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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삼성화재의 새로운 관점, ‘門問, 물음을 여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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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찬사를 받아 유명세를 얻은 모차르트였지만, 그는 음악이 궁정의 구경거리에 머물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모차르트의 진정한 천재성은 음악적 재능을 넘어 시대의 변화를 앞서 예견한 통찰력에 있습니다.



모차르트, 계몽의 시대를 읽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분명 음악사에 길이 남을 천재입니다. 그의 천재성을 예증하는 일화는 차고 넘쳐흐를 정도로 풍부합니다. 불과 여섯 살에 피아노 연주자로 데뷔를 했다니 신동도 이런 신동이 없습니다. 신동 모차르트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여섯 살이 되던 1762년에 떠난 유럽 연주 여행이 1766년에 끝날 정도였습니다. 뮌헨, 아우구스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브뤼셀, 파리, 런던, 헤이그, 제네바, 베른, 취리히 등 유럽 주요 궁정에 모두 초대받았고 궁정 사회를 놀라게 했습니다. 모차르트는 궁정의 셀레브리티였고 슈퍼스타였습니다. 모차르트는 이런 열렬한 반응에 우쭐해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천재란 시대적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나 예외적으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간주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천재도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무관한 채 특별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천재는 그 시대의 천재입니다. 각 시대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천재를 낳는 법입니다. 천재성에는 시대정신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진정한 천재성을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를 파악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속설처럼 모차르트는 서른 다섯 살의 나이로 1791년에 사망했습니다. 그가 사망하기 몇 해 전인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부르봉 왕가1)의 황제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마리 앙투와네트는 혁명이 일어나자 베르사유에서 압송되어 파리에서 처형당했습니다.


1) 부르봉(Bourbon) 왕가 : 프랑스의 왕조. 루이 13세, 루이 14세로 프랑스 절대 왕정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 루이 14세에 이어 루이 15세, 루이 16세가 잇따라 왕위에 올랐으나 프랑스 혁명으로 1792년 폐위되었다.


 


모차르트에 열광하던 궁정의 권력과 교회의 권력은 프랑스 혁명과 함께 사라지고 시민 계급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물론 프랑스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갑작스런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이전부터 혁명의 전조는 있었습니다. 단지 명민한 사람들만이 이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계몽이라는 이상은 지금까지 의심받은 적 없는 낡은 질서를 의심하는 비판적 사유의 최고 형태였습니다.


사람들은 계몽의 빛을 받아들이면서 신분제조차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의 이상은 유럽을 슬며시 흔들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모차르트는 아마 아버지가 읽지 못했던 시대의 변화를 눈치챘던 모양입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익숙한 관습에 따라 판단하는 편이었다면, 아들 모차르트는 머지않아 궁정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오리라 예감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대로 사회 질서가 지속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아버지와 무엇인가 변화를 감지한 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모차르트는 더 이상 궁정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음악가는 신민이 아니라 시민이다


신동도 언젠가는 어른이 됩니다. 분더킨트2), 즉 신동도 사춘기를 거치며 자의식이 생기고 자기 목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의식이 생긴 아들과 관습을 추종하는 아버지 사이에 갈등은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모차르트 부자 역시 마찬가지였죠.


2) 분더킨트(Wunderkind) : 독일어로 놀라운 아이라는 뜻. 특히 음악, 문학 등 예술계의 조숙한 어린 천재나 신동을 일컫는 말로 널리 쓰인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지금까지의 궁정 음악가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아들이 살기를 기대하고 강요했습니다. 우리는 모차르트를 위대한 음악가, 위대한 천재 혹은 마에스트로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차르트의 사후에 만들어진 명성일 뿐입니다.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의 음악가는 궁정에 소속되어 있는 수많은 하인의 한 종류였고, 음악가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시종이나 마차꾼처럼 하인의 옷을 입었고, 하인들의 부엌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하이든이 그렇게 살았고, 바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음악가의 이러한 처지에서 어떤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전통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인데요. 그의 눈에 음악가는 본래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는 요한 밥티스트 백작 집의 악사였고 잘츠부르크 대주교 밑에 봉직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에겐 주어진 음악가의 처지 그 이상을 넘어서려는 야망도 궁리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음악은 호구지책이었습니다.


