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이 있는 5월에는 가족의 의미를 더욱 깊게 새길 수 있지요. 하지만 5월 끝자락에 가슴 아픈 날이 있습니다.

 

바로 5월 25일 '세계 실종 아동의 날'인데요.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사라지면 가족들은 그야말로 아이를 찾으러 다니느라 생계를 돌볼 수 없게 되는데요. 눈물 마를 날 없는 실종 아동의 부모 곁을 25년째 묵묵히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의 나주봉 회장! 그는 삼성화재 RC로도 일하고 있는데요. 실종 아동을 위한 활동에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니, 시간에 제약이 없는 삼성화재 RC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가 걸어온 25년의 세월을 지금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세계 실종 아동의 날 유래

1979년 5월 25일 뉴욕에서 6세의 에단 파츠(Etan Patz)가 등교 중 유괴,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 의해 선포되었습니다. 

한국은 실종 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환기하고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07년 5월 25일부터 '한국 실종 아동의 날'을 제정하고 매년 5월 25일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청량리역 2번 출구로 나가면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사무실이 있습니다.

사무실 앞엔 실종 아동을 찾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요. 빛바랜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은 해맑기만 하네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주봉' 회장.

 

그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한 걸까요? 나주봉 회장을 만나자마자 오지라퍼가 던진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주봉 회장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떤 계기로 실종 아동 찾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실종 아동 가족들과의 첫 인연은 '개구리 소년' 아버지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어떤 사건인지 잘 아시죠? 

 

그즈음 제가 각설이 공연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공연해서 관객들이 모이면 그때 일명, 노래 테이프를 팔아 수입을 올렸죠. 꽤 잘 벌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수완이 좋았거든요.

 

1991년 인천 월미도에서 공연하는데 반대편에서 아저씨들 여럿이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전단을 받으면 버리기까지 했어요. 전단 내용이 뭔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봤죠. 실종된 아이들 사진이었죠. 바로 '개구리 소년'들이었어요.

 

처음에는 안타까움이었어요. 한쪽에서는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떠드는데 한쪽에서는 아이 잃은 마음에 애를 태우고 있으니 미안하더군요. 어차피 각설이 공연을 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니니, 도와줄 수 있겠다 싶어서 그분들(개구리 소년의 아버지들)에게 전단지 500부를 받아서 나눠주기 시작했어요.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대구 성서 초등학생 실종 사건)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에 살던 5명의 초등학생이 개구리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사건. 사건이 일어나고 2년 뒤에는 방송을 통해 실종 아동 사건이 널리 알려졌다. 실종 아동을 찾는 캠페인이 전개되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시간이 흐르다 2002년 9월 26일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 와룡산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개구리 소년' 실종 전단을 나눠주는 게 시작이었다는 거군요.


네, 그게 시작이었는데 이 일이 입소문 나면서 방송과 언론이 취재했어요. 

그후 주객전도가 됐다고 할까요? 노래 테이프 팔던 각설이에서 실종 아동을 찾아다니는 각설이로 사람들이 바라보고, 관심을 갖더군요. 그러자 다른 실종자 가족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인연을 맺은 가족들의 모습은 처참했어요. 힘든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부모, 아이 찾는 데 몰두하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가정… 결국 깊은 상처만 안고 가정이 해체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당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낮은 수준이었죠.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어진 게 지금의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입니다.

 

 

지금까지 몇 명의 실종자를 찾았나요?


2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실종자를 찾는 한 길만 걸어왔습니다. 

강산도 두 번 바뀌었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수색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지금까지 대략 650명 실종자를 찾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되어드렸습니다.

 

지금은 실종 관련 전산 시스템이 많이 좋아졌지만 1990년대만 해도 아이를 잃어버리면 발품을 팔고 전국 시설을 돌아다녀야 했어요. 그 당시에는 관련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미인가 보호 시설이 하루아침에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요.

실종 아동 찾는 일에 발 벗고 뛰어들다 보니 필요한 법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요.

엇보다 '실종 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이 꼭 필요했었지요.

 

인터뷰하는 동안 계속 나주봉 회장의 전화가 울립니다.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유독 실종 아동에 대한 관심이 쏟아집니다. 그러한 관심이 5월 한 달이 아닌 12개월, 1년 내내 계속되길 나주봉 회장은 소망합니다.

 

 

실종 아동 관련 법률 제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들었어요.


1990년대는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아이가 사라졌을 때 8세 미만은 미아, 8세 이상은 가출이라고 해서 8세 이상이면 경찰이 아닌 가족이 찾아야 해요.

