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황사, 여기에 오존주의보까지! 매일 외출할 때마다 실외 공기가 얼마나 깨끗한지부터 체크해야 하는 이유들이죠.


적어도 차량 안에서만큼은 이들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문을 꼭꼭 닫는 것 못지않게, 차량 실내의 쾌적한 공기를 책임지는 ‘차량 공조 장치’도 꼼꼼히 점검해야 할 텐데요. 삼성화재 애니카랜드가 알려드리는 관리팁을 함께 살펴볼까요? 


 

오늘 방문한 곳은 경북 포항에 있는 애니카랜드 용흥점입니다.


▶애니카랜드 용흥점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로 299 삼성화재 애니카랜드 용흥점 (Tel 052-246-7838)




오늘 애니카 오토레슨을 진행해주실 첫 번째 주자, 삼성화재 애니카랜드 용흥점 남갑수 대표님입니다.



Q. 이상적인 자동차 에어컨 필터 교환 주기는?




과거엔 항균 기능이 있는 자동차 에어컨 필터를 찾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2015년 들어 항균 기능의 유해성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와 마찬가지로 유해한 성분을 방출한다는 주장에서부터 항균 기능 자체가 광고보다 뒤떨어진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어, 이젠 항균 기능이 없는 자동차 에어컨 필터를 찾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항균 기능을 제거한 자동차 에어컨 필터의 교환 주기가 더욱 짧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상적인 필터 점검 및 교체 주기는 6개월이라는 게 남갑수 대표님의 설명이었는데요. 이렇게 하면 필터 내 세균 증식을 최소화해 안심하고 에어컨을 틀 수 있다고 합니다. 



Q. 여름철 차량 공조기 사용시 주의사항은?




차량용 에어컨을 켜는 방법에도 요령이 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애니카랜드 용흥점 조재혁 공장장님은 ‘풍량’을 강조했습니다. 보통 에어컨을 처음 켤 땐 무심코 풍량을 중간 정도에 놓곤 하는데, 그것보단 처음부터 풍량을 키워 찬바람을 많이 나오게 한 뒤에 풍량을 줄이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어? 진짜?’ 싶다면 한낮에 운전할 때 한번 시험해보세요 :)


하나 더. 에어컨을 켰을 때 냄새가 심하다면, 찬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아까워하지 말고 과감히 환기를 한 후 다시 에어컨을 켜는 게 정답이라는 사실!



Q. 차량 에어컨 내부 습기 제거는 어떻게?




여름이 괴로운 건 더위, 그리고 습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더위보다 높은 습도를 더욱 싫어하는 분들도 많죠. 이런 분들은 차량 내부가 눅눅하다고 느끼는 순간 에어컨 버튼부터 누르기 마련인데요. 그것보단 에어컨 스위치를 끄고 송풍만 하는 게 습기를 빨리 말리는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Q. 자동차 공조장치 청소법을 알려주세요



자동차 공조장치는 에어컨 필터 외에도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에어컨 필터를 분리한 후 먼지를 털어내는 걸로 자동차 공조장치 청소를 마무리짓는 경우가 많죠. 


조재혁 공장장님의 시연을 통해 올바른 자동차 공조장치 청소법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에어컨 필터부터 분리한 다음, 글로브 박스를 제거하고 내부 공조기 팬을 들어낸 다음…





먼지와 이물질로 덮인 공조기 팬을 정성스럽게 세척해줍니다. 

전용 클리너가 있다면 작업의 난이도는 확 내려갑니다.






공조기 팬 청소를 마쳤다면, 부품을 분리한 순서의 역순으로 공조기 팬 재조립 – 글로브 박스 장착 – 에어컨 필터 장착까지 진행하면 됩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후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직접 따라하긴 좀 어려울지도…’

‘요새 일이 많아서 할 시간이 없는데…’

이런 분들을 위한 해결책은?




가까운 애니카랜드 지점을 방문하셔서 더욱 꼼꼼하고 섬세한 정비를 받는 걸 추천합니다 :)




애니카랜드 용흥점과 함께 한 <애니카 오토 레슨>!

다음 레슨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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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까스텔바작(Castelbajac). 지난해 겨울, 그는 르노삼성 SM6를 도화지 삼아 걸출한 아트카(Art car)를 빚었다. 빨강, 파랑, 노랑 등 현란한 색동옷과 함께 수호천사를 그렸다. 




