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독립심이 자란다, 

엄마의 인내심이 자란다"



먹이기, 재우기, 기저귀 갈기… 아이를 돌보는 일이 익숙해질 때쯤, 아이의 독립심이 자라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욕구만 잘 채워주면 방긋방긋 웃고 예쁜 짓을 하던 아이가 사소한 일로 떼를 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양말을 혼자 신겠다며 고집을 부리던 그 날이 전쟁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혼자 양말을 신으려고 아등바등하다가 잘 안 되니 고개부터 뒤로 넘어갔다. 바닥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휘저으며 우는 모습은 참으로 세상 억울해 보였다. 처음엔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그럼 엄마가 신겨 줄까?”라고 다정히 말을 건네며 양말을 신겨 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양말을 신은 쪽 발을 동동 구르며 당장 벗기라고 갖은 떼를 쓰고 울기 시작했다. 벗겨 주면 그걸 벗겼다고 또 울어댄다. 다음날, 어제의 실패를 교훈 삼아 혼자 신도록 가만히 놔두니, 자기를 가만히 놔뒀다고 악을 쓰고 운다.



"아 ~ 나보고 어쩌라고"




정말이지 드라마 속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사사건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드러누워 버린다. 어렵게 어렵게 양말 신기에 성공해 이제 끝나나 했더니 아뿔싸! 이번엔 '바지 입기'다. 바지의 한쪽 구멍에 양 발을 억지로 쑤셔 넣고는, 바지가 안 입혀진다며 엉엉 우는 아이의 모습이란! 지켜보자니 답답해 티가 나지 않도록 다리를 다른 쪽 구멍에 넣도록 유도해보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엄마의 손이 옷에 닿는 것조차 단호하게 막아내는 따봉이. 그냥 빨리 입혀버리고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데, 끝까지 자기가 하겠다며 울어댄다. 정말이지 이럴 땐 나도 같이 드러누워서 울어버리고 싶다. 이렇게 참고 참다 ‘아!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이성의 끈을 놓쳐 버린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에 누르고 누르던 화가 폭발하고 만다. 



"감정 조절을 못 하는 것은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문제가 생기면 어화둥둥 어르고 달래기에 바빴고, 가능하면 쓴소리보다는 좋은 말만 듣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어설픈 대응이 아이의 나쁜 습관을 한둘씩 늘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처음엔 마냥 예쁘기만 한 아이였는데. 혼내는 일이 잦아질수록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안 되는 거야~”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여러 번의 경고에도 아이가 같은 행동을 하면 나도 모르게 “엄마가 몇 번이나 말해야 해??”라며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며 화를 냈다. 한바탕 훈육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안타까워서, 흐느끼며 잠든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움켜쥔 채 나도 울고 말았다.


아이는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엄마의 말투를 접하며 자기가 혼나는 줄도 모르고 있었을 게다. 그래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던 중, 갑자기 엄마가 악마로 돌변하니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화를 내며 말하면 아이가 혼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을 잘 들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는 나만의 착각이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반복되었고 나는 점점 더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이를 혼내는 것과 내가 아이에게 화내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기에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예뻐하는 것만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 친구를 때리고, 숟가락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끊임없이 떼를 쓰고... 아이의 상태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초반에 엄하게 훈육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텐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에 배어버린 이 나쁜 습관들을 고치기 위해 나는 몇 개월을 아이와 씨름해야 했다.


반복되는 아이와의 씨름에 지쳐 매일 밤 육아 서적을 쌓아두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모든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하지 말라는 행동만 쏙쏙 골라서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오죽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할 때 ‘나처럼만 안 하면 된다’라고 할 정도였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인 ‘올바른 훈육’을 나처럼 망설이다 아이의 나쁜 버릇을 키우는 엄마들이 없길 바랄 뿐이다.


