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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화제만발 가족 여러분 오지라퍼입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보험으로 행복을 지킨 분들 많으시죠? 오늘 만나실 분은 쉰 살에 보험 덕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분 이시라는데요. 쉰 살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지금부터 가슴 따뜻한 이야기 전하겠습니다.

 


 

 

“실례합니다. 여기 김은식 씨 좀 찾아 왔는데요. 지금 계십니까?”
“제가 김은식 입니다만. 아, 전화 주셨던 분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보험설계사, 김창우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는 재빨리 명함을 꺼내서 내밀었다.


“아, 네. 저희 어머니께 말씀 들었습니다. 들어오시죠”


나는 명함을 훑어보고 그를 휴게실로 안내했다.


“바쁘실 시간에 찾아 뵌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일감이 많이 줄었어요. 너무 한가해서 탈이죠.”
“어디나 그렇군요.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혹시 자동기어선반, CS선반이라고도 들어보셨어요?” 
그는 잘 모르는 눈치였다.
“쉽게 말해서 솥이나 볼트, 자동차 부속 등에 들어가는 쇠를 깎는 일이에요. 이 일만 한 30년 해왔습니다.”
“오래하셨네요. 이 분야의 베테랑이시겠군요.”
그는 나를 추켜세웠다.


젊은 사람이 올 줄 알았다가 연식이 나보다 더 되어 보이는 형님 같은 분을 만나니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저희 누님께 들으니, 김선생님이 결혼도 안 하시고 여태 혼자신데 보험이 하나도 없어서 어머님 걱정이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 쉰 살이 되도록 난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 속에 부모님을 모셔야 했고,

5남매 중 둘째지만 때론 동생들은 물론 병약한 형의 뒷바라지까지 해야 할 때가 많아 정작 혼기도 놓치고 말았다. 미혼이다 보니 마음만은 아직도 젊다고 착각할 때가 있었지만 체력적으로는 분명 예전 같지 않았다. 전에 없이 감기몸살로 몸져눕는가 하면, 궂은 날씨에는 뼈마디가 쑤시고, 고질병인 비염도 심해졌다.

 

남들처럼 옆에서 챙겨주는 아내가 없으니 어머니는 그런 내가 더 측은하고 건강이 염려되셨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보험설계사 김창우 씨와의 친분으로 어머니는 그를 통해 보험에 가입하길 바라셨다.


“나이도 있으시니까 이번 기회에 보험 하나 들어두시죠. 제가 권해드리고 싶은 상품은 이제 100세까지 바라보는 시대 아닙니까. 이 상품이 10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인데요. 비교적 보장을 넉넉히 설계해서 사망 및 실손의료비 뿐만 아니라 암, 뇌졸중, 급성심질환 진단비 등 다양한 질병을 보장하는 상품입니다.”


김창우 씨는 처음 보험에 가입하는 나에게 보험이 왜 필요한지, 실손보험이 무엇인지, 추천하는 상품의 특징과 장점이 뭔지 등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내 형편과 상황들을 배려해서 신경 써주는 모습이 고맙고 신뢰가 느껴졌다.

어머님의 걱정도 덜어 드릴 겸 해서 2009년 1월 난 생애 처음 보험이라는 것을 가입했다. 그런데 17개월 동안 납입하던 보험료를 1년 넘게 밀리면서 그 보험은 실효되고 말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보험료를 도저히 낼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이직했지만 그곳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또 다시 월급이 밀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내 생활고는 말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창우 씨는 재가입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험은 더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형편 모르는 소리 같아서 때론 그가 귀찮고 야속하기도 했다. 사실 경제적으로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이지만 뜻밖에 좋은 일도 진행되고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여자와 교제 중이었는데, 우린 서로 결혼까지 생각할 만큼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에게 인사시키고 프러포즈도 하고 싶었지만, 월급이 계속 밀리면서 안 그래도 결혼자금까지 걱정이었다. 이래저래 보험은 불필요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꾸 눈 부위가 쑤시고 통증이 와서, 나는 인근 대학병원 안과 진료를 다니기 시작했다. 담당의사는 염증 약을 처방해주며 당분간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치료를 받는 동안 증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었고, 그날도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데 우연히 김창우 씨를 만났다.


“여긴 웬일이세요?”

입원한 보험 가입자를 만나고 돌아가던 그는 마침 잘됐다는 듯 가까운 커피숍으로 나를 이끌고 들어갔다.


“저희 누님께 들으니 요즘 좋은 일 있으신 것 같던데요?”

 


그는 날 보며 씨익 웃었다. 쉰 살에 연애라니 쑥스럽지만 괜히 난 으쓱해졌다.


“저한테도 인연이 있긴 있나 봐요.”
“와, 청첩장 기대해도 되나요? 축하 드립니다.”
“아직.. 축하 받기는 좀 이르고요.”
“이렇게 좋은 일도 있으신데 더 건강관리 하셔야죠. 근데 안과 치료는 왜요?”