▲ 까스텔바작의 르노삼성 SM6 아트카



정신없는 낙서처럼 보이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가볍지 않다. 따뜻함, 열정, 사랑을 품은 수호천사는 탑승자의 안전을 보호한다. 또한, 한불 수교 130주년과 ‘올해의 안전한 차’를 수상한 SM6를 기념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동차와 미술의 협업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독일의 BMW는 지난 1975년부터 아트카를 빚어 왔다. 프랑스 태생의 ‘에르베풀랭(Herve Poulain)’은 주말이면 BMW를 타고 서킷을 누비는 아마추어 레이서이자 미술품 경매가였다. 그는 경주차에 “스폰서 광고 대신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 알렉산더 칼더가 디자인한 BMW의 첫 번째 아트카


BMW 첫 번째 아트카는 모빌의 창시자이자 조각가인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가 맡았다. 에르베풀랭과 칼더가 돈독한 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BMW는 그에게 3.0 CSL을 주었고, 칼더는 오롯이 자신의 스타일로 아트카를 빚었다. 참고로 BMW 아트카는 단순히 박물관용이 아니다. 실제 경기에 투입한다.




서킷에 등장한 아트카는 그야말로 좌중을 압도했다. 모두가 스폰서와 상업 광고를 차체에 실을 때, BMW는 예술품을 격전지로 보내며 존재감을 뽐냈다. 이를 계기로 BMW는 매년 1명의 작가를 선정해 아트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이후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로이 리히텐슈타인, 제프 쿤스 등이 차례로 붓을 잡았다. 




▲ 프랭크 스텔라가 디자인한 BMW 아트카



19대의 아트카 중 가장 좋아하는 BMW를 꼽으라면,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작품이다. ‘검은 회화’로 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스텔라는 추상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보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 그 자체다”라고 주장하며 전통적인 표현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알렉산더 칼더의 아트카가 화려한 옷을 입었다면, 스텔라의 아트카는 검은 줄로 칭칭 감은 게 특징이다. BMW는 1976년 스텔라의 아트카를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참전시켰다. 단순히 기록 대결뿐 아니라 자동차 경주의 또 다른 장르를 개척했다.




▲ 존 발데사리와 그가 디자인한 BMW 아트카



가장 따끈따끈한 아트카는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가 빚은 19번째 작품이다. 그는 M6 GTLM을 밑바탕 삼아 독특한 경주차를 빚었다. 존 발데사리는 현란한 붓질보단 텍스트와 상징 기호를 통해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그는 인공과 자연, 군중과 개인, 남성과 여성, 혼란과 질서, 과거와 현재, 사랑과 미움 등을 대비시켜 긴장감을 만든다.




사실 그동안 아트카 프로젝트를 맡은 작가들은 조각이나 회화, 팝아트 등 시각적인 즐거움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존 발데사리는 ‘개념미술가’다. 그래서 기존 아트카와는 다르게 다소 휑해 보이기도 한다. 가령, 차체 왼쪽 측면에 “FAST(빠르다)” 문구를 새겼고, 오른쪽 측면엔 자동차 이미지를 그렸다. 또한, 지붕과 보닛 위에 빨간 점과 노란 점을 찍었다. “빠르다”를 대담하게 외친 M6 GTLM은 롤렉스 데이토나 24시 경주에 참여해 6위로 결승선을 밟았다.




▲ 키스 해링이 디자인한 랜드로버 아트카



영국의 랜드로버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키스 해링(Keith Haring)과 손잡았다. 키스 해링은 하위문화로 낙인찍힌 낙서화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 양식을 만든 화가. 그는 1958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나, 커츠타운(Kutztown)이란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어린 해링은 자신을 둘러싼 답답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 해결해줄 도구는 두 가지뿐. 잡지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접하고, TV를 보며 월트 디즈니 같은 대중문화를 알게 됐다. 


1960~70년대 미국은 페미니즘과 인종차별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다. 기술의 발전으로 하루가 다르게 온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혼동 속에서 청소년기 보낸 해링은 자연스레 사회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 키스 해링(Keith Haring)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해링은 격변의 중심, 뉴욕으로 향했다. 시각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s)에 다니며 미술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그의 스승인 키스 소니어(Keith Sonnier)의 작업을 도우며 미술가의 개인전을 간접 경험한다. 그런데, 전시장 지키며 관람객을 관찰하던 해링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중들이 스승의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반대로 예술이 대중에게 인정받기는커녕 이해조차 시킬 수 없음에 당황했다. 