레오폴트는 아들의 천재성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때로는 서커스 공연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모차르트의 콘서트를 이렇게 홍보했습니다. “소년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건반을 헝겊으로 완전히 덮어씌운 클라비어3)로 교향곡도 연주합니다. 게다가 멀리서 어떤 음을 들려줘도 정확하게 음 이름을 알아맞힙니다.” 모차르트의 재주를 흥행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사업 감각을 지닌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따라온다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 모차르트는 성장을 거듭하며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만났습니다. 신동으로서의 인기가 점차 떨어지자 아버지는 아들 모차르트가 자신처럼 궁정에서의 안정된 일자리를 갖기 기대했습니다. 신하 음악가 혹은 신민의 처지에 충실하기를 기대했던 아버지의 뜻과 달리 아들 모차르트는 신민이 아니라 시민이 되고 싶었습니다.


3) 클라비어(Klavier) : 오늘날 피아노의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1775년경까지는 일반적으로 쳄발로나 클라비코드 양쪽을 다 가리켰다. 또한 오르간이나 피아노 등 건반 악기의 건반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아들의 재능을 생계 수단으로 삼은 아버지는 궁정 음악가의 월급을 원했지만, 모차르트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귀족의 후원과 월급에 얽매이지 않고, 수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활동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유 음악가를 꿈꾸었습니다.



궁정 예술가에서 시민 예술가로


궁정을 벗어나고 싶었던 모차르트는 음악가를 시종 그 이상으로 보지 않는 귀족들과 사사건건 부딪혔습니다. 1781년 6월 8일 모차르트는 25세의 나이에 궁정의 속박으로부터 겨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에게 반발하다가 굴욕적으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을 아버지에게 설명하는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가 있습니다.


“그는 악당이라느니, 타락한 놈이라느니, 온갖 모욕적인 이름으로 저를 부르고, 절더러 당장 꺼지래요……. 마침내 제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어요. 은혜로우신 대제후께서는 제가 못마땅하십니까? 그가 답했죠. 네가 어찌 감히 나를 위협하는가. 불쌍하고 멍청한 어린 망종 같으니라고. 저기 문이 있어.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너 같은 쓰레기하고는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


-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모차르트는 말 그대로 궁정으로부터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습니다. 엉덩이를 걷어차인 모차르트는 자유 음악가4)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4) 자유 음악가 : 모차르트는 궁정에 속박받지 않는 자유 음악가를 꿈꾼 고전 음악가이기도 하다. 1790년대 그의 꿈은 마침내 실현되는 듯싶었지만,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결실을 맺기도 전에 중단되었다. 음악사에 있어 자유 음악가를 말할 때 베토벤을 최초의 사례로 꼽는 의견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궁정을 벗어난 모차르트는 새로운 음악 시장에 발을 내디디며 귀족이 아니라 시민들의 희로애락을 노래했습니다. 대규모의 관중을 대상으로, 거대한 공연장에서 활동하는 오페라 시장에서 모차르트는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그의 꿈은 안타깝게도 미완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궁정에서 탈출해 자유 예술가가 된 모차르트는 음악가로서의 재주와 작품을 개방된 시장에서 판매하여 생계를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궁정에 소속되어 있던 음악가들은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발상이었습니다.


당시 음악 시장은 태동 단계로 입장료를 지불하는 관객을 위한 연주회를 기획하고 악보를 유통하는 출판인들이 막 생겨나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변화를 놓치지 않고 콘서트 홀로 직행했습니다. 그는 궁정에 울려 퍼지는 음악보다 누구나 귀 기울일 수 있는 콘서트 홀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오페라는 모차르트가 이런 맥락에서 선택한 장르였습니다. 귀족들의 사교 파티를 위한 배경 음악에 불과했던 궁정 음악에서 벗어난 그는 콘서트 홀에서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1782년 오페라 <후궁 탈출>로 대성공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1786년 <피가로의 결혼>, 1787년 <돈 지오반니>, 1790년 <코시 판 투테> 그리고 마침내 1791년 <마술피리>에 이르기까지 궁정 예술가에서 시민 예술가로 변한 모차르트는 오히려 작곡가로서 전성기에 도달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에는 미래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알아챌 수 있는 궁정의 시대착오를 풍자하는 유머 코드가 담겨 있는가 하면, 여주인공 수잔나는 “모든 여성은 일어서야 해 / 무자비한 남자들에 의해 부당하게 학대받는 슬픈 여성을 지키기 위해”라는 가사의 아리아를 부르며 여성의 권리를 노래하기도 합니다. 구 질서는 자유 예술가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오페라엔 궁정과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 열리게 될 근대 사회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궁정 음악가로부터 시민 음악가로 변신한 모차르트의 판단은 적절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신민의 시대가 끝나고 시민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모차르트보다 15년 늦게 태어난 베토벤은 뒤를 이어 이 시대의 이상을 음악에 담았습니다. 모차르트의 대담한 시도가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베토벤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모차르트가 음악의 천재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신동 모차르트는 성인이 되어 음악의 천재이자 동시에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천재로 변모하였습니다.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천재성과 음악을 작곡하는 천재성의 협주곡이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모차르트를 만들어냈습니다. 제임스 와트5)가 증기 기관을 개선해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던 시기는 모차르트가 궁정 음악가에서 시민 음악가로 전환하던 때와 일치합니다. 모차르트는 음악가의 방법으로 시대정신을 반영했습니다.