초보 엄마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1. 무는 행동 & 때리는 행동은 바로 엄하게 “안 돼”


아이가 이가 날 무렵, 치발기 대신 내 손을 깨무는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그대로 손을 내어 주었다. 하지만 무는 강도가 점점 심해졌고, 치발기 대신 살만 물어대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 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손, 다른 아기들의 팔 등을 물었다는 것이다. 훈육은 24개월 이후에 시작해야 한다는 어설픈 지식이 만든 불상사였다. 이렇게 생긴 무는 버릇이 친구를 때리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남을 물거나 때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까지 10개월 넘는 시간이 걸렸다. 초기에 바로잡지 못해 오랜 시간 아이와 서로 고생한 셈이다. 




말을 못 알아 듣는 돌 전의 아이라도 분위기와 뉘앙스는 알아듣는다. 무는 행동이나 때리는 행동을 했을 땐 바로 아이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고, 굳은 표정으로 낮고 크게 “안돼”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이것을 아이를 혼내는 행동이라 생각해 미안해하지 말자. 서로 의견이 다른 육아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말한다. “아이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주위 사람을 때리는 행동은 절대 금물”이라고.



2.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해?’란 생각은 버려라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대체 언제쯤 이 나쁜 버릇이 고쳐질지 불안한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밥을 먹을 때마다 따봉이가 숟가락을 바닥에 던졌는데, 이 행동을 고치려 몇 달간을 어르고, 달래고, 소리 질러대며 씨름을 했다. “안 된다”는 내 말을 듣고도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보란 듯이 숟가락을 던지는 아이의 행동은 나에 대한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소리 지르고 미친 사람처럼 발을 동동 굴렀던 것 같다. 나중에 오은영 선생님의 책을 읽고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천천히 배우기 때문에 스스로 올바른 행동을 배울 때까지 부모가 천천히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세 번, 네 번, 숫자를 세며 답답해하지 말고, 그저 같은 상황에서 꾸준히 훈육하고 칭찬해야 한다는 것을.



3. 아이와 나를 위한 ‘내려놓음’


따봉이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드러누워 1시간 가까이 떼를 썼었다. 초반엔 어르고 달래면서 원하는 대로 다 맞춰줬지만 해달라는 것을 다 해줘도 맘에 안 든다고 성질을 부리고, 나중엔 안지도 못하게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나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된 아이의 울음을 빨리 그치게 하려고 쩔쩔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심은 바닥났고, 어느새 나는 악마 같은 모습으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바탕 소리를 지른 뒤엔 미안한 마음에 전적으로 아이에게 맞춰주곤 했다. 


아동 심리 전문가 ‘찹쌀떡 가루’님의 ‘떼밀이 프로젝트’는 이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이래도, 저래도 떼쓰는 아이에게 “울음 그치고 엄마한테 오세요”라고 말하고 내 할 일을 하란다. 처음엔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저렇게 울다 목이라도 쉬면 어쩌나, 온갖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이의 떼에 반응하지 않자 오히려 떼가 줄었다. 나 역시 떼쓰는 아이 옆에서 화를 참고 있을 필요 없이 멀찍이 떨어져 내 할 일을 하니 감정 조절이 수월해졌다. 25개월 된 따봉이는 아직도 떼를 쓰지만, 떼밀이 훈육을 시작하기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육아 전문가 블로그

1) 오은영 선생님 : http://blog.naver.com/eyohlovec

2) 찹쌀떡가루님 : http://blog.naver.com/dbwlsl0307



엄마도 공부해야 한다. 우리 아이가 요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더욱 공부해야 한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확실히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육아에 대해 공부하고, 공부한 대로 아이를 훈육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면 더 이상 같은 일로 아이와 지긋지긋하게 씨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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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어디 갔나~ 빨리 와라~"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울음을 터뜨려 버리는 손녀를 달래기 위해 친정엄마가 나를 부른다. 아이를 낳고 나는 '껍데기'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친정엄마, 친할머니, 시어머니까지 아이를 이미 다 키우신 어른들은 하나같이 아이와 나를 '껌딱지와 껍데기'로 부르신다. 나는 이 말이 싫었다. 알맹이를 잃은 채 흐물흐물 껍질만 남아있는 듯한 느낌의 '껍데기'라는 단어는, 엄마가 된 후 '나'를 잃었다는 생각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더욱 거북스러운 말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껍데기’라는 말을 들은 후에야 보이기 시작했다. ‘껍데기’라는 말을 내뱉을 때의 친정엄마와 친할머니 표정이. 껌딱지인 아이와 껍데기 처지가 된 내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는 듯한 표정이. 그 표정을 보며 어쩌면 ‘껍데기’라는 말은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어. 

