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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삼성화재의 새로운 관점, ‘門問, 물음을 여는 문’

고전음악가들의 인생 속 건강과 행복, 삶의 균형을 전문가의 눈으로 살피고

인문학적 관점을 더해 깊이 있는 질문과 의미 있는 성찰을 담고자 합니다. 

삼성화재와 함께 삶의 혜안을 찾고 인생의 봄날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사실 하이든의 삶은 고전 음악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평범한 축에 속합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하이든은 평온하다 못해 틀에 박힌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런 하이든이 말년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성공과 건강한 삶을 모두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나오는 한 문장처럼 나이 듦은 흠이나 약점이 아닙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인생 2막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젊음에 대한 잘못된 집착부터 버려야


평균 수명이 40세에도 미치지 못했던 1732년에 태어난 하이든은 무려 77세까지 장수하며 천수를 누렸습니다. 30년 가까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에서 일한 끝에 은퇴하고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고전 음악가들 가운데 하이든의 삶은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 중∙장년층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하이든처럼 은퇴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막연하게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가 문제라고 정확히 말하기 어렵고 증상도 뚜렷하지 않지만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사는가?’, ‘텅 비어 있고 껍데기만 있는 느낌’이라고 호소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모호한 표현들이야말로 내면에서 오는 목소리입니다.

 



이제껏 앞만 보고 살아오며 자신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내면에서 이젠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후반기에는 그동안 외면했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남의 시선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외적인 면에 집착하곤 합니다. 외모에 대한 집착은 젊음에 대한 집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은퇴 후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젊음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합니다. 일단 건강과 외모가 예전 같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외모에 집착하고, 아무 근거 없이 건강 음식을 끊임없이 섭취하는 일부터 멈춰야 합니다. 최근에는 도가 지나쳐 성형 수술에 집착하며 젊은 사람과의 외모 경쟁에 힘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것은 나이에 맞지 않게 사는 일입니다. 진정한 젊음은 끊임없이 배우며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정신과 삶의 태도에 있는 것이지, 주름 없는 피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드는 것을 인정하되 우아함과 품위를 지키고, 경험과 지식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이가 든다면 오래된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경험, 연륜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멋진 시니어가 될 것입니다. 흔히 중∙장년층의 어른들이 자신의 경험이나 의견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넘보고 이기려 드는 경쟁자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쟁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를 이어받아 미래를 개척할 사람입니다. 실제로 하이든은 말년에 이르자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후배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기꺼이 자신의 무대를 내어주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오페라 대신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상연하라고 권유한 적도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가난한 후배 음악가를 위해 자신의 작품집에 지면을 내어주고 곡을 실어주는가 하면, 심지어 자신의 제자와 저작권 소송이 생겼을 때 법정에 출두해 작품의 주인은 자신의 제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그에게 곡을 헌정하고 말년에는 그의 후배들이 하이든의 곡으로 공연을 할 기회가 생기면 그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하이든은 죽는 날까지 곡을 쓰고 공연을 했지만, 한 번도 젊은 음악가들을 자신과 경쟁하는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젊은 음악가들의 활동을 더 많이 도울수록 더 많은 이가 하이든의 음악을 연주하고 그의 음악을 더 널리 퍼트렸습니다. 하이든이 죽는 날까지 많은 이에게 큰 인물로 존경받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일과 가족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의 삶을 찾아서