5) 제임스 와트(James Watt) : 기존의 증기 기관을 개량해 1776년 증기 기관을 상업화했다. 1783년에는 회전식 증기 기관을 완성해 탄광용 펌프를 넘어 만능동력원으로 각광을 받았다.


계몽주의라는 시대정신과 그 시대정신을 뒷받침한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모차르트를 통해 음악사에 등장한 것입니다. 모차르트라는 존재야말로 ‘각 시대는 그 시대에 어울리는 천재를 낳는다.’는 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삼성화재 VIP 매거진 문문


글쓴이: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베를린 자유대학교 사회학 박사.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세상 물정의 사회학> 등 다수의 책을 썼다. 최근 TV 강연 등을 통해 사회학에 대한 저변을 넓히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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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이든의 삶은 고전 음악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평범한 축에 속합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하이든은 평온하다 못해 틀에 박힌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런 하이든이 말년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성공과 건강한 삶을 모두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나오는 한 문장처럼 나이 듦은 흠이나 약점이 아닙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인생 2막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젊음에 대한 잘못된 집착부터 버려야


평균 수명이 40세에도 미치지 못했던 1732년에 태어난 하이든은 무려 77세까지 장수하며 천수를 누렸습니다. 30년 가까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에서 일한 끝에 은퇴하고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고전 음악가들 가운데 하이든의 삶은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 중∙장년층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하이든처럼 은퇴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막연하게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가 문제라고 정확히 말하기 어렵고 증상도 뚜렷하지 않지만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사는가?’, ‘텅 비어 있고 껍데기만 있는 느낌’이라고 호소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모호한 표현들이야말로 내면에서 오는 목소리입니다.

 



이제껏 앞만 보고 살아오며 자신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내면에서 이젠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후반기에는 그동안 외면했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남의 시선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외적인 면에 집착하곤 합니다. 외모에 대한 집착은 젊음에 대한 집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은퇴 후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젊음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합니다. 일단 건강과 외모가 예전 같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외모에 집착하고, 아무 근거 없이 건강 음식을 끊임없이 섭취하는 일부터 멈춰야 합니다. 최근에는 도가 지나쳐 성형 수술에 집착하며 젊은 사람과의 외모 경쟁에 힘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것은 나이에 맞지 않게 사는 일입니다. 진정한 젊음은 끊임없이 배우며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정신과 삶의 태도에 있는 것이지, 주름 없는 피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드는 것을 인정하되 우아함과 품위를 지키고, 경험과 지식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이가 든다면 오래된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경험, 연륜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멋진 시니어가 될 것입니다. 흔히 중∙장년층의 어른들이 자신의 경험이나 의견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넘보고 이기려 드는 경쟁자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쟁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를 이어받아 미래를 개척할 사람입니다. 실제로 하이든은 말년에 이르자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후배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기꺼이 자신의 무대를 내어주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오페라 대신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상연하라고 권유한 적도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가난한 후배 음악가를 위해 자신의 작품집에 지면을 내어주고 곡을 실어주는가 하면, 심지어 자신의 제자와 저작권 소송이 생겼을 때 법정에 출두해 작품의 주인은 자신의 제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그에게 곡을 헌정하고 말년에는 그의 후배들이 하이든의 곡으로 공연을 할 기회가 생기면 그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하이든은 죽는 날까지 곡을 쓰고 공연을 했지만, 한 번도 젊은 음악가들을 자신과 경쟁하는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젊은 음악가들의 활동을 더 많이 도울수록 더 많은 이가 하이든의 음악을 연주하고 그의 음악을 더 널리 퍼트렸습니다. 하이든이 죽는 날까지 많은 이에게 큰 인물로 존경받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일과 가족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의 삶을 찾아서