하나라도 더 먹이려면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면

하루라도 더 일해야 했는데.”


 


엄마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냐는 내 말에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새끼 잘 키워서 시집 장가 잘 보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오랜 시간을 앞만 보며 달려오셨다고 한다. 그 바쁜 시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고. 두 아이를 다 키워 놓고 딸까지 시집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내가 보인다고. 그래서 나를 ‘껍데기’라고 부르던 엄마의 표정은 쓸쓸해 보였나 보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늘 뒷전으로 미뤄 왔던 것은 ‘나의 삶’이었는데, 아이가 다 자라 자신의 품을 떠나가버리니 남은 것은 나이 들고 오랜 일에 지친 몸뿐이라는 현실이 당신을 더욱 허무하게 만들었나 보다. 겨우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도 그렇다.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느라, 밀린 집안일을 끝내느라, 남편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내가 ‘껍데기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아라”

 



어릴 적부터 엄마가 내게 해왔던 말이다. 어떤 일이든 여자라고 포기하지 말고 꿋꿋이 그 길을 걸어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여자라고 겁먹지 말라는 뜻으로만 알았다. 나는 엄마가 되어 나의 꿈을 잠시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꿈이야 다시 꾸면 되지.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던 내 자리를 포기하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로 살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꿈을, ‘나’라는 사람의 삶을 잃지 않기를 바랐던 엄마의 마음을. 내 딸만큼은 자신의 꿈을 끝까지 이어 가길 바랐던 엄마의 마음을.



“멈춘 것만 같았던 시간”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육아라는 것은 내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 ‘오늘은 무엇을 먹일까’, ‘오늘은 무엇을 입힐까’,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까’를 고민하다 하루가 갔다. 마치 삶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로 옮겨 간 것 같았다. 하루에 잠시라도 ‘나’라는 사람으로 사는 시간이 없었다. 거기다 내가 꿈꾸었던 직장까지 내려놓고 나니 정말 ‘나’라는 존재가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내 품에서 떨어지질 않는 아이를 안은 채 시계소리만 가득한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을 땐 모든 게 멈춰버렸다는 생각만 들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나는 이곳에 멈춰 버렸기에 앞으로도 영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란 불안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울함이 깊어질수록 작은 일로도 아이를 다그치고 화내는 날이 늘어났다. 내 기대와는 달리 육아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했다.



“스스로를 껍데기로 만들지 말자”

 



악순환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우울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사소한 일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해 자책하고.. 이런 감정 소모를 반복하다 보니 점점 육아에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아이가 울면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고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절박하게 우울하고 힘들었던 순간에 내게 힘이 되었던 것은 “네가 너로 살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너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던 지인의 조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일상에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 스스로를 껍데기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다. 어릴 적 내 모습, 내가 좋아하던 것들, 내가 꿈꾸던 일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다 문득, 나만의 시간에 어릴 적부터 그려 보고 싶었던 그림을 그려 보기로 했다.



“아이와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

 



하루에 10분씩이라도, 나는 꼭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이 엄마라는 사실조차 잊고 내가 그리는 선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그냥 내가 생각한 것들을 그려내는 그 시간이 너무 기뻐서 아이를 재우고 보내는 ‘나만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온종일 엄마로 사느라 바빴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로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날짜도, 요일도 잊은 채 하루 버텨 하루 사는 ‘하루살이 인생’이, 매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나를 기다리는 ‘내 인생’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엔 ‘아이 보기도 벅찬데 내가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1년간 꾸준히 그림 그리는 일을 이어 오면서 내가 느낀 것은, 하루에 단 한 번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육아하면서 드는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랑의 시작은 ‘나’라고 하지 않던가.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주어야 하는 엄마도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이 있어야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다. 


스스로가 ‘껍데기’라고 느껴진다면, ‘나’를 잃어 가는 것만 같아 우울하다면 꼭 하루에 한 번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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