그해 겨울, 방황하던 해링은 길거리에 새겨진 낙서를 보았다. 평범한 낙서들이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말을 걸었고, 이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곧바로 분필을 사와 지하철에 자리한 시기 지난 광고판에 그림 그리기 시작했다. 단순 명료한 그의 그림은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가 작업하는 순간에 말을 건네며 자연스레 대화할 수 있었다. 빈번히 공공기물 훼손 혐의로 경찰서를 드나들었지만, 이러한 소통은 해링이 작업하는 이유이자 큰 원동력이 되었다. 


밝고 귀여운 그림과는 달리 해링은 골몰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는 평범한 낙서와는 다르게 강렬한 메시지를 세상에 던졌다. 인종차별 문제, 성 소수자 인권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쉽고 친근하게 풀어 대중에게 다가갔다. 




▲ 아트카 작업 중인 키스 해링



키스 해링의 그림은 1983년 색다른 캔버스를 만났다. 도화지의 주인공은 랜드로버 디펜더. 1971년형 시리즈 3 모델이다. 짙은 올리브색 도장 면을 그의 흔적으로 가득 채웠다. 멈춰있는 벽과는 달리 이곳의 흔적은 세상 곳곳 누비며 대중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차는 어떤 길도 달리는 랜드로버니까. 


30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 사회는 또 다른 혼동 속에 갇혀있다. 과연 그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할까? 





※ 본 콘텐츠는 집필가의 의견으로, 삼성화재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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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모터스포츠 우승자 프랑스 알베르트 백작



▲ 알버트 백작이 1894년 최초의 모터스포츠에 타고 출전해 1위를 차지한 차



1894년 7월 22일 프랑스 파리.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양산을 쓴 부인들과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거리로 나왔는데요, 다들 무엇인가 신기한 것을 구경하느라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세상에 말이 끌지도 않는데 굴러가는 마차가 있다니……." 사람들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그리고 심지어 말도 없이 혼자서 굴러가는 마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1894년 최초의 모터스포츠를 개최한 신문 ‘르 쁘띠뜨 저널’



프랑스 파리의 신문사 '르 쁘띠뜨 저널'이 주최한 행사에는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차, 심지어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까지 등장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모터스포츠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요란한 소리를 내고 수증기와 연기를 내뿜는 괴상한 물건을 보러 모인 사람들은 뛰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자동차 경주가 시작되는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파리에서 출발해 총 126km를 달렸습니다. 이 차들의 속도가 대략 10km/h 내외였으니 적어도 12시간은 달려야 하는 어마어마한 경주가 시작됩니다. 




▲ 라 마르퀴즈 (1884년)



이렇게 시작한 세계 최초의 모터스포츠에서 최초의 우승자는 알베르트 드 디옹 백작이 차지했습니다. 프랑스의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발명가인 백작은 자동차 회사를 만들어 증기차 '라 마르퀴즈'를 개발해 참여한 것인데 우리가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로 알고 있는 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나온 지 8년이나 지난 일입니다. 백작이 타고 우승했던 자동차 라 마르퀴즈는 2011년 미국의 한 경매에서 54억5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합니다.



▶ 예술에서 모터스포츠로, 에토레 부가티


프랑스에서 시작한 모터스포츠는 순식간에 유럽으로 퍼졌습니다. 멀리 미국에서도 자동차경주가 열리기 시작했고 도시 사이를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겨루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 에토레 부가티 (1932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엔진 자동차가 등장하기 5년 전인 1881년. 에토레 부가티는 이탈리아 밀란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인 지오바니 루이지 부가티는 건축가이자 조각가였고 아버지 카를 르 부가티도 건축, 조각은 물론 회화와 같은 예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프랑스로 이사 온 부가티 집안은 에토레 부가티에게 자동차라는 신문물을 만나게 했습니다. 스무 살이 된 부가티는 ‘디트리히’ 모델을 만들었고 1909년에는 자동차 회사인 ‘부가티’를 설립합니다. 그래서 1920~1930년대 전설적인 모터스포츠의 자동차 부가티가 탄생합니다. 이탈리아 사람이 프랑스에서 설립한 회사의 작품입니다.