김창우 씨가 보험 얘기를 할 것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마침 누군가에게 상의를 하고 싶던 차라 그가 반갑기도 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눈이 아파서 진료를 했는데요. 의사 말로는 염증이 있는 것 같다고 당분간 약 먹으면서 치료를 하자더라고요. 근데 별로 나아지지도 않고... 안과가 원래 그렇게 돈이 많이 드나요? 치료 할 때마다 한 30만원씩 병원비가 들어서요. 감당이 안 되네요.”

“병원비가 30만원씩 든다고요?”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네. 뭐 맨날 똑같은 검사 하는 것 같은데 매 번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요.”


김창우 씨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갸우뚱대더니,


“이상하네요. 안과에서 염증치료 받는데 병원비가 그렇게 많이 나올 리가 없죠. 그러지 마시고 이번에 정말 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10년간 보험 영업을 하면서 생긴 감이라는 게 있는데요. 이럴 때 더 미루시면 나중에 후회할지 몰라요. 김 선생님, 워낙 술, 담배도 많이 하시잖아요. 오늘 보험부터 다시 가입하시죠.”

 

하고 그는 서류를 꺼내 들었다.
나보다 심각해진 그의 얼굴을 보니 더 이상 거절하기 힘든 위압감이 느껴졌다.


“지금도 보험료 낼 자신은 없는데... 알겠습니다. 또 해보죠 뭐. 근데 그때 가입했던 보험을 살릴 수는 없어요?”
“1년 이상 실효된 상태라서 부활시키려면 밀린 보험료부터 다 내셔야 해요. 그게 부담이 되실 테니 그냥 신규로 가입하시죠.”


그는 나를 위한 보험 설계를 이미 짜둔 모양인지, 바로 꺼내놓은 서류를 펼치며 상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권해드릴 보험은 상해질병에 대비하는 보험인데요. 지난 번 실효됐던 실손보험이 여기 다 포함이 됩니다. 암, 뇌졸중, 심질환진단비, 실손의료비를 기본보장하구요. 만약을 대비해서 질병 입원비를 추가하고, 장기입원 시 입원일당이 추가 지급되는 상품입니다. 비교적 보험료가 저렴한 게 큰 장점이고요. 교제하시는 분과 결혼하시면 나중에 배우자를 추가하실 수도 있어요.”


나는 다른 것보다 배우자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보험에서도 그 사람과 하나로 묶일 수 있다는 사실에 바보같이 기분이 좋아지면서 결혼준비로 가입해야 할 상품처럼 느껴졌다.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니 꼭 해야 할 일을 드디어 해낸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후 2012년 새해가 밝았다.


“월급이 해결 안 되서 미안합니다. 연휴 끝나고 봅시다.”


어느 해보다 구정설이 빨리 찾아 들었다. 주말을 낀 설날연휴는 무려 5일이나 이어졌다. 그런데 나에게는 긴 연휴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사장은 회사가 너무 힘들다며 6개월째 밀려있는 월급을 해결해 주지 않았고, 명절 보너스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빈 주머니로 명절을 맞으며 한숨이 절로 났다.

이번 설날에 여자친구를 정식으로 초대해서 결혼문제를 상의하고 싶었으나 당분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나처럼 결혼이 급하지도 않은 눈치였다.


“어차피 늦어진 결혼, 이 나이에 급할 게 뭐 있어요?”

그 사람은 순리대로 하자며 날 다독였다.

그래도 기운이 잔뜩 빠져 설날 차례를 지내고 계속 침울해 있는데, 오랜만에 집에 온 조카 녀석들이 무료한지 PC방에 가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세뱃돈도 못 준 미안함에 나는 조카들을 데리고 PC방으로 갔다.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난 흡연실로 자리를 옮겨 심난한 마음에 담배만 피워댔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서 갑자기 두통이 시작되더니 식은땀까지 나는 게 아닌가.

“공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나는 담뱃불을 끄고 잠시 머리를 기댔다.

그런데 증상은 더 심해지면서 급기야 왼쪽으로 마비증상까지 오는 게 아닌가.

“왜 이러지?” 갑작스런 마비증상에 난 무척 당혹스러웠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옆 사람에게 119를 불러달라며 간신히 의식만 붙들고 있었다.
119에 실려 안과 진료를 받던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곧장 옮겨졌다. 의료진들의 움직임이 긴박한 가운데 혈액검사와 뇌혈관검사, MRI 등 각종 검사가 순식간에 진행됐고, 그 사이 놀란 어머니와 형, 동생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이 사람아, 애미 왔다. 어디가 탈이 난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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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뇌졸중 진단비를 더 크게 넣어드리지 못한 게 아쉽네요.”
“무슨 말씀을요. 보험금으로 다 해결을 했는데 뭘 더 바라겠습니까. 7개월씩이나 입원생활을 했는데, 병원비를 모두 받게 돼서 얼마나 고맙던지 몰라요.”


비록 긴 투병생활을 하면서 나는 직장을 잃고 말았다. 결혼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나이 50에 시작한 걸음마, 다시 세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곧 이 지팡이와도 영원히 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무슨 일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어딘가 있을 내 반쪽을 만나 또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