50대야말로 ‘진정한 나’의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자녀들도 성장해 양육과 교육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과 가족을 떠나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누려본 적이 없기에 까닭 모를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부모의 의견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가족 문화의 특성상 한국인은 부모가 정해준 길을 따르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는 스무 살 성인이 되어도 결혼 전까지는 자립을 하지 못합니다. 마침내 직장을 잡고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독립해도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사느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신은 일을 그만두고 자녀들은 독립하는 시점이 됩니다. 은퇴한 분들의 사정은 엇비슷합니다. 일과 가정만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세상은 아주 낯선 곳입니다. 젊은 날의 대부분을 궁정악장으로 살아온 하이든도 은퇴한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중∙장년층 가운데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하이든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삶은 누군가의 자식으로, 부모로, 배우자로 살아온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은퇴한 이후 하이든도 비슷한 처지였습니다. 외국어도 못 하고, 해외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음악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하지만 하이든의 놀라운 점은 낯설고 새로운 경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음악을 고집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였다는 데 있습니다. 말년에야 비로소 경험한 생애 최초의 영국 여행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흔히 50대 이후 일과 가족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오롯이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시간을 써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은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권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이제부터는 조금이나마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시간의 일부, 내가 가진 돈의 일부를 써서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자극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감각이나 운동의 즐거움을 느껴보길 권합니다. 감각과 운동은 인간의 원초적인 기능이지만 이 즐거움은 매우 큰 것입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귀가 즐겁고, 좋은 그림을 보면 눈이 즐거우며, 좋은 음식을 먹으면 입과 코가 즐겁습니다. 산책∙등산∙운동∙춤과 같은 활동을 통한 즐거움 또한 큰 기쁨을 줍니다. 세 번째로 지적인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얻어보라고 권합니다.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자료를 찾고 관련된 정보를 뇌에 입력하고 응용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입니다.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점점 많이 알게 되면 그 분야에서만큼은 고수가 됩니다. 요즘 말로 ‘덕후’가 되는 것이지요. 덕후가 되면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고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의 친교도 늘어나는 즐거움이 덤으로 생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행복의 비밀, 몰입에서 찾다


스무 살이 넘어 하이든은 켈러라는 가발 제조업자의 둘째 딸 테레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테레제는 결국 수녀가 되어 하이든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테레제가 수녀원으로 간 뒤에도 그는 켈러가(家)를 드나들었는데요. 테레제의 언니 마리아와 28세 때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이든의 아내인 마리아 안나 켈러1)는 하이든보다 세 살 연상에 음악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이든의 악보를 그릇 받침이나 과자 포장지로 쓰는가 하면, 머리카락을 마는 컬페이퍼로도 썼다고 합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에 하이든이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다는 말은 다소 과장이겠지만, 하이든을 음악에 몰입하게 만드는 한 가지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1) 마리아 안나 켈러(Maria Anna Keller) : 하이든의 아내. 1760년부터 40여 년을 하이든의 아내로 살았지만 슬하에 자식은 없다. 음악적 소양이 전혀 없고 호전적 성격이었다고 알려져 있는 마리아는 유명인의 악처 리스트에 빠짐없이 오를 만큼 평판이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서로 맞지 않는 배우자를 만난 하이든과 마리아 모두 외롭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이든은 성실하고 노력하는 작곡가였으며 호기심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작곡에 몰입해 즐거워했고 발전해가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너무 좋아서 깊이 빠지게 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때 우리는 흔히 ‘삼매경’에 빠졌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경험을 플로(Flow)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몰입’이라고 해석합니다. 플로의 원뜻은 ‘물의 흐름’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한번 흐름을 타면 역으로 거스르기가 어렵죠. 그래서 정말 좋은 것을 만나게 되면 헤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쭉 흘러간다는 의미에서 몰입을 뜻하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2)에 의하면 이런 ‘몰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었거나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몰입하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말년의 하이든은 영국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3)를 처음 듣고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고 하는데요. 그 음악에 매료돼 그날부터 <천지창조4)>를 작곡하기 시작했고, 이는 하이든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이든의 생전 마지막 생일날 공연된 것도 바로 이 곡입니다.