50대야말로 ‘진정한 나’의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자녀들도 성장해 양육과 교육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과 가족을 떠나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누려본 적이 없기에 까닭 모를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부모의 의견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가족 문화의 특성상 한국인은 부모가 정해준 길을 따르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는 스무 살 성인이 되어도 결혼 전까지는 자립을 하지 못합니다. 마침내 직장을 잡고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독립해도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사느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신은 일을 그만두고 자녀들은 독립하는 시점이 됩니다. 은퇴한 분들의 사정은 엇비슷합니다. 일과 가정만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세상은 아주 낯선 곳입니다. 젊은 날의 대부분을 궁정악장으로 살아온 하이든도 은퇴한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중∙장년층 가운데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하이든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삶은 누군가의 자식으로, 부모로, 배우자로 살아온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은퇴한 이후 하이든도 비슷한 처지였습니다. 외국어도 못 하고, 해외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음악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하지만 하이든의 놀라운 점은 낯설고 새로운 경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음악을 고집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였다는 데 있습니다. 말년에야 비로소 경험한 생애 최초의 영국 여행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흔히 50대 이후 일과 가족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오롯이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시간을 써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은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권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이제부터는 조금이나마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시간의 일부, 내가 가진 돈의 일부를 써서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자극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감각이나 운동의 즐거움을 느껴보길 권합니다. 감각과 운동은 인간의 원초적인 기능이지만 이 즐거움은 매우 큰 것입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귀가 즐겁고, 좋은 그림을 보면 눈이 즐거우며, 좋은 음식을 먹으면 입과 코가 즐겁습니다. 산책∙등산∙운동∙춤과 같은 활동을 통한 즐거움 또한 큰 기쁨을 줍니다. 세 번째로 지적인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얻어보라고 권합니다.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자료를 찾고 관련된 정보를 뇌에 입력하고 응용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입니다.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점점 많이 알게 되면 그 분야에서만큼은 고수가 됩니다. 요즘 말로 ‘덕후’가 되는 것이지요. 덕후가 되면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고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의 친교도 늘어나는 즐거움이 덤으로 생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행복의 비밀, 몰입에서 찾다


스무 살이 넘어 하이든은 켈러라는 가발 제조업자의 둘째 딸 테레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테레제는 결국 수녀가 되어 하이든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테레제가 수녀원으로 간 뒤에도 그는 켈러가(家)를 드나들었는데요. 테레제의 언니 마리아와 28세 때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이든의 아내인 마리아 안나 켈러1)는 하이든보다 세 살 연상에 음악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이든의 악보를 그릇 받침이나 과자 포장지로 쓰는가 하면, 머리카락을 마는 컬페이퍼로도 썼다고 합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에 하이든이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다는 말은 다소 과장이겠지만, 하이든을 음악에 몰입하게 만드는 한 가지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1) 마리아 안나 켈러(Maria Anna Keller) : 하이든의 아내. 1760년부터 40여 년을 하이든의 아내로 살았지만 슬하에 자식은 없다. 음악적 소양이 전혀 없고 호전적 성격이었다고 알려져 있는 마리아는 유명인의 악처 리스트에 빠짐없이 오를 만큼 평판이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서로 맞지 않는 배우자를 만난 하이든과 마리아 모두 외롭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이든은 성실하고 노력하는 작곡가였으며 호기심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작곡에 몰입해 즐거워했고 발전해가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너무 좋아서 깊이 빠지게 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때 우리는 흔히 ‘삼매경’에 빠졌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경험을 플로(Flow)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몰입’이라고 해석합니다. 플로의 원뜻은 ‘물의 흐름’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한번 흐름을 타면 역으로 거스르기가 어렵죠. 그래서 정말 좋은 것을 만나게 되면 헤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쭉 흘러간다는 의미에서 몰입을 뜻하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2)에 의하면 이런 ‘몰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었거나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몰입하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말년의 하이든은 영국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3)를 처음 듣고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고 하는데요. 그 음악에 매료돼 그날부터 <천지창조4)>를 작곡하기 시작했고, 이는 하이든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이든의 생전 마지막 생일날 공연된 것도 바로 이 곡입니다.