▲ 부가티 타입 35C 그랑프리 레이서 (1926년)



에토레 부가티의 자동차 ‘타입 35’는 1924년부터 1931년까지 모터스포츠에서 무려 2000번의 승리를 기록합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수퍼차저를 사용한 2252cc 엔진을 사용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최초의 알루미늄 합금 휠을 사용하면서 불과 수십 년 만에 자동차는 마차의 모양에서 날렵한 스포츠카로 바뀌게 됩니다.


자동차를 마치 예술작품처럼 만들던 부가티는 차체 강성을 위해 아예 도어를 없애기도 했고 손으로 정교하게 깎아 모양을 낸 부품을 사용해 서로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엔진의 밀봉도 별다른 부가 작업 없이 이뤄졌습니다. 지금 봐도 아름다운 부가티의 자동차는 초기 모터스포츠에서 가장 빛나는 모델이었고 에토레 부가티는 모터스포츠에 전설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부가티의 안타까운 몰락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수제작으로 고급, 고성능 차를 만들던 부가티는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그리고 이어진 2차 세계대전까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아들인 장 부가티가 1939년 사고로 사망하면서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렇게 전설의 모터스포츠 머신 부가티는 사라져갔고 1947년 에토레 부가티의 사망 이후 1952년 파리 모터쇼를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옵니다. 지금의 부가티는 에토레 부가티의 사후에 브랜드를 살려보려는 노력이 이어진 결과이며 폭스바겐그룹에서 1998년 인수하며 수십억 원에 이르는 자동차를 만드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 모터스포츠 사상 최악의 사고, 피에르 르벡


1955년 프랑스 르망에서는 엄청난 사고가 일어납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스포츠로 일어난 사고 가운데 역사상 여섯 번째에 들어갈 정도의 참사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피에르 르벡



피에르 르벡은 르망24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24시간 동안 달리는 경주에서 르벡은 혼자서 23시간 정도까지 달리다가 기어변속 실수로 리타이어 합니다. 그때까지 1위를 지켰습니다. 지금은 안전을 위해 1명이 계속 타는 것은 금지됐습니다.




▲ 메르세데스-벤츠 300SLR이 경기 도중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다 (1955년)



그러던 1955년의 어느날. 프랑스 르망24 경기에 출전한 피에르 르벡. 그의 메르세데스 벤츠 300 SLR은 옆 차와 부딪친 뒤 날아올라 관중석으로 떨어집니다. 당시 속도는 240km/h 정도라고 알려졌습니다. 관중석 스탠드를 휩쓸고 간 차와 파편은 무려 80여 명의 사망자를 냈고 120명 이상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특히 마그네슘으로 만든 차체는 불이 붙어 몇 시간 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에르 르벡 역시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모터스포츠 사상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당시 전 세계에서는 모터스포츠가 중단됐고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후 약 30년 동안 모터스포츠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 르망 24 경기장에 표시한 추모 표지판



경찰의 수사결과 이 사건은 경기 중 일어난 사고라고 결론 내렸지만 사람들은 피에르 르벡에게 참사의 원인이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2010년 영국의 BBC는 <가장 치명적인 충돌>이라는 다큐를 통해 피에르 르벡의 잘못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불과 3초 밖에 되지 않는 영상을 복원했고 사고의 원인은 경기장 설계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 1932년 르망 24시 레이스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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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의 리턴 매치


예 맞습니다. 요즘 가까운 미래의 자동차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전기차. 우리가 이제 맞아들이려 하는 전기차가 사실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전기차가 내연기관자동차보다 역사가 더 오래 되었고 자동차의 주류였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오늘은 전기차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창립자 가운데 한명인 칼 벤츠(Karl Benz)가 1885년에 만든 ‘파텐트 모터바겐 (Patent-Motorwagen)’을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대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파텐트 모터바겐은 이름이 설명하듯이 동력 기관을 사용하여 달리도록 처음부터 고안되어 특허를 취득한 최초의 자동차를 뜻합니다. 보다 정확하게 이 모델의 중요성을 표현한다면 ‘세계 최초로 내연기관을 사용하여 작동한 오늘날의 자동차의 선조가 되는 자동차’가 되겠습니다. 


제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단순하게 표현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내연기관이 아닌 다른 동력 기관을 사용한 자동차들이 이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려 120년이나 앞선 1769년에 프랑스의 니콜라스 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가 프랑스군이 대포를 견인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증기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차, 즉 자동차의 시효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전기차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이 배터리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최초의 전기차를 만든 것이 1830년대니까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대략 5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단, 이 최초의 전기차는 한 번 방전되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배터리를 사용했다는 점이 한계였습니다. 