 

물론, 납치, 유괴일 경우는 수사본부가 차려져서 경찰이 개입하지만 그 외는 가족이 직접 찾아 나서야 했던 거죠. 그렇다면 같은 시기 해외는 어땠을까요?

 

미국에서는 '코드 아담'이라고 실종 아동 찾는 프로그램이 1984년에 시작됐습니다.

그 후에 '엠버'라는 아이가 실종되면서 '엠버 경보'라는 후속 대책까지 나왔고 실종 아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시스템이 잘 갖춰졌죠. 우리도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실종 아동 관련 법을 2002년부터 준비했어요. 지도층 인사들을 만나 실종자 찾기에 필요한 법 제정을 촉구했고 결국 2005년 법이 제정돼 12월 1일부터 시행됐죠. 

 

이후에 '범죄 피해자 보호법' 만들기에도 앞장서서 그 당시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사형에 해당되는 범죄일 경우 공소시효가 없지만 말이죠. 

(※2015년 7월 31일, 형사소송법 253조의2가 신설되면서 사람을 살해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 중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일 때는 공소시효의 규정이 배제됩니다.)

 

코드 아담

실종 아동 발생 시 마트, 백화점 등 다중 운집 시설에서 실종 발생 초기 단계에 체계적으로 모든 역량을 동원, 조속한 아동 발견을 위해 노력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입니다.

장에서 시설의 출입문 봉쇄 등을 통해 미아 발생을 방지하고 10분 내 아동을 찾는 실종 아동 수색 프로그램입니다. 

 

1981년 미국 플로리다 시어스 백화점에서 실종된 후 살해된 채 발견된 '아담 월시'(당시 6세)군의 이름에서 유래, 1984년 월마트에서 시작된 후 미국에서 550군데 이상의 기업, 기관과 5,200여 대형매장이 코드 아담 제도에 참여 합니다. 한국에서는 2014년 7월 29일, '실종 예방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코드 아담'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엠버 경보

납치, 실종된 어린이의 인상착의 등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전파해, 국도, 지하철 등의 전광판과 교통방송, 휴대전화 등을 활용하여 실종 아동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여 신고와 제보를 독려하는 시스템입니다. 

 

 

미국의 '아담'이나 '엠버'처럼… 우리나라에도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킨 아이들이 있는데요. 직접 찾아다닌 아이들 중에 기억나는 아이가 있다면요?


물론, 제가 제일 처음 찾으러 다닌 '개구리 소년'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요. 그 다음에 8년째 추모제를 진행해 온 '이혜진', '우예슬' 양이 기억에 남죠.

 

실종 아동의 경우, 기억에 남는다는 게 참 가슴 아프고 슬픈데요. 2007년 크리스마스이브 선물을 사러 나갔다가 유괴범에게 납치돼 참혹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들이거든요. 그 주검을 부모들이 차마 직접 볼 수가 없어서 제가 직접 확인했고요.

 

유독 두 아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두 아이의 납치 사건으로 인해 골목 곳곳에 CCTV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CCTV로 인해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검거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년 전 혜진이 아빠가 돌아가시고 제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추모식을 계속 이어가기 힘들더라고요. 지난해 추모식을 마지막으로 '혜진'이와 '예슬'이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8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데… 저는 이상하게 두 아이에게 죄스럽고, 사회적 범죄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어려움에 사회가 무관심한 현실이 서글프더라고요.

 

 

앞서 말한 경우 말고도, 아이들로 인해 법률이나 제도가 바뀌거나 생겨난 경우가 있나요? 


지문사전등록제가 시행된 걸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법이 아니라 강제성은 없지만, 그 중요성은 다들 인식하고 있죠. 

 

지문사전등록제는 2003년 5월 한 장애 학생이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만들어진 제도예요. 상암월드컵경기장에 견학을 갔다가 실종이 됐는데, 아무리 주변을 뒤져도 아이가 없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날 당일 평택 근처에서 화물열차에 치여 사망했었죠. 신원 파악이 되지 않아 47일 동안 병원에 안치되어 있었어요. 가족과 경찰은 사망 사실을 모르고 계속 아이를 찾으러 다녔고요.

 

제가 경찰에서 배포한 변사자 신원 수배 전단에서 그 아동을 찾으면서 실종 수사가 막을 내렸죠. 만약 변사자 신원 수배 전단을 안 뒤졌다면… 그 아동은 보호자가 없어 결국 화장했을 거고 가족은 가족대로 계속 애타는 마음으로 원인도 모른 채 찾으러 다녔겠죠.