2)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 미국의 심리학자로서 ‘긍정심리학’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창의성과 관련된 몰입(Flow)의 개념은 많은 분야에서 인용되고 있으며 현재는 미국 내 ‘삶의 질 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3) 오라토리오(Oratorio) : 17~18세기에 가장 성행했던 대규모의 종교적 극음악. 성서에 입각한 종교적인 내용을 지녔으며 동작이나 무대 장치 없이 합창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4) <천지창조> : 하이든이 3년에 걸쳐 완성한 오라토리오로 하이든의 대표작이다. 1798년 4월 초연한 이후 빈과 런던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회자되는 걸작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시의 음악가를 비롯한 대중 모두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7일간의 천지창조 서사에 곡을 붙인 것으로 창세기, 시편을 비롯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에서 가사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하이든은 음악에 몰입함으로써 괴로움을 잊었다고 하는데요. 말년에도 음악에 몰입해 충만한 삶을 누렸습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든지 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출처: 삼성화재 VIP 매거진 문문


글쓴이: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서울의대, 서울대 외래 교수,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지음오페라단 이사, KBS 팟캐스트 <힐러들의 수다>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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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관점을 더해, 깊이 있는 질문과 의미 있는 해답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삼성화재와 함께 삶의 혜안을 찾고 인생의 봄날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18세기 유럽인에게 와인은 건강 음료였습니다. 베토벤의 할머니부터 아버지까지 집안 대대로 와인을 물처럼 마시곤 했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18세기 유럽에 버금갈 정도로 알코올에 관대한 대한민국. 베토벤의 이야기 속에는 한국인 특유의 음주 습관에 경종을 울릴 만한 성찰이 숨어 있습니다.


의학사에 ‘알코올 중독’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베토벤이 죽은 뒤 20여 년이 지난 1849년이었습니다. 19세기 말까지도 와인은 건강 음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후대인들이 자신을 알코올 중독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베토벤이 안다면 무척이나 억울해하지 않을까요?



베토벤의 운명을 바꾼 할아버지의 부업


베토벤이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 음악가에 대한 처우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교회나 궁정에 소속돼 활동하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8세기의 평범한 음악가들은 여러 가지 부업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부업은 악보 출판이었습니다.

 

바흐 같은 음악가는 결혼식, 장례식 음악을 부업으로 삼다 보니 전염병이 돌아 사망자가 많아지면 수입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토벤의 조부이자 이름도 같았던 루트비히판 베토벤의 부업이 와인 판매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존경받는 궁정악장이자 베이스 가수였던 베토벤의 조부는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와인 판매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기보다 일종의 재테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와인은 깨끗하지 못한 식수를 대신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생활에 밀착한 상품이었습니다. 다만 베토벤가(家)의 누구도 이 같은 부업이 비극의 씨앗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부업 때문에 베토벤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와인을 더 많이 마시고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베토벤의 할머니는 말년에 알코올 중독으로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 아들인 요한, 즉 베토벤의 아버지도 극심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신의 삶을 망가트렸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부모 혹은 조부모 아래서 성장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알코올 중독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대부분 연구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상반된 의견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관(相關) 관계와 인과(因果) 관계를 구분하고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음악 관련 책에서는 베토벤 본인의 알코올 중독을 일종의 가족력(家族歷)과 비슷한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알코올 중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잇는 알코올 중독과 상관 관계는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전적 질환과 같은 인과 관계를 가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베토벤이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와인을 많이 마셨다고는 하지만, 당시 와인은 지금으로 치면 조금 더 비싼 음료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의학사에서 알코올 의존성 때문에 생기는 건강 문제를 지적하고 ‘알코올 중독’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베토벤이 죽은 지 20여 년 후인 1849년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때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만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을 뿐, 19세기 말까지 와인이나 맥주, 사과주 등 발효주는 건강 음료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베토벤가(家)의 와인 사랑은 건강한 습관


베토벤이 살던 18세기에는 상하수도 시설1)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인성 (水因性) 전염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티푸스, 콜레라 같은 병을 한두 번씩 경험한 이도 많았습니다. 특히 장티푸스에 걸린 사람들은 흔히 내이염, 중이염 등으로 청력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고 베토벤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 상하수도 시설: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은 인구가 밀집한 도시들을 대거 탄생시켰으나 동시에 공중위생 시설의 부족 등으로 인한 전염병의 확산에 기여했다. 특히 상하수도 시설의 부족은 이 같은 공중위생의 핵심적 문제였다. 독일은 18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출범과 함께 네덜란드인 기술자를 불러와 베를린과 포츠담에 운하와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었다.