즉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갖고 노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고 아직은 본격적인 교통수단이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충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가 1859년에 발명되자 비로소 전기차가 쓸모 있는 교통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요즘의 순수 전기차와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의 충전식 전기차가 등장한 것은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2년 늦은 1887년 이었습니다. 미국인 화학자 윌리엄 모리슨(William Morrison)이 만든 이 충전식 전기차는 1888년 그가 살던 아이오와 주 데스 모이네스에서 열린 퍼레이드에서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였습니다. 1890년 그는 4마력 모터와 24 배터리 셀을 갖춘 신형 모델로 특허를 출원합니다. 이 모델은 최고 속도가 시속 약 20km, 1회 충전으로 무려 100마일, 즉 160km 이상도 달릴 수 있는 본격적인 모델이었고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 스터지스(Sturgis)와 손잡고 만든 새로운 모델을 전시하여 전기차와 배터리의 실용성을 홍보하였습니다. 모리슨의 전기차는 이후 전기차가 20세기 초의 대세가 되는 데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시속 100km의 벽을 처음으로 허문 자동차도 전기차였습니다. 초기의 자동차가 사람이 걷는 속도인 시속 4km, 칼 벤츠의 파텐트 모터바겐이 시속10km, 그리고 모리슨의 전기차도 사람이 빠르게 달리면 잡을 수 있는 시속 20km 정도였고 당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던 말도 평균 시속 50km, 최고 속도 80km/h 전후였습니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들의 극소수만이 유일하게 시속 100km의 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비포장 도로를 흙먼지 가득 일으키며 시속 100km로 달리는 자동차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시속 100km를 최초로 기록한 자동차는 프랑스의 ‘La Jamais Contente’입니다. 프랑스어라서 발음은 힘들지만 뜻은 아주 명쾌합니다. 그 뜻은 바로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Never satisfied)’. 두 개의 68마력짜리 모터로 바퀴를 직접 구동하는 어뢰를 닮은 유선형 차체가 인상적인 이 전기차는 20세기가 오기 직전인 1899년 4월 29일 파리 근교에서 사상 최초로 시속 100km의 벽을 뛰어넘었습니다. 이것은 한 달 전에 가솔린 엔진을 단 자동차가 세운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기차의 우세를 확고히 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초에도 전기차의 우세는 이어집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전기차의 단순한 구조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기차는 엔진처럼 ‘시동’이라는 개념이 없고 전기를 모터에 전달하면 바퀴가 굴러갑니다. 따라서 엔진은 시동되어 있지만 달리지 않을 때를 위하여 엔진과 바퀴의 연결을 끊어주는 클러치가 필요 없습니다. 또한 초창기의 엔진은 회전수에 따라 점화 시기를 운전자가 직접 조절해야 하는 등 조작하기가 매우 복잡합니다. 걸핏하면 망가지고 사람이 기름범벅이 되기 십상인 엔진의 신뢰성도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시동입니다. 당시의 엔진에는 지금과 같은 전기식 시동 모터가 없고 사람이 크랭크 축에 손잡이를 꽂아서 돌려서 시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지간한 남자에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엔진 자동차는 깔끔하고 조용한 전기차에 비하여 성가시고 불편한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당대의 발명왕이자 재산가였던 토머스 에디슨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전기차는 미래가 밝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기차가 1920년대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가격입니다. 지금의 전기차도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가격 경쟁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헨리 포드가 모델 T로 생산 라인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엔진 자동차는 품질은 향상되고 가격은 훨씬 저렴해졌습니다. 1912년 기준으로 전기차의 가격이 1750 달러였던 것에 비하여 포드 모델 T의 가격은 단 650 달러였습니다. 그리고 전기식 시동 모터가 발명되면서 엔진을 시동하는 것이 손쉬워졌습니다. 1회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짧고 충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기차의 한계가 더욱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휘발유도 구하기 쉬워졌습니다. 마침내 전기차는 실질적으로 퇴장합니다.