2)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 미국의 심리학자로서 ‘긍정심리학’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창의성과 관련된 몰입(Flow)의 개념은 많은 분야에서 인용되고 있으며 현재는 미국 내 ‘삶의 질 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3) 오라토리오(Oratorio) : 17~18세기에 가장 성행했던 대규모의 종교적 극음악. 성서에 입각한 종교적인 내용을 지녔으며 동작이나 무대 장치 없이 합창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4) <천지창조> : 하이든이 3년에 걸쳐 완성한 오라토리오로 하이든의 대표작이다. 1798년 4월 초연한 이후 빈과 런던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회자되는 걸작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시의 음악가를 비롯한 대중 모두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7일간의 천지창조 서사에 곡을 붙인 것으로 창세기, 시편을 비롯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에서 가사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하이든은 음악에 몰입함으로써 괴로움을 잊었다고 하는데요. 말년에도 음악에 몰입해 충만한 삶을 누렸습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든지 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출처: 삼성화재 VIP 매거진 문문


글쓴이: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서울의대, 서울대 외래 교수,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지음오페라단 이사, KBS 팟캐스트 <힐러들의 수다>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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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삼성화재의 새로운 관점, ‘門問, 물음을 여는 문’

고전음악가들의 인생 속 건강과 행복, 삶의 균형을 전문가의 눈으로 살피고

인문학적 관점을 더해, 깊이 있는 질문과 의미 있는 해답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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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의 몸은 그 자체로 악기이며, 악상(樂想)을 담는 그릇이기도 합니다. 건강, 신체적 특징, 생활 습관에 이르기까지 ‘몸의 이야기’는 고전 음악가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사실이자 삶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연주 여행으로 시달린 모차르트는 키가 150 센티미터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신에 곰보의 얼굴, 커다란 주먹코를 가진 볼품없는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은 음악에 몰입하게 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열등감에 시달린 ‘큰 코의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발부르가 모차르트1)의 일곱 번째 아들로 1756 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손위 6 남매 중 네 번째 누이 난네를2)만 살아 있고 나머지 5 명은 유아 시절에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유아 사망률이 40% 에 육박했다고 하니 보기 드문 일은 아니었습니다. 


1) 안나 마리아 발부르가 모차르트(Anna Maria Walburga Mozart):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어머니로 결혼 이전의 성(姓)은 페르틀(Pertl)이다. 여러 번 아들 모차르트의 음악 여행에 동행했으며, 아들의 파리 원정에 함께하던 중 이국땅에서 열병으로 객사했다.


2) 난네를(Nannerl):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누나의 애칭. 본명은 마리아 안나 발부르가 이그나티아 모차르트(Maria Anna Walburga Ignatia Mozart)로 모차르트와 함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피아노 연주자,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모차르트와 달리 80 세까지 장수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궁정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어머니는 그를 30 대 후반에 일곱 번째 아이로 임신한 탓인지 다른 형제들의 임신 때보다 입덧이 대단히 심했다고 합니다. 레오폴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아내의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를 썼는데, 그 덕분에 모차르트는 태아 때부터 아버지의 음악을 듣고 그 소리에 익숙해졌습니다. 모차르트는 매우 심한 난산 끝에 태어났으며, 또 모유가 나오지 않아 곡물 가루를 먹으면서 자라 영양실조로 갖은 질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몸의 기능도 좋지 않아 걷는 것, 말하는 것 모두가 정상아보다 두 배나 늦었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여섯 살 무렵부터 시작된 연주 여행은 한창 성장해야 할 모차르트의 건강과 발육 모두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연주 여행은 그렇지 않아도 발육 상태가 좋지 않던 모차르트의 성장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모차르트는 성인이 되어서도 키가 150 센티미터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신이었습니다. 여기에 천연두로 곰보가 된 얼굴에, 근시와 커다란 주먹코를 가진, 말하자면 추남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큰 코가 도드라져 보여서 ‘큰 코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행동 역시 일종의 강박신경증 증상 때문에 늘 불안정했습니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외모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그의 귀였습니다. 누가 봐도 모차르트의 왼쪽 귀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기형적인 생김새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왼쪽 귀는 특이하게도 귓불이 거의 없었으며, 귓구멍에도 소용돌이가 결여되어 귀 특유의 굴곡이 전혀 없는 평평한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기이한 귀였던 탓에 당시의 연구자들이 이를 스케치로 남겨둘 정도였습니다. 음악 신동, 천재로 유명한 모차르트였기에 그의 특이한 귀 모양은 더 많은 이목을 끌었던 모양입니다. 그 귀 때문이었을까요? 어려서부터 모차르트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불안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많았지만, 일단 음악만 들려오면 모든 감각 기능이 음악에 쏠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조차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음악에 대한 이와 같은 놀라운 집중력에 더해 세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여, 다섯 살에는 미뉴에트와 콘체르토를 스스로 작곡했으며, 여덟 살 때 교향곡을 작곡했다 하니 ‘천재’라는 찬사로도 부족할 만큼 음악적으로 조숙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천재성과는 반대로 외모는 열등감을 가질 만큼 볼품없었다고 하니 신은 공평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차르트가 유독 트럼펫과 플루트를 싫어한 이유


