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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심리학 

 

‘착한 게 아니라 약한 거야’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정훈 씨가 상담실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어 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아무 색깔 없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그는 어디서든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무언가를 토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고 다수의 의견을 따랐다. 경청이나 배려라기보다는 자기 생각이 뚜렷하지 않아서였다.

 

주변의 일방적인 부탁 역시 뿌리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맡고 싶어하지 않는 수업이나 불리한 시간표는 그의 몫이 되어갔다.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도 늘 끌려 다녔다. 마음속으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해지자고 늘 마음먹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네.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하며 물러서고 만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요새 사람 같지 않고 너무 점잖고 착한 분이다’는 칭찬을 한다.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어리숙하고 흐리멍덩한 사람이라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럴 바에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착하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미숙한 착함’과 ‘성숙한 착함’

 

 

 

 

 

여러분은 어른이 되어 착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나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아이들에게 착하다는 말은 칭찬일 수 있지만 어른들은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개성이 난무하고 자기 PR이 중요한 이 시대에 ‘착하다’는 말은 마치 어리숙하고 개성이나 매력이 없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처럼 되어버린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착하다는 말은 흔히 ‘남을 잘 돕는’,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등 긍정적 성격 특성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서 ‘자기주장을 못하는’, ‘자기 것을 못 챙기고 남 좋은 일만 하는’, ‘재미도 없고 자기 색깔도 없는’ 등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요. 

 

 

 

우리는 ‘미숙한 착함’과 ‘성숙한 착함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숙한 착함’이란 간단히 말해 ‘순응’입니다. 이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순순히 따르는 어린이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착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이 어질며 선하다.’는 의미입니다. 독립적인 자아를 갖추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공감할 줄 알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기준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행동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자아의 바운더리(boundary)’

 

 

 

 

 

성인이 되어서도 미숙한 착함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아의 미발달’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기호나 취향이 뚜렷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취향에 자신의 생각이 흡수되기 쉽습니다. 한 예로, 정훈 씨는 자신이 끌리는 노래가 있더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별로라고 하면 자신이 끌린 노래보다는 친구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더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맛있게 먹은 식당이라도 동료가 별로라고 하면 ‘그런가?’하고 먼저 자신의 기호를 의심할 것입니다. 이처럼 미숙한 착함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자아의 경계가 모호하고 지나치게 열려 있습니다.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자아의 경계를 심리학에서는 ‘바운더리(boundary)’라고 합니다. 바운더리는 몸으로 이야기하면 피부와 같은데요. 피부에는 약 5백만 개 이상의 감각신경이 있어 다양한 감촉을 느끼고, 수분과 전해질의 외부 유출을 방지하고, 땀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며, 외부 병원체로부터의 일차적인 면역기능을 담당합니다. 피부가 없거나 약하다고 상상해보세요! 피부가 있기에 우리는 몸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자아의 바운더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운더리가 약하면 자아는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고 위험해집니다. 우리는 바운더리가 있기에 타인과 구분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의 욕구, 사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건강한 바운더리가 있을 때, 끌려 다니거나 휩쓸리지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바람직한 자아형성을 도와

 

 

 

 

 

그렇다면 자아의 바운더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먼저 인간의 심리적 탄생 즉, 자아가 언제 만들어지는지를 봅시다. 영유아기는 애착대상과 공생상태이기에 자아가 모호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와 ‘너’를 구분하게 되고 원시적인 자아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심리적 공생관계에서 자아가 갖춰지는 것을 ‘자아분화(ego differentiation)’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애착대상과 심리적 연결을 유지하는 가운데 독립적 자아를 발달시키는 것입니다. 즉, 잘 분화된 자아는 ‘나(I-ness)’와 ‘우리(We-ness)’, 개별적 자아와 관계적 자아가 함께 있습니다. 통상 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적절한 공감이 이루어지면 만 3세경에 아이의 자아는 일차적 분화를 거칩니다. 이는 엄마라는 애착대상이 내면화되어 잠시 엄마가 보이지 않더라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고 혼자서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안정적인 애착이 중요한 이유는 안정적인 자아분화를 돕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착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되면 자아발달의 왜곡이 일어납니다. 이를 자아의 ‘조기 분화(early differentiated)’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애착대상과의 연결을 유지한 안정적인 분화가 아니라 애착대상과의 단절된 ‘분리’를 의미합니다. 상호적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관계적 자아가 깨져버린 채 자기 세계에 갇혀버린 것이죠. 반대로 3세가 넘었는데도 불안이나 심리적 밀착 때문에 제때 자아가 분화되지 못한 채  ‘미분화(undifferentiated)’ 상태로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자아의 개별성이 없이 애착대상과 얽혀있는 상태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정훈 씨의 경우는 미분화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 두 유형에 대한 전형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코(echo)와 나르키소스(narcissus)’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나르키소스는 자아의 조기분화로 인해 자기 안에 갇혀있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만 되받아서 이야기하는 에코는 자아의 미분화로 대상 안에 갇혀 있는 양극단의 모습입니다. 이 둘에게는 ‘건강한 경계’가 없습니다. 나르키소스의 자아경계는 폐쇄적이고, 에코의 자아경계는 너무 희미합니다. 

 

 

 

 

 

지금 나의 바운더리는 건강할까? 

 

 

 

 

 

잘 분화된 자아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갖춥니다. 폐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열려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과 친밀함을 주고받을 만큼 그 여닫음이 잘 이루어집니다. 해로운 것은 안 받아들이고 좋은 것은 받아들입니다. 마치 정원이 살짝 보이고 넝쿨이 자라고 있는 주택의 잘 세워진 울타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위압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들어갈 정도로 허술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조기 분화된 자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밖에 모르는 폐쇄적인 바운더리로 나타납니다. 너무 높고 철조망이 드리워진 울타리와 같습니다. 관계를 차단한 채 그저 방어적인 관계만 하거나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거나 자기 욕구만을 채우려는 아이 같은 관계를 하려고 하지요. 그에 비해 미분화된 자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잘 못 느끼고 거절이나 자기주장을 못하는 약한 바운더리의 모습을 보입니다. 담장이 너무 낮거나 큰 구멍이 나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허술한 울타리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바운더리를 존중하지 않고 관계를 지배하려고 드는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쉽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행복보다는 상대의 욕구와 행복을 우선적으로 채워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아가 제대로 분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약한 바운더리를 튼튼히 하는 3단계 연습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운더리가 희미하고 약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바운더리를 세우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자아인식에 바탕을 두고 자기에게 맞는 바운더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지,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잘 되지도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3단계로 나누어 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1단계는 ‘일단 멈춤!’입니다. 바운더리가 약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순응적인 자동반응을 보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예!’ ‘알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와 같은 순응적이거나 모호한 표현을 합니다. 일단 이 자동적인 반응을 멈추고 조금 늦게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잠깐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자기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갖고 난 뒤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2단계는 ‘감정과 욕구의 인식’입니다. 무조건 거절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는 것이 바운더리를 세우는 데 중요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려고 해도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지?’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지?’라고 반복적으로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3단계는 ‘자기표현’입니다. 가능한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기반을 두고 표현을 늘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온갖 두려움이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두려움은 과장된 것입니다. 당신을 점잖게 드러낸다고 해서 관계가 한없이 불편해지거나 찍히거나 단절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어 보세요! 내가 원하는 것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자신을 돌보면서도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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