 받으면서 그들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듭니다. 토요일 아침, 동네 식당에서 두 사람이 마주앉아 식사를 합니다. 주변의 시선이 클로즈업되고 불편한 가운데 괜찮은 척 말을 꺼내는 로렌스와 절망감에 휩싸인 프레드. 예의 없는 식당 주인의 질문공세에 프레드는 폭발합니다. ‘당신이 나처럼 살아봤어?’라며 그렇지 않다면 어떤 질문도 할 자격이 없다고 윽박지르죠. 대체 누가 예의가 없는 것인지, 왜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을 건드리는지... 그녀는 매우 공격적으로 소리치고 있지만, 이미 그보다 더 큰 폭력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일까요? 그저 호기심에 물어본 것일 뿐이라면 대체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틀렸어!’라는 생각이 호기심을 가장한 조롱과 폭력에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닐까요?


  영화 속 로렌스가 갖고 있는 문제를 정신장애 진단으로 분류할 때 ‘성불편증(Gender dysphoria)’에 속합니다. 성정체성과 관련된 정신의학적 관점은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동성애는 이미 오래 전(1968년)에 진단분류에서 빠졌으며, 그 후로 지금까지 성적 지향 및 성 결정에 대한 자유를 지지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정체성 장애’라고 불리던 것이 최근 ‘성불편증’이라는 이름으로 순화된 것도, 성 결정 그 자체를 질환으로 보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성불편증에 속하는 이들은 잘못된 성으로 태어났다고 느끼며 고통을 겪습니다. 이를 치료하는 최종적인 방법은 성전환수술이지만 더불어 사회생활에서 찾아오는 우울 및 불안 증상에 대해서는 심리치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병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죠. 로렌스와 프레드는 모두 이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사회적인 관습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어쩌면 프레드가 식당에서 화를 낸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녀가 속 시원히 부당함을 호소했을 때,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알 수 없는 죄의식에서 놓여나 당당히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상담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상담자도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상담자는 그들이 어떤 두려움으로 인해 꽁꽁 숨겨둔 그들 자신을 안전한 공간에서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뿐, 잘잘못을 가리거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죠. 가족도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어쨌거나, 그의 존재 자체를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더불어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결국 로렌스와 프레드는 헤어지고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나지만 이전처럼 하나가 되지는 못합니다. 마지막에 ‘그 시절 이미, 내 고백이 아니었어도 우리 관계는 위기였다’고 말하는 로렌스의 대사는 의미심장합니다. ‘사랑이 유일한 치유의 길’인 것만 같았던 영화 속 장면들은 ‘사랑은 환상일 뿐이다’라며 쓴 소리를 던지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보다는 서로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만큼 참으로 고귀한 일임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10년 동안 사랑했던 로렌스와 프레드는 이제 각자의 길을 간다 해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와 너, 그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 해도 충분히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 힘이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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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들이여! 일어나라!! 깊은 수렁속에 헤매고 있는 모태솔로들을 커플로 이끌고자 모태솔로 탈출 3계명을 특별히 전수해 드립니다.
자 이제부터 눈을 크게뜨고 지켜보세요!

오지라퍼가 요즘 좀 꽂혀있는 분이 있었어요.

솔로 천국~ 커플 지오옥~!  


“두 커플이 깨지면 네 명의 솔로가 탄생하는 기적이 일어날지니~!!!”

오지라퍼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난 외롭지 않아…’ 솔로는 죄가 아니야. 행운이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소사소사맙소사!!!!!!!  그녀마저!!!
사실은 솔로를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 쳤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더랬죠.

하기야….. 사실 여러분도 연애하고 싶잖아요?
왜 이러세요? 손도 한번 안 잡아 본 사람들처럼?
술자리에서 키스랑 뽀뽀랑 무슨 차이인지 알고 싶다며
괜히 입맛 다시는 사람들처럼?

청춘여러분! 청춘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마음껏 연애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물론, 미혼남녀 말씀입니다. 저어기~ 유부남녀 여러분께서는 고개 끄덕이지 말아주세요. (다 아시면서! ^^)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방바닥에 붙어 싸구려 커피를 마시거나 벽지의 모양을 새거나 텔레비전을 벗삼아
방콕을 일삼는 모태솔로 여러분!!!!
지금부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연애의 기술을 전수할 터이니 눈 크게 뜨고 집중하세요~!

모태솔로 탈추~~~~울!!!!


하나, 내가 연애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 때문이다.

일단, 거울을 들여다 봅시다.
생기하나 없는 눈동자, 푸석푸석한 피부, 미용실 간지 몇 달인지 알 수 없는 헤어스타일, 센스없는 옷차림, 무표정한 얼굴…이지는 않나요?
이중에 3가지 이상 해당되신다면 모태솔로 중에서도 최상레벨! 