20세기의 시작을 희망차게 함께 했던 전기차가 20세기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다시 돌아왔었습니다. 1996년에 만들어진 제너럴 모터스의 EV1이라는 전기차입니다. EV1은 배출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차를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강제하는 캘리포니아 주의 환경보호법에 대비하면서, 동시에 전기차 판매의 사업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리스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던 시범 사업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고 전기차가 실용적일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되어가던 중, 1999년 제너럴 모터스는 EV1 전체를 수거하여 거의 대부분을 폐차함으로써 갑자기 종료되었습니다. 정유 업계의 로비설 등 수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인 ‘Who Killed the Electric Car?’가 제작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잊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기차가 다시 다가옵니다. 이번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듯합니다. 이전에는 신기한 장난감, 상대적으로 편리한 도구, 혹은 미래를 가늠하는 제한적 실험이었다면, 이번에 돌아온 전기차는 ‘달리는 스마트 폰’이라는 말이 설명하듯 IT와 자동차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종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일백년 만에 벌어지는 전기차의 리턴매치. 이번에는 결과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 본 콘텐츠는 집필가의 의견으로, 삼성화재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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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다 보면 문득 도로를 마음껏 질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좁은 도로와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차량, 엄격한 교통법규 때문에 바람은 바람으로만 그칠 뿐이죠.


그런데 그간 이루지 못했던 꿈을 간접적으로 실현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삼성화재 멤버십 신규회원 및 기존회원들을 위한 4월의 선물은 ‘택시 바우처’입니다. 시럽 내 삼성화재 멤버십에서 바우처를 다운받은 후, BMW Driving Center 사이트(클릭)서 ‘M Taxi’를 예약하며 바우처에 표기된 번호를 입력하면 무료로 BMW 차량을 체험할 수 있답니다. 그것도 좁은 도로가 아니라 차량의 성능을 100% 끌어내는 서킷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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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 방문하다





BMW 드라이빙센터는 2014년 인천국제도시 영종도에 문을 열었습니다. 축구장 약 33개 규모인 24만㎡ 부지 안에는 다양한 트랙과 전시장을 비롯해 주니어 캠퍼스, 휴식공간, 레스토랑, 이벤트 홀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센터에 입장하는 순간, BMW 클래식 차량을 포함한 각양각색의 BMW 차량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 전시된 차량들은 사진촬영은 물론, 직접 운전석에 탑승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가볍게 접근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웠던 BMW 차량을 속속들이 살펴볼 좋은 기회죠. 일일 차주가 되어 멋진 인증샷을 찍는 건 덤!




차량 구경을 마친 후에는 BMW 브랜드의 역사를 돌아보거나 관련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고, 쾌적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해도 됩니다. 



짧지만 격렬했던 M TAXI 프로그램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M TAXI를 이용하기 위해 라운지로 향했습니다.




M TAXI는 한 타임 당 한 명밖에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방문 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예약하고 왔다고 해서 바로 입장하는 건 아닙니다. 먼저 ‘드라이빙 프로그램 체험 동의서’를 작성한 후 음주측정기(!)를 불어야 합니다. 본인이 운전하는 게 아닌데도 음주측정을 하는 이유는 차량의 격한 움직임으로 인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엔 과장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실제로 몇 번의 불상사가 있었다는 설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M TAXI를 이용하실 분들은 가급적이면 방문 전날 음주를 삼가셔야겠습니다.




M TAXI 드라이버가 되어주실 이용석 인스트럭터와 인사를 나눈 후, 이날 탑승하게 될 <BMW 6 Series Gran Coupe> 차량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엔 핸들 한복판에 박힌 BMW 마크에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고급 모터보트의 조종석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실내 디자인과 한눈에 들어오는 세련된 계기판,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을 위해 장착된 컨트롤러 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리에 앉아 안전띠를 매자 M TAXI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BMW 드라이빙센터에 마련된 서킷을 4바퀴 도는 게 전부지만, 직접 타 보면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이유를 금세 깨닫게 됩니다. 첫번째 바퀴는 가볍게 달리지만, 두번째 바퀴부터 시속 200km까지 속도를 높이며 급회전, 급정거, 급가속 등을 맛볼 수 있는데요. 게다가 네번째 바퀴에선 레이싱 게임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드리프트 주행까지! 바퀴가 땅에 끌리는 마찰음, 코를 찌르는 타이어 연기,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기울어지는 차체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나니 모터스포츠가 얼마나 매력적인 스포츠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격렬했던 질주를 아래의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본연의 퍼포먼스를 100% 발휘하는 BMW 차량을 경험하고 싶으신가요? 베스트 드라이버의 숙련된 레이싱 기술을 짜릿하게 만끽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삼성화재 멤버십에서 제공하는 4월의 혜택, M TAXI 바우처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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