원래 어머니 배 안의 태아는 양수(羊水) 속에서 초고음(超高音)에 민감한 상태로 머뭅니다. 임신 6 개월이 된 태아는 8,000 헤르츠의 고주파 음까지 민감하게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소리의 속도는 공기 중에서 1 초에 340 미터까지 퍼지는데, 물속에서는 그 같은 속도가 1,500 미터로 5 배나 빠르기 때문에 낮은 진동보다 높은 진동이 태아에게 잘 전달되는 것이죠. 이런 속성에 적응한 태아의 귀 상태를 보통 태내귀(胎內耳, 일명 원시귀)라고 하는데요. 때문에 분만 후 물 대신 공기가 고막에 닿아서 내는 기도음(氣道音)인 저음에 적응하려면 생후 수개월이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태아는 고주파 음역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태인데, 점차 성장하면서 그보다 훨씬 낮은 음역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유독 모차르트의 경우 기형적인 귀의 형태로 추측했을 때 왼쪽 귀가 태내귀 상태 그대로 성인이 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차르트는 악기 중에서 트럼펫3) 소리에는 매우 예민하여 이 소리를 들으면 경련을 일으키며 그 자리에 쓰러지곤 했다고 합니다. 트럼펫은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키도 밸브도 없는 악기였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날카롭고 큰 소리를 내는 금관 악기였습니다. 소위 ‘내추럴 트럼펫’이라는 악기인데요. 인간의 호흡과 금속 사이의 마찰만을 이용하다 보니 소리가 아주 높고 날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군대의 팡파르나 기상나팔로 주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3) 트럼펫: 15 세기 이전에는 피스톤이나 밸브가 없는 형태로, 내추럴 트럼펫이라고 불리며 팡파르 등에 쓰였다. 그 후 밸브와 피스톤이 만들어져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어린 모차르트는 트럼펫 소리를 아주 싫어해서, 아버지의 친구가 코앞에서 이 악기를 불자 기절할 뻔했다고 합니다. 또 목관 악기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날카로운 음색을 자랑하는 플루트를 유독 싫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네덜란드 출신의 플루트 주자 드 장의 의뢰를 받고 작곡을 해야 했을 때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내가 싫어하는 악기를 위해 곡을 써야만 할 때 저는 극도로 무력해집니다.”라는 호소가 담겨 있을 정도입니다. 


모차르트는 성인이 되어서도 트럼펫이나 플루트 소리가 마치 권총을 발사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불평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왼쪽 귀가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생각한 아버지 레오폴트는 오히려 이를 교정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그런 악기들의 소리를 더 자주 듣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트럼펫과 플루트를 싫어하는 모차르트였지만 모든 악기가 동원되는 교향곡에서는 이 같은 선호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 가운데 트럼펫 연주 부분을 자세히 들어보면 다른 악기를 뒷받침하는 정도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차르트와 음악적으로 교류도 깊고 같이 합주하는 경우도 많았던 하이든도 트럼펫을 위한 곡이 없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이든은 64 세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유일한 트럼펫 협주곡이자 마지막 관현악곡을 작곡합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악기에 대한 취향도 비슷했기에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24 세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막역한 친구처럼 지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형의 귀가 불러온 천부적 재능