 

실종 수사 전산 시스템만으론 부족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관계 부처와 여러 국회의원님들께 지문사전등록제를 강력하게 건의했죠.

 

 

지문사전등록만 제대로 해도 아이를 찾는 데 많이 수월해지겠어요.


그렇죠. 2002년 대통령 선거 홍보물에 아이들을 실어 달라고 각 당 선거본부에 부탁했죠. 그런데 선거 홍보물이다 보니, 경찰청이나 보건복지부 연락처를 넣는 게 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꺼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제 개인 연락처를 넣었죠. 그 당시 3만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찾은 아이가 바로, 이성호(가명) 입니다. 사진 속 아이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가 복지시설에 있다고 해서 직접 가봤더니… 이성호(가명) 군이 홍성식(가명)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주민등록증까지 만들었더군요. 새로운 호적이 만들어진 거죠.

 

과거에는 장기 실종 아동의 경우, 시설에서 호적을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성과 이름을 바꾸고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 경우에는 이름과 사진만으로 아이를 찾기 힘들 때가 있죠.  

 

 

아이를 잃어버리면 실종자 가족들의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텐데요.


온 가족이 생계를 뒤로하고 아이 찾기에 매달린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다 슬픔을 참지 못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가족도 있고요. 처음에는 힘을 합쳐서 아이 찾기에 나섰다가도 장기화가 되면 가족의 죄책감이 결국 가정 파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 슬픔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사망 사고라면 가슴에 묻을 수 있지만 실종 사고는 생사조차 알 수 없고, 만날 수 있다는 희망 고문 때문에 혹은 아이가 어디서 험한 일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하루하루가 생지옥이고 기다림입니다.

 

대부분 실종 가족들은 이야기해요.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제발 아이만 돌려 달라고요. 죄는 절대 묻지 않겠으니 아이만 무사히 되돌려 달라고 하죠. 그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이 사라졌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실종 초기에 '골든 타임'이 있습니다. 최소 12시간 최장 48시간까지 잡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론 3시간 안에는 아이를 찾아야 합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헤매게 되는 거죠. 또 시간이 길어지면서 목격자 탐문 자체가 힘들어집니다.

 

골든 타임 시기를 놓쳐서 10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장기 실종 아동들이 한 400명 정도 되거든요. 일단은 '골든 타임' 안에 아이를 찾도록 해야 합니다.

백화점, 마트 등 '다중 운집 시설'의 경우 코드 아담을 발령하고요. 시설 관계자들은 아이를 찾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또, 지문사전등록제를 꼭 활용하세요. 아이가 길을 잃으면 90% 이상은 경찰서에 갑니다. 지문만 사전에 등록해도 경찰서에서 곧바로 가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의 일과를 파악하고 아이 주변 친구들의 연락처를 알아둡니다.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는 경찰 112 번호로, 혹은 아동실종전담센터 182 번호로 신고합니다.

 

 

아이들의 실종 예방 교육도 중요하지요?


그렇죠. 집 전화번호, 부모의 휴대폰 번호는 꼭 외우게 하고요.

부모와 같이 나들이 갔을 때 부모를 잃어버리면 일단 그 자리에 멈춰야 한다고 강조하세요.

 

아이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단계 더 나가서 공중전화에 긴급전화를 누르고 112 혹은 182번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전 아이 실종 사건에서 아이들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부에서 요즘 많은 정책을 통해 의지를 보여주고 있듯이 끝까지 실종 아동을 추적하는 것 역시 실종 사건을 예방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5년 동안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어요. 앞으로 계속 실종자들을 찾아다닐 예정인가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운영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의 사진을 보며 그 가족들을 생각하니, 차마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요. 제 마지막 바람인 실종 아동들을 위한 추모공원을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로 인해 '실종법'이 만들어지고 법령 제도가 바뀌고 있지만… 아이들이 시민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는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실종 사건은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풀어야 할 공동의 문제예요. 모든 국민이 실종에 관해 인식을 가지고 경찰관의 눈이 되어서 주변을 살펴볼 때, 잃어버린 실종 아동을 찾고,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실종 아동에 대해서 시민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현재 실종자를 찾아다니는데 차량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장애 아동과 치매 환자의 경우 위험을 인지하지 못해 사고, 동사 및 저체온사로 많이 발견되어, 그 부분이 걱정인데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25년 동안 실종 아동을 찾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한 나주봉 회장. 그의 말은 마지막까지 마음을 절절하게 울렸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는 일. 희망은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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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심 2017.03.24 05: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인간이 무슨 사람을 찾습니까? 거기 노점상들 돈 뜯어먹는인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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