 


이처럼 베토벤이 청력을 잃게 된 것은 장티푸스의 후유증이기도 하고, 더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위생 환경이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18세기는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같은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 같은 전염병이 더 빨리, 더 많은 이에게 퍼져 피해가 컸습니다. 때문에 더러운 물 대신 와인을 마시는 일은 이 같은 수인성 전염병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베토벤이 와인에 친숙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이른 나이에 건강을 잃고 사망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베토벤가 사람들의 와인 사랑은 건강한 습관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요?


이처럼 인과 관계를 보다 세밀하게 살피다 보면 지금까지 고려되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제3의 요인이 진짜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관관계를 인과 관계로 착각하는 것은 단순히 관련되어 있는 두 대상을 어느 하나가 원인이고 다른 것은 결과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음악 관련 서적에서 베토벤 본인의 알코올 중독을 일종의 가족력과 비슷한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는 부분은 재고할 여지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알코올 중독은 유전적 질환과 인과 관계가 있다기보다 당시 수인성 전염병의 확산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 판단에 가깝습니다.


1인당 술 소비량 세계 13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18세기 유럽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종류를 가릴 것 없이 술에 관대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유럽 사람들이 깨끗하지 못한 식수에 불안을 느껴 와인에 관대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에도 생각하지 못한 인과 관계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요?



아난다마이드와 한국인의 ‘아무거나’ 문화



한국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별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고민하고 메뉴에도 없는 추가 사항을 덧붙이는 외국인들에 비하면 주문도 간단하고 특별히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이런저런 요구를 더하는 법도 없습니다. ‘아무거나’라는 주문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죠.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남들의 선택을 따라 하거나, 아예 자신의 취향을 생각해본 적도 없이 ‘몰취향’으로 살아갑니다. 비단 음식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죠. 음식뿐 아니라 옷, 선호하는 브랜드나 삶의 방식에서도 자신만의 개성보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을 더 우선시합니다.


반면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 자신의 취향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행복감을 쉽게 느끼고 뇌에서는 아난다마이드2)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많이 생성됩니다. 그리고 도박ㆍ약물ㆍ게임 등에 대해 중독자가 거의 없습니다. 왜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이 많습니다. 행복한 일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만 끊임없이 집착하고 몰두할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피하고 막아야 하는 것에 관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무엇을 싫어합니까’라는 질문에는 짧은 시간에도 굉장히 많은 대답을 하지만 ‘무엇을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머뭇거리면서 ‘그저 아무거나’라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잘 모른다는 방증입니다.


2) 아난다마이드 (Anandamide): ‘행복’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아난다’에서 따온 신경 전달 물질.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화학 물질로 몸속 마리화나, 내인성 모르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분비됐다가 금세 분해되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이 성분이 잘 분비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시름을 잠시 피하게 만들어주는 혹은 외면하게 만들어주는 불안 완화제, 즉 술에 몰입하기 쉬운 성격으로 살아갑니다. 외국 심리학자들이 흔히 “한국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 마시면서 화내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움을 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고 말합니다. 술이라는 도구가 행복이나 기쁨 촉진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지고 그만큼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술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일한 진정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들여다보면 술에 관대하기보다 술 이외의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는 법


베토벤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사가들이 묘사한 베토벤을 살펴보면 스승ㆍ연인ㆍ가족 누구와도 관계 맺기에 미숙하고, 쉽게 불화했으며, 음악 이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즉 중독에 빠지기 쉬운 성격이었던 것이죠. 

 



결국 중독이란 만성적 습관이 만들어내는 부정적 결과입니다. 특정 습관이 지속되어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가 되고, 결국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 결과를 우리가 중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독의 원인은 습관입니다. 그런데 한국인, 특히 음주에 빠진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이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다는 오해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의지만으로 나쁜 습관, 즉 중독을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로이 보마이스터3) 교수에 의하면 나쁜 관행이나 습관을 의지력으로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무모하면서도 위험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피곤해서 의지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 평소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3) 로이 보마이스터(Roy Baumeister):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 특히 그는 관행이나 습관을 의지력으로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하는 심리학자로 유명하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자아고갈(Ego Depletion)’은 사람이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면 이후 다른 상황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중독을 만드는 나쁜 습관을 억제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특히 그 사람의 의지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그 실패의 가능성은 극대화됩니다. 나쁜 습관은 다른 좋은 습관으로 덮어씌워야 없어집니다. 여행, 대화, 좋은 사람들과 맛난 음식 먹기 등 좋은 습관들을 만들어 대체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수많은 좋은 것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삼성화재 VIP 매거진 문문


글쓴이: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국내에 드문 인지심리학 전문가다.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Austin 심리학 박사,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 한국음악지각인지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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