현대의 심리학자들이 모차르트의 아이큐를 역산해 측정해보니, 최소 160 에서 220 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확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91 년 프랑스의 의사 알프레드 토마티스(Alfred A. Tomatis)는 모차르트의 이런 천재적 능력이 귀의 청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왜 모차르트?(PourquoiMozart?)>라는 저술에서 모차르트가 신동으로 불리며 어려서부터 작곡을 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갖고 있던 태아 상태의 귀, 즉 태내귀를 생후에도 그대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실 모차르트처럼 귓불도 귓바퀴도 없는 형태의 특이한 귀는 지금도 1,000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나타나는 기형인데요. 이런 귀를 ‘모차르트의 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기이하게 생긴 귀를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꺼려 했습니다. 그의 모든 초상화에 왼쪽 귀가 가발로 가려져 있거나 숨겨져 있는 이유입니다. 




태내귀에 가까운 모차르트의 귀는 소리에 아주 민감했는데, 이 같은 예민함이 음악에의 몰입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음악, 혹은 일반인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소리가 모차르트에게는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모차르트가 우주의 소리를 듣는 귀를 가지고 태어나, 천상의 선율을 지상의 음악으로 탈바꿈시켰다.”는 문학적 비유를 쓰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독특한 귀가 모차르트 고유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탄생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4)도 기형적인 귀를 가졌다고 하니, 모차르트가 이 같은 귀를 가지게 된 것에는 유전적 요인이 작용했음이 분명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의 어머니가 고령의 임신과 난산, 산후의 영양실조를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모차르트가 신동이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임신 중의 온갖 괴로움을 잊기 위해 남편 레오폴트의 음악을 가까이함으로써 아들 모차르트는 출생 전부터 음악에 친숙해질 수 있었고, 태아 상태의 그 귀로 세상에 나와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원래 태아는 임신 3 주부터는 내이(內耳)가 생겨납니다. 소리를 듣는 데 이용되는 기관인 달팽이관의 분화는 임신 6 주 때부터 시작되어 임신 12 주에 이를 때쯤 거의 완성됩니다. 또한 태아는 임신 20주(임신 5개월)를 전후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그 자극이 뇌에까지 전달되면서 ‘청력’을 갖게 됩니다. 이 같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모차르트의 재능은 아버지 레오폴트의 교육 이전에 어머니로부터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4) 프란츠 크사퍼 볼프강 모차르트(Franz Xaver Wolfgang Mozart):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들로 아버지의 외형과 재능을 똑 닮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 세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살아생전 훌륭한 음악가로 상당한 명성을 누렸으나, 모차르트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늘 아버지와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아버지가 음악의 교육과 훈련에 철두철미해 모차르트에게 매우 엄한 교사였다면, 연주 여행에 지친 어린 모차르트에게 위로가 되어준 존재는 어머니였습니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1777년에 어머니와 단둘이서 연주 여행을 고집해 아버지 레오폴트 없이 여행길에 올랐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1778년까지 계속된 이 연주 여행에서 모차르트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그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들을 따라다니던 그녀는 객지에서나마 아들의 음악 속에 잠들 수 있었습니다.



출처: 삼성화재 VIP 매거진 문문


글쓴이: 문국진 고려대학교 법의학 명예교수

대한민국 1호 법의학자로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했다. <바흐의 두개골을 열다>, <미술과 범죄> 등 법의학으로 미술, 음악을 분석한 책을 다수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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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관점을 더해, 깊이 있는 질문과 의미 있는 해답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삼성화재와 함께 삶의 혜안을 찾고 인생의 봄날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18세기 유럽인에게 와인은 건강 음료였습니다. 베토벤의 할머니부터 아버지까지 집안 대대로 와인을 물처럼 마시곤 했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18세기 유럽에 버금갈 정도로 알코올에 관대한 대한민국. 베토벤의 이야기 속에는 한국인 특유의 음주 습관에 경종을 울릴 만한 성찰이 숨어 있습니다.