그에 반해 주변에 연애하는 분들을 살펴보면 생기발랄한 목소리, 매만진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등 외모에 경쾌함이 묻어날 겁니다. 애인이 있어서 그런 거 라구요? 

자,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애인이 생긴 다음 외모를 꾸미기보다 애인이 생기도록 외모를 꾸며야 한다는 것!

주변에 기혼남녀 밖에 없다구요? 맘에 드는 사람 하나 없는데 귀찮게 꾸며야 하나구요? 천만에 말씀!
그 분들 주변엔 분명히 소개팅을 해줄 만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즉, 그 분들이 여러분의 커플매니저라는 말입니다.


호감있는 외모와 태도를 보인다면 소개팅에 청신호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겠죠?
외모를 꾸미는 일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나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죠.

당장 실천해 보세요. 이번 달 지출리스트에 새 옷과 새 구두 하나씩 사는 일을 추가해 보세요. 이왕이면 맘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미용실에 가는 것도 좋구요. 모태솔로를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방치된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라는 점 잊지 마세요.
 “훗, 알고보면 이런 사람이야!”

작은 외모의 변화가 큰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 내 눈에 멋진 모습이라면, 다른 사람의 눈에도 멋지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답니다.


둘, 솔직함은 모태솔로도 연애하게 한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가 되어 모태솔로 한 분을 소개팅 시켜 드렸습니다. 28세의 회사원인 그 여성 청춘 분께서는 연애를 쉰 지 6년 만이셨는데요. 그래서 그랬는지 소개팅에 무척 기대를 하시더라구요.

남자분이 썩 괜찮았던지 소개팅이 끝난 다음날 “그 남자분 정말 마음에 드는데 애프터가 안 들어온다. 어떻게 하냐.”며 거의 울기직전의 목소리로 전화를 거셨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먼저 연락을 해보라.”고 했더니 어떻게 여자가 자존심도 없이 먼저 연락을 할 수 있겠냐.”며 남자분에게 전화를 걸어 의중을 물어달라는 겁니다.

소개팅남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여자분이 소개팅 내내 묘한 미소만 짓고 있고 식사에도 통 손을 대지 않고 결정적으로 말수가 없어 대화도 안 통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말을 하시더군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바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무기가 내숭이고, 남자의 무기가 과묵함인 시절은 지나갔어요.
기회가 왔을 때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솔직담백하게 어필하고 PR해야 해요.

물론 낯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칭찬’입니다. 상대의 장점을 찾아보세요. 눈이 예쁘다거나 귀가 잘생겼다거나 목소리가 좋다거나 웃는 입매가 근사하다거나… 작은 칭찬이 대화를 연결시키고 나와 상대의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지면서 어느새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거에요.


셋, 상처 받을수록 사랑의 확률은 높아진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기, 기회가 왔을 때는 솔직한 대화로 승부하기
이 두 가지의 충고에 대해 깊이 공감하셨다면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한 모태솔로 탈출의 핵심이 될 거에요.

그건 바로,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거부 당했을 때의 두려움, 그로 인한 상처, 이별 등에 대해 겁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 사람이 맘에 드는데,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럴 바에는 그냥 혼자만 짝사랑하는 게 속 편해.’라며 지레짐작으로 움츠러들지 마세요.

                         ► 이미지출처 : 사니의 행복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순 없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다면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거절한다면 당연히 아프고 힘들겠죠. 하지만 그렇게 시도해 봐야만 나를 알아주는 상대를 더 빨리 만날 수 있답니다.

사랑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지금의 상처를 기꺼이 받아들이세요. 당신을 알아봐주는 그 사랑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우리 청춘들이 모태솔로를 탈출하고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도록 가장 확실하고 특별한 어드바이스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이 세상의 모든 솔로가 커플이 되는 그날까지!

이상 오지라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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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끼우 2010.07.15 1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태솔로... 말이 참 와닿네요.

  2. 메바 2010.07.16 1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 못해 봐서 모태솔로인가요...
    모태신앙처럼...태어날때부터 솔로로 살 운명이라서 모태솔로인가요..
    어느쪽이든 너무 가혹해요. ㅠㅠ

    • 삼성화재 2010.07.20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두쪽다 가혹하네요.
      그래도 사랑 못해봐서 모태솔로가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태어날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건 너무나 가혹한거 같아요..ㅠㅜ

  3. 아쌈 2010.07.21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나미양...볼때마다 왠지 남일같지가 않습니다. ㅋㅋㅋ

  4. 똥글이 2010.07.22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로들의 여신, 오나미의 배신 드립~
    ㅎㅎ 진짜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