의학사에 ‘알코올 중독’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베토벤이 죽은 뒤 20여 년이 지난 1849년이었습니다. 19세기 말까지도 와인은 건강 음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후대인들이 자신을 알코올 중독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베토벤이 안다면 무척이나 억울해하지 않을까요?



베토벤의 운명을 바꾼 할아버지의 부업


베토벤이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 음악가에 대한 처우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교회나 궁정에 소속돼 활동하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8세기의 평범한 음악가들은 여러 가지 부업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부업은 악보 출판이었습니다.

 

바흐 같은 음악가는 결혼식, 장례식 음악을 부업으로 삼다 보니 전염병이 돌아 사망자가 많아지면 수입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토벤의 조부이자 이름도 같았던 루트비히판 베토벤의 부업이 와인 판매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존경받는 궁정악장이자 베이스 가수였던 베토벤의 조부는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와인 판매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기보다 일종의 재테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와인은 깨끗하지 못한 식수를 대신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생활에 밀착한 상품이었습니다. 다만 베토벤가(家)의 누구도 이 같은 부업이 비극의 씨앗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부업 때문에 베토벤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와인을 더 많이 마시고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베토벤의 할머니는 말년에 알코올 중독으로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 아들인 요한, 즉 베토벤의 아버지도 극심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신의 삶을 망가트렸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부모 혹은 조부모 아래서 성장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알코올 중독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대부분 연구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상반된 의견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관(相關) 관계와 인과(因果) 관계를 구분하고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음악 관련 책에서는 베토벤 본인의 알코올 중독을 일종의 가족력(家族歷)과 비슷한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알코올 중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잇는 알코올 중독과 상관 관계는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전적 질환과 같은 인과 관계를 가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베토벤이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와인을 많이 마셨다고는 하지만, 당시 와인은 지금으로 치면 조금 더 비싼 음료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의학사에서 알코올 의존성 때문에 생기는 건강 문제를 지적하고 ‘알코올 중독’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베토벤이 죽은 지 20여 년 후인 1849년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때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만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을 뿐, 19세기 말까지 와인이나 맥주, 사과주 등 발효주는 건강 음료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베토벤가(家)의 와인 사랑은 건강한 습관


베토벤이 살던 18세기에는 상하수도 시설1)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인성 (水因性) 전염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티푸스, 콜레라 같은 병을 한두 번씩 경험한 이도 많았습니다. 특히 장티푸스에 걸린 사람들은 흔히 내이염, 중이염 등으로 청력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고 베토벤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 상하수도 시설: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은 인구가 밀집한 도시들을 대거 탄생시켰으나 동시에 공중위생 시설의 부족 등으로 인한 전염병의 확산에 기여했다. 특히 상하수도 시설의 부족은 이 같은 공중위생의 핵심적 문제였다. 독일은 18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출범과 함께 네덜란드인 기술자를 불러와 베를린과 포츠담에 운하와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었다.


 


이처럼 베토벤이 청력을 잃게 된 것은 장티푸스의 후유증이기도 하고, 더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위생 환경이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18세기는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같은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 같은 전염병이 더 빨리, 더 많은 이에게 퍼져 피해가 컸습니다. 때문에 더러운 물 대신 와인을 마시는 일은 이 같은 수인성 전염병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베토벤이 와인에 친숙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이른 나이에 건강을 잃고 사망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베토벤가 사람들의 와인 사랑은 건강한 습관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요?


이처럼 인과 관계를 보다 세밀하게 살피다 보면 지금까지 고려되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제3의 요인이 진짜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관관계를 인과 관계로 착각하는 것은 단순히 관련되어 있는 두 대상을 어느 하나가 원인이고 다른 것은 결과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음악 관련 서적에서 베토벤 본인의 알코올 중독을 일종의 가족력과 비슷한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는 부분은 재고할 여지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알코올 중독은 유전적 질환과 인과 관계가 있다기보다 당시 수인성 전염병의 확산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 판단에 가깝습니다.


1인당 술 소비량 세계 13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18세기 유럽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종류를 가릴 것 없이 술에 관대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유럽 사람들이 깨끗하지 못한 식수에 불안을 느껴 와인에 관대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에도 생각하지 못한 인과 관계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요?



아난다마이드와 한국인의 ‘아무거나’ 문화



한국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별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고민하고 메뉴에도 없는 추가 사항을 덧붙이는 외국인들에 비하면 주문도 간단하고 특별히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이런저런 요구를 더하는 법도 없습니다. ‘아무거나’라는 주문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죠.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남들의 선택을 따라 하거나, 아예 자신의 취향을 생각해본 적도 없이 ‘몰취향’으로 살아갑니다. 비단 음식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죠. 음식뿐 아니라 옷, 선호하는 브랜드나 삶의 방식에서도 자신만의 개성보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을 더 우선시합니다.


반면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 자신의 취향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행복감을 쉽게 느끼고 뇌에서는 아난다마이드2)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많이 생성됩니다. 그리고 도박ㆍ약물ㆍ게임 등에 대해 중독자가 거의 없습니다. 왜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이 많습니다. 행복한 일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만 끊임없이 집착하고 몰두할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피하고 막아야 하는 것에 관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무엇을 싫어합니까’라는 질문에는 짧은 시간에도 굉장히 많은 대답을 하지만 ‘무엇을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머뭇거리면서 ‘그저 아무거나’라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잘 모른다는 방증입니다.


2) 아난다마이드 (Anandamide): ‘행복’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아난다’에서 따온 신경 전달 물질.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화학 물질로 몸속 마리화나, 내인성 모르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분비됐다가 금세 분해되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이 성분이 잘 분비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시름을 잠시 피하게 만들어주는 혹은 외면하게 만들어주는 불안 완화제, 즉 술에 몰입하기 쉬운 성격으로 살아갑니다. 외국 심리학자들이 흔히 “한국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 마시면서 화내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움을 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고 말합니다. 술이라는 도구가 행복이나 기쁨 촉진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지고 그만큼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술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일한 진정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들여다보면 술에 관대하기보다 술 이외의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는 법


베토벤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사가들이 묘사한 베토벤을 살펴보면 스승ㆍ연인ㆍ가족 누구와도 관계 맺기에 미숙하고, 쉽게 불화했으며, 음악 이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즉 중독에 빠지기 쉬운 성격이었던 것이죠. 

 



결국 중독이란 만성적 습관이 만들어내는 부정적 결과입니다. 특정 습관이 지속되어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가 되고, 결국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 결과를 우리가 중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독의 원인은 습관입니다. 그런데 한국인, 특히 음주에 빠진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이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다는 오해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의지만으로 나쁜 습관, 즉 중독을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로이 보마이스터3) 교수에 의하면 나쁜 관행이나 습관을 의지력으로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무모하면서도 위험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피곤해서 의지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 평소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3) 로이 보마이스터(Roy Baumeister):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 특히 그는 관행이나 습관을 의지력으로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하는 심리학자로 유명하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자아고갈(Ego Depletion)’은 사람이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면 이후 다른 상황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중독을 만드는 나쁜 습관을 억제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특히 그 사람의 의지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그 실패의 가능성은 극대화됩니다. 나쁜 습관은 다른 좋은 습관으로 덮어씌워야 없어집니다. 여행, 대화, 좋은 사람들과 맛난 음식 먹기 등 좋은 습관들을 만들어 대체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수많은 좋은 것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삼성화재 VIP 매거진 문문


글쓴이: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국내에 드문 인지심리학 전문가다.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Austin 심리학 박사,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 한국음악